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종이 울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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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Moratorium
by 안단테♪








(글을 쓸 때 들은 BGM이 겻들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막장 스토리입니다)







BGM: 結城友奈は勇者である 花結いのきらめきBGM - ボス1






■■■








[가을빛 마녀와 잿빛 유령 (14)]


 그녀의 강함에는 이유가 없었다.
 날 때부터 주어진 힘.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하루 만에 걸을 수 있었고, 3살 때는 목줄이 풀린 맹견을 제압한 적도 있었다. 10살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이미 혼자서 차를 들어 올릴 수 있는 등 그 신체능력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있었다.

 더욱이 그녀의 강함은 괴력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거대한 힘을 적절히 다스려 행사할 줄도 알았다. 그녀의 움직임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녀가 무언가 무도를 배운 사람일 거라 추측했으나, 그게 무엇인지는 아무도 맞추지 못했다.

 어쩔 수 없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어떻게 맞출 수 있을까. 실제로 그녀는 어떤 단련도 어떤 무도도 한 적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타고난 감각으로 최적의 동작을 취한 것이, 주위의 눈에는 오랜 시간을 수련을 쌓은 움직임처럼 보인 것뿐이다.

 - 정말, 좋은 일이라곤 없었지.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 해야 할까. 괴물과 같은 힘을 지닌 그녀를 세상은 가만히 두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녀가 몸집도 가냘픈 어린 여자애라며 얕보고, 누군가는 도리어 그녀의 진가를 알아보고 이겨보고 싶은 호승심에, 누군가는 단지 그녀의 힘만을 이용하기 위해 접근해 끊임없이 그녀의 일상을 어지럽혔다.

 - 뭐, 내 책임도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녀 역시 중학시절까지는 자신의 힘을 행사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가령 집단으로 폭행을 당할 뻔한 반 아이를 구해주고, 그에 앙심을 품은 가해자들이 더 큰 무리를 지어 몰려들면 그들 역시 박살냈다. 불법사채를 잘못 썼다가 끌려가는 채무자와 우연히 마주쳐 구출해준 일 때문에 사채업자의 배후에 있는 폭력조직과 시비가 붙은 적도 있었다. 물론 그 조직원들은 무사하지 못했다.

 - 이젠, 지쳤어…….

 그렇게 싸움에 싸움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던 그녀는, 문득 모든 것이 지겨워졌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고작 10대 중반의 나이에 떠오르는 추억이 대부분 누군가를 때려눕힌 것이라면 조금도 즐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싸움을 즐기는 전투광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안타깝게도 그런 데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 이런 생활은 끝이야!

 마침 고교에 진학하며 이사 가는 걸 계기로, 그녀는 변화하기로 마음먹었다.
 소위 노는 애들처럼 머리도 옷차림도 화려하게 꾸미고, 싸우는 것 이외의 다른 취미에 몰두하며 평범하면서도 즐거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녀는 딱히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했고, 여전히 제일 잘하는 것은 싸움이었다. 그녀는, 진아는 줄곧 그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내게 힘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렇지 않았다면, 좋아하는 사람이 가는 길조차 지키지 못했을 테니까.”

 중얼거리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 진아.
 공세는 압도적이었다. 유화는 관에서 은철의 장검을 꺼내 진아에게 대항하려 했지만, 그야말로 샌드백처럼 얻어맞을 뿐이었다.

 「이대로는……!」

 유화는 관속에서 10개의 장검을 튀어나오게 해 투척하는 걸로 일순 진아의 움직임을 막은 후 거리를 벌렸다. 잠시 여유가 생긴 정원관리사는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진아를 바라보며 진저리를 치듯 중얼거렸다.

 「무인…… 아니, 무신武神이라 해야 하나……. 그러니 충격을 흡수하는 장갑만으로, 충분했군…….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어…….」

 어떤 특수한 초능력도 없이 그저 선천적으로 ‘영웅’의 신체를 가지고 있을 뿐인 진아. 만약 그녀가 칼과 활이 활약하던 과거 전란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전설적인 무장으로 명성을 떨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현대문명이 번성한 도심지.
 이런 시대에 그녀가 가진 힘은 법과 질서를 훼손하고 본인의 일상마저 파괴하는 기이한 돌출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그녀 또한 그것을 자각했기에 앞으로는 평범히 살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아니었던가.
 진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 말을 부정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가만 돌이켜보면, 이 힘 덕분에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죠. 무엇보다 지금 당신을 상대하는 데는, 제격이기도 하고요!”

 말이 끝나자마자 한달음에 거리를 좁혀 내뻗은 주먹.

 「……!」

 펑. 그 신속의 공격에 유화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쇠사슬로 동여맨 두터운 코트가 찢겨나가며 그 안에 숨겨진 하얀 드레스 자락이 바람에 펄럭인다. 장검과 함께 팔 한쪽이 날아간 유화는 열린 코트를 다시 여밀 수가 없었다.
 진아는 충격에 무릎을 꿇은 유화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역시…… 때릴 때 감각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거였군요.”

 덜그럭덜그럭. 치직치직.
 떨어져 나간 팔부위에서 쏟아지는 각종 기계부품들과 작게 불꽃이 튀는 전선들. 인형을 조종하는 인형사는, 그 자신의 몸마저 만들어진 것이었다.

 「내 몸의 7할 이상은, 인형이다……. 난 본래, 테러에 휘말려…… 죽을 몸이었지……. 그걸 스승Master께서 되살려, 주셨다……. 」

 유화의 담담한 말에 진아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미안하지만, 당신 스승에 대해서도 마녀에게 좀 들었어요. 훌륭한 분이셨다면서요! 당신처럼 미래를 보고, 전장이나 재해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을 구했다면서요! 근데 왜 당신은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거죠!? 당신 역시 그 스승님에게 구원 받았으면서 왜……!”

 「저 시진이라는 여자를 죽게 한, 음주운전자를 내가 미리 죽였다면…… 어땠을까?」

 “……!”

 불쑥 튀어나온 유화의 질문에 진아는 아무런 답변을 할 수 없었다.
 만약 그 음주운전자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사랑하는 선생님이 죽지 않았다면……. 이건 실로 악마의 질문誘惑이었다.

 「만약 내가, 저 나루라는 아이를 습격한…… 그 강도들을, 미리 죽일 수 있었다면?」

 “…….”

 이번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사라지기 일보 직전인 시진을 꼭 껴안고 있는 나루의 몸이 꿈틀거렸다. 어릴 적 가족들을 전부 잃고, 지금도 유일하게 의지하던 보호자가 사라지려고 하는 시점에서, 유화의 말은 나루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더욱이, 난 마스터만큼 미래를……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랬다면 너 같은 변수도, 예측하지 못했을 리가 없지…….」

 유화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계속 중얼거렸다.

 「분명, 난 마스터만큼…… 볼 수 없어. 그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웅. 목에 걸고 있는 펜던트에서 작은 빛이 새어나오는 순간 유화는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한쪽밖에 남지 않은 팔로 다시 진아를 공격했다.

 “윽, 아직도……!”

 핏. 진아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나이프. 생채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일절 닿지 않았던 공격이 처음으로 성공했다.

 “합!”

 진아는 자세를 바로하고 주먹을 내질렀으나 유화는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 공격을 피했다. 동시에 유화는 빠르게 단검을 휘둘렀고, 진아의 몸에는 상처가 늘어갔다.

 ‘미리 알고 있는 듯이……?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진짜 미리 알고 있는 거야……!’

 진아는 직감적으로 유화의 변화를 눈치 챘다. 지금 인형사는 미래를 읽는 능력을 전투에 직접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아를 진짜 힘들게 하고 있는 건 자신의 움직임이 읽히는 것보다 유화가 내뱉는 ‘말’에 있었다.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던 마스터마저…… 끝내 자신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일이 터지고 난 다음에는, 너무 늦어……. 희생이 더 커지고, 구할 수 있는 사람마저, 구할 수 없게 된다……!」

 “……으.”

 「그렇다면, 방법은 없지 않나……. 불행의 원인을, 직접 제거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지 않느냐……!」

 “그, 그래도……! 그래, 도…….”

 어떻게든 반론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진아는 그 다음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유화의 단검은 빨라졌고, 진아는 이제 공격을 포기한 채 회피에만 전념할 따름이었다.
 인형사의 외침은 계속됐다.

 「너처럼, 내 방식에 찬동하지 못해…… 막으려 한 자는 여럿 있었다……. 그자들은 다들 말은 번지르르했지만, 어떻게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지…… 그 방도는 찾지 못했지. 만약 그런 자들이 없었다면, 내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좀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었다면…… 사고를 일으킨 그 운전자도, 일가족을 몰살시킨 그 살인강도들도, 사전에 제거할 수 있었을지 몰라……!」

 “……!”

 결정적인 한마디에 진아의 움직임이 일순간 딱 멈추었다. 유화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진아의 배를 세게 걷어찼다.

 “…욱! ……!!……!!!”

 숨이 막힌 진아는 털썩 주저앉은 채 거칠게 기침을 내뱉었다. 아무리 영웅적인 신체능력을 타고 태어났다고 해도 심신이 동요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너희들이, 내 시간과 여유를 빼앗은 탓에…… 내가 놓친 미래의 살인마들이, 또 다른 비극을 일으키게 될지 몰라……. 물론, 네게 악의는 없었다는 건 안다……. 그러니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반성하고, 잠들어라…….」

 유화가 작게 주문을 외자 은빛 단검의 칼날이 푸르게 변했다. 살짝 찌르는 것만으로 하루 종일 잠들게 만들 수 있는 술법. 만약 자신이 이 변수도 예측할 수 있었다면 미리 술법을 걸어놓았을 것이라고, 유화는 속으로 한탄했다.
 여유를 찾은 정원관리사가 무릎을 꿇고 괴로워하는 진아의 어깨를 찌르려고 하는 순간,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난, 나루를, 지키려 했을 뿐이야…….”

 시진의 혼잣말이 바람에 실려 진아의 귓가에 닿았다.

 「……!」

 탁. 보지도 않고 손을 휘둘러 유화의 단검을 날려버린 진아. 인형사는 급하게 진아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진아는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선생님. 잘 알았어요. 역시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유화는 새 단검을 꺼내들어 재빨리 술법을 건 다음 진아를 향해 내찔렀다. 이번엔 조금이라도 스치게 하면 충분하다. 그 순간 깊은 잠에 빠지고 말 테니까. 하지만 진아는 그 칼날을 옷자락에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사람들을 구하려 죽음까지 미룬 게 아니야! 단지, 소중한 사람을 지키려 했을 뿐이지……!”

 진아의 고함과 함께 덮쳐오는 주먹. 단지 여고생의 자그마한 손임에도 불구하고, 유화에게는 그것이 거대한 산처럼 보였다.

 「알고 있어도, 산사태를 막을 수는 없다는 건가…….」

 쾅. 마치 포탄이라도 맞은 듯이 뻥 뚫린 유화의 몸통. 거의 상반신만 남은 유화의 몸은 불꽃을 튀기며 스르르 허물어졌다.

 「마스, 터…….」

 딸깍. 가까스로 무사한 펜던트가 열리며 그 안에 오색으로 빛나는 보석 같은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유화의 스승Master이 남긴 유일한 유품. 인형사는 스승의 유체의 일부를 이용해 본래 자신에게 없었던 미래를 읽는 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진아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면목이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당신은 날 봐줬는데, 난 전력을 다해서. 하지만 마녀가 이 정도는 하지 않으면 당신을 멈출 수 없다고 해서……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알겠네요.”

 몸의 대부분이 기계로 되어 있는 유화는, 양손을 잃고 상반신만 남은 상태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안전한 장소에서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다시 예전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문제는 그럴 시간이 과연 주어질 것인가 하는 데 있었지만.

 “역시, 내 제자야……. 솔직히, 제대로 가르친 건 없었지만…… 그래도 잘 받아줘서, 고마워…….”

 시진의 몸은 거의 가루로 변해 흩어지기 직전이었다. 잿더미로 만든 인간. 그녀의 덧없는 존재감은 바람만 불어도 흩어질 것 같은 인상을 주었으며,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

 결국 사랑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걸로 진아는 만족했다. 시진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죽음에서 발버둥 친 인생에는 분명 의미가 있었다. 그 뜻을 이은 자신에게도.
 하지만 줄곧 잃어왔고 또 잃어야 하는 나루는, 진아처럼 평온히 정리할 수가 없었다.

 “언니…… 언니는, 절 사랑했나요……?”

 이미 눈물마저 말라붙어 퀭한 나루에게 시진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물론, 이지…… 진짜 가족처럼, 널 사랑했다…….”

 거짓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온전한 사실도 아니다. 죽은 연인의 여동생에게서 서로 닮은 구석을 찾아내 조금도 연정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 또한 거짓말이 되리라. 나루 역시 시진이 그것을 인정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날 언니처럼 사랑했다고. 내게서 연인을 느꼈다고.
 하지만 시진은 ‘어른’으로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넌, 나래의 동생이야…… 내가 사랑한 사람의 동생이라면, 너 역시 내 동생이나 마찬가지지……. 끝까지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나래와 함께 네 행복을…… 빌어, 줄게…….”

 끝말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 그래도 시진은 잿더미와 같은 몸을 지탱해 마지막까지 축복을 전할 수 있었다. 할 말을 마친 시진은 고요히 눈을 감았고, 그녀의 몸은 완전히 허물어져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하하, 하하하하……. 이제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네…….”

 바람에 시진의 잔해마저 놓친 나루는 허탈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루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한줄기 피눈물. 붉게 충혈된 그녀의 눈은 금색으로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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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8.03.11 12:5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아아... 나루야... ㅠㅠ

    실상 그녀와 유화는 서글프리만치 닮은 꼴의 소유자였던 것이로군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8.03.12 20:57 신고 address edit/delete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실히 그녀들은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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