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종이 울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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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Moratorium
by 안단테♪








(글을 쓸 때 들은 BGM이 겻들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막장 스토리입니다)







BGM: 相州戦神館學園 万仙陣 『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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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 마녀와 잿빛 유령 (13)]


 통제를 잃은 쇳덩어리truck가 돌진한다.
 평소처럼 길을 걷다 난데없이 죽음의 위기에 맞닥뜨린 진아.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던져 가까스로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녀처럼 초상적인 신체능력을 지닌 게 아니다. 트럭은 그대로 카페를 들이박았고, 여러 사람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
 ――그중에는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도 있었다.

 - 기억났어. 전부.

 참사현장에 널브러진 한 여성. 피투성이가 된 채로, 필사적으로 어디론가 기어가려다 숨이 끊어진 이시진 선생님. 진아가 처음 손을 대본 사랑하는 이의 몸은 차갑게 식어 있었고, 처음으로 느껴본 사랑하는 이의 감촉은 피에 젖어 끈적거리고 미지근했다.

 - 그때, 난 너를 만났어. 아니, 내가 찾아갔다고 해야 하나.

 정신적인 파장이 일치하고 무언가를 강렬히 이루고 싶은 소망을 가진 사람은, 마녀가 있는 공간의 틈새에 이끌리기가 쉽다. 꿈과 현실의 경계. 백일몽의 세상. 위화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마녀의 가게에서, 사람들은 무심코 자기 소망을 이야기한다.

 - 그래요. 당신은 처음에 선생님을 살려달라고 했지요.

 하지만 그건 이룰 수 없는 일. 죽은 이를 온전하게 되살리는 것은 마녀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몇 가지 편법으로 이 세상에 잠시간 붙잡아둘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도 일시적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 난, 약했어. 너무나도 비겁했어. 선생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는, 잊게 해달라고 했지. 선생님이 죽었다는 사실‘만’을.

 차라리 선생님 자체를 잊게 해달라고 빌었으면. 혹은 선생님을 사랑한 감정만을 잊게 해달라고 했다면.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복잡한 일에 휘말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도 인정한 것처럼 진아는 비겁했다. 선생님을 사랑했던 ‘좋은 기억’은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던 진아는, 선생님의 죽음이라는 ‘나쁜 기억’만을 잊기를 원했다. 그것이 어떤 사태를 초래하게 될지는 생각하지도 않고서.

 -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그곳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곳이니까. 그리고 들어준 건 저니까 혼자만의 책임도 아니고요.

 만약. 만약 빈사상태에 빠진 시진이 마녀를 찾아와 또 다른 소원을 말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진아는 아무 일 없이 평온한 생활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다시 선생님의 죽음을 알게 돼 새삼 슬픔에 빠졌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직접 현장에서 그 참상을 목격하는 것과는 충격의 강도가 비할 바가 아니리라. 아마도, 그녀는 고교를 졸업할 때쯤은 슬픔에서 벗어나 또 다른 사랑女性을 찾았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감사해. 내 약함에. 그리고 선생님의 용기에. 그렇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테니까.”

 뚜벅뚜벅. 진아는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주머니에서 검은 장갑을 꺼내 손에 끼었다. 이것은 마녀에게 받은, 말하자면 일종의 선불 같은 것이었다.

 - 당초 당신이 원했던 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잊게 해달라는 것. 그리고 제가 받은 대가는 바로 그 죽음에 대한 당신의 기억. 여기서 우리의 이해는 완벽하게 일치했죠. 한데 당신은 정말 놀랍게도 이미 ‘자력으로’ 기억을 되찾고 있으니 자동적으로 계약은 파기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남은 기억을 완전히 되찾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리겠죠.

 마녀는 무언가 항의하려는 진아를 제지하며 말을 이었다.

 - 전 계약의 마녀. 무상으로 남은 기억을 돌려줄 수는 없어요. 오히려 멋대로 계약을 파기하려는 당신에게 위약금penalty을 물려야 할 지경이라고요.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죠. 그러니, 새로운 계약으로 구계약을 대체하는 게 제일이에요.

 마녀의 요구는 단 하나. ‘귀찮은’ 정원관리사를 이 도시에서 쫓아내는 것. 진아가 낀 검은 장갑은 바로 그걸 위해 미리 건네받은 것이었다.

 「직접적으로는 방해될 일이 없을 것, 이라 했지. 대신 생각해낸 게, 이 구차한 잔꾀…… 애들이 생각할 법한, 유치한 발상이군.」

 유화는 신랄하게 평하며 인형들을 움직였다.

 「상관, 없어. 저 시진이란 여자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일을 끝내면 돼.」

 은빛 장검을 들고 나루를 제거하기 위해 쇄도하는 6체의 다크 레이븐. 나루는 몸을 일으키려 애쓰며 급하게 소리쳤다.

 “거기! 멍청하게 뭐하고 있는 거예요!? 저것들은, 그쪽이 당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녜요! 여, 여기는 내가 어떻게든 막아낼 테니까, 그쪽은 시진 언니를 데리고 도망…….”

 하지만 진아는 조용히 나루의 앞을 막아서며 입을 열었다.

 “걱정 마. 넌 내가 지켜줄 테니까. 그러니 넌, 선생님의 마지막을 지켜줘.”

 “네? 그게 무슨…….”

 진아는 대답하는 대신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양방향에서 검을 내찌르던 2체의 인형들이 멀찍이 날아가며 얼굴이 박살났다.

 「……뭐?」

 “말도, 안 돼…….”

 이때만큼은 사이좋은 자매라도 되는 마냥 유화와 나루는 동시에 얼빠진 얼굴로 낮은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심화된 광기의 칼날조차 압도하고 부러뜨린 무적의 인형들이 너무나도 간단히 제압당했기 때문이다.
 유화는 정신을 가다잡으려 애쓰며 급히 상황을 분석했다.

 「저 장갑은, 마녀의 제작품artefact이군. 저게, 힘의 근원인 건가? 하지만 저건, ‘밤의 그림자’로 짜인 장갑일 뿐…… 단지 착용 부분에 닿는 충격을, 무효화하는 게 전부인데……?」

 유화가 느긋하게 진상을 파헤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남은 4체의 인형들은 은빛 장검을 교차시켜 사각 없이 상대를 압박했으나, 진아는 가장 앞에 있는 인형을 향해 빠르게 치고 나가 부수는 걸로 가까스로 공격을 회피했다. 인형들의 칼날은 진아의 옷자락을 베고 지나갔지만, 그 피부에는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다.

 「설마, 저 장갑은 단지 주먹을 보호하고 있을 뿐…… 순수하게 전부, 실력이란 말이냐……?」

 뒤늦게 유화가 상대의 특이성을 눈치 챘지만, 이미 상황은 되돌릴 수 없었다.

 “흡!”

 몸을 돌리자마자 짧은 숨소리와 함께 내질러진 주먹.
 좌측에 있던 인형은 내려친 동작을 수습하며 방어하려고 했지만, 진아의 주먹은 빠르고 정확했다. 인형의 몸통에 구멍이 뚫리는 동시에 우측에 있던 인형이 다시 칼을 내찔렀지만, 진아는 오히려 인형의 팔을 붙잡아 그대로 꺾었다.

 「―――!」

 반대로 꺾인 팔에 들고 있던 검으로 스스로의 몸통을 찔러버린 우측의 인형. 진아는 인형의 팔을 다시 꺾어 아예 그 몸통을 반으로 갈라 행동불능으로 만든 후 마지막 남은 인형을 향해 달려들었다.

 “……!”

 챙. 진아의 일격을 칼의 옆면으로 막아낸 인형. 마지막 남은 다크 레이븐의 움직임은 지금까지의 다른 인형들과는 달랐다. 그 사이에 박살 난 다섯 인형들의 경험치를 통합해 진아의 움직임에 대응을 한 것이다.

 「―――」

 인형의 맹공. 전세는 역전됐다. 인형은, 주먹이 막혀 잠깐 자세가 흐트러진 진아의 틈을 놓치지 않고 공세를 펼쳤다.

 선으로 점으로 그리고 다시 선으로.
 베고 찌르고 다시 베어 들어오는 은빛 궤적이 섬세하게 이어지면서도 강렬하게 진아를 덮쳐온다.

 “…….”

 그러나 그 유수와 같은 검격을, 진아는 손으로 칼날의 옆면을 쳐내는 것으로 간단히 밀어냈다. 회전하는 분쇄기 안에 손을 넣어 상처 하나 없이 그 안의 내용물을 꺼내는 것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묘기였으나, 그 진가는 아마도 인형사 본인마저 눈치 채지 못했으리라.

 “끝이네.”

 심드렁한 말투와 달리 강하게 뻗은 진아의 주먹에, 마지막 남은 인형은 몸통의 절반 이상이 날아간 채 잠시 비틀거리다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유화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안 돼……! 저 여자가 사라지기 전에, 어서 죽여야……!」

 유화는 관을 짊어진 채 나루를 향해 고속으로 돌진했다. 자신이 다루는 인형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신체능력. 찰나의 순간, 유화는 나루와 시진의 앞으로 이동해 관을 높이 들어 찍어내리려 하고 있었다.

 “그만해!”

 「……!」

 하지만 진아의 발차기에 유화가 맞고 날아가면서 그 시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치이이익. 간신히 땅에 착지한 유화는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다급하게 외쳤다.

 「방해, 하지 마……! 저 아이는…….」

 “알고 있어요. 마녀에게 들었어요. 당신은 미래를 볼 수 있다죠? 그 미래에서, 나루가 선생님을 잃은 충격으로 수백 명의 사람을 죽일 거라면서요.”

 담담한 진아의 말에 나루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언니가, 언니가…… 죽어? 죽는다고……?”

 나루의 품에 안겨 있는 시진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니, 난 죽는 게 아니야. 이미 죽어 있지……. 속임수를 써서, 잠시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뿐이니…… 하지만, 죽은 몸이었기에 볼 수 있는 것도 있었지…… 내가 본 미래 또한 분명…… 저 여자와 같은 것을 말하고 있었어…….”

 유명한 신곡을 비롯한 여러 전승에서 죽은 자가 미래를 본다는 이야기는 종종 전해 내려온다.
 시진은 죽기 직전, 관념체와 비슷한 존재가 되어 마녀가 사는 공간의 틈새에 들어갔다. 그 사이에 얼마 간 파장이 마녀들과 비슷한 시진은, 잠시나마 별의 의식구조체에 접해 미래를 엿볼 수가 있었다. 정확히는 별의 거대한 연산기능을 이용해 자신이 지금 가장 걱정하고 있는 나루의 앞날을 점쳐본 것이다.

 “그때 내가 본 건…… 끔찍한 파멸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난, 이대로 죽을 수 없었지……. 나루를, 나래의 동생을…… 끔찍한 살인마로 만들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시진은 필사적으로 마녀에게 되살려 달라고 요구했다. 설령 완전한 부활은 불가능하더라도 홀로 남게 될 나루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도록 얼마간이라도 이승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랐다. 그 소원은 낮은 확률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졌다.
 시진의 목소리가 점점 약해졌다.

 “하지만 난 결국…… 간신히 얻은 이 기회를, 별로 유용하게 쓰지 못한 것 같군……. 그래도, 참으로 염치없지만…… 부탁할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다행이야……. 부탁해도, 될까……?”

 자신을 향한 눈길에, 진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입으로 소리 내어 대답하면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 돼…… 안 돼요……! 언니가, 없으면…… 난 대체 어떡하라고…….”

 반면 나루는 허물어져 가는 시진의 몸을 부여잡은 채 눈물을 흘릴 따름이었다.
 유화는 어떻게든 공격할 기회를 엿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마녀의 말을 믿는다면…… 그리고 죽은 뒤에도 사람들을 염려해, 대량학살을 막으려 한 저 여자의 용기를 상찬한다면…… 날 막지 마라. 저 여자가 사라지기 전에, 저 아이는 빨리 치워야 해…….」

 시진의 죽음이 곧 나루가 폭주하는 기폭제.
 싸우는 동안 유화가 줄곧 시진에게 되도록 손을 대지 않으려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계에 다다른 몸이 자칫 부서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을 한 것이다.
 하지만 진아는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한 가지만 묻고 싶어요. 최근 벌어진 살인들…… 전부 당신이 저지른 짓인가요?”

 유화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규탄하고 싶다면, 해도 돼……. 하지만 난 미래의, 더 큰 살인들을 막은 거야……. 한명은, 5년 뒤 세상에 절망해 사제폭탄으로, 십 수 명의 사상자를 낼 운명이었다……. 다른 한명은, 3년 뒤 부주의로 화재를 일으켜, 백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낼 운명이었고……. 또 다른 한명은…….」

 진아가 손을 올려 말을 막았다.

 “그만. 그만 됐어요. 그런 식으로, 나루도 제거할 생각인가요? 아직 벌어지지 않은, 미래의 일로?」

 솔직히 대답하면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유화는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

 「그 미래는, 확정사안이다. 누군가 막지 않는 이상, 반드시 일어나……. 난, 저 아이를 죽이겠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의 미래를 위해.」

 말을 마치는 순간, 양자는 다시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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