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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Moratorium
by 안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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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나를 이용하듯이 나도 언론을 이용한다.”
“나는 무료로 뉴욕타임스에서 홍보한다.”

- 도널드 트럼프의 저서에서 (출처 나무위키) -



 ‘우리의 무관심이 낳은 결과’라는 카피와 광고 스토리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행동을 단호히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 물론 쓰레기를 버리는 행동 자체를 반대하는 메시지가 설득적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그런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그런 행동은 남들도 다 하는 별 것 아닌 행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회적 증거의 법칙은 사람들이 가장 대중적인 행동 방침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뜻하므로, 대중적 행동이 바람직한 경우는 괜찮지만 그 반대일 경우에는 해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이와 비슷한 예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수많은 병원이 예약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환자들을 점잖게 꾸짖는 포스터를 대기실 벽에 붙여 놓지만, 예약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늘어난다. 정당들은 투표율이 점점 더 떨어지면, 유권자의 무관심을 비난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이 아무 소용없다고 오해한다.

 애리조나의 ‘화석의 숲’ 국립공원을 찾는 사람들은 ‘땅에 떨어진 석화된 나무 조각을 가져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공원의 존립 자체가 위협 받고 있다’는 내용의 표지판을 보고 재빨리 도둑질을 배운다. 표지판에는 정확히 이렇게 적혀 있다. “나무 조각을 훔쳐가는 사람들 때문에 매일 우리의 유산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작은 조각 하나씩만 가져가도 매년 14톤가량의 석화된 나무가 유실됩니다.”

 이러한 캠페인을 주도하는 실무자들은 부정적인 사회적 증거가 그 행동의 부적절함보다는 ‘만연한 현상’이라는 점에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점을 미처 알지 못한다. 비록 이런 예들이 현실 상황을 그대로 말하는 것뿐이고 선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밖에 안 될 수도 있다.


- 로버트 치알디니 外, 설득의 심리학 2권, 21세기북스, 39면 이하. -



 근래 우리 사회의 치부와 민낯을 드러내는 굵직한 사건들이 여럿 터지면서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이 한층 심화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이런 충돌의 여파는 사회가 발전하고 변화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겠지만, 어디서나 그렇듯 현실을 부정하고 자기 머릿속의 편향된 이데올로기나 이기적인 소망만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자들이 문제지요.

 특히 몇몇 극우단체나 종교단체들이 벌이는 소란과 SNS 등지에서 쏟아내는 막말은,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웬만한 민폐나 진상손님보다 더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떤 네티즌 분들은 저들 단체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고 성토하기 위해 저들의 발언을 옮기며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쓰시더군요.

 하지만 위의 인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런 대응들은 자칫 역효과를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사람은 뇌신경학적으로도 타인이나 집단의 행동을 따라하려는 경향이 확인된 바 있는데, 설령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한다고 하면 은연중 ‘괜찮은 것’으로 인식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일본에는 “빨간 신호도 같이 건너면 무섭지 않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겠지요. 즉, 어떤 식으로든지 ‘알리는 것’ 자체가 저들 단체의 힘이 될 수가 있습니다.



 저 부절적한 단체들에게 대처하는 첫 번째 방법은 우선 “트롤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는 유명한 표현에 따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각종 극우단체 등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트롤, 어그로, 관심병자 등으로 불리는 유형의 인물들과 비슷한 행동을 합니다. 혹은 아예 관심병자에 속하는 인간들이 세간의 주목을 쉽게 받기 위한 방편으로 일부러 저들 단체에 동조하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요.

 저들이 관심병자의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트럼프와 같이 계산적으로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과격한 발언을 일삼는 자가 있는가 하면, 정말 관심종자 부류와 같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게 기분 좋아서 그런 행동을 하는 자도 있습니다. 특히 후자의 유형은 과거의 갈채를 그리워하는, 일선에서 물러나 한물 간 연예인이나 전직 방송인 등에게서 종종 발견할 수가 있더군요.

 이미 여러 인터넷 게시판에서 증명이 된 것처럼, 저 관심종자들에게 제일 잘 통하는 것은 ‘무대응’입니다. 이유는 각자 다를지언정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라는 목표는 저들 모두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될 경우 저들은 심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반드시 모종의 ‘이익’을 얻게 되기 때문에 많은 욕을 먹으면서도 부적절한 언행을 일삼는 것이고요. 그러니 ‘무시’당하는 것만큼 저들에게 뼈아픈 일도 없지요.

 이 효과는 고기값을 떼어먹은 모 극우인사나, 일인다역으로 여론을 조작하려다 걸려 망신을 당한 한 극우만화가의 예에서도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언제부터인가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들의 글과 그림은 물론, 이름조차 거론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금지하며 철저하게 무시를 했는데, 그 결과 이들은 과거에 비해 영향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언론에도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지요.

 (그밖에 독일의 한 지역에서는 네오나치 등 극우시위에 대해 시민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등을 돌린 채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퍼포먼스를 펼친 적도 있다고 하더군요.)


- 나무위키 '병먹금' 항목에서 발췌 -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어디까지나 ‘무대응’이지, 결코 ‘무관심’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당연히 극우세력이나 종교 근본주의자 등의 영향력은 시민사회의 질을 떨어뜨리고 민주주의 정신과 헌정질서를 훼손할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으므로 지속적인 경계와 견제가 필요합니다.

 위 위키의 한 대목처럼 한계까지 무대응으로 일관하며 조용히 증거를 축적하다 법적대응을 한다거나, (김기춘 거짓증언 증거제보처럼) 상대의 치명적인 실수를 강력하게 치고 나가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직접적으로 저들 세력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저들의 주장만을 비판하는 간접적인 견제방식을 택할 수도 있겠지요. 또는 부정적 가치에 대한 비판보다는 긍정적 가치에 대한 설파에 더 비중을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성 소수자의 경우라면, 동성애자 등을 부정하고 탄압하는 호모포비아들의 만행보다는 성 소수자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이해자들의 사례를 소개하는 일에 중점을 두는 편이 세간의 인식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성 소수자 인권탄압을 소홀히 다루어도 된다는 주장은 절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이슈가 커졌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해당 세력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본격적으로 다 함께 그 부적절함을 성토할 수밖에 없겠지요. 다만 그것이 우려되는 분들 중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불을 끄고 싶은 마음에서 성급하게 싸움을 시작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위에서 논한 것처럼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만 떠올려 주시고 행동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 우려되는 마음에 사족을 달자면, 전 결코 ‘행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최후에는 행동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지요. 단지 ‘타이밍’을 재는 것은 때로는 그 행동만큼이나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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