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종이 울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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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Moratorium
by 안단테♪








(글을 쓸 때 들은 BGM이 겻들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막장 스토리입니다)







BGM: Blue Reflection - わたしの中の壊れていない部分






■■■








[가을빛 마녀와 잿빛 유령 (12)]


 “하하. 하…….”

 이런 무력감은 얼마 만에 느껴보는 걸까.
 두 동강이 난 톱날검을 내려다보며 나루는 마른 웃음을 흘렸다. 부러진 톱날검은 얼마 되지 않아 평범한 식칼로 돌아갔고, 이윽고 그 식칼도 모래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정말, 상대가 안 되잖아…….”

 부러진 건 검만이 아니었다. 나루의 전의 역시 압도적인 힘 앞에 뚝 꺾이고 말았다.
 지금까지 나루와 싸운 수십 체의 인형들의 기억을 통합한 여섯의 다크 레이븐. 그 3번째 인형들은 나루의 힘, 속도, 전투방식 등을 전부 수집해 그에 맞춰 철저히 대응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놈들의 검이 성가셔…….’

 인형들이 들고 있는, 은철銀鐵로 제련했다는 장검. 일견 수수하면서도 예리한 그 검들은 강도마저 비할 데 없이 단단해, 콘크리트도 두부처럼 자르는 나루의 톱날검을 손쉽게 막아냈다. 오히려 칼날을 부딪칠 때마다 나루의 톱날검이 상해 이처럼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이다.
 나루는 한쪽 무릎을 꿇고 간신히 몸을 지탱한 채 힘겹게 입을 열었다.

 “분하지만, 나 같은 거보다 당신이 훨씬 괴물인데요? 무슨 근거로 내가 살인마가 될 거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보다 그쪽이 훨씬 위험한 거 아녜요?”

 그러나 유화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지르기 전에, 인간으로서…… 죽어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검을 높게 치켜드는 인형들. 마치 사형수를 참수하는 집행인 같은 모습이다.
 나루는 죽음을 각오했다. 체력은 떨어지고 검은 무뎌지고 사방에는 건재한 검은 드레스의 인형들과 은빛 장검들. 설령 최후의 힘을 짜내 발버둥을 쳐 위기에서 잠깐 벗어난다 해도 곧 같은 꼴을 맞이하게 되리라.

 ‘그래도, 다행히 언니는 건드리지 않을 모양이니…….’

 나루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유화와 그녀의 인형들은 일절 시진에게는 손을 대지 않았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오로지 나루만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인형들은 싸움의 여파에서 밀려나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는 시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뭐 내가 위험한 인간이라는 건 사실이니까…… 내가 죽어도, 저런 놈이 사람들을 지켜준다면…… 그 안에서 언니도 분명…….’

 이것이 바로 나루가 죽음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였다. 지금 나루의 인생에서 제1순위는 어디까지나 시진 언니.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설령 팔다리가 끊어지더라도 몸통으로 기어 이빨로라도 물어뜯어 싸우겠지만, 자신만을 위해서라면 아무래도 삶의 동기가 약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상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

 다크 레이븐 중 1체가 나루를 향해 검을 내려치는 순간, 어느새 그 앞을 시진이 막아서고 있었다. 순간이동을 한 것이 아니다. 단지 인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속도로 달려와 인형들의 틈 사이에 끼어들었을 뿐이다.

 「안 돼! 멈춰!」

 “언니――!”

 교차하는 두 사람의 고함.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가까스로 제어하기는 했지만 인형의 칼이 시진의 어깨를 깊숙이 파고 들어간 것이다.

 “…….”

 하지만 시진은 개의치 않고 나루를 안아 올리고는, 방금 전과 같이 엄청난 빠르기로 인형들의 포위망을 빠져나왔다. 이상하게 인형들은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는데, 한시가 급한 시진과 나루에게 지금 그 사실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윽.”

 그러나 두 사람의 도피행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얼마 거리를 벌리기도 전에 시진이 힘이 다해 땅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시진은 자신의 몸을 아래에 두어 나루를 꼭 끌어안은 채 보호했다.

 “언니, 언니! 괜찮아요!?”

 나루는 충격에서 벗어나자마자 급히 몸을 일으켜 시진의 상태를 살폈다. 칼이 어깨에 박힌 상태에서 자신을 안고 달리다 넘어진 사람이 무사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특히 출혈이 걱정됐지만…….

 “언, 니……?”

 크게 찢어진 시진의 어깨에서는 소량의 핏자국만이 번져 있을 뿐 전혀 피가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상처가 아문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안에서 흘러나올 것이 없다는 것처럼. 뿐만 아니라 시진의 팔다리 또한 검게 변색돼 조금씩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다.
 시진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너무, 무리를 했나……. 시간이 조금, 앞당겨진 모양이군…….”

 “언니……?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시간이, 시간이 다 됐다니…….”

 현실을 인정할 수 없는 나루의 말에 답한 것은 시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선생님은, 선생님은 이미 죽은 몸이야. 그것도, 일주일 전에.”

 석양이 지고 어둑어둑해진 밤거리의 가로등 아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런 살벌한 자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차림새의 붉은 머리 여고생, 진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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