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종이 울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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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Moratorium
by 안단테♪

'2018/01'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8.01.31
    【東方Project】hitohira【短編アニメーション】
  2. 2018.01.30
    [단편] 가을빛 마녀와 잿빛 유령 (3)
  3. 2018.01.28
    [단편] 가을빛 마녀와 잿빛 유령 (2) (2)
  4. 2018.01.26
    머리 아파 잠이 안 올 때 그린 낙서 (9)
  5. 2018.01.23
    【MMD艦これ】 『 ef-a main force of main force. 』
  6. 2018.01.21
    [단편] 가을빛 마녀와 잿빛 유령 (1) (4)
  7. 2018.01.13
    [별세계의 별리] 5-03. 그래도 기만하지 않을 수 없다 (8) (2)







(감상용 포스팅이자 Pc기준으로 작성된 포스팅입니다)





제목: 【동방Project】hitohira【단편애니메이션】
니코동: http://www.nicovideo.jp/watch/sm30338980
제작: ウサホリ 님



.........
......
...


 지긋지긋한 이번 겨울도 이런 영상을 보면 조금은 좋은 인상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비록 이것이 현실은 아니지만, 그 현실에서 꿈꾸는 하나의 이상향으로서 말이지요.

 흔히 창작물은 대리만족의 즐거움이나 현실도피 또는 계몽적인 측면에서 조명되는 경우가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무미건조한 현실을 아름답게 채색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도 주목하고 싶어요. 모 소설에서도 말하는 것처럼 결국 사람이 보는 세상이란 그 사람의 ‘관념’에 불과하죠. 철학적으로도 우리가 세상 그 자체를 온전히 인식하지 못한다는 건 유명한 얘기고.

 그런 면에서 보자면 창작물은 감상자로 하여금 어떤 하나의 ‘개념에서 받는 인상’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봐요. 가령 현실에서 이번 겨울을 나는 저는 극심한 추위에 벌벌 떠는 도심지의 초라한 세입자에 불과하죠. 어떤 아름다운 작품을 본다고 해도 딱히 제 현실이 바뀌지는 않고, 저 또한 바뀐다고 착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앞으로 전 겨울을 떠올릴 때, 추위에 고통스러워하던 기억만이 아니라 겨울을 소재로 한 ‘아름다운 작품’ 또한 같이 연상할 수 있겠죠. 유명한 3D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을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은, 똑같이 ‘설원’을 눈앞에 둔다고 해도 분명 받는 인상이 전혀 다를 것처럼 말이에요.

 물론 이게 대리만족이나 현실도피와 뭐가 다르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겠고, 실질적으로도 명확한 구분은 가지 않을 수 있다고 봐요. 다만 개인적으로 대리만족이나 현실도피는 사람의 ‘감각’에 작용하여 현실을 부정하거나 잊게 만드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인상의 변화’란 말 그대로 일정한 개념에서 받는 사람의 인상을 변하게 해 현실을 지각하는 데 영향을 주는 차이가 있다고 구분하고 있네요.

 간단히 말하자면, 사람은 창작물을 통해 현실을 보다 ‘풍성하게’ 지각할 수 있으며, 그것은 곧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아무튼 좋은 작품을 만들어주신 제작자 분과 원작자 님께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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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 들은 BGM이 겻들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막장 스토리입니다)







BGM: 11eyes arranged soundtrack - 玄月落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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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 마녀와 잿빛 유령 (3)]


 “너희들은 언제나 그렇죠. 언제나 그래요. 언제나, 멋대로 쳐들어와 내 일상과 내 평온과 내 행복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죠. 자, 여기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아야 할까요? 가만히 당해야 할까요? 언젠가는 다 지나갈 거라고, 기도하듯 숨죽이며 벌벌 떨고 있어야만 할까요?”

 단발머리의 소녀는 들고 있는 큼직한 식칼의 날을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지그시 쓰다듬으며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아니죠. 그래선 안 돼요. 불행을 불행인 채로 그대로 두면 그냥 불행해질 뿐. 가만히 있어서 좋아지는 건 없어요. 참아서 나아지는 건 없어요. 한 번 당하면 앞으로도 유린당할 뿐이에요. 그러니, 불행은 그 불행채로…….”

 순간 소녀의 안광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잘라버려야 해!”

 “……!”

 뚝뚝. 은빛 궤적이 섬광처럼 허공을 일순 스치고 지나가자마자 진아의 목에서 가는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서로 떨어진 거리는 약 2m. 단발머리 소녀는 그 자리에 이동하기는커녕 손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진아는 무언가에 날카롭게 베인 것이다.

 “이걸 피하다니…… 우연인지 아니면 단순한 변태가 아닌 건지…….”

 그러나 오히려 놀라고 있는 건 갈색의 단발소녀 쪽이었다. 소녀는 자신의 ‘공격’에 진아의 목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의아하게 여기고 있는 듯했다.
 여기에 진아는…….

 ‘뭐야 얘! 무서워!’

 대뜸 만나자마자 식칼을 휘두르는 상대에게 공포밖에 느끼지 못했다.
 물론 한순간의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불법침입까지 해 사생활을 엿본 것은 변명할 여지없이 자신의 잘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게 칼로 목을 딸 일이냐 하며 또 얘기가 달라진다. 최소한 진아가 알고 있는 상식의 세계에 그런 야만적인 규칙은 존재하지 않았다.
 진아는 급하게 두 손을 들고 항복을 선언했다.

 “잠깐만! 내가 잘못했어! 다 인정하고 사과할 테니까……!”

 그러나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재차 공중을 달리는 은빛 궤적. 방금 전과 달리 진아는 입술을 깨물며 황급히 뒤로 크게 물러섰다. 그와 거의 동시에 그녀가 있던 자리에 거슬리는 파열음과 함께 깊숙이 파인 자국이 났다.

 “…헤에. 또 피했네. 자존심 상해라. 방금 걸론 몸통을 갈라야 했는데. 아무래도 정말 보이는 모양이군요.”

 차가우면서도 나긋나긋한 단발 소녀의 기묘한 음색에, 진아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주, 죽을 뻔했잖아! 그러다 진짜 죽으면 어쩌려고!?”

 “진짜 죽일 생각이었는데요.”

 “지, 진짜 주주주, 죽일 생각이었다니…… 너너, 너 겨, 경찰은…… 안 무서워……?”

 당혹감을 금치 못해 더듬거리며 아무렇게나 던진 진아의 질문에 단발머리 소녀는 싸늘하게 웃으며 답했다.

 “안 걸리면 범죄가 아니죠.”

 그건 범죄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처벌을 받지 않는 것뿐이야! …라고 외칠 경황은 진아에게 없었다.

 “!”

 진아가 미끄러지듯 물러선 자리에 또 다시 깊게 파이는 칼자국. 하지만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불행은… 불행은, 언제나 어디서나 어떻게든 집요하게 날 쫓아와. 도망치는 걸로는 안 돼. 피하는 걸로는 안 돼. 부수지 않으면, 없애지 않으면, 찢어발기지 않으면. 먼저 죽이지 않으면…… 불행이, 날 먹어치워!”

 푸른빛이 더하는 소녀의 눈동자. 마치 녹이라도 쓸 듯 검붉게 변해가는 왼손의 식칼. 그 이상현상에 못지않게 보이지 않는 참격 또한 시시각각 위력을 더해가고 있었다.

 종縱으로 내리꽂는 붉은 섬광.
 몸을 굴러 피한다. 간발의 차로 흙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며 풀들이 어지럽게 날아올라 시야를 방해한다.

 횡橫으로 스쳐가는 붉은 선형.
 몸을 숙여 피한다. 뒤편의 나뭇가지들이 일제히 잘려 우수수 떨어지며 꽃잎이 화려하게 공중에서 춤춘다.

 “……와우.”

 와르르. 정신없이 몇 번이고 고속의 칼날을 피하던 진아는 정원 한구석에 있는 바위가 산산조각 무너지는 것을 보고 얼빠진 감탄사를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이, 이대론 죽을지도…….’

 선홍빛 궤적에 막다른 곳까지 몰린 진아가 각오하듯 주먹을 꽉 쥐었을 때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나루! 적당히 해라. 정원을 다 갈아엎을 생각이냐. 난 우리 집에 밭 같은 거 만들 생각 없어.”

 무심한 듯하면서도 열기가 담긴, 나직하면서도 멀리 잘 울리는 듣기 좋은 목소리. 더는 방관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윽고 시진이 밖으로 나와 정원의 소란을 수습하려 했다.

 “서, 선생님! 위, 위험해요! 안에 계시는 게…….”

 진아는 사모하는 상대가 자신을 구하러 나왔다는 사실에 기쁘면서도, 이런 미친년에게 다가가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 시진을 말리려 했으나 모든 건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시진 언니!”

 다른 사람이라 해도 좋을 만큼 밝게 올라간 단발 소녀의 목소리. 나루라 불린 소녀는 그대로 식칼을 아무 곳에나 던진 채 시진에게 달려가 껴안으며 입을 맞추었다.

 “…읍하! 너 아무데서나 키스하는 버릇 좀 고쳐! 대체 몇 번이나 내가…….”

 “절 걱정해서 이렇게 나와 주시다니 정말 기뻐요! 하지만 여긴 위험하니까, 언니는 안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그 사이에 저 변태는 제가 해치울게요!”

 마치 공주를 지키는 기사라도 되는 양 시진의 앞을 막아서며 진지한 얼굴로 상대를 노려보는 단발머리의 소녀 나루.

 진아는 뇌의 인식한계를 넘어서는 사건의 연속에 – 특히 시진의 입술이 눈앞에서 두 번이나 빼앗긴 일 –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면서도 정확하게 할 말을 찾을 수 있었다.

 “위험한 건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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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막장 스토리입니다)







BGM: ZIZZ STUDIO - 夕闇の陽炎






■■■








[가을빛 마녀와 잿빛 유령 (2)]


 - 거슬리는 종소리에 몽롱한 새가 구름이 되어 날아갔다.






 꽃잎이 낙엽처럼 흩날리는 계절.
 저녁 무렵 어스름하게 걸쳐 있는 푸른 달빛 아래 화려한 소녀는 조용히 누군가의 뒤를 밟고 있었다.

 ‘확실히, 사랑은 미친 짓이야.’

 씁쓸하게 자조하는, 붉은 머리 소녀의 이름은 서진아.
 올해 고교 2년생인 진아는 지금까지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무언가’를 진지하게 즐겨본 적조차 없었다. 공부도, 운동도, 게임도, 독서도, 연애도. 그 어느 것 하나 그녀의 마음을 동하게 한 적이 없었다.

 ‘그런 자신을 바꾸고 싶었는데…….’

 강렬한 염색, 옅은 화장, 비싼 브랜드 코트, 이런저런 장신구들.
 겉을 바꾸면 속도 변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 패션 잡지를 보고 열심히 꾸며 봤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반에서 좀 더 주목을 받게 되고 생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아 보기도 했지만, 그 역시 진아의 마음을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인기가 생긴 덕에 진아는 사교성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 누구와도 깊게 친하지 않았다. 심지어 방과 후나 휴일에도 단 한번 애들과 놀러간 적이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위에서는 태도가 나쁘다고 무시당하는 대신 ‘연상의 애인’과 사귀고 있어 바쁘다는 소문이 돌 뿐이었다.

 - 진짜, 그런 사랑이라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애인은커녕 변변한 취미조차 제대로 없는 진아의 입장에선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일이었다. 그때 진아는,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설마 내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게 될 줄은…….’

 사랑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시작된다. 계기는 단순한 일. 무심코 건넨 그 한 마디에 진아는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 오늘은 기분이 별로 안 좋은가 보군. 음, 별 거 아니지만 이거라도 먹어 봐. 단 게 들어가면 좀 나아질 거야.

 대뜸 캐러멜 사탕을 건네는 상대의 말에 진아는 살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어떻게 내 기분을 알았냐고. 그렇게 표정에 드러났냐고.
 그러자 상대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고는 웃으며 답했다.

 - 뭐 대충 분위기를 보고 안 것도 있지만, 지금 파란 리본 하고 있잖아. 우울할 땐 파란색. 화가 날 땐 붉은색. 그리고 기분이 좋을 땐 노란색. 맞지?

 진아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게 정답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어릴 적부터 자신의 감정을 몸 어딘가에 다는 리본의 색으로 나타내는 버릇이 있었다. 특별히 큰 의미는 없는, 일종의 장난 같은 행동이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눈치 챈 사람이 없었는데…….’

 정말 별 거 아닌 일. 하지만 이 일로 진아는 상대에게 반해 버리고 말았다.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감정이었지만, 이미 사랑에 빠져 버리고 말았으니 어쩔 수가 없다.

 “이시진…… 선생님…….”

 진아는 신음을 토하듯 연정을 품은 상대의 이름을 작게 속삭였다.
 소매를 걷은 화이트셔츠와 스키니진이 잘 어울리는 매끈한 팔다리. 깔끔하게 묶은 긴 검은 머리가 활동적인 인상을 주는 늘씬한 몸매의 미녀. 고교 교사라기보다는 영화 속 낭만적인 분위기의 카페를 운영하는 미인 점장역에 어울릴 것만 같은 사람이다. 외모를 보고 사랑에 빠진 건 아니지만, 그 때문에 더욱 매료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으, 나 완전 스토커 같아…….’

 그 시진의 뒤를 몰래 쫓고 있는 진아는 1분 단위로 자기 혐오감과 싸우고 있었다. 일요일, 음료수를 사러 나왔다가 우연히 시진의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충동적으로 그 뒤를 밟게 될 줄은 스스로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죄적인 행위라는 걸 자각하면서도 진아는 그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집 주소…… 어디에 살고 있는지, 그것만이라도 보고…….’

 본다고 해서 어쩔 건가. 뭔가 바뀌는 게 있나. 아무것도 없다. 그건 진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진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너무나도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적당히 오래된, 하지만 깨끗하게 정비된 주택가.
 시진의 집은 그 중 작은 정원이 있고 빨간 벽돌이 아기자기해 예쁜 1층 건물이었다. 다행히 미행에 눈치 채지 못했는지 그녀는 곧장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 여기가 선생님이 사는…….”

 이만 돌아가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완벽한 범죄가 되고 만다. 하지만 처음 맛보는 사랑이라는 강렬한 감정에 진아는 내면에서 치고 올라오는 욕망을 제대로 다스릴 수가 없었다.

 “조, 조금만 더……. 선생님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만 보고……!”

 진아는 변명 같이 중얼거리며 자신의 키보다 더 큰 담을 훌쩍 뛰어넘었다.

 “…….”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가벼운 착지. 도저히 평범한 여고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비정상적인 몸놀림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으, 왠지 정원 흙냄새까지 향기롭게 느껴져…….”

 사랑에 빠지면 다 바보가 되는 걸까. 진아는 더 이상 자책하는 것도 포기하고, 하지만 발소리는 확실하게 죽인 채 커튼이 살짝 걷힌 창문을 통해 안을 엿보았다.

 “……!”

 멋대로 미행하고 무단침입까지 한 벌일까.
 선생님의 약간 풀어진 모습이라도 눈에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담아 훔쳐본 집안. 거기서 진아의 첫사랑이자 짝사랑 상대인 여교사는, 풍성한 단발의 어떤 여자애와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아…아아…아……!”

 숨이 막히는 광경. 너무나도 충격이 커 시야가 흔들리고 다리가 떨려 자리에 주저앉고 싶다. 하지만 진아가 느긋하게 충격과 슬픔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었다.

 “뭘 변태 같이 엿보고 있는 거죠?”

 칼 같이 서늘한 목소리. 진아가 급하게 몸을 움직여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어느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진과 입을 맞추고 있던 갈색의 단발머리 소녀가 서 있었다.
 한손에는 날카로운 은빛을 내뿜는 식칼을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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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https:// BlogIcon 비욘더 2018.11.08 10:5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흐어 얀데레!










※ PC기준으로 작성된 포스팅입니다.
※ 심미안 주의!









자작 그림이 나열돼 있습니다.
부족한 실력이니 심미안이 민감하신 분들께서는
살짝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
......
...



안쪽에서 현관 잠금장치가 얼어붙은 모습(...)

현재 오래된 주택에 전세를 살고 있는데,
겨울과 여름에 특히 취약한 부분이 많네요.

이번 여름에 계약 기간이 끝나는데,
될 수 있으면 있는 물건 다 버리고
신축원룸으로 옮기려고 생각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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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기준으로 작성된 포스팅입니다)
(개인용 번역으로 의역이 심합니다)






제목: 【MMD칸코레】 『 ef-a main force of main force. 』
니코동: http://www.nicovideo.jp/watch/sm31772288
제작: 落とし子 님


● 아키구모x카자구모 커플이 중심입니다.
●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한 재현동화動畫입니다.
● 문자는 독어번역에 맡긴 것입니다.
● 유구모급의 11번함, 후지나미 양은 나오지 않습니다.
● 아키구모가 나오지만, 카게로우급을 부정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永遠に一つの願いかなえて
영원히 단 하나의 소원만을 이루어다오
いつか未来を胸に抱きしめて
언젠가 미래를 가슴에 품을 수 있도록

闇の向こうに消えるあなたの声
어둠 저편으로 사라지는 당신의 목소리
腕伸ばしたけど届かない影追いかけ
팔을 뻗어 봤지만 닿지 않아 그림자를 쫓아가네

走り出す世界が心傷つけても
달려 나가기 시작한 세상이 마음에 상처를 입혀도
握るその手を離さないでいて
꼭 쥔 그 손을 놓지 않았으면 해

果てしなく空へ鳴り響けこのメロディ
끝없는 저 하늘에 울려 퍼져라 이 멜로디여
溢れる涙を忘れはしないわ
흘러넘치는 눈물을 잊지 않겠어



Person who has intention.

海を風が吹き抜けていく。
불어온 바람이 바다를 빠져나간다.

風は冷たく、
바람은 차갑고,
時には立ち止まってしまいそうになるけれど。
때때로 멈춰 서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Person who stands up again.

そういうときは、
그럴 때면,
ゆっくりでもいいから進んでほしい。
느긋하게라도 좋으니 앞으로 나아갔으면 해.
いつか必ずたどり着けるから。
언젠가 반드시 도달할 수 있으니까.

It begins to move again.

悲しいことがあっても大丈夫
슬픈 일이 있어도 괜찮아
手を伸ばせば、そこには誰かがいて。
손을 뻗으면, 거기엔 누군가 있어
ぬくもりを分け合うことが出来るから。
서로 온기를 나눌 수가 있으니까.

Person who spins time.

ひとりでは辛い道のりも、
혼자서는 괴로운 여정도,
つないだ手を離さなければきっと乗り越えられる。
마주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면 분명 넘어설 수 있어.

だから、あきらめないで。
그러니, 포기하지 말아 줘.
長い長い道の先には、幸せが待っている。
길고 긴 여정의 끝에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으니.

幸せが重なり合い、さらに大きな幸せに。
행복이 서로 맞닿아, 더욱 큰 행복으로.

Person who walks to the future.

そして、いつの日か気づいてほしい。
그리고, 언젠가 깨달아 줬으면 해.

あなたが歩いてきた道の途中に、
당신이 걸어온 길의 도처에,
いくつもの幸せがあったことを。
수많은 행복이 있었다는 것을.

It is a story of the “Will”.

忘れないで。
잊지 말아 줘.
あなたはひとりぼっちじゃない。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

確かな足跡を刻み、
확고하게 발자취를 새기고,
季節を越え、空を見上げて
계절을 넘어, 하늘을 올려다 봐

翼がなくても、きっと行ける
날개가 없더라도, 분명 갈 수 있어

いつか夢見た、
언젠가 꿈꾸었던,
光あふれる明日へと――
빛이 넘치는 내일로――



胸に隱した 想いは切なくて
가슴 속에 숨겨온 염원이 애절해
怯えた心 少しだけ揺らいでいた
움츠러든 마음 살며시 흔들리고 있네

忘れないわ あの日のこと
잊지 않아 그날의 추억
手と手繫ぐ ふたり
손을 맞잡은 두 사람
悲しみを越えていく
슬픔을 넘어서 가네

どこまでも どこまでも走れ
어디까지나 어디까지고 달려라
腕の中 愛抱きしめて走れ
품안에 사랑을 껴안고 달려라

翼なんて無くてかまわない
날개 같은 거 없더라도 괜찮아
だから届けて ふたりへ
그러니 닿아라 두 사람에게

永遠に変わらぬ あの空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그 하늘에

Two becomes one,
and it through all et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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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 들은 BGM이 겻들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막장 스토리입니다)







BGM: 相州戦神館學園 八命陣 『カクレ』






■■■








[가을빛 마녀와 잿빛 유령 (1)]


 꿈이 무너진다.
 꺾인 팔. 뒤틀린 다리. 날카롭게 베인 배에선 언제 내용물이 흘러넘쳐도 이상하지 않다. 흔들리는 시선 속 세상은 어지럽게 방황한다.

 꽃처럼 피어난 핏자국.
 그걸 보고 생각한다. 내가 보고 싶었던 건 꽃처럼 피어나는 너의 미소였다고. 따스한 햇살 아래 신록이 넘치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웃는 너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고.

 하지만. 그건 이제 이룰 수 없는 꿈.
 밤에 가려 태양은 보이지 않고 환상 속의 정원은 어느새 말라비틀어졌다. 아무리 눈물을 흩뿌리고 피를 쏟아내도 다시금 이곳에 생기가 도는 일은 없겠지. 모든 것이, 끝나버렸으니까.

 “그래도…….”

 그래도. 걷는다.
 아직 다리가 움직인다면. 아직 숨이 붙어있다면. 가야 할 곳이 있고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멈출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도달한 마녀의 집.
 피에 젖은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딸랑. 푸른 종이 울려 이지러진 문이 열리자 드넓은 챙의 검은 모자를 눌러쓴 마녀가 수다스럽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꿈과 희망과 사랑을 파는 저희 잡화점, 가을정원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본점에서는 누구나 쉽게 보고 느낄 수 있지만 아무나 쉽게 손에 넣을 수는 없는, 그런 상품들을 취급하고 있답니다. 네. 역시 직접 보시는 게 빠르겠죠. 예를 들자면…….”

 마녀는 선반에서 몇몇 병들을 꺼내 손님 앞에 내밀었다.

 “여기 있는 이 병은 겨울의 향기. 아무리 굳게 마음을 닫은 사람도 딱 한 번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 수 있죠. 다음 이 병에 담긴 건 햇살의 얼룩. 어떤 훌륭한 사람, 뛰어난 작품에서도 결점을 찾을 수가 있어요. 그리고 이쪽은 밤의 그림자…….”

 상대가 피투성이의 손을 올리자 마녀는 잠시 말을 멈추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예. 저도 알고 있어요. 전부 당신에게는 필요 없는 것들이죠. 잠시나마 현실을 잊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떠들고 있었던 건데, 아무래도 엇나간 배려였던 모양이네요. 제가 손님에게 정말 추천 드리고 싶은 건…….”

 마녀는 부드럽지만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드는 선홍빛의 병을 내밀었다.

 “이건 낙엽의 노래를 정제해 만든 음료에요. 달고, 아주 잘 넘어가죠. 마시면 고통 없이, 그리고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며 잠들 수가 있어요. 마지막 가시는 길에 도움이 될 거예요.”

 하지만 상대는 피로 범벅된 손을 저었다. 마녀는 곤란하다는 듯이 눈매를 좁혔다.

 “불가능해요. 어떤 중상도 치료할 수 있는 약품이라면 가지고 있지만, 아무리 저라도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는 방도는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래요. 이미 당신은 끝났어요. 수십 초 정도라면 인과의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미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렀다고, 마녀는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은 손 쓸 방도가 없다. 이는 본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터. 그러나 상대는 피에 젖은 원귀와 같은 모습으로 단 한발자국도 가게 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마녀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 그렇겠죠. 보통은 절명했을 그런 몸을 이끌고 저희 가게를 두드릴 정도의 집념이니. 그렇다면 최후의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겠군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가게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 마녀는 곧 검은 천에 쌓인 액자를 하나 들고 나왔다.

 “다시 말하지만, 제게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는 능력은 없어요. 다만 잠시 끝을 ‘지연’시킬 수는 있죠. 그것도 확실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도박이지만. 자, 여기를 보세요.”

 마녀는 천에 가려진 액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액자에는 영원의 한순간을 잘라낸 사진이 담겨 있어요. 만약 당신의 의식이 이 사진 속 풍경과 파장이 맞는다면, 당신의 죽음 역시 여기에 얼마간 고정하는 게 가능해요. 하지만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거예요. 찰나는 영원할 수 있지만, 그 찰나가 영원이라 할 수는 없으니까. 아무리 당신의 집념이 강하다 해도 한 달 이상은 버티기 힘들겠죠. 그래도, 괜찮겠어요?”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핏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면서도, 그 몸짓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좋아요. 중요한 얘기니 재차 말하지만, 이 방법마저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파장이 맞지 않으면 효력을 발휘하지 않으니까요. 그때는, 제가 주는 음료를 마시고 얌전히 피안으로 떠나주세요.”

 상대는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마녀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천을 걷어 액자永遠에 갇힌 찰나를 해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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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8.01.22 20:4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밤하늘의 지평을 물들였던 하린과 리아의 아이, 하리가 만들어나가는 또다른 신비와 비일상의 이야기.

    드디어 하리가 다시금 무대로 돌아왔군요! +_+

    ...그나저나 하리야, 그런거 함부로 팔면 안돼;;; x_x);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조항을 뒤적뒤적한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8.01.23 06:46 신고 address edit/delete

      새로운 이야기에도 눈을 두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전의 작품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몇 개 생각해 둔 것이 있는데, 이번에 그런 몇몇 에피소드를 단편 형식으로 적어 보려고 해요.

      ...확실히 작중의 하리도 그렇고 많은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일들 중에는 사실 제법 범죄적인 경우가 존재하죠>.< (언젠가 인터넷에서 어떤 법학도 분이 만화 주인공들의 행위를 국내 형법 기준으로 분석한 글이 제법 인기를 끌었던 기억도^^;;)

  2. BlogIcon 비욘더 2018.11.08 10:3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오 기대되는 첫화군요











(아마도 본편과는 관련 없는 인용입니다)




 올바른 민주사회는 피지배자들의 동의(consent of the governed)라는 원칙에 기초를 두어야만 한다. 이 원칙은 보편원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때로는 너무 강경하고 때로는 너무 미약한 원칙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지배받고 통제 받아야만 한다는 뜻을 품고 있기 때문에 너무 강경한 원칙이지만, 한편으로는 비인도적인 지배자까지도 폭력으로만이 아니라 지배받는 사람들의 동의를 일정하게 묻고 보편적인 동의를 얻어내야 하기 때문에 너무 미약한 원칙이다.

 여기에서 나는 자유와 민주를 추구하던 나라들이 이런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 왔는가를 살펴보려 한다. 오랫동안 민중의 힘은 더 많은 몫을 얻어내려 싸웠고, 많은 실패를 겪었지만 일정한 정도의 보장을 받아냈다. 그동안 민주주의에 저항하던 소수집단의 논리를 정당화하려는 이론도 더불어 발전해 왔다. 따라서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를 만들어 가려는 사람은 현실적 실천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그 실천을 떠받쳐주는 이론적인 틀에도 관심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250년 전,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 이런 문제를 처음으로 거론했다. 흄은 다수가 소수의 의해 지배되는 편안함, 결국 다수가 소수의 지배자에게 운명을 내맡기는 암묵적인 굴복이라는 현상에 흥미를 느꼈다. 힘은 언제나 지배받는 다수에게 있었기 때문에 너무도 놀라운 현상이었다. 사람들이 그런 힘의 논리를 깨닫게 된다면, 언제라도 궐기해서 지도자를 전복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흄은 정부가 여론의 통제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달리 살펴보면, 이는 가장 전제적이고 가장 군사적인 정부뿐만이 아니라 가장 자유롭고 가장 민주적인 정부에까지 확대되는 원리였다.


- 노암 촘스키,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모색, 66면 이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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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 그래도 기만하지 않을 수 없다 (8)


 깊은 공동의 짙은 어둠을 밝히듯 쉴 새 없이 반짝이는 영상장치monitor의 불빛들. 거대한 생물의 내장처럼 어지럽게 얽혀 있는 굵직한 전선들.

 세계중앙은행 총재 시로가네 아와유키의 직속 연구원, 리자 윌리엄스는 개인연구실에서 처리석 실험체L의 연구결과를 검토하며 불현듯 옛일을 떠올렸다.

 “인간은, 불평등한 우연의 산물…….”

 어린 시절의 리자는 관리기구 산하 학술기관Academy의 중등부에 소속된 학생이었다. 그리고 세상일에는 관심도 없이 연구에만 몰두하는 지금의 허약하고 병적인 인상과는 다르게, 아카데미 시절의 리자는 뒤에서 학도들을 주름 잡는 폭력배의 ‘우두머리’였다.

 - 나이 좀 먹었다고 나대지 마라. 뭉개지고 싶지 않으면.

 경화칙硬化則을 통해 백금총의 광탄도 통하지 않을 만큼 몸을 단단히 굳힐 수 있는 리자는 싸움에서 패하는 법이 없었다. 상급생은 물론 뒷골목에서 시비가 붙은 청년들마저 때려눕힌 전적이 있는 것이다. 그런 소문이 널리 퍼지자 그렇지 않아도 공부를 목적으로 들어온 아카데미의 학생들 사이에서 리자에게 감히 대적하려 드는 이는 없었다.

 - 빌어먹을…… 다 거지 같아…….

 그러나 힘으로 동년배를 제패해도 리자의 마음이 충족되는 일은 없었다. 애당초 리자는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무력기관에서 몸을 움직이고 싶었지만, 고위 공직자인 아버지가 억지로 그녀를 아카데미에 집어넣은 것이다.

 - 아주, 거지 같아…….

 리자는 스스로도 자신의 분노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물론 억지로 아카데미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녀는 공부에도 흥미가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낙제점을 받아 퇴학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분노가 어디에서 오는지, 처음으로 싸움에서 패배를 맛본 다음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 방해하지 마시죠. 전 바쁩니다.

 건방진 신입생. 자신의 패거리를 조금도 무서워하는 기색 없이 무시하듯 공부에만 집중하는 한 소년에게 리자는 직접 싸움을 걸었다. 비록 그 소년이 ‘천연석’이긴 했지만, 리자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이길 것이라 확신했다.
 그 결과, 그녀는 어떻게 당했는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어느새 땅바닥을 뒹굴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 하하, 하하하하…….

 비참한 패배자Lisa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마른 웃음. 하지만 이는 패배의 충격이 아닌 이제껏 간단한 사실 하나 깨닫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비웃음이었다.

 - 내 능력이란, 고작 이 정도에 불과했군.

 백금총 앞에서도 몸을 지킬 수 있을 만큼 단련한 개별칙. 때로는 뒷골목의 어른들과도 싸우며 수년간 쌓아온 수많은 실전경험. 그 모든 노력의 결정체가 하루 종일 책만 읽는 천연석 어린애의 주먹 한 방에 산산이 흩어지고 말았다.

 단지 태어난 것만으로 압도적으로 상회하는 선천적인 재능의 차.
 그리고 리자는 그 부조리에서 자신 또한 깨끗할 수 없음을 알았다.

 - 바보 같기는…… 나도 다를 바 없잖아……!

 어째서 자신은 아카데미의 학생들 위에 폭력으로써 군림할 수 있었나. 어째서 자신은 거리의 어른들과 싸워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나. 그건 바로 자신이 강철보다도 몸을 단단히 만들 수 있는 경화칙을 타고 태어난 덕분에 지나지 않는다.

 - 그래서 화가 났던 건가…….

 이제야 간신히 눈치 챈 사실.
 리자가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 그녀에게는 남몰래 친하게 지내던 소꿉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 아이는 상냥하고 아는 것도 많았지만 집이 매우 가난했다. 어린 나이에도 집안에 보탬이 되기 위해 일을 나가야 했던 리자의 소꿉친구는, 끝내 몸을 망쳐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리자가 아카데미에 들어오게 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후였다.

 - 그 애와 나 사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어. 아니, 오히려 그 애가 나보다 성격도 좋고 머리도 좋았지. 근데도, 그 아이는 죽고 난 이렇게 고급학교에 다니고 있어…….

 왜 둘은 이렇게도 다른 결말을 맞이하게 된 걸까. 간단하다. 리자의 부모는 부유했다. 단지 그것뿐이다. 그 덕분에 리자는 어릴 적부터 잘 먹고 잘 입고 잘 교육 받을 수 있었지만, 그녀의 소꿉친구는 어쩔 수 없이 어려서부터 일을 나갈 수밖에 없었으며, 그래서 죽고 만 것이다.

 - 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조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선천적인 우연. 그걸로 이미 많은 게 정해져 버리고 말아…….

 하다못해 자신의 경화칙을 그 아이가 타고 태어났다면. 그러면 그 아이는 고생은 해도 죽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우연은 그런 행운조차 그 애에게 허락해 주지 않았다. 결국 멀쩡히 살아 있는 건 몸을 지킬 수 있는 개별칙을 갖고 좋은 집안에 태어난 자신. 그런 자신조차 방금 수년간의 노력을 일순간에 부정당했다.

 - 아아, 진짜 거지 같네…….

 리자는 거칠게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뒤로 몇몇 보복에 맞대응한 것을 제외하면, 일체 싸움을 버리고 공부에만 전념했다.

 - 위에는 더 위가 있는 법이라고. 하여간 이런 애들은 좀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린다니까.

 아카데미의 학도들은 조용해진 리자를 천연석의 위엄에 꼬리를 내린 개로 생각하고 비웃었다. 흔히 있는, 세상 물정 모르던 철부지가 처음으로 패배를 경험하고 풀이 죽은 경우로 치부한 것이다.

 - 철이 좀 들었나 보군. 그래. 주경대나 군에 들어가 봤자 몸만 축나고 제대로 돈도 못 만진다는 걸 이제라도 깨달아 다행이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얘기가 있지. 세상에 몸으로 뛰며 돈을 버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다. 돈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위치. 앉아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지위. 그런 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해라. 그러라고 비싼 돈 들여 아카데미에 보낸 거니까.

 리자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드디어 사춘기의 미몽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했다. 싸우는 영웅에게 동경심을 품는 건 어린애juvenile의 특권이다. 그리고 똑똑한 어린애일수록 그런 망상이 부질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는다. 최소한 리자의 부친은 그렇게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딸아이의 ‘성장’이 내심 기쁘고 반가웠다.

 - 머저리 같은 행성엔 머저리밖에 없는 법이지. 물론 나까지 포함해서.

 그러나 학업에 열중하는 리자의 속마음은 주변 사람들의 추측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 있던 싸움에 져서 상심한 것도, 사회의 쓴맛을 알고 안전한 대로를 고른 것도 아니었다.

 - 모두가 진정으로 ‘평등’해질 수 있는 방법. 난 그걸 찾고 싶어.

 어떤 의미로 리자는 예전보다 더 큰 사춘기juvenile의 꿈을 꾸고 있었다. ‘누구나’ 천연석이 될 수 있는 원리의 발견. 물론 설령 그 아득한 목표를 실현한다 해도 갑자기 세상이 평등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성과가 ‘진정한 평등’이란 원대한 꿈으로 가는 한걸음은 될 수 있을 것이다.

 - 뜻깊은 연구를 하고 계시는군요. 저희에게 오시죠. 얼마든지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지 10년. 보석인의 순도를 올리는 처리석 실험의 권위자로 알려지기 시작한 리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기업은 많았다. 심지어 타주의 주립연구기관에서도 그녀에게 이주를 권하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 희망은, 있는 건가…….

 예상치 못한 주위의 호응에 칙칙한 안개 속에 갇혀 있던 것만 같은 리자의 마음에 한줄기 빛이 들어왔다. 처리석 실험 관련 분야는 원체 연구자도 적고 주어지는 예산도 얼마 없어 그동안 연구에 별다른 진척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기업의 연구팀에 망설임 없이 이적을 결심했다.

 하지만 리자는 곧 왜 처리석 분야가 이토록 척박한 환경에 있었는지, 왜 고작 10년 정도 연구를 지속했을 뿐인 자신이 ‘권위자’ 소리를 듣게 되었는지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 빌어먹을…… 다들 관심은 딴 데 있었어!

 물론 기업에서는 리자의 연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단 부수적인 부분에서.
 가령 천연석의 순도를 일시적으로 향상시키는 약품을 통해 전투력을 강화하는 연구라든지, 오래된 역사적인 세공품의 복원을 꾀하는 연구라든지, 연마를 마친 보석요리의 신선도를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연구라든지 등등…….

 하지만 아무리 이직을 거듭해도 어느 기업도 처리석 실험의 본래 목적인 ‘모조석을 천연석으로 바꾸는’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해주는 곳은 없었다.

 - 그렇군. 다들 빼앗기기 싫다는 건가……!

 기업들이 처리석 실험에 본격적인 지원을 해주지 않는 표면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인체실험’의 비윤리성 때문이었다. 처리석 연구를 진전시키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모조석 실험체를 통해 직접 실험을 해보는 수밖에 없는데, 그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 엄청난 비난과 함께 공주법이나 관리기구의 제재를 감수해야만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그런 위험부담을 함부로 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 사람을 소모품 취급하는 녀석들이 뚫린 입이라고 잘도……! 더한 짓들도 얼마든지 하는 주제에!

 하지만 최소한 황금산에서는 그런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황금산의 기업들은 필요하다면 암살이나 인신매매 같은 불법적인 일도 스스럼없이 저지르기 때문이다. 인체실험 역시 자신들이 원하는 단가에 맞는 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실행한 전적이 있었다. 당장 황금산의 빈민가에 내려가면 돈에 눈이 멀어 어떤 실험에도 자원할 밑바닥 인생들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 가치를 빼앗기는 게 무서운 거지.

 기업들이, 정확히는 기업들의 수뇌진이 처리석 실험을 외면하는 진짜 이유. 그건 약자들에게 추월당하기 싫다는 공포심 때문이다.

 현재 보석인들의 사회는 천연석들이 지배하고 있다.
 관리기구의 고위직은 물론 대공직, 기업의 총수 자리마저 대개는 천연석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자기 자식 중에 모조석밖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양자를 들여서라도 천연석의 후계자를 만드는 일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중이다. 앉아서 머리를 쓰는 일조차 좀처럼 지치지 않는 천연석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의 하나 누구나가 천연석이 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그런 이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이는 단순히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천연석이라는, 자신이 천연석의 부모라는, 자신이 위대한 천연석을 배출한 가문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이, 즉 남들보다 낫다는 ‘우월성’이 송두리째 뿌리 뽑히고 마는 자아정체성의 문제인 것이다.

 이는 타주의 주립연구기관이나 관리기구 산하의 공공기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성흔聖痕의 위협에 맞서는 게 주목적인 대공들이나 관리기구의 고위 공직자일수록 처리석 실험을 기피하는 경향이 심했다. 그들이야말로 본인들이 천연석이라는 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심층계곡의 괴물들에게서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그걸 위해서라면 더욱 이 연구를 지원해줘야 하잖아! 결국 자기 보신밖에 관심 없는 머저리 새끼들……!

 하지만 욕설을 내뱉는다고 해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수십 년 간 여러 곳의 연구기관을 전전하던 리자는 잔뜩 마모돼 이윽고 자기 꿈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갔다.

 - 뭐야, 리자. 못 본 사이에 눈이 많이 탁해졌군. 그래도 일말의 빛은 간직하고 있어. 어때?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면 지원해줄 마음이 있는데.

 그때 만난 이가 바로 시로가네 총재. 관리기구의 연구시설에 몸을 담고 있을 때 개인적인 친분을 쌓은 적이 있는 상대였다. 리자는 줄곧 외면당해온 자신의 연구를 지원해주겠다는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최후의 기력을 짜내 상대의 손을 붙잡았다.

 “총재는 약속을 지켰어. 덕분에 내 연구는 계속될 수 있었지. 이번에는 내가 약속을 지킬 땐가…….”

 리자는 연구 자료에서 눈을 떼며 바로 실험체L의 영상을 담은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남은 건 최종검토뿐. 내 인생의 숙제, 내 50년 연구의 전부를 담은 답, 심안칙의 공주님이라면 한순간에 알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 답이, 이제 곧 나와. 답이 나오면, 알 수 있을까? 만약 일찍 이 연구가 완성되었다면 그 아이를, 상냥하고 똑똑했던 어린 로제타를, 구할 수 있었을지 없었을지 그걸 알게 될 수 있을까.”






 C랭크 이하의 주민권을 가진 사람들이 거주하는 저층구역.
 운 좋게도 높은 분들에게 거두어져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던 저에게 이 구역은 여러모로 충격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숨이 막히는 탁한 공기, 보석이 잡동사니 쓰레기로밖에 보이지 않는 지저분한 거리, 내일이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과격하게 행동하는 거친 사람들.
 이런 식의 표현이 떠오르는 것에는 굉장한 죄책감이 들지만, 마치 황금산의 폐기물을 다 몰아넣었다는 인상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네요.

 - 죄스럽게 여길 거 없어. 전부 사실이니까. 아, 물론 그 구역들이 진짜 쓰레기장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야. 그러니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황금산의 구조 자체가 상류층이 본래 져야 할 부담을 하층민들에게 전부 떠넘기는 식으로 성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곳 사람들이 쓰레기 같다는 의미가 아니라 황금산이 정책적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그곳을 쓰레기장 취급하고 있다는 말이지.

 엘L 씨를 데리러 가기 위해 처음 저층구역을 방문하고 왔을 때 제 표정을 읽은 총재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황금산 출신자가 아니기 때문일까요. 그분은 황금산의 폐부를 찌르는 데 전혀 거침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충격을 받고 있는 건 저층구역의 열악한 환경 때문이 아닙니다. 그야 처음 봤을 때는 워낙 고층구역과 비교가 되는 모습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곳의 풍경 자체는 금방 익숙해 졌습니다. 오히려 살짝 그리운 기분까지 드는 걸 보면 아마 기억을 잃기 전의 저 또한 그다지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는 않은 것이겠지요.
 지금 제가 당혹감을 감출 수 없는 것은 동행자의 기묘한 행동이었습니다.

 “앨린, 내가 없는 동안 잘 있었어? 이런, 이번에도 많이 남겼네. 난 괜찮으니까, 많이 먹어도 된다고 했잖아. 그래야 빨리 건강해지지.”

 마치 병석에 누운 환자에게 말을 걸듯이 상냥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엘L 씨. 언뜻 대화 자체만 듣는다면 특별히 이상할 게 없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 여기 이쪽은 연지 씨라고 해. 내 파트너야. 물론 인생의 파트너라는 소리는 아니고. 일을 같이 하는 사이지. 후후, 걱정 말라고. 내게는 앨린이 제일이니까.”

 하지만 엘 씨가 말을 거는 대상은 눈을 감은 채 침묵을 지키고 누워 있을 따름입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죠. 저 여성은 이미 ‘끝났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현란하게 빛나는 4개의 커다란 전기석Tourmaline을 동력으로 작동하는 투명한 유리관.
 엘 씨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계속 말을 걸고 있는 여성은 바로 그 유리관에 누워 있습니다. 저 유리관은 일명 ‘동결장치’라고도 불리는데, 본래는 돌이킬 수 없는 중상을 입은 사람을 오로지 심층계곡에 보내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구입니다. 주로 상제급의 강력한 힘을 가진 보석인이 무시무시한 13번째 성흔聖痕으로 돌아오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하네요.

 ……음? 13번째 시련이 죽은 자의 귀환이라는 사실은 성채석의 대공과 그 금홍석 가신들에게만 알려지는 관리기구의 극비사항일 텐데, 어째서 제가 그런 걸 알고 있는 걸까요? 뭐 지금은 아무래도 좋은 일입니다.

 아무튼 이 동결장치의 유리관은 곧 용도가 폐기되어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상제급의 강자가 중태에 빠질 정도의 위기라면 애당초 목숨 자체를 온전히 보전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 그 정도 능력자라면 많은 경우 고순도의 천연석일 텐데, 그런 분들은 설령 중태에 빠졌더라도 목숨을 부지해 잘 치료받는다면 높은 확률로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다. 즉 효용도가 전혀 없는 셈이지요.

 그런 물건을 어떻게 엘L 씨가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안에 들어가 있다는 건 일절 되살아날 가망성이 없다는 뜻입니다. 저 유리관은 치료기기가 아니라 단지 목숨‘만’을 이 세상에 붙들고 있는 연명장치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엘 씨는 마치 상대가 눈앞에 일어나 앉아 있는 것처럼 활달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자 연지 씨, 인사해. 이쪽은 앨린. 친언니는 아니지만 내게는 가족 같은, 아니 가족보다도 훨씬 소중한 사람이야. 앨린이 아니었다면 난 아마 이렇게 연지 씨랑 얘기하고 있지도 못 했을 걸.”

 “아, 안녕하세요…… 앨린 씨…….”

 기세에 눌려 인사를 했지만, 당연히 유리관에 누운 여성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습니다.
 실제로 유리관에 누워 있는 이 탁한 금발의 여성은, 생전이라면 제법 어른스러운 분위기의 미녀였을지 모르나, 지금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당장이라도 모래로 변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덧없는 아름다움밖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엘 씨 앞에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지만, 신화시대 이전에 존재했다는 ‘사람의 시신’이 아마도 저런 느낌이었겠지요.
 하지만 엘 씨는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앨린이란 여성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응? 갑자기 왜 손님을 데려왔냐고? 아, 내가 수행하는 총재님이 광명제 기간이라고 여러 곳에서 엄청나게 선물을 받았는데, 그중에 특히 먹거리 부분은 혼자 처리할 수가 없으니 내게도 나눠 주신 거야. 한데 그 많은 걸 나 혼자 들고 올 수도 없으니 여기 있는 연지 씨가 도와준 거고.”

 그 말대로입니다. 우선 총재님을 관사까지 모셔드린 후 그분의 명령에 따라 다시 이륜차에 엘 씨와 선물을 싣고 처음 그녀의 집을 방문했네요. 암살과 관련해 혼자 계실 – 정확히는 노엘 님도 있지만 – 총재님의 신변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들이 절대 관사는 습격할 리가 없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는 모양입니다. 하기야 엘 씨라면 모를까, 제가 있어 봤자 별다른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요. 그래도 걱정되는 건 걱정되는 거지만.

 “이것 좀 봐. 보석나무 과자 같은 것도 있어! 으, 이럴 줄 알았으면 저번에 사지 말 걸 그랬네. 뭐 비싼 만큼 맛은 확실하니 여러 번 먹을 수 있으면 좋은 일이지. 여기 놔둘 테니까 앨린도 좀 먹어.”

 엘 씨는 들뜬 어투로 선물의 포장을 풀어 유리관 옆에 두었습니다. 물론 그 안에 누워 있는 여성이 일어나 그것을 집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어쩐지 무서워진 저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는 채 입을 열었습니다.

 “저기 엘 씨…….”

 “응? 연지 씨 무슨 일…… 으!”

 뒤로 돌아서며 평소와 같은 어투로 대답하던 엘 씨가 갑자기 통증이 느껴지는지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전 황급히 옆으로 달려가며 외쳤습니다.

 “괘, 괜찮으세요!?”

 “으, 응. 괜찮…아. 잠깐, 어지러웠을… 뿐이야.”

 “……!”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서려는 엘 씨.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본 저는 간신히 비명을 삼키는 것 외에는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습니다.

 - 제게는, 시간이 얼마 없어요. 죽기 전에 죽어도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얼굴을 감쌀 때 너무 세게 움켜쥐었는지 끈이 끊어진 안대. 꽃잎이 수놓인 그 큼직한 장막이 걷힌 뒤에 드러난 엘 씨의 오른쪽 눈가는, 망가진 도자기 인형 마냥 심하게 금이 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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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8.01.22 20:3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아아... 어찌하여 비극과 부조리의 마수란 세간의 노래 가사처럼, 리자의 자조섞인 독백과도 같이 기구하고도 서글픈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유독 그 심술을 부리고야 마는 것일까요.

    이로써 겨울 정원에 또 한마리의 탄식으로 빚어진 나비가 날아오르게 될테지요.

    ... 뭐 그래도 연우와 헬가만 행복하면 그 것으로 OK, OK! >_<) (본격 편애의 화신)

    덧 - 그동안 격조했습니다. 안단테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한층 안온하고도 즐거운 2018년이 되기를 기원해봅니다. :D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8.01.23 06:42 신고 address edit/delete

      오랜만에 안녕하세요!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소디언 님께서도 좋은 일이 가득하신 한 해되시길 바라요! >.<


      예전 작품도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배경이 배경이다 보니 이번 작품의 인물들도 행복하다고 하기에는 힘든 환경에 처해 있네요... 그래도 말씀하신 헬가와 철옹성은 시련을 딛고 건재하게 운영 중! 언젠가 작품 전체의 결말도 훈훈하게 지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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