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종이 울리는 밤

블로그 이미지
Over The Moratorium
by 안단테♪








(글을 쓸 때 들은 BGM이 겻들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막장 스토리입니다)







BGM: 相州戦神館學園 八命陣 『Timnat-sera』






■■■








[가을빛 마녀와 잿빛 유령 (完)]


 부드럽게 하늘을 물들이는 석양 아래 마녀는 자신의 연인과 함께 인형사를 전송했다.

 「설마 네가 협조를 해줄 줄은 몰랐다. 덕분에 빨리 회복…… 아니 전보다 상태가 더 좋아졌을 정도야. 넌 날 성가시게 생각하지 않았나? 한데 왜 내게 손을 내민 거지?」

 유화는 고마워하면서도 자신이 입은 호의를 미심쩍어하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마녀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물론 성가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몸을 수리하는 데도 도움을 준 거고요. 빨리 고쳐야 빨리 나가실 거 아니에요.”

 그러나 유화는 마녀의 위악적인 태도에 넘어가지 않았다.

 「넌 계약의 마녀지. 아무리 바라는 게 있어도 아무런 대가 없이 호의를 베풀지는 않아. 내게 원하는 게 있다면 빨리 말해라. 그래야 나도 준비를 할 테니.」

 마녀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괜히 오래 산 게 아니라니까. 예, 사실 원하는 게 있어요. 별 건 아니고, 제게 도움을 받은 걸 빚으로 생각하신다면, 그걸 갚는 셈치고 앞으로 그 두 사람을 건드리지 않기를 부탁드리고 싶네요.”

 여기서 두 사람이란 진아와 나루를 뜻하는 말. 마녀는 두 사람의 일상을 더 이상 망가뜨리지 않을 것을 관리사에게 요구했다.

 「이건…… 네가 떠올릴 만한 발상이 아니군. 제안을 한 건 그쪽의 연인이신가?」

 유화는 칠흑 같은 검은 머리에 호수 같이 푸른 눈동자가 매혹적인 마녀의 연인, 설란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설란은 침착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유화를 응시하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화는 희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마라. 이미 그 아이들의 운명은 바뀌었다. 그 진아라는 아이가 곁에 있는 한, 심애의 광인이 다시 눈을 뜨는 일은 없겠지.」

 확언을 받아낸 마녀는 다소 짓궂은 어투로 말했다.

 “당초 예상이 성대하게 빗나가고 말았네요. 당신이 본 미래에선 수백 명 이상이 죽어나가고, 그 미래를 막기 위해선 반드시 한명이 희생되어야했지만, 결국 아무도 죽지 않고 잘 끝날 수 있었으니까요. 어때요, 이만 자신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의외로 용서 없는 추궁에 정원관리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해. 죽어서까지 잿더미나 마찬가지인 몸을 이끌고 헌신적인 희생을 한 유령, 그리고 선천적으로 영웅의 신체를 가지고 태어난 무신. 이 두 사람이 한 소녀를 위해 힘을 합친다는 기적적인 희생이 있었기에 이번 결과가 나올 수 있던 거다. 매번 이런 요행을 바랄 수는 없어.」

 마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뭐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요. 당신처럼 긴 시간 동안 줄곧 한길만 걸어온 사람이라면 더욱 더.”

 확실히 그 말대로. 300년 가까이 한 가지 방식을 고수해온 인형 같은 인형사가 이제 와서 변하기란 요원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유화에게는 아직 입으로 꺼내지 않고 가슴 속에 묻어둔 말이 있었다.

 - 사실 사람들은 알고 있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않고 있을 뿐이야. 현실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어릴 적부터 줄곧 간직해온 스승Master의 말. 여태껏 그 진의를 파악할 수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유화는 스승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이 틀렸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아이들이 한 일이 올바르다는 사실. 그것만큼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정원관리사는 오랜 시간 고민해온 답에 작은 결론을 내린 채 석양빛을 받으며 마녀가 사는 도시를 뒤로 했다.






 떠들썩한 교실의 점심시간.
 진아는 은근슬쩍 자신을 훔쳐보는 이런저런 시선에 압박을 느끼며 눈앞의 상대에게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저, 저기 말이지. 나, 나 혼자 먹을 수 있는데…….”

 하지만 나루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숟가락을 진아에게 들이밀었다.

 “원래 왼손잡이라면서요. 나 때문에 다친 거니, 내가 책임져야죠. 자, 입 벌려요. 아~~하세요. 아~~”

 “으…….”

 며칠 전 나루의 광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분투했던 진아는 왼손에 심한 상처를 입어 붕대를 둘둘 말고 있었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붕대였지만 그건 마녀가 특별히 제작해준 일급품으로 형체만 남아 있다면 어떤 외상이든 회복시킬 수 있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 다만 겉보기에는 다 나은 것처럼 보여도, 왼손에 예전처럼 힘이 돌아오지는 않을 거예요.

 진아의 손을 치료해준 마녀는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광기에 당한 상처는 보통 쉽게 낫지 않는다고 한다. 광인들의 힘에는 기초법칙과 궤를 달리 하는 이질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세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한 아무리 마법이라 해도 완전한 대응은 불가능하다는 모양이다.

 ‘뭐 다 나으면 일상생활은 가능하다고 하니…….’

 하지만 진아는 별로 괘념치 않았다. 이번에는 어쩌다 험한 일에 또 끼어들고 말았지만, 본래 그녀는 평범한 삶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가 벌인 일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고…….’

 나루가 폭주한 여파는 마녀와 관리사가 최대한 처리를 해 가스관 폭발 정도로 마무리가 되었고 한다. 사상자가 없는 덕분에 딱히 이슈화되지도 않았으니 금세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리라. 아마도 그녀들의 일상이 더 이상 위협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정말 문제는, 얘야……!’

 오히려 진아에게는 지나간 사건보다 최근 나루의 행동이 훨씬 난처하게 느껴졌다. 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마다 교실에 찾아와 손이 불편한 자신 대신 이것저것 수발을 들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마음은 고마웠지만 그때마다 교실의 이목이 집중되니 은근히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결국 진아는 포기하고 입을 벌렸다. 나루가 집요하다는 것은 다름 아닌 스스로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아에게 밥과 반찬을 먹여준 나루는 웃음을 지었다.

 “후후, 어때요? 맛있어요?”

 “으, 응…….”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 대답은 진심이었다. 나루의 도시락은 정말 맛있었다. 선생님 대신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때 나루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쪽이 거짓말 했다는 건 알아요.”

 “응? 아, 아니야! 진짜 맛있…….”

 “아니요. 그거 말고. ……내가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워 구해줬다는 거 말이에요.”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살짝 목소리를 낮춘 나루. 담담한 음색이었지만, 역시 직접 입 밖으로 꺼내는 건 부끄러웠던 모양인지 얼굴이 조금 빨개져 있었다.

 “……거짓말은 아니야. 정말 그렇게 느낀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역시 선생님이 부탁한 영향이 더 컸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겠어.”

 얼버무려도 소용없다고 생각한 진아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나루는 자조하듯이 웃으며 말했다.

 “아―――아.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내가 생각해도 그쪽이 날 좋게 볼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목숨까지 던지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완전 놀아나고 말았네.”

 “그, 그건…….”

 진아는 변명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나루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는 해도 ‘선생님의 유언’을 지키고 싶다는 자신의 독선으로 상대를 농락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루는 무언가 다짐하듯이 작게 중얼거렸다.

 “뭐 그러니 여기서부턴 내가 노력할 차례겠죠.”

 “응? 지금 뭐라고……읍!”

 나루는 아까보다 좀 더 붉어진 얼굴로 진아의 입을 막듯이 반찬을 집어넣었다.

 “음…….”

 역시나 맛있다. 문득 진아는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선생님도 집에선 항상 나루가 해주는 음식을 드셨겠지. 그런 연상을 한 것이다.

 마녀의 위화감 어쩌구 하는 마법 덕분인지 시진이 되살아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진아 일행밖에 없었다. 모두들 이시진 선생은 카페에서 충돌사고가 있었던 그날 죽었다고 알고 있다.

 선생님의 마지막 일주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건 조금 쓸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진의 그 일주일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었고, 그녀가 죽음에 저항한 덕분에 나루가 파멸로 향하는 미래를 막는 계기를 마련할 수가 있었다.

 ‘선생님…….’

 아직 진아는 첫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 그건 나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통해 맺어진 인연 속에서 두 사람은 느리고도 착실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잿더미 속에서 꽃이 피어날 날은 언제 올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다만 진아는 나루와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이제는 그다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 完 -





TRACKBACK 0 AND COMMENT 2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8.03.14 12:2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이, 이 것이 젊음...! (쿠쿵)

    역시 화끈한 사람은 뭔가 다르군요. @_@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8.03.15 07:00 신고 address edit/delete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최대한 청춘 같은 분위기를 내고 싶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682)
잡다한 일상단상 (144)
즐긴작품 떠들기 (35)
타인정원 엿보기 (23)
환상정원 가꾸기 (480)

RECENT TRACKBACK

CALENDAR

«   2018/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