푸른 종이 울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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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Moratorium
by 안단테♪







※ 심미안 주의!








자작 그림과 태블릿에 관계없는 잡담이 곁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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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자신의 습성을 잘 버리지 못한다. 마치 호텔에서 하룻밤 묵을 때에도 왼쪽에 있는 탁자를 오른쪽으로 옮겨놓고, 오른쪽에 있는 의자를 왼쪽으로 옮겨놓으려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인간은 자신만의 미학과 균형 감각, 질량과 색채 감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에 거슬리는 불균형을 바로잡지 않으면 몹시 불편해한다.

- 조반니노 과레스끼,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서교 출판사, 179면. -



 매우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때 좋아하는 그림작가나 영상제작자 분들의 트위터를 샅샅이 뒤지고 다닌 적이 있었다. 나 자신은 트위터 등을 하지도 않으면서.

 계기가 된 것은 모 그림 사이트에서 팔로우를 하고 있던 어떤 동인 작가분. 백합 동인지를 주로 그리는 데다 그림체가 딱 내 취향이라 평소 신경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프로필에 트위터가 등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 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 사람의 트위터에는 그림 사이트에서와는 다르게 정치적으로 상당히 극우적인 발언이 매우 공격적인 어투로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작품의 팬들을 어떻게 비꼬아야 효과적인지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 놓고 있는 등 도저히 호감을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매우 실망한 난 그 동인 작가를 언팔하는 동시에 '혹시 다른 작가들도 뒤에선 이러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졌다. 그때부터 난 그림 사이트 등지에서 체크하고 있던 동인 작가나 혹은 평소 책을 구입하고 있던 프로 작가들의 SNS 계정을 찾아 이른바 '검증'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려는 얼마간 들어맞았다. 내가 좋아하던 창작자들 중에는 극우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등 정치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백합 작품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여성이 남성들에게 성 관계를 강제 당하는 그림을 리트윗하는 등 나로서는 도저히 찬성할 수 없는 성적 판타지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나는 그 사람들을 전부 언팔하고, 심한 경우에는 해당 작가의 책을 다음 날 분리수거한 적도 있었다.

 한데 그런 자세를 반년 정도 고수하다 보니,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드는 그림을 발견해도 추천이나 북마크를 하기 전에 우선 그 창작자가 제대로 된 사람인지 SNS나 개인 홈피 또는 (유명한 사람일 경우) 위키 등을 뒤져보고, 지금 응원하고 있는 창작자들도 언제 문제가 되는 발언을 하지 않을까 가슴을 조아리며 주기적으로 트위터 등을 확인하고······.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피곤한 것은 물론이지만, 무엇보다 스스로가 스토커나 아니면 (내가 그토록 경멸하는) 독재정권의 검열관 흉내라도 내고 있는 것 같아 굉장한 자괴감이 들었다.

 그 후로 난 더 이상 창작자들의 트위터 등을 되도록 확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해당 창작자가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을 만큼 큰 범죄나 부도덕한 짓을 저질러 뉴스 등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작품만으로 판단하려 노력한다.

 그때의 내가 옳은지 지금의 내가 옳은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단순히 개념적으로 볼 때, 정치적 올바름에 관해 문제가 있거나 부도덕한 발언을 일삼는 창작자를 가려내 어떤 식으로든 지원(팔로우나 추천, 책 구입)을 하지 않는 것이 결코 잘못된 행위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 내가 한 행위는 스스로도 너무 피곤했고, 그때의 난 스스로가 생각해도 불쾌한 인간이었다. 혹 지금의 내 자세 또한 옳지 않다면, 더 좋은 길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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