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종이 울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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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Moratorium
by 안단테♪

'단상'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18.11.10
    아즈마 림, 한 VTuber의 좌절과 기업윤리에 대한 단상 (11. 12. 추가)
  2. 2018.07.31
    역사는 증오하기 위해 배우는 게 아니다 (2)
  3. 2018.06.15
    기회 또한 위기일 수 있다 (10)
  4. 2017.04.14
    내게 도의적 책임을 물을 자격이 있는가
  5. 2015.06.30
    [소고小考] 나는 왜 종교를 믿지 않는가 (12)
  6. 2012.02.05
    대중(大衆)에 대한 어떤 궤변 (6)
  7. 2012.01.12
    [릴레이] 안단테가 기억하는 2011년 Keywords (下) (10)
  8. 2012.01.12
    [릴레이] 안단테가 기억하는 2011년 Keywords (上) (14)
  9. 2011.12.29
    [번역&단상] Fate / Zero의 이질적인 종교관 (22)
  10. 2011.12.22
    [번역&단상] Fate / Zero의 왕도(王道) 대결 (10)






※ PC기준으로 작성된 포스팅입니다.

※ 기업 쪽의 해명 없이 해당 VTuber의 트위터 고발만을 참조해
작성한 글로서 차후 사실관계가 변동될 수 있습니다.

※ 11. 12. 사측의 사과문이 발표돼 번역과 함께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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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twitter.com/azuma_lim


 솔직히 조금은 기대했었다.

 아무래도 팬들에 의한 유튜브 수익이 기반인 버츄얼 유튜버라면 기존 예능계나 성우계에 비해 좀 더 깨끗하고 순수한 일면이 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역시 ‘돈과 기업’이 관련되는 이상 어디서나 비슷한 일은 일어나는가 보다. 심지어 내가 몰랐을 뿐으로, 다른 분들의 댓글을 보니 이미 유사한 전례가 VTuber계에서도 두 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기업도 자선사업을 하는 게 아닌 만큼 엄연히 그 투자를 받았다면, 될 수 있는 한 그들의 의향에 따라주어야 함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기업이 돈을 투자했다는 것만으로 어떤 콘텐츠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기여를 한 중심인물의 뜻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아예 자르기까지 하는 일이 마음대로 허용되어도 괜찮은 걸까.

 이번 사안에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분들도 케모노 프렌즈의 타츠키 감독 강판사태나, 코나미 사에서 내쫓기듯이 퇴사한 메탈기어 시리즈의 코지마 히데오 감독을 떠올리는 모양이다. 특히 1년 전, 타츠키 감독 강판사태 시 어떤 분이 모 그림 사이트에 올린 댓글에 매우 공감을 했었는데, 잠시 소개해 보겠다.



 매일 같이 신문지상을 차지하는 기업들의 횡포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사업주에 해당하는 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분 또한 갑질 회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업주의 생각을 요약하자면, ‘내 돈을 내가 마음대로 쓰겠다는 데 남들이 웬 참견이냐’라는 것과 야근하는 직원들을 향해 ‘남의 돈을 받으려면 당연히 고생을 해야지’라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용기가 없어 ‘그건 남의 돈이 아니라 그들이 정당하게 일해서 받은 대가입니다’라고 받아치지 못한 게 아직도 한으로 남아 있다.

 아마 그런 사람들이 자기 돈과 회사 돈을 구분하지 못하고 함부로 사용하다가 횡령죄로 처벌 받곤 하는 것이리라. 횡령죄에 대한 판례를 보면 설령 1인 회사의 1인 주주라도 함부로 회사의 금원을 처분하면 업무상 횡령죄가 성립하는데, 나는 이 법리가 단순히 법적으로 회사와 주주가 별개의 인격으로 규정되어 있어 그런 판결을 내린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사견이지만, 그러한 법리의 배경에는 아무리 개인 소유라도 일단 회사가 설립된 이상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그 회사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의 권리 또한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즉, 내 돈이라고 해서 마냥 내 마음대로 쓸 수는 없다는 얘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명예와 권력으로 이어진다. 힘 있는 자의 이른바 ‘갑질’이 옳지 않다는 데 동의하시는 분이라면, 자본을 투자했다고 해서 곧 무한한 권리를 행사할 수는 없다는 데 역시 동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11. 12. 사측의 사죄문 추가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간단히 요약하자면, 버츄얼 유튜버 아즈마 림의 의향을 존중하지 않고 일을 진행해 소동을 일으키게 되어 모두에게 죄송하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아즈마 림은 본인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강제로 변화하는 일 없이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데 서로 합의를 봤다는 내용이다.

 이에 아즈마 림 역시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 이번 일에 대해 모두에게 폐를 끼쳐 죄송하고 또 도와줘서 고맙다는 사죄 & 감사 동영상을 올리는 것으로 우선은 일단락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부디 기업의 사죄가 단지 이슈를 잠재우기 위한 일시적인 것이 아니기를, 또한 해당 VTuber 역시 국내 모 항공사의 모 사무장 사례처럼 복귀 후 음성적인 보복을 받아 고생하는 일 없기를 바랄 따름이다. 아무튼 CyberV의 사과문과 결정이 진정성 있는 것이라는 전제 하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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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소설에서 그린 약소국으로서 조선의 운명이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사드 배치를 두고 중국에 압박을 당하고 있다


 A.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에 대한 정돈된 견해는 없다. 다만 약소국가로서 강대국 틈에 끼어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병자호란 항복 후 우리의 주권은 훼손됐다. 군사·외교 주권을 다 포기해야 했고, 여자들 잡아다 청나라에 바치며 200년 이상을 살았다. 청에 대해 굴욕적 사대를 한 것이다. 그 전에는 명에 대해 사대를 바쳤다.

 나는 이런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니다. 치욕스런 역사다. 하지만 영광과 자존만으로 인간 역사를 구성할 수는 없는 것이다. 치욕과 모멸 또한 역사의 중요한 일부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사대는 약자가 강자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술로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사대를 옹호하는 게 아니다. 그게 자랑이나 영광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교과서에서도 그 점을 정확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빼거나 뭉개려고 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 중앙일보, 소설가 김훈의 『남한산성』 100쇄 기념 간담회 인터뷰 중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아마 한국에서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종종 언급되곤 하는 매우 유명한 문구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세간에서는 흔히 신채호 선생이 이러한 말을 남겼다고 전해지지만, 위키에 따르면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이는 누가 남긴 말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출처 불분명한 문구로서, 처칠이 남겼다는 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과거를 잊은 국가에게 미래는 없다)가 원형이 되었으리라는 추측이 있을 따름이다.

 아무튼 위 문구의 출처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역사에서 배워야 함을 강조하는 표현이나 사고방식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든지 존재한다. 나 역시 역사 배움의 중요성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사람은 과거에서 교훈을 얻어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한데 정말로 그런가? 정말 우리 사회에서 역사 교육은 국가와 시민들을 과거의 잘못에서 보다 나은 길로 이끄는 올바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내가 보기에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역사 교육은 도리어 민족감정과 국가 간 대립을 자극해 과거의 잘못을 부추기는 경향마저 존재한다.

 본래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배워야 할 역사가, 단지 과거의 치욕을 설욕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변질된다. 과거 전쟁의 참상에서 그 무엇보다 평화가 우선임을 배우기보다는, 다음 전쟁에서는 우리 민족이 승자여야 비참한 꼴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비뚤어진 결의만을 굳힐 따름이다.

 자신의 배경이 되는 국가나 민족의 영광은 드높이는 반면 굴욕은 되갚아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당연한 심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고방식이 지금껏 어떤 비극을 일으켰는지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바로 그 비극의 연쇄를 끊기 위해서라고 난 생각한다.

 “서로 싸움에 임하는 데 있어 그 유일한 목적이 평화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디선가 듣기로 문호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 역시 무엇을 위해 역사를 배우는지, 그 목적을 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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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8.08.05 15:3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보다 나은 미래로의 일보 전진을 위해 편찬되고 가르침이 이어져야 할 역사의 분야가, 고도의 정치적 계산 하에 증오의 연쇄와 진영논리에 기반한 국민과 대중 선동의 수단으로써 악용되기도 한다는 현실이 참 씁쓸하고 안타까워요... ;ㅁ;

    그러고보니 며칠 후 개봉할 영화 <공작>에서 실화를 토대로 각색되어 다루어진 북풍 사건의 전말을 보며 안단테님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네요. (관람 후기를 작성하는 조건으로 개봉전 시사회에 참여할 수 있었어요)

    불현듯 단지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은하영웅전설 자유행성동맹 말엽의 사회상이 그 비극의 궤적 위로 겹쳐보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지... 그래도 분명 대한민국 사회는 점차 나아지고 있고, 또 새로운 희망의 여지를 보여준만큼 제 다음 세대에는 그러한 씁쓸함과 안타까움의 반복이 일소되길 바랄 따름이예요. >_<

    덧 - 단발머리 소녀 귀여워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8.08.07 04:28 신고 address edit/delete

      말씀처럼 역사 교육의 의의가 현실에서는 조금도 살아나지 못한 채 다른 목적들에 악용되는 모습을 보면 여러모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현실이 언제나 이상을 반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정반대 방향으로 질주하는 건 정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정치나 외교는 물론 사소한 일상에서조차 가령 모 인기 모바일게임 관련해서는 오히려 이벤트 내용이 우익사관을 비판하는 전개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1945년이 배경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비난부터 가하고 보는 분위기라든지, 얼마 전 월드컵에서는 '어떤 나라를 응원할 수 없는 이유'라면서 그동안 한국이 침략이나 불이익을 받은 사실을 쭉 나열하며 상대국을 마음 놓고 야유해도 된다는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들을 꽤 본 적이 있는데, 그게 과연 정말 올바로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인지 심히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북한과 관련해서도 말씀하신 은영전에서 자유행성동맹과 은하제국 간의 해묵은 대립에서 벌어지는 불필요한 소모들을 생각해 보면 여러모로 반성할 점과 얻을 교훈이 많지요. 그럼에도 역사적 사실들이 단지 '원한을 되새김질하고 복수를 부추기는 장치'로밖에 작용하지 못하는 점은 참(...)


      결국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역시 민족주의 국가주의적인 세계관이 크게 작용하고 있지 않나 싶더군요.

      은연중 혹은 대놓고 자신의 정체성을 민족과 국가에 동일시 시키는 것으로 인해 '개인의 자존심'이라는 감정적인 부분이 역사적인 판단에도 섞여 들어가 문제를 올바르게 바라보는 데 심한 장애를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어릴 적부터 민족주의 교육을 주입받아온 사람으로서 그런 감정에서 아주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그럴 때면 자기 선조가 누구냐는 질문에 '10억년 전쯤 바다의 해파리 같은 생물'이라고 대답한 양 제독님의 현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네요.

      말씀처럼 저희 다음 세대는 좀 더 자유롭고 공정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부족한 그림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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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한 압승의 순간이란 없다. 승리도 패배도 있는 지속적 싸움의 과정이지만, 장기적으로 민중의 의식은 성장한다. 그렇기에 참을성과 끈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승리’하지 않을 때에도 다른 모두와 함께 가치 있는 일에 참여했다는 즐거움과 성취감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1999년에 남긴 말 -



 선거가 끝났다. 모든 결과가 만족스럽진 않지만,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부적절한 정당이 다시금 관에서 기어 나오지 못하도록 못질을 했다는 점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었다고 본다. 죽어야 될 것이 무덤에서 기어 나오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는, 이미 우리는 수많은 영화와 소설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다만, 당연히 불안한 요소도 많이 남아 있다. 당선된 민주당 후보 중에서도 전근대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 수준 미달의 의원들이 있으며, 진영 논리에 따라 표를 던지는 분위기도 여전하고, 민주당을 견제하고 자한당을 대체할 만한 제2정당이 확립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게 다가온다.

 더욱이 교육감 선거에서 매우 부적절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후보들이 의외로 지지율이 있어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아마도 거기에는 이런 조직표 또한 작용한 모양이다.








 저런 식의 사고방식을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고 안타까운 기분이 든다.

 분명 한국 사회에서 아직 여성들이 많은 차별을 받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는 남녀 모두가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하며, 여기에 대한 이견은 일절 없다.

 한데 저런 부류의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당신은 페미니스트이기 이전에 이 사회의 구성원이다.

 자, 한번 생각해 보자. 왜 우리 사회에서 여성차별을 철폐하고 남녀평등을 이뤄야 할까? 그건 남녀 불평등으로 인해 부조리한 권력구조가 발생하고, 거기서 여성이 사회적 약자로서 ‘차별과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페미니즘이 약자보호와 양성평등의 가치를 저버리는 순간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할 당위성도 같이 상실한다.

 그래 맞다. 분명 페미니즘은 여성해방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주의이다. 즉, 남녀평등이 목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여성의 이권 확장에 진정한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딱히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연히 누구나가 그렇듯 ‘~~이스트’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엄밀히 말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인권이 신장되어야 하는 것은, 결코 여자가 우월하기 때문도 아니고 남자보다 소중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누구나 누려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페미니즘도 휴머니즘의 기반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휴머니즘적인 요소를 도외시하고 페미니즘을 이기적으로 추구하겠다? 그럼 안타깝지만, 사회적 공감대도 얻을 수 없을 뿐더러 연대는 파괴될 수밖에 없다.

 (아마 보신 분도 많겠지만) 이에 대해선 내 빈약한 말보다는 이분의 말이 훨씬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런 의견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른바 '맨스플레인'이라고 말이다-_-

 하지만 이런 충고를 무시하고 위의 트위터와 같이 독단적인 태도를 계속해서 견지한다면······.
 그럼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



 다른 분들이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사회를 바꾸기 위한 싸움은 이제 막 시작한 수준이다. 비록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긴 했어도 그 불만의 에너지는 마치 스프링처럼 반대 진영에 더 축적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쇄신의지가 무뎌진다면, 그리고 트위터 등지에서 자신들의 ‘이즘’에 따라 과격한 주장을 펼치는 이들처럼 사회 공통의 연대와 정의를 외면하고 배타적 독단적인 이권 주장만을 반복한다면, 우리도 금세 우경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본다.



덧. 우경화에 대한 우려나 트럼프의 정치성향에 대한 내 불호와는 별도로, 북미회담을 비롯한 현재 트럼프의 대북정책 행보는 매우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그런 트럼프의 성과를 어떻게든 깎아내리기 위해 왜곡을 행하는 미국 내 언론의 태도와 지난 미대선 때 트럼프와 그 가족들에게까지 과도한 모욕과 비난을 일삼은 미국 좌파들의 행태는 올바르지 않았다고 본다.

위의 유튜브 영상 캡쳐 내용을 첨부한 이유는 트럼프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식의 과도하고 부당한 비난이 장기적으로는 반대진영의 세를 불리고 자신들의 입지를 줄이게 될 수 있음을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위의 캡쳐 내용에서도 트럼프에 대한 독설을 걸러내고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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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7.09 14:04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8.07.09 19:57 신고 address edit/delete

      안녕하세요! 과분한 말씀에 많이 부끄럽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도 제 글에 관심이 없으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읽고 싶다고 말씀해 주시니 기쁠 따름이네요. 어느 글인지 말씀해 주시면 설정을 다시 공개로 전환할게요.

      잊지 않고 찾아주신 것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드리며,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요!

  2. ㅇㅇ 2018.07.09 14:0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티스토리 처음 써봐서 비밀댓글이 작성자한테도 안보이는 줄 몰랐네요.
    혹시 저거 보이시나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8.07.09 19:58 신고 address edit/delete

      예, 잘 보인답니다. 아마 비로그인 비밀글의 경우는 해당 블로그 유저에게만 보이고, 로그인 비밀글의 경우에 블로거와 작성자분 모두에게 보이는 것 같네요.

  3. ㅇㅇ 2018.07.10 16:1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글 전부 정독하는 중이었는지라 전부 열어주신다면 제일 좋겠지만 마지막으로 보던건
    어느 은하수 다방의 대장장이 스토리가 생각 나는데 제목을 모르겠네요..ㅜ
    사실 도입부만 보고 제일 끌리는 것 부터 조금씩 구경해와서 모든 작품을 조금씩은 읽었어요.
    어느 대학생 밴드가 역할문제로 갈등하던 내용도 기억 나네요.
    해와 달의 생사여탈권은 폰에 넣어놓고 꺼내볼정도로 크게 감명 받았습니다ㅎㅎ
    계속 작품연재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문체가 풍부하셔서 배경묘사나 감각묘사가 웬만한 웹소설 작가 보다 훨씬 출중하시다고 생각해요.건필하셨음 좋겠네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8.07.11 06:48 신고 address edit/delete

      과찬의 말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지난 작품도 기억해 주시고, 또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글쓴이로서 정말로 감사하고 힘이 되는 말씀이에요.

      비공개로 돌린 글들은 틈이 날 때마다 다시 공개로 돌리도록 할게요. (제가 아직 티스토리 사용법을 잘 몰라서 그런지 일일이 수동으로 풀어야 해서;;;)

      음, 다만 제가 비공개로 돌린 글들은 대개 카테고리 앞에 [보류]라고 붙인 글들인데, 이 글들은 앞으로 다시 쓸 생각은 없고, 나중에 리메이크를 하게 된다 해도 제목만이 같을 뿐 아예 딴 내용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가령 세계관은 같아도 캐릭터가 전혀 다르다든지, 캐릭터 이름은 같아도 성격이나 역할은 물론 심지어 성별조차 달라진다든지 등등) 그런 부분은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 글을 써가는 데 있어 조금이라도 기대에 미칠 수 있도록 힘내고 싶은 마음이에요. 다시 한번 보내주신 응원과 격려에 감사의 말씀 드려요.

      그럼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요!

  4. ㅇㅇ 2018.07.11 21:1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네 감사합니다ㅎㅎ다른 작품들도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8.07.12 06:35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야말로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5.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8.07.14 17:3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안단테님, 그동안 격조했습니다! ㅠ_ㅠ); 나름 친밀한 티스토리 이웃으로서 활동하려했는데 이렇게 다시금 올려주신 글을 한달만에야 발견하다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다 화끈거리네요. llorz


    자아 이제 다시 본론의 화제로 돌아가서, 저 역시 지난 지역 선거 때 주위의 지인 및 가족들과 많은 토론을 나누고 또한 투표에도 참여했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소불위에 가까운 권력과 민중의 지지도로 기염을 토하던 정당이, 그 열성적 지지자였던 50대 이상 어르신들에게마저 외면받고 있다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또한 새롭게 권좌에 오른 여당 역시 (설령 극히 일부의 사례일지언정)다소 방만한 마인드 하의 국정 운영 방침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재차 경악하고 말았네요.

    이번 선거 때는 투표장에 가기 앞서 중앙선관위에서 공개한 후보자관련 정보를 꼼꼼히 살펴보기로 했는데, 놀랍게도 제가 속한 거주지의 여당 후보가 어쩌면 향후 재정 파탄을 초래할지도 모를 막연한(예산 한계치는 없이, 돈이 모자랄때마다 국고에서 더 끌어오면 된다는 식) 계획안을 공표한 반면 그 대치점에 선 야당측 인사는 의외로 전문성을 갖춘 인재에다 나름의 안전장치로써 예산 한도를 설정해둔 상황이라 정말 웃픈 심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답니다. (흡사 삼국지 게임마냥, 쇠락해가는 군소 세력에도 쓸만한 사람은 있는걸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지난날의 여당이 그토록이나 유리한 위치와 환경을 부여받고도 작금의 처지로 전락한 것은 그만큼 대다수 민중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줄만큼의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며, 그 반작용으로써 현재의 여당 또한 다소의 미흡한 부분들이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에 가까운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게 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즉 서브컬쳐계 식 표현으로 요약하자면 이 모든 것은 인과율의 섭리... (퍼퍽)

    마지막으로 지난 정권 하의 국정 농단 사태를 상기해볼 때, 건설적인 견제와 균형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모색되어야 하지 않나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분명 현직 대통령님은 한 국가의 통치자로서 바로 전임자와 비교해볼 때 정말 헌신적으로 잘해주시고 계시지만, 그 휘하의 관료 중에서 부패와 전횡의 사례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말이예요.


    덧 - 국내 트위터 생태계가 서비스 초창기만 하더라도 지금같은 질척질척 진흙탕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그마나 조용히 일상잡담계로 활동하시던 유저들마저 하나 둘 떠나는 상황이네요. 흑흑 역시 퍼거슨 감독님의 말이 맞았던 걸까요... ;ㅁ;

    덧2 - 지난 몇 달 간 신규 발행 게시물의 부재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지켜보며 혹시나 안단테님께서 독자층의 반응 저조에 상심하여 떠나신게 아닐까하고 안타까워 했었어요. ‘사실 이렇게 홀대 받으실 필력의 소유자가 아닌데...’ 하고 말이예요. 에... 가끔씩은 글 올려주실거죠? 하하 >_<);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8.07.15 17:29 신고 address edit/delete

      오랜만에 안녕하세요! 저야말로 자주 찾아뵙지 못할 뿐만 아니라 포스팅마저 뜸해 여러모로 부끄러울 따름이네요^^;;


      말씀처럼 부패하고 무너져 가는 정당에도 난사람은 있지요. 한창 그들의 세력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분석한 어떤 신문기사를 본 기억이 나는데, 그 기사에 의하면 오히려(?) 당시 한나라-새누리당의 하부 조직에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인재가 많았다고 하네요.

      생각해 보면 한 나라의 실권을 쥐고 있고, 자금도 충분히 공급되고 있는 정당에 뜻을 펼치고 싶은 엘리트들이 모여 드는 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 같은 인터넷 젊은층의 편견과는 달리 당시 여당의 공약 중에는 사회 문제점을 정확히 찌르고 있는 현실적이고 필수적인 내용들도 많았고, 당시 민주당을 비롯한 여타 야당들이 급하게 그 공약들을 베껴서 주먹구구식으로 선거를 치르기도 했다는군요.

      (물론 기사의 논점은 그래서 한나라-새누리당이 대단하다는 것이 아니라, 당시 여당에게 부당하게 운동장이 기울어진 상황을 지적하며 야당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꼬집은 것)

      하지만 이미 우리가 알다시피 아무리 좋은 공약들이 있어도 그건 전부 空約으로 그칠 뿐이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역량을 재벌이나 정치 권력자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만 다 쏟아부으며, 심지어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고 과거 독재정권을 미화하는 데까지 나아갔지요.

      사회에서 내놓으라 하는 경력을 가진 엘리트들이 죽은 독재자의 계승자들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곡학아세할 수밖에 없는 전근대적인 구조, 반대의견은 검열하고 반대자들은 배제하는 그 비민주주의적인 권위주의적 통치가, 단기적으로는 그들의 세력을 강화시켜주는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결국 조직을 부패시키고 실질적인 국정운영능력도 잃어버려 모든 지지기반을 상실하는 내리막길로 들어서게 하는 악수였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저도 위에서는 잘난 듯이 진영논리를 비판하는 글을 썼지만, 사실 한국의 정당정치 지형에서 진영논리에서 자유로워지기는 힘들다고 봐요. 일부 열심히 잘 하는 사람이 있거나 번지르르한 공약을 내건다고 해도 정당을 이끄는 주요 인사들에게 문제가 있으면 그런 긍정적인 요소가 구단위를 넘어 사회에 반영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오히려 그런 일부 괜찮은 요소가 부패한 상층부의 실책과 횡포를 가리는 방패막이로 이용되기까지 하고 말이에요.

      그래서 문 대통령이나 더민주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분명 국정을 수행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고 있지만, 일부 친문 사이트에서 보이는 찬양에 가까운 과도한 지지에는 다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해요. 어차피 더민주도 영원히 정치권력을 잡을 수는 없고, 그것이 바람직하지도 않은 이상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비슷한 수준의 다른 정당이 빨리 대두했으면 좋겠네요. 최소한 더민주가 실책했을 때 새누리 잔당들이 다시 반사적 이익을 얻어 무덤에서 기어 나오는 최악의 사태만은 막아야······.


      결국 지금 한국의 선거에서는 최선은 물론이거니와 '차선'을 뽑는 일조차 여의치 않다고 생각해요. 그저 현재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악'을 피하는 일이 아닐까 싶더군요. 최악의 집단이 정치권력을 잡는 일을 막으며 조금씩이나마 사회 부조리를 고쳐 나가다 보면, 후대에는 '차선'을 뽑을 수 있는 정치환경이 갖춰지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이 있네요.


      덧. 전 트위터의 경우 가끔 온라인 이웃들의 안부나 어떤 사건이 있었을 때 사람들 반응이 궁금해 살펴 보는 정도밖에 이용하지 않아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말씀처럼 예전과 달리 분위기가 많이 험악해졌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하네요.

      정말 그 악화가 사실이라면, 얼마간 공간이 열려 있어 다양한 의견이 오갈 수 있는 대형 사이트의 게시판과는 달리 차단 기능을 통해 싫은 사람과 그 의견은 아예 원천봉쇄를 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만 팔로우를 통해 모여 폐쇄적인 커뮤니티 속에서 계속 자기들의 의견만 배타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는 토양이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현 SNS의 구조적 특성상 오히려 온라인 속에서 이용자들의 배타성과 폐쇄성이 강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인 듯... 물론 그에 못지 않은 순기능도 많으니 마냥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라고 SNS를 써본적 없는 문외한이 말하고 있...;;;)


      덧2.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기쁜 말씀이지만, 역시 그동안의 제 글과 캐릭터들은 진정한 '재미와 감동'보다는 자기만족적인 요소가 더 강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읽어주시는 분들에게도 재미를 드릴 수 있는 내용과 캐릭터를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과연 잘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힘내겠습니다>.<











(개인용 번역으로 의역이 심합니다)




제목:【MMD칸코레】심홍의 하늘(深紅の空)
원본출처: http://www.nicovideo.jp/watch/sm30612795
제작: レイミア 님


紅く紅く 燃え上がる空
붉게 붉게 타오르는 하늘
永遠の 契りにも似て
영원한 맹세와도 닮아
朝な夕な 祈り続ける
아침저녁으로 늘 기원한다네
この幸を
이 행복을

森は揺れ ざわめく木々
숲이 흔들려 들썩이는 나무들
緑に 落ちる影
녹빛에 늘어진 그림자
流れる 陽の光 追い
흘러가는 햇살 좇아

息潜め 染まる空は
숨죽여 물드는 하늘은
鼓動を 打ちながら
고동을 울려나가며
若葉も 小鳥も 暮れる日 見入て
여린 잎사귀도 자그마한 새도 저무는 해에 넋 놓고

この世界 愛おしく
이 세상이 사랑스러워
時を刻んでいる
시간을 새겨나가네

紅く紅く 燃え上がる空
붉게 붉게 타오르는 하늘
夕陽 今日の終わりを
저녁놀 하루의 끝자락을
祝い 祈り
축복하며 기원하며
また明日の日の 夢を託し沈んで
다시 내일을 꿈꾸며 잠드네

夜の闇を迎え 夢見る
밤의 어둠을 맞아 꿈을 꾸네
永遠に 幸続くように
영원히 행복이 계속되기를
開ける空は 君を重ねて
밝아오는 하늘에 너를 겹치며
希う
간절히 바란다네


彷徨うは 人の心
헤매는 건 사람의 마음
移ろい 揺れ返し
변해가고 흔들려
命の歯車 軋む音
생명의 톱니바퀴가 삐걱거리는 소리

この世界 愛おしく
이 세상이 사랑스러워
全ては輝いて
모든 것이 빛나 보이네

緑 芽吹く 春の朝焼け
신록 움트는 봄의 아침노을
熱れ 汗流す夏
무더워 땀 흘리는 여름
落ち葉惑う 秋の夕景
낙엽 춤추는 가을의 저녁놀
息の凍る 冬枯れ
숨결 얼어붙는 쓸쓸한 겨울풍경

時を過ごし 人は息づく
시간을 보내며 사람은 숨 쉬어가네
友と 手と手取り合い
동료와 손에 손을 잡고
愛する人 守り続けて 生きていく
사랑하는 이 지켜가며 살아가네

紅く紅く 燃え上がる空
붉게 붉게 타오르는 하늘
永遠の契りを信じ
영원한 맹세를 믿고
朝な夕な 祈り続ける
아침저녁 늘 기원한다네
人の世の幸いを
사람의 세상에 행복 있기를

紅く紅く 燃え上がる空
붉게 붉게 타오르는 하늘

반짝이는
墨色髪に
먹빛 머리카락에
纏いながら 祈り続ける
감싸이며 계속해서 기원하네
この幸を
이 행복을


.........
......
...


 얼마 전의 단편을 쓰자고 마음먹은 계기가 된 영상 중 하나. 본래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작품은 따로 있지만, 유튜브에서는 저작권 문제로 BGM이 소거돼 대신 두 번째로 영향을 받은 영상을 올렸네요.

 개인적으로 칸코레는 매력적인 컨텐츠라고 생각하며, 위의 영상과 같은 작품도 좋아합니다. (소재의 한계라는 절대적인 장벽 안에서는) 이른바 군국주의적인 요소도 적당히 배제된 편이라 생각하고요. 최소한 ‘카미카제나 인간어뢰 회천 같은 자살특공 병기는 재현할 생각이 없다’고 공언하는 등 제작진이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이네요.

 (물론 진중권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 단지 ‘구린 미감’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으며, 사실 전 그 해석에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제가 파시즘을 위험시하는 이유는, 오히려 제 안에서 그런 성향이 제법 존재함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락물에 한해 이 성향을 즐기자’고 제 안에선 나름의 선을 긋고 있지만, 좀 더 엄격한 기준을 가진 분들에게는 이것도 비판대상일 수 있다고 봅니다.)

 아무튼 그렇다고 해도 과거 일본제국이나 서구열강의 함선들이 미소녀로 의인화되어, 즉 미화되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역시 종종 복잡한 심경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연합군/추축국, 승전국/패전국의 구분을 떠나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이런 오락 컨텐츠에서조차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것은, 지금도 힘이 있거나 한때 힘이 있었던 ‘강자’들 뿐이니까요.

 가령 이는 또 다른 인기 컨텐츠인 Fate 시리즈를 즐길 때도 비슷하게 느껴지는 감정인데, 거기에서 소환되는 영령들도 (당연히) 유명한 신화나 일화의 주역들뿐입니다. 그나마 약소민족의 영령으로 제로니모가 F/GO에서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도 ‘미국’과 관련되었기에 다루어질 수 있다고 봐야하겠지요.

 (반면에 전체주의, 군국주의, 민족주의 등에 반대하는 사상을 가진 다나카 요시키 작가의 ‘은하영웅전설’에서는, 기존 주요 국가들은 물론 베트남계, 몽골계 등의 생소한 이름을 가진 캐릭터들이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물론 결국 주역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인종이나 국가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명백한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와 대비해서 보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좀 더 잘 전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 이것이 꼭 컨텐츠의 인기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승자의 역사’라는 유명한 표현을 차치하고서라도 기술, 복식, 식문화, 법제도, 사상 등 온갖 분야에서 인류사회에 ‘족적’을 남길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살아남은 강자’들이니까요.

 일본제국의 대한제국 지배를 묵인하는 가쓰라-태프트밀약을 승인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우정이란 자신을 지킬 힘을 지닌 상대끼리 가능한 것이다. 한국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주먹 한번 휘두르지 못했다.”

 소설원작의 일본 애니메이션 ‘빙과’에서도 여주인공이 학생운동에서 희생당한 숙부를 회상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그때 숙부는 제게 ‘강해지렴’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만약 제가 약하다면 비명도… 예,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날이 온다고 말이에요. 그렇게 된다면 전, 산채로…… 전 산채로 죽는 것이 두려워 울었던 거예요.”

 물론 저는 강함만을 추구하는, 이른바 ‘정의 없는 힘’은 추하다고 생각하며, 장기적으로 보면 약자를 희생시키는 방식은 집단 전체의 결속과 저력을 깎아내어 그 힘마저 추락시킨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대를 해야 하는 것이고, 강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왜 사람이 약하게 되었는지를 파악해 그 문제점을 해결하고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 또한 한편으로는 결국 ‘강함’을 긍정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가능합니다. 마치 ‘메탈기어 라이징 리벤전스’에서 강자에 의한 약육강식의 절대적인 자유의지주의를 주장했던 스티븐 암스트롱이, 그의 사상을 부정하는 라이덴에게 패하면서도 ‘힘으로 날 부정한 너는 나다’라며 만족스럽게 숨을 거둔 것처럼 말이지요.

 현실에서는 이처럼 딱 나누어지기 힘들겠지만, 만약 어디까지나 사고실험으로서 ‘추악한 강자’와 ‘선량한 약자’ 둘 중 하나만을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면, 과연 제가 어느 쪽을 택하게 될지 아직까지 확실히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전자의 가능성이 높다고 해야겠지요.

 만약 스스로도 타인을 희생시켜서라도 강해지는 길을 추구하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면, 과거의 강자들, 그것이 일제가 되었든 나치스가 되었든 아니면 미영프 연합군이 되었든, 그 열강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세계시민적 연대를 위한 합의를 제안하는 것 외에 다른 도덕적인 책임을 물을 자격이 과연 내게 있을까. 그런 제 나름의 갈등을 담은 것이 얼마 전 올린 부족한 단편이었네요.


 *아마 여기서 현세에서의 고통이나 손득감정에 상관없이 신의 뜻인 ‘선’만을 택하는 교리를 예로 들며, 종교를 대안으로 제시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역사나 철학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시라면, 그 종교조차 어차피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자에게 빌붙는 사상을 ‘교리’로 내세워 왔음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즉, 종교는 소박한 신도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체제적으로는 결국 약자를 억압하는 쪽으로 나아가기 십상이며, 이것이 사람이 맹목적인 믿음보다는 의심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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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다른 민족 간의 일치된 관념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Cicero, 기원전 106-43)에서 비롯한다. 즉, 개별 민족들의 종교가 모두 신과 내세의 관념을 갖고 있다면, 이러한 공통적 관념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신의 존재를 증명해 준다는 것이다.

- 롤란트 W. 헹케 외, 『철학 입문』, 북비, 193면. -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는 모든 민족들이 신과 내세에 대한 종교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공통된 관념 자체가 신의 존재 등을 증명해준다는 주장을 폈다.

 신비체험 등으로 불리는 종교적 경험과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악에 대한 관념이 신에 대한 증거가 된다고 본 코플스턴 예수회 신부나 베이스 논증의 스티븐 언윈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전적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조르바 또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오랜 세월 그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매달리지 않았을 것’이란 말로써 비슷한 관념을 긍정한다.



코플스턴 : 예, 그렇지요. 나는 지금 엄밀하게 진정한 신비 경험에 관해 말하고 있으며 환영이라 불리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나는 단지 그 경험만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설명하기 어려우며 초월적인 대상에 관한 것이거나 초월적인 대상으로 보이는 것에 관한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당연히 인정합니다. 나는 줄리안 헉슬리가 어떤 강연에서 한 말을 기억합니다. 종교 체험이나 신비 경험은, 사랑에 빠지거나 시와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현실적인 경험이라고 하더군요. 물론 나는, 시나 그림을 감상할 때의 우리는 일정한 시들 혹은 일정한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고 믿습니다. 사랑에 빠지는 경우에도 어떤 사람과 사랑하는 것이지 아무 대상도 없이 하진 않지요.

러셀 : 여기서 잠깐 끼어들겠습니다. 그게 항상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일본의 소설가들은, 소설 속 가상의 여주인공을 사랑해 현실의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면 절대 성공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 버트런드 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사회평론, 263면 이하. -



 하지만 세계 각국에서 나타나는 사고방식이라 하여 과연 그것이 엄연히 현존하는 실재에 대한 증명이 될 수 있는 걸까.

 가령 인도, 이집트, 그리스 등 고대의 많은 문화권에서는 지구가 둥글지 않고 납작하거나 평평한 땅이라고 믿었다. 저 바다 끝까지 가면 낭떠러지가 존재하며, 그 아래에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고방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 각지에 그런 사고방식이 존재했다고 하여 지구가 평평하다는 증명이 되지는 않는다. 지금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초등 교육과정에서도 가르치는 사실이며, 이는 직접 배를 통해 항해하거나 우주에서 내려다보는 것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바로 100년 전까지만 해도 전세계는 가부장적인 체계가 압도적으로 사회질서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그 안에서 여성의 지위는 매우 낮았다. 선사시대의 몇몇 모계 사회나 일부 오지의 소수 민족을 제외하면, 유사 이래 이 세상의 여성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천시 받고 억압 받아왔다. 그렇다면 이것이 여성이 남성보다 못하다는 증명이 되는 걸까.

 정치적으로 올바른 교육을 받고 정상적인 판단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여기에 그렇다고 대답하지는 않을 것이다. 각 문화권 사이에 보이는 사후세계의 대한 관념과 사후세계의 실재에 대한 관계는 최소한의 개연성조차 지니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세계 각지에서 보이는 종교적인 내세관은, 각 문화권에 따라 신의 형상이 다르다는 크세노파네스의 신화 비판이나, 같은 맥락에서 문화권에 따른 임사체험의 형태가 다르다는 우르스 빌만의 지적, 그리고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본 임사체험에 대한 분석이 정신이상자나 약물 등으로 환각 증세에 빠진 사람이 보이는 증상과 비슷하다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갓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일 뿐이라 볼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고 생각된다.



Imagine there's no Heaven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봐
It's easy if you try
네가 조금만 노력한다면 쉬운 일이야
No hell below us
우리 아래 지옥도 없고
Above us only sky
머리 위에는 오직 하늘만이 있다고 말이지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모든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산다고 상상해 봐

- 존 레논의 상상(Imagine) 중 -



 이처럼 비틀즈의 멤버로 유명한 존 레논은 이메진이라는 곡에서 사람을 부당하게 사로잡는 구속적인 내세 관념이 사라진 세상을 상상해 보라고 노래하고 있다. 가사전문을 보면 국가나 소유욕은 물론, 천국과 지옥, 그밖에 기괴한 교리로 사람의 정신을 억압하는 종교마저도 없는 세상이 얼마나 행복할지, 그는 새로운 이상향을 제시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나 칼 세이건은 물, 칼슘 그리고 각종 유기 분자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도 나와 거의 동일한 분자들로 구성된 집합체이면서, 단지 나와 이름만 다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을 전부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이상하다. 분자가 나의 전부란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고 언짢아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나는 우주가 분자들로 구성된 하나의 기계를 인간과 같이 복잡 미묘한 존재로 진화하게끔 허용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고양된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사이언스 북스, 262면 이하. -



 또한 불가지론자이자 대중에게 과학을 친숙하게 전파시킨 것으로 평가 받는 과학자 칼 세이건도 『코스모스』라는 저서에서 유물론의 시점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하여도 전혀 그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음을 감동적인 어조로 피력한 바 있다.

 딱히 종교적 환상을 버리고 감각적인 현실세계를 직시한다고 해서 우리가 세계에 대한 경이와 신비를 잃을 일은 없다고 본다.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 같은 과학자도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우주의 신비에 감탄하며, 신적인 비유를 사용해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이것이 올바른 예일지는 모르겠지만, 가령 폭죽이나 플라네타륨이나 루미나리에 등의 연출효과를 원리적으로 상세히 파악하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불꽃 축제나 인공의 별자리나 빛의 축제는 감탄하며 즐길 수가 있다. 할리우드 영화의 CG가 만들어진 것임을 알아도 우리는 그것에 사정없이 매혹되어 즐길 수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반해 창조주와 그의 목적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로써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종교적 관념은 치명적인 폐단을 품고 있다. 세상에 어떤 목적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순간, 사람의 지성은 거기에 속박되고 만다. 그 목적에 따라 세상을 비틀게 바라보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자신의 가설에 따라 실험결과를 왜곡하거나 조작한 몇몇 과학자들의 우를 근본적인 사유의 차원에서 이미 범하게 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설계자와 목적론이 부재하는 세계 생성에 대한 자연과학적 이론은, 그렇지 않아도 무언가에 사로잡혀 흐려지기 쉬운 사람의 눈을 조금이라도 맑게 해주는 건설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자유는 그들에게 두 가지 사실, 즉 힘에 대한 증대된 감정과, 그와 함께 고립과 의혹과 회의주의의 증대, 그리고 – 그 결과로서 – 불안감의 증대를 가져다준 것 같이 보인다. 이와 같은 모순과 갈등은 여러 인간주의자들의 철학적 저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개성과 힘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들의 철학적 사고를 통해 불안과 절망을 나타내고 있다.

-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홍신문화사, 46면. -



 그리하여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었던 폐쇄된 삶은 종말을 고했다. 세계는 막막하고 두려움으로 가득한 것이 되었다. 인간은 폐쇄된 세계 속에서의 고정된 지위를 상실함으로써 자기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하게 되었다. (중략)

 인간은 자유롭게 되어 – 홀로 고립되어 – 사방으로부터 위협받고 있었다. 일찍이 르네상스 시대의 자본가가 누렸던 것과 같은 부(富)와 힘도 없이, 타인이나 외부 세계와의 일체감까지 상실한 인간은 그 자신의 무가치함과 무력함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영원히 천국을 잃어버린 채 홀로 외부 세계와 직면하게 된 개인, 그는 막막하고 두려움에 찬 세계에 내버려진 이방인이었다. 새로운 자유를 얻게 된 결과로 동요 · 무력 · 회의 · 고독 · 불안을 안게 되었다.

-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홍신문화사, 56면. -



 하지만 종교적 관념이 과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최소한의 개연성마저 없다고 하여 부정하는 것이 과연 모든 이에게 행복이 될 수 있는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단서가 에리히 프롬의 저서에 소개되어 있다.

 서구 중세시대의 사람들은 ‘개인’이라는 관념이 매우 희박하였다고 한다. 반면 그들은 고독하거나 고립되어 있다고는 느끼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국가와 교회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그 안에서 삶의 의미와 유대를 부여 받아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기를 맞아 자본을 가진 사업가들이 출현하고 문화 수준도 점차 발전하게 되면서 비로소 종교와 사회에서 분리된 근대적인 의미의 개인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그 개인들은, 에리히 프롬의 저서에 의하면 반드시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일전 국가와 종교로부터 부여 받던 유대와 삶의 의미를 상실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소외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 불안을 걷어내고 온전히 ‘근대적인 개인’으로서 삶의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었던 건 실질적으로 재산과 교양이 있었던 자본가나 기존 귀족들 같은 여유 있는 사회계급에게만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종교와 그것이 가진 내세관은 가혹한 현실 속 비탄에 빠진 사람들에게 많은 위안을 준다. 가령 난소암에 걸린 일본의 한 연예인도 죽기 몇 달 전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았는데, 그녀는 밤에 성경을 읽으면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고통을 잊고 잠들 수 있었다고 한다.

 흔히 찰스 다윈이나, 버트런드 러셀이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나, 칼 세이건이나, 토머스 페인 같은 불가지론적이거나 무신론적인 이들이 죽기 전에 자기 연구를 부정하고 신을 찾았다는 목사들의 거짓말이 널리 통용되는 것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그것을 희석시키는 데 종교가 주는 위안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죽는 순간 다시 살아나 나의 일부를 기억하고 생각하고 느끼면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그러한 소망이 강렬한 만큼 나는 그것이 헛된 바람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사후 세계가 있다면 내가 언제 죽음을 맞이하든 나의 호기심과 갈망은 충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우며, 크고 깊은 사랑과 선으로 가득한 곳이기 때문에, 증거도 없이 예쁘게 포장된 사후 세계의 이야기로 자신을 속일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약자 편에서 죽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생이 제공하는 짧지만 강렬한 기회에 매일 감사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 칼 세이건, 유작 『에필로그』, 네이버캐스트 인용 부분 참조. -



 그렇다면 사람에게 위안을 주기 때문에,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구원이 될 수 있으니까, 우리는 종교적인 관념을 긍정해야 하는 걸까.

 이는 아주 어려운 문제이며, 실질적으로 믿는 사람에게 믿지 말라고, 혹은 반대로 믿지 않는 사람에게 믿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굳이 입장을 밝혀야 한다면 나는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칼 세이건의 태도에 찬성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불확실한 것에 매달리는 사람의 마음을 무조건 긍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사람들이 불확실한 것에 매달리게 되는지 파악해 그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필 주커먼 교수는 『신 없는 사회』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이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는 국가에서는, 비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충분히 도덕적인 사회 구성원들과 풍요로운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맹자 또한 측은지심을 설명할 때 신이라는 가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의 도덕恒心은 항산恒産을 필요로 했을 따름이다.

 우리는 종교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의의의 단서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독일 사민당(SPD)의 고데스베르크 강령에서도 주장되었던 이념처럼 사람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고 그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실질적으로 그 삶을 지탱시켜 줄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갖추는 일이다.

 아무리 천동설이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아 그 안에서 영장을 자칭하고 있는 사람의 지위를 한없이 드높여 준다고 해도, 또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굉장한 만족감과 위안을 준다고 해도, 지동설의 증명을 부정하고 그 진실을 숨겨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은폐가 불행한 희생자를 낳고 인류 문명의 발전에 저해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역사에서 증명된 바 있다.

 이처럼 우리는 힘든 현실 속 종교적 환상에 탐닉하는 상황을 긍정하는 것보다는, 그 힘든 현실 자체를 직시하고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을 마련하는 일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그것이 불확실한 종교적 환상에 빠져 있는 것보다는, 좀 더 우리를 멀리 보고 멀리 가게 해줄 것이며, 또한 보다 많은 행복이 공존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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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5.07.02 21:4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어쩌면, 종교란 부조리와 고통에 가득한 세계 속에서도 일말의 구원을 바라마지 않았던 무수한 민중들의 비원이 투영된 결과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과학적 인지 영역의 확장에 따라 어느순간 고별을 마주 할 수 밖에 없었던 신화 시대의 잔영...

    결국 그 존재감의 공백을 견디지 못한 현대인들은, 다시금 종교의 심리적 안정제 역할에 기대게 되어버린 것일테지요.


    하지만 안단테님의 말씀대로 단지 이에 안주하는 선에서 끝나지 않고 그 보루 없이도 누구나 안온하고 올곧은 삶의 태도를 견지해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면 이는 인류에게 있어 또 하나의 위대한 발자국으로 기억될 것임에 틀림이 없는만큼...

    지금 이순간에도 조금씩 흘러가고 있을 수많은 생의 궤적들이 진일보의 분기점으로 뻗어나가기를 기원하고 또한 소망해봅니다. +_+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5.07.03 08:37 신고 address edit/delete

      예, 저도 말씀하신 바에 동감이에요.

      물론 현대의 우리들도 '나는 진리의 바닷가에서 조약돌을 줍고 노는 소년'에 비유했던 아이작 뉴턴 경의 말마따나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정말 적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고대나 중세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그 지식과 사용법이 월등히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최소한 천둥번개를 보고 신의 분노라 벌벌 떠는 일은 없어졌으니까요.

      반면, 그러한 원리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과거의 가혹한 환경 속에서 오로지 생존만을 목표로 했던 고대인들이나, 소수의 상류층을 제외하면 열악한 환경에서 신음해야 했던 중세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무서운 현상을 어떻게든 '설명'해 줄 수 있는 신화와 종교가 삶의 큰 지지대가 되었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어린 시절의 작은 옷을 지금 입을 수 없는 것처럼, 또 억지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다면 착용자에게 고통을 주고 성장에 저해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이제는 그러한 비합리적인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의 의식과 삶이 한층 진일보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위와 같이 부족한 의견을 피력해 보았네요^^

  2. Favicon of http://steamcommunity.com/id/furyblazeseternally BlogIcon 이카리 2015.07.30 05:2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기계론적 세계관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요? 자연현상의 무목적을 전제하는 것 역시 사고를 제한하지 않습니까?

    애초에 그것을 파악하는 것은 인간 인식으로 가능한건가요? 쇼펜하우어가 말했던 '인간 인식의 한계점' 너머에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행복한 내세를 전제하는 것 이외에도, 종교는 민중에게 '삶의 목적'을 부여합니다. 마르크스가 말했듯,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죠. 혹은 니체가 말했듯이,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는 낙타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종교는 필요에 따라 믿으면 그것으로 좋지만, 그게 전체주의적 사회를 만든다거나 하는- 노예적 도덕관의 세뇌수단으로 사용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라기보다 읽어보니까 저도 제가 무슨 말 하고싶은건지 모르겠네요. :(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5.07.30 10:22 신고 address edit/delete

      가령 문화상대론 또한 세상에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는 것을 하나의 절대적인 가치로서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세상의 무목적을 전제하는 것 또한 얼마간은 사고를 제한하는 면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에 비해서는 현대의 과학적 사고가 그것이 현저히 약하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이는 가령 과거의 칼 세이건이나 지금의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도 자신들의 저서에서 입에 신맛이 나도록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최소한 과학은 기존 체계를 부정하는 새로운 발견이 있을 때,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긍정하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얼마간 저항이나 편견도 당연히 있기는 하겠지만, 기독교처럼 금서목록을 만들거나 비밀 종교재판소를 열어 갈릴레오의 입에 자물쇠를 채우는 일과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데이비드 흄이나 칸트나 급진적 구성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 인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핼릿 카가 산의 비유(산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다고 해서 무한한 형상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에서 무턱대고 아무 역사해석이나 긍정될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세계현상에 대해 최소한 '보다 개연성이 높은' 탐구 정도는 가능할 것이며, 그것에 종교는 많은 방해가 되는 반면, 과학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조금은 우리 눈을 맑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고 쓴 것입니다. 오히려 '인간 인식 한계점 너머'에 있는 것을 '함부로' 설정하고 그에 대한 비판을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힘의 한계까지 부정하려 하고 있는 것이 어느 쪽인지 생각해 보시면 좀 더 문제가 명확해 지지 않을까 싶네요.


      종교가 삶의 목적을 부여한다는 것 또한 그에 비해 종교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점에서 상쇄되고도 남을 악영향이 있습니다. 이는 위에서도 인용한 에리히 프롬의 저서에서도 잘 드러나 있는데, 가령 루터와 칼뱅은 당대에 새롭게 주어진 자유와 경제적 발전에 적응하지 못한 중산계급에게 삶의 목적을 부여해 주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의 교리에서 '개인과 그 자아를 철저히 부정'했지요.

      말씀처럼 종교를 '필요에 따라 믿는' 사고 방식 자체도 최소한 현대의 기독교도들이나 이슬람교도 등은 인정하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불교나 힌두교와 같이 비교적 관대해 보이는 종교도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비합리적인 요소가 얼마든지 신도들을 적대적이거나 편협한 존재로 만들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고요.

      이는 루터를 비롯한 여러 종교인들이 인간지성에 얼마나 적대적인 발언을 쏟아냈는지 그 이유를 파고들어가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지요. 이카리 님께서 말씀하시는 유연한 종교적 태도조차 조금만 깊게 파고들면 종교 교리와 상충해 '믿음'에 방해를 주며 당연히 종교인들은 그 시도에 적대적으로 나옵니다.

      이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라는 저서에서도 상세한 사례와 함께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그러한 사례들은 결코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 종교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이라 하며, 저도 그에 제 개인적인 지식과 경험에 따라 공감하는 바입니다.

      '당신에게 비합리적인 것을 믿으라 강요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당신에게 잔혹한 짓을 강요할 수 있다'는 볼테르의 말로써 제가 왜 종교를 위험하게 보는지 요약할 수도 있겠네요.


      다시 에리히 프롬의 저서로 돌아가자면, 위의 인용에서도 말하는 것처럼 확실히 르네상스기와 근대에서도 새로운 자유에 적응해 근대적인 개인으로서 삶의 의미를 다시 되찾았을 수 있었던 것은, 교양과 부를 갖춘 일부 자본가와 귀족들뿐이었다 합니다.

      그리고 전 바로 그 부분에서 종교 없이도 사람들이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이 생활에 큰 곤란함이 없고(여기에는 삶의 여유도 포함됩니다), 상당한 교양과 지식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된다면, 종교적 내세관에 지배당하던 사회에서보다는 오히려 삶의 목적을 제대로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것이 바로 결론 부분에 맹자의 도덕이나 '신 없는 사회'에서 소개되는 북유럽 국가들의 삶, 고데스베르크 강령의 이념 등이고요.

      물론 많은 문제점이 산재해 있는 현대 사회에서 갑작스럽게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저도 당장 국고를 털어 북유럽 이상의 복지국가를 건설하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목표는 그러한 방향으로 잡고, 현재 종교가 사람들의 마음에 위안이 되거나 사회의 안정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 해서 무조건 긍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 특히 그런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 하여 그것이 진실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점이, 바로 위에서 제가 말하고 싶은 요점이라 할 수 있겠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3. Favicon of http://steamcommunity.com/id/furyblazeseternally BlogIcon 이카리 2015.07.30 13:1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저 또한 말씀하신 것에 대부분 공감합니다. 기독교의 교리는 개인의 내세에서의 행복에 초점을 너무나도 맞춘 나머지, 현세에서의 profession(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니체 We Philologists 인용입니다)과 개인의 행복을 그다지 연관짓지도 않죠. 저 또한 니체에게 받은 영향이 막대해서, 이상적인 인간은 종교와 같은 일체의 노예적 도덕관념을 넘어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며 행동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딱히 말씀하신 것을 부정하고자 쓴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종교는 필요에 따라 믿으면 그걸로 좋다'는건 딱히 기독교나 이슬람교만을 의식하고 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둘은 제가 바로 뒤에 언급하는 전형적인 노예적 도덕관의 새뇌수단들이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제가 생각하는 종교는 (제가 가지는 종교의 표상이라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군요) 불교의 이미지에 좀 더 가깝군요.

    '사고를 제한한다'라는 표현이 조금 공감가는 면도 있습니다만, '모든 가치들의 탈가치화'가 이루어진다고 그것이 사유의 무한한 자유를 보장할 것 같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고의 중심축이 있어야 구분이 이루어지고, 애초에 그런 중심축 자체가 없다는 것은 극단적인 윤리적 회의주의에 빠진 것과 하등 다를게 없어보이거든요.(안단테 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말이 아니라.. 쓰고보니 좀 쉐도우복싱이네요)

    글 제목 자체가 '나'는 종교를 왜 믿지 않는가 였기때문에 아마 이 코멘트도 '제가'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에 초점을 두고 쓰지 않았나 생각하네요.

    다만 안단테님은 종교 자체의 순기능을 긍정하시면서도, 그것의 보편적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네요. 저 또한 비슷합니다. 다만 그 제가 긍정하는 종교의 순기능이라는 것이ㅡ마키아밸리즘에 좀 가까울지도 모릅니다만ㅡ'철인'이 민중을 교육시킬때 교육 수단으로써 유용하게 쓰일 여지가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또 니체로 되돌아오는 것 같긴 합니다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자주 오겠습니다 ^-^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5.07.30 20:40 신고 address edit/delete

      부족한 글을 너그럽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말씀하시는 바에 대체로 동의하네요. 특히 '사고의 중심축'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도 공감합니다. 가령 전 파울 파이어아벤트와 같은 극단적인 상대주의자를 가장 경계하는데, '그렇다고 법관이 판결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 법학자 하트의 말마따나 사람은 일정한 판단 기준 자체를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판단을 포기하는 것조차 이미 무언가의 결정이기도 하죠.

      저도 탈가치화 자체를 무조건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며 '신이라고 하는 가설'도 매우 흥미로운 주제로서 인정합니다. 다만, 종교는 그 가설을 일단 '진리라고 이미 답을 정해 버리고 나아가는 것'에서 심한 폐단이 있으며, 사실상 그것이 종교의 '목적'이기 때문에 수정하거나 완화하기도 곤란하다고 생각하여 부정적으로 본 것이네요.

      반면, 제가 자연과학적인 우주생성이론이나 기계론적 세계관의 세계생성의 무목적론을 긍정하는 이유는, 그것이 탈가치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새롭게 발견되는 증거나 기술 및 사상의 발전 등에 따라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는 것으로 전제한 것이었어요.

      가령 세상에 정말 창조주나 신적인 존재들이 있다고 확실한 증거와 논리 등에 의해 증명이 되었을 때, 전 과학자들이야말로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먼저 인정할 거라고 생각해요. 반면, 종교인들이야말로 자신들의 '교리에 배치되는 한' 오히려 신적인 존재들이 정말 있다고 해도 그것을 부정하겠지요. 제가 종교 관념은 사고를 제한하는 반면 과학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랍니다.

      저도 민중교육이라는 측면에서 종교의 순기능은 얼마간 인정하지만, 그것은 천둥번개를 보고 신의 분노라 떨 만큼 매우 원시적인 수준의 사회에서나 그 구성원들에게 최소한의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반강제적으로라도 몸에 익히기 위한 일종의 생존 차원에서 필요할 따름이지, 기술 문명과 사회 수준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교육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해요. 구성원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빼앗고 무비판적으로 누군가(가설 속의 신이든 신의 대리인을 자칭하는 성직자나 위정자이든)에게 복종하게 만드니 말이지요.

      그밖에 전 니체에 대해 피상적으로밖에 모르는지라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지만, 아무튼 저 또한 전반적인 의견은 이카리 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네요.

      다시 한 번 좋은 덧글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4. Favicon of http://steamcommunity.com/id/furyblazeseternally BlogIcon 이카리 2015.07.30 13:3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쓰고 보니 제가 썼던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 같은 뉘앙스가 있는데, 처음에 '기계론적 세계관 또한 사고를 제한시킨다'라는 것은 '사고의 제한'이라는 요소를 가지지 않는 관점 자체가 없기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종교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좀 부적절하지 않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The very existence of 'destination' implies utter lack of freedom of that 'thing' - from any vehicle to any 'entity'- if you want to consider it in that manner. 예전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가 꺼냈던 말입니다. 비슷한 포인트를 지닌 비유라고 생각하네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5.07.30 23:19 신고 address edit/delete

      예, 저도 '사고의 제한'이라는 요소를 전혀 지니지 않은 관점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일정한 창을 통해서 딱 그만큼의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인식의 한계가 있지요.

      다만 경우에 따라 그 창의 위치나 형태를 바꾸거나 혹은 개보수할 필요성이 있을 텐데, 과학은 그것을 허용하는 반면 종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어 위와 같은 의견을 펼치게 되었네요.

      저 역시 위에서 말씀하신 쇼펜하우어가 불교와 힌두교를 철학으로서 연구한 것처럼 신이라는 가설을 순수하게 형이상학의 하나로서 철학적으로 고찰한다든가 혹은 인문학적으로 연구하는 등의 활동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가령 제 경우에도 쓰고 있는 부족한 소설에서 신이나 영적인 개념들을 즐겁게 사용하고 있으며, 불교의 연기설에 따른 무아론에는 상당 부분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네요. 또 거기서 공적 부조 이론이나 생태계 보호적인 사상이 도출될 수 있는 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전 단지 가설을 가설에 그치지 않고 진리와 사실로서 맹목적으로 신앙하는 태도에 경계하며 반대하는 것뿐이랍니다.

  5. Favicon of http://steamcommunity.com/id/furyblazeseternally BlogIcon 이카리 2015.08.10 04:3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일주일 조금 넘어 다시 들러봤습니다. 이정도 수준(수준이라는 말도 좀 뉘앙스가 거시기해서 조심스럽긴 합니다만)의 대화를 나누기가 처음인것같아요. 제가 나이가 올해 고3이다보니까..:((

    진지하게 제 글 읽어주시고, 또 진지하게 읽을만한 댓글을 써주시는 분이 너무 오랜만인것같아요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확실히 종교는 거스르는것에 지나치게 배타적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멋진 덧글 고맙습니다. 기뻐요!

    • 2015.08.10 05:31 address edit/delete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teamcommunity.com/id/furyblazeseternally BlogIcon 이카리 2015.08.10 05:33 신고 address edit/delete

      세상에 .. 비밀글로 쓰고보니까 저 자신도 읽을수가 없군요. :((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5.08.10 09:30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야말로 끝까지 읽어주시고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해주신 데에 감사의 말씀드려요^^

      말씀처럼 꼭 종교가 아니더라도 어느 것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지양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해요. 가령 유명한 교부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경우도, 그가 마니교를 거부하고 그리스도교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당대 천문학적 지식에 마니교의 교리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더군요.

      그랬던 아우구스티누스가 말년에는 완고한 그리스도교 사상만을 고집하며 소위 '이단적'이라 불리는 다른 사상이나 종교들에 대해선 배타적으로 변하게 된 것을 보면, 반드시 종교를 믿느냐 아니냐를 떠나 독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해요.

      '과학도 따지고 보면 하나의 종교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식의 비판 또한 그런 점을 경계해 나온 말이라 생각하며, 이카리 님 역시 제 글에서 그런 위험을 감지하고 댓글을 달아주신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 또한 공감하며 계속해서 주의하고 싶은 마음이네요.

      (다만 이런 식의 반성에 대해선 또 종교인들이 뻔뻔하게도 '거 봐라. 우리도 옳을 수 있지. 그러니까 우리 비판하지 마'라는 식의 아전인수격으로 자신들의 독단을 정당화하는 무기로 남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면이 있네요...OTL)


      제 경우 철학은 개인적인 흥미를 가지고 몇몇 개론서를 읽거나 교양 수업을 들은 정도의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으로 전공자는 아니에요. 전공은 법학이네요(지금은 학교에 로스쿨이 생겨 몇 년 뒤 없어진다는 모양이지만 당시에는 그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ㅠ_ㅠ).

      어느 대학에서 어느 학과가 좋은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진부한 얘기라도 '하고 싶은' 영역에 관련이 있는 학과를 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추천드리고 싶어요. 제 경우는 고시나 취직에 유리하고 수능점수가 아깝다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이유로 법학과를 선택했는데, 진짜 제가 하고 싶었던 창작이나 심리학, 철학 등에 관련된 수업을 들을 때와는 집중도와 '만족감'이 판이하게 다르더군요(물론 여기에는 전공과 교양의 난이도 차이도 있긴 하겠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진짜 하고 싶은 공부를 할 때의 즐거움이 분명 있었네요).

      물론 복수전공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전공 하나만 해도 제대로 공부하면 너무 힘들기 때문에 권해드리기는 조심스럽네요. 단순히 '학점'을 따는 데에만 치중한다면 대학수업도 입시에 비해 크게 어렵진 않지만, 진짜 '배우는 일'에 중점을 둔다면 전공 하나 파고드는 것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지라(...)

      확실히 취직 등을 생각하면 '밥을 벌어먹는 학문'을 택하는 것도 하나의 길이 될 수 있겠지만, 바로 그 밥을 위한 학문을 택했던 제 입장에서는 꿈을 위한 학문을 고르는 걸 추천드리고 싶어요. 물론 저 역시 꿈을 위한 학문을 택했다면 취직 안 되는 현실에 '역시 밥을 위한 학문을 택할 걸'하고 후회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 제 심정으로는 그렇네요.

      그럼 수험 공부 힘내시고,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라요!















“인간은 통일된 의지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마음속에는 멋대로 움직이는 무수한 벌레가 있을 뿐이다. 운 좋게 벌레가 같은 먹이를 향하고 있을 때는 괜찮겠지만, 그 벌레들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 인간은 지리멸렬 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행동에 나선다.”

- 키리마 세이이치, 『인간이 인간을 죽일 때』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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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편의상 ‘대중(大衆)’이란 표현을 쓰고 있긴 합니다만, 실제로 대중은 어떤 의지를 가진 독립된 무언가가 아니라 어떤 실체들로부터 발생하는 일종의 현상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군대의 행군에서 일어나는 흙먼지, 사람이 가득 찬 카페에서 들리는 웅성거림이 대중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대중은 어리석기도 하며 현명하기도 하고 둔하기도 하며 날카롭기도 합니다. 그 때 그 때마다 발생원이 조금씩 혹은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지요.

 일전에 제가 생각하는 ‘세계의 의지’를 설명할 때 빗대었던 것처럼 어떤 면에서 대중이란 현상은 ‘반평균’과도 유사하다고 봅니다. 가령 A(70점)와 B(69점)의 평균을 구하면 69.5점으로 양자의 점수에 상당히 근접한 수치가 나옵니다. 허나 C(90점)와 D(10점)의 평균은 50점으로 어느 쪽의 점수에도 가깝지 않은 동떨어진 수치가 나오고 말지요. 이처럼 각자의 수많은 개인의 의지가 충돌하여 그 총합적인 부산물로써 드러났을 뿐인 대중이란 현상은 사회가 거대화되고 복잡해져 다양화된 개인들이 늘어날수록 점차 사회구성원들과 균열이 생기고 거리가 멀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소위 말하는 민의(民意)가 천심(天心)이란 전통적인 관점은 진정한 의미로 낡은 것이 되고 말겠지요. 실제로 그 균열의 징조는 오래 전부터 보이고 있는데, 특히 요즘 세상에는 대중과 괴리감을 느끼는 개인들의 심정을 토하는 사연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가 있으며, 많은 이들이 그 고독에 동조하고 있더군요.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현대에 기독교와 같은 종교가 힘을 잃어가는 것도 결코 우연적인 일은 아닐 것입니다. 기독교는 말하자면 민중의 종교, 다수의 종교라고도 할 수 있지요. 신적인 경지에 합일하기 위해서는 심오한 수련과 깨달음이 필요하기에 소수의 입문자들에게만 교의를 전수하고 가르친 신비의식이나, 극도로 갈고닦은 지성의 일부만이 불멸의 영혼으로 달 위의 천상세계에 합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 등과 비교해 볼 때, 무지렁이 백성들도 교회(성직자)에 반항하지 않고 당시 가치관에 따라 착하게만 살면 누구나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가르친 기독교가 어떤 특질을 지니고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와 같은 민중종교는 사회 구성원의 90%가 교육수준이 낮으며 다 같이 헐벗고 굶주릴 때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매슬로가 정의한 욕구단계이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최초 욕구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렬합니다. 즉 "배부르게 먹고 따스하게 자고 싶다." 초창기 기독교가 다른 고급종교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거창한 껍질은 벗어던지고 많은 부분을 1,2단계 욕구충족의 보장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에 더해 아무런 고민할 필요 없이 수동적으로 사회질서유지(도덕규칙준수)에만 충실해도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인기가 없을 리가 없지요.

 허나 당연히 점차 사회와 기술이 발전해 일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삶에 여유가 생길수록 사람들은 그 단순한 욕구충족에는 만족할 수가 없게 됩니다. 버트런드 러셀의 경우는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저서에서 “평생을 성실하지만 무능력해 가계에 별 도움도 주지 못하고 아내에게 아이들만 쑥쑥 낳게 해 고생만 시킨 남자와 창의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이런저런 발명을 하였지만 자유연애를 즐기는 등 쾌락을 마다하지 않은 남자가 있다고 했을 때, 기독교적인 관점에선 천국에 가는 건 전자이며 지옥에 떨어지는 건 후자이다.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나?”라는 식의 논지를 펴는데, 전 이 이야기가 현대인의 관점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니체 같은 경우는 “기독교는 약자의 종교이며, 노예의 종교이다”라는 말로써 너무 거칠어 부당하긴 하지만 일정 부분 정곡을 찌른 주장을 펴기도 했지요.

 이쯤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첨언하자면, 제가 위와 같은 글을 쓴 것은 기독교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지도가 높은 종교를 통해 대중이라는 현상이 사회가 발전할수록 어떻게 개인들과 괴리가 되는지를 제 나름대로의 견해로써 설명한 것뿐입니다. 앞에서 쓴 것처럼 전 기독교가 민중의 의지가 깊게 반영된 가장 대표적인 종교 중 하나라고 보고 있는데, 그것이 시대가 흐를수록 어떤 취급을 받는지 살펴보면 대중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도 상당 부분 보인다고 생각되더군요.

 아무튼 “배부르니 딴생각 든다”는 비아냥거림처럼 제도와 기술의 발전으로 복잡다단해진 사회는 필연적으로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단기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문화다양성이란 오히려 해당 사회를 약체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는데, 가령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군대와 광신자들로 구성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군대가 동일한 장비/동일한 인원수로 맞부딪쳤을 때 과연 어느 쪽이 승리하기 쉬울까를 생각해 보면 다원화된 사회의 약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지요.

 그러니 최근 셧다운제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성세대가 게임에 대해 필요 이상의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들이 모르는 것에 대해 막연한 공포심을 느끼고 있다는 관점 외에 사회단결력이 약해지는 걸 우려하는 본능적인 방어심리가 작동한 결과라는 관점에서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즉,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접해보지 못한 게임문화의 수용은 한층 문화를 다양하게 하는 것이고, 그 문화다양성은 사회단결력의 약화로 이어지며, 사회단결력의 약화는 그 끔찍했던 전쟁 직후의 열악한 시절로의 회귀를 우려하게 만들기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것은 실질적으로 게임보다 훨씬 폐해가 심한 술, 담배, 스포츠 등은 연령 제한 외에 그다지 규제가 심하지 않다는 점에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물론 위의 품목들에는 이미 구축되어 있는 ‘어른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제재가 쉽지 않은 면도 있겠으나, 기본적으로는 그것들이 사회단결력을 유지시켜주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배척 받지 않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령 최근 이집트에서 관중들의 난동으로 70명 이상이나 사망한 축구경기 같은 경우는 그저 일부 극성팬들의 우발적인 잘못에서 비롯된 비극일 뿐이라 취급되고 있을 뿐인데, 게임의 폐해는 인과관계조차 확실하지 않은 몇몇 개인들의 범죄나 중독현상이 극단적으로 크게 부풀려 기사화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지요. 술과 담배도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해악성에 비하면 상당히 너그러운 대접을 받고 있고요.

 확실히 인간은 홀로 살 수 없으며 조직단결력이란 단순히 개인의 안정된 삶뿐만이 아니라 종의 생존이란 거창한 관점에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허나 자유로운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와 하나밖에 모르는 광신자들이 많은 사회 중 과연 어느 쪽이 문화·기술적인 성취를 이룰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다원화된 사회의 장점도 명확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나 싶네요.

 이야기가 많이 빗나갔습니다만, 결국 요점은 사회가 발전할수록 대중이란 개념은 더 이상 각 개인들을 만족스럽게 대표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피할 수 없는 거대운석이 낙하하거나 핵전쟁이라도 벌어져 사회가 리셋되지 않는 이상 아마도 대중과 개인 간의 괴리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겠지요. 우리가 정치권에 가지는 불신도 단순히 정치인들이 무능력하고 부패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대의제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결함에도 원인이 있는 것 아닌지는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볼 만 한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아직 우리 사회의 발전단계가 대의제와 대중을 부정하기에 이른 시기인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위의 부족한 단상은 어디까지나 짧아도 몇 십 년 후에는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망상적인 예측으로서 사람은 한 치 앞도 보기 힘들고, 무엇보다 제 스스로가 특별히 대단한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신빙성이 의심스럽지요. 다만, 운 좋게도(?) 위의 추론이 들어맞는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는 “민심은 천심”이라는 익숙한 진리를 버리고 니체의 탈도덕적인 초인들이 무리 없이 공존할 수 있는 무언가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만 무너지지 않고 번영을 구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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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2.02.05 16:3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안단테님의 말씀처럼, 문명이 점차 발달함에 따라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의식 구조도 점차 발전을 거쳐 확장ㆍ다변화되어가며, 그로 인하여 저마다 지니게 된 심리적 간극은 일종의 양날의 검으로써 기능하게 된 듯 싶네요.

    한 집단 내의 모든 개체가 동일한 형질만을 지니고 있는 것보다, 다양성을 지니는 쪽이 어떠한 환경의 급변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하고 나아가서는 종의 생존 가능성을 올려준다고는 하지만, 이는 반대로 균일화된 개체의 양산이 필요한 체계 하에서는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테니까요.

    이에 대하여 옥수수 재배를 예로 들어 설명해본다면...

    작물을 외관상 먹음직스럽고 커다란 모습을 지니도록 일률적으로 유전자 조작을 통하여 대량으로 재배할 경우, 별다른 문제가 없을 때에는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좋은 평가를 받게 되겠지만... 만약 그렇게 인위적으로 동일하게 조정된 형질이 극도로 취약한 저항력을 보이는 전염병이나 병충해가 발생하였을 경우에는 어떻게 손을 써볼 틈도 없이 순식간에 전멸해버리는 결과가 초래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 이러한 점을 우려하여 형질의 다양성을 추구한다면, 균일화된 작물의 생산이 보다 힘들어져 상품성은 떨어지게 될지도 모를 것이구요.

    사회의 구조가 지구의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다 다원화되기 이전의 시대에서는 이러한 변수들에 신경을 쓸 필요 없이 사회의 부속품으로서의 기능에 충실할 수 있는, 순응적이고 사고가 단순화된 구성원들을 배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였을지 모르겠으나....

    현재는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환경의 요구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개인도 국가도 살아남기 힘든 세계가 되었기 때문에, 다양성의 장점 뒤에 숨어있는 위험성을 인지하면서도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사고가 다변화 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뛰어난 누군가가 모든 것을 지시해주고, 그 밑의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것으로 세상이 잘 돌아갈 수 있다면 그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각자가 난 자장! 난 짬뽕, 난 군만두... 하는 식으로 따로 따로 주문하면, 주방장도 골치아플뿐더러... 식사하는 당사자들 입장에서도 무엇인가 난잡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더라구요; 반면 메뉴를 하나로 통일해버리면 무엇인가 다양성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신속성 등의 나머지 측면에서는 상당히 편리하... 'ㅈ'; )

    하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실현되기 힘든, 거의 『유토피아에 가까운 이상』이라는 것이 여러차례 증명된 데다, 이제는 규칙과 관념에 따른 억압으로 사람들의 사고를 제한시킬 수 있는 시대도 아니기 때문에....

    정말로 다양한 사고와 가치관의 소유자들이 서로의 간극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그렇기에 때로는 불편하여 아픈 충돌도 일어나지만 동시에 그토록 다양한 색채로 물들여져 있기에 어떠한 한가지 이유만으로 인류 사회가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희망을 지니고 일단 살아가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글의 말미에 적어주신 내용처럼 다원화된 사고의 흐름들이 교류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결속력을 저해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도록 나름의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노력과 시도도 필요하겠지요.


    마지막으로, 본문의 상단에 올려주신 이미지를 보니 그러한 심상이 한결 강하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점차 다원화되어가지만 동시에 그로 인하여 개인화ㆍ파편화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각자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점차 교류를 줄여가며,

    그로 인하여 세상의 풍경은 황량한 사막의 색조로 물든 하늘과 무미건조한 삭막함으로 덧칠되어가는 일상, 그리고 그로 인하여 점차 약해져만가는 사회 체계의 모습을 암시하듯 검은색으로 변해버린 환경의 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정체성(=고유의 색)을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그렇기에 주변과의 유리(遊離)를 택해야만 하는 개인의 처지가 왠지 서글픈 심상을 제시하는 것 같아요 -_ㅠ

    하지만, 그러한 모습의 바로 곁에 모여든 흰색의 새들이야말로 안단테님께서 말씀하시고자했던 어떠한 희망의 가능성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분명 세상은 단지 어둡고 절망적인 곳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에.... '~')y=3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2.06 01:12 신고 address edit/delete

      옥수수의 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적절한 중용을 취한다는 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질서유지를 중시하다 보면 발전을 막게 되고, 또 지나치게 발전을 추구하다가는 자칫 우리가 딛고 있는 발판 자체를 붕괴시킬 위험이 있으니 말이에요.

      그래도 굳이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앞으로 나아가는 쪽에 좀 더 응원을 보내게 될 것 같아요. 역사적인 기록과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추론하기에는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편견과 다르게 기존질서가 무너지면서 피해를 받는 사람보다는 시대에 앞선 신질서에 따랐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척 당하는 소수자들의 숫자가 더 많지 않나 싶더군요.

      어차피 변화에 적응해야 되고, 그것이 사람들의 앞날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경우가 많다는 걸 생각해 보면 설령 기우가 들더라도 새로운 문물과 이질적인 질서의 출현을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저도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면 또 어떻게 생각이 변할지 모르겠지만요^^;;

      ...확실히 저도 모든 개인이 주체적으로 사는 것, 그리고 그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추종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뛰어난 인물에 대한 환상이 있네요. 저 같은 경우는 정치가에게 그런 걸 바라지는 않지만, 제가 이성에게 바라는 이상형이 바로 그래요. 모든 면에서 저보다 뛰어나고 저보다 앞서 나가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에게 아무런 망설임 없이 열과 정성을 다하고 싶다는 소망은 있지만... 사실 세상에 그런 완벽한 사람이란 없겠지요ㅠ_ㅠ (언젠가 친구에게 너는 애인을 찾는 게 아니라 무슨 주군을 찾느냐는 소리를 들은 적이;;;)

      결국 인간의 삶이란 모든 개인이 불완전함에 탄식하며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 굶주리고 질려 하면서도 도중에 멈춰서는 걸 싫어해 닿을 리 없는 이상에 끝없이 수렴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살짝 중2병적인 거창한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물론 저도 천차만별인 개인들의 질주에 사회가 쉽사리 붕괴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이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하나의 질서에 편입시키려는 기존의 억압적인 가치관은 물론이거니와 현재의 모든 패도를 길항시키는 방관적인 문화다양성의 허용조차 뛰어넘는 뭔가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시켜야 한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드네요. 그저 망상에 불과할 뿐일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나저나 마지막 첨부그림에 대한 분석,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렇게까지 깊은 의미는 없이 어쩐지 대중과 거리감을 느끼는 고독감이 느껴진다는 이유만으로 삽입했을 뿐인데, 소디언 님께서 적절한 의미를 부여해주신 덕분에 얄팍한 제 글에도 간신히 깊이가 생겼다는 느낌이 드네요^^

  2. Favicon of http://sarange.net BlogIcon 밋첼™ 2012.02.07 09:0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읽으면서 끄덕끄덕.. 음.. 그렇구나.. 하다가..
    뒤에가면 무슨 얘기였더라? 하는... 무지한 1人 입니다ㅎㅎ

    오늘부터 날씨가 다시 추워졌네요.
    평소엔 존재의 가치조차 못느끼다가 없어지면 아쉽고 힘든 것들이 많듯...
    건강이 지켜질 때 더 많은 자유와 생각이 가능하겠죠~

    감기 조심하시고~ 행복 가득한(행복에 대한 의미역시 다르겠지만) 하루 되시기 바래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2.08 23:29 신고 address edit/delete

      으, 밋첼 님께서 무지하시다니 무슨 말씀을^^;;
      아마 제 글이 두서 없이 비약하는 버릇이 있는 게 문제일 듯싶어요... OTL

      정말 저번 주는 좀 따스해서 참 좋았는데,
      다시 추워지는 바람에 자꾸만 몸이 움츠러들기만 하네요.
      이제 입춘도 지나고 했으니 빨리 날이 풀렸으면 좋겠어요.

      밋첼 님도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래요^^

  3. Favicon of http://heben.tistory.com BlogIcon 아우프헤벤 2012.02.07 17:0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안단테님 글에는 제게 많이 생소한 사회과학적 요소들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제 전공과 하등 관련이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는 분야라서 100% 이해는 어렵더라도 즐겁게 읽게 되네요.

    이번 글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대중을 현상으로 보시는 것이었습니다. 대중(大衆)이라는 말을 의미 그대로 사람들의 무리로만 생각했지, 관념적인 무언가로 생각해본 일은 없었습니다. 전자의 의미라면 대중과 개개인이 괴리되는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대중이 곧 개인이고 개인이 곧 대중일테니까요. 물론 후자의 의미라면 본문에서 말씀하신 대로겠지요.

    아래에서 두 번째 문단에서 말씀하시고자 한 바가 '대중과 개인 간의 괴리에 따른 민주주의의 위기'일까요? (아니었다면 뻘쭘...) 저 개인적으로는 민주주의라는 체제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인류가 사용했던 정치체제들 중 부작용이 가장 적기 때문에 사용한다던가요. 그런 의견에 공감하는 편입니다. 어쨌거나 말씀대로 대중이라는 현상이 개인을 대표하지 못 하게 된다면 민주주의라는 체제 자체에 크나큰 위기가 아닐 수 없군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2.08 23:29 신고 address edit/delete

      흥미를 가지고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사회과학 분야는 모르는 게 많아 그저 떠오르는 단상을 적고 있을 뿐이니 잘못된 부분이라든가 지적하실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부담 없이 말씀해주세요^^

      개인적으로 전 대중이란 단어가 사람들 사이에서 쓰일 때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고 보고 있어요. 첫 번째는 헤벤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의 무리'를 뜻하는 사전적인 의미.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사람들의 무리가 무언가 일정한 의지를 가지고 실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모종의 유기통합체적인 의미에서의 대중. 여기서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중은 아마도 두 번째가 아닐까 싶더군요.

      한데 저는 첫 번째 사전적인 의미의 대중은 당연히 실체로서 존재를 한다고 보지만, 두 번째 의미의 대중은 각 개인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여 총화로서 나타났을 뿐인 현상임에도 마치 사람들이 그것을 대중 그 자체나 대중의 직접적인 행위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되더군요.

      사람들의 생활수준이나 사고방식이 서로 비슷할 때는 '개인'과 '개인 간의 총합행위의 결과(대중)'가 겹치는 부분이 많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사람들의 양태가 다양화될수록 그 차이는 점점 심해지며 '대중'이란 개념만으로는 온전히 개인들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대중이란 단어에는 생물학적인 요소보다는 행위적인 요소가 더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약간 맥락은 다르지만 가령 '지구생물'이라는 말만으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생물 중 어느 것을 지칭하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확실히 민주주의 위기라고 말하면 약간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역시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좀 어폐가 있긴 해도 결국 민주주의의 중점은 보다 많은 다수가 원하는 쪽으로 결정을 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을 텐데, 그 다수 자체가 전체에 있어 약간 숫자가 많을 뿐인 소수에 불과하다면 상당 부분 그 의미가 퇴색하겠지요. 실제로 이 부분은 오늘날 선거에 있어서도 드러나는 문제점이기도 하고요.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겠지만, 뭔가 획기적으로 제도·기술적인 면이 발전해 위정자의 폭주를 확실히 막을 방도가 정착만 된다면 (왕정이나 귀족정이 아니면서도) 민주정보다 효율적인 정치체제가 확립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 부분은 아직 SF적인 상상력에 불과해 말씀 드리기가 부끄럽네요^^;;













여러분이 기억하는 2011년은 어떻습니까?
: 개개인이 기억하는 지난 2011년 한 해의 키워드를 약 10여 가지로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 위하여 제작된 바통입니다. 본 바통은 아는 지인 세 분께 전달해주시면 됩니다. 주제 및 작성 형식은 장황한 글, 시, 포토로그 등등 자유입니다. 2011년, 여러분이 기억하는 소중한 기억을 들려주세요!


바통의 출발지 : 로로레나 님
바통의 이동 경로 : 로로레나 > Swan > 안단테 [누적 작성]
현재 바통의 도착지 : 푸른 종이 울리는 밤
다음 바통의 도착지 : 잡식성 냥씨 님, 비욘더 님, 소감공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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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단테가 기억하는 2011년 Keywords 下』





5.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출처 : 굽시니스트, 시사인 만화 중)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설마 Butterfly Effect를 실제로 생생하게 목격하는 날이 올 줄이야… 과연 현실은 소설보다 기이하군요(...) 물론 이러한 변화는 그 전부터 꾸준히 축적되던 시대의 불만과 문제점이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낙타가 쓰러지는 것은 마지막에 올려놓은 한 짐 때문이다”라는 말처럼 전 서울시장의 의도가 어찌 되었건 지금 상황을 만든 결정적인 기폭제가 된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봅니다. “개미구멍으로 공든 탑 무너진다”라는 속담처럼 아마 그도 무상급식 재투표와 자진사퇴가 설마 그 강성했던 한나라당의 해체위기까지 이끌어낼 줄은 몰랐겠지요.



[만화가 강풀 씨가 캐리커쳐한 나꼼수 맴버]


 여기서 또 하나 부상하게 된 2011년의 이슈를 찾자면 단연 “나는 꼼수다”가 아닐까 싶네요. 나꼼수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꼼수의 엄청난 인기는 분명 국민들의 분노가 체현된 부분이 지대하다고 봅니다. 군사정권 이래 어느 때보다 통제가 심해진 정권 아래 소위 조중동이라 불리는 메이져 신문사 등이 지나치게 편파적으로 균형을 잃은 언론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실망감이 나꼼수를 통해 분출되고 있다고 생각되더군요.

 나꼼수에서도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언론이 제 역할을 한다면 우리들은 나올 필요가 없었던 방송”이니 만큼 나꼼수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감정적인 혐오감을 가지거나,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반격하는 것보다는 그 열풍적인 인기의 원인에 대해 고찰하고 성찰하는 것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될 거라고 생각되네요. 물론 “대중들이 무식해 괴담에 놀아나는 것이니 역시 인터넷 통제를 강화해야 돼!” 같은 결론을 내리신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지만(...)




4. 덴마(DENMA)



“양 작가의 연재가 빠르면 지구가 위험해요!”

- 연재란의 누군가의 덧글 -



 스타워즈 등의 스페이스 오페라를 연상시키는 양영순 씨의 장대한 우주활극. 처음 연재 시는 『라미레코드』나 『플루타크 영웅전』 등 도중에 연재하다 작가 개인 사정이든 외부적인 사정이든 제대로 결말을 내지 않고 무책임하게 그만 둔 전과가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좀 연재하다 또 때려 칠 거지?”라며 상당한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허나 2년이 넘어가는 꾸준한 연재와 넓은 우주를 배경으로 강렬한 캐릭터들이 펼치는 눈물선을 자극하는 잘 짜인 스토리로 지금은 상당수의 코어적인 팬층을 확보하는 등의 순보를 걷고 있네요.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투른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





['피기어'라는 미련하고 추하지만 자식에게 헌신적인 동물을 통해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의 모습을 담아낸 에피소드]




[우주최강의 빵셔틀순정남 이델 등장!]




[많이 일그러졌지만 한결 같았던 고드의 사랑]



 이처럼 『덴마』는 내용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가부장제 사고방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초 판타지가 짙게 깔려 있어 사람에 따라서 굉장히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종종 덴마의 남성중심주의적인 시각에 대한 비판이 가해지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성(異性)을 비하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최소한 작품 속에서는 여성향이든 남성향이든 사회상식보다는 좀 너그러운 기준으로 허용되어도 괜찮다고 봐요. 다소 불편한 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마초 판타지는 『덴마』의 확실한 매력 중 하나이며, '픽션의 벽을 넘지 않는 한' 문화 다양성에 한 몫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3. 학교폭력




“약한 자들일수록 무리를 지어 희생양을 찾는다.”

- Sound Horizon, Chronicle 2nd, 뇌신의 계보(雷神の系譜) 中 -



 올해 초에도 여전하지만, 작년 말에도 학교폭력에 의해 피해자가 자살하는 등의 사건들이 이슈화되어 하나의 큰 사회문제로 부상하게 되었지요. 물론 학교폭력 자체는 예전부터 줄곧 있어왔던 일이지만 확실히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라는 식으로 무작정 옛 시절을 미화하고 요즘 세대를 깎아내려 부족한 자존감을 억지로 채우려는 그릇된 보수심리 때문은 아니고, 사회문화 제도가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발달하듯이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학교폭력 조직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선배 일진들의 노하우(...)를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즉, ‘요즘 애들’이 문제라는 소리가 아니라 학교폭력 자체가 세월의 흐름으로 조직화가 진행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힘이 세져 정도가 심해지는 것이고, 분명 사태가 이렇게까지 흘러간 것에는 오히려 윗세대에게 책임이 지대하다는 뜻이지요.

 흔히 ‘왕따 문화’가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라며 모든 책임을 바다 너머 열도에 안이하게 전가시키려는 분들도 의외로 많은데, 일본에서 건너온 것은 어디까지나 ‘이지메’와 ‘일진(이건 추정)’이라는 용어뿐으로 그러한 행위와 조직 자체는 먼 옛날부터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전역에서 목격할 수 있는 인류공통의 사회적인 양태입니다. ‘무의식’이라는 개념의 발견과 무의식 자체가 실재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처럼 말이지요. 왕따 등으로 대표되는 학교폭력은 폐쇄적인 환경에서 집단의 구성원들이 발산하는 스트레스 해소 행위가 그 시발점인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오지의 시골마을이나 외딴 섬마을, 혹은 한국의 군대와 같은 ‘닫힌 사회’에선 작금의 학교폭력과 같은 피해사례가 종종 접수된다고 하더군요.

 개인적으로 학교폭력 해결의 열쇠는 의무적인(한편으론 강제적인) 공교육 실시에서 유발되는 폐쇄성과 지나친 입시열기로 인한 아이들의 정신적인 집단 스트레스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완화하고 해소시키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 얄팍한 진단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가해학생의 처벌강화나 요즘 애들이 문제가 있어 그렇다는 책임전가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상황이 개선이 되지 않을 거라 확신합니다.




2. 셧다운제



(사진출처: 서울경제신문)


"정부는 우리가 달러를 벌어오고, 일자리를 창출하되,
자기네 애들한테는 게임을 안 시키기를 바란다."


- 어느 게임업계 관계자의 한탄 -



 결국 여성가족부의 강력한 추진 아래 셧다운제가 실시되고 말았지요. 그리고 모두가 예상했던 것처럼 실용성 없는 제재로 심한 빈축만 사고 있는 형편입니다. 아이들은 부모님 주민번호를 이용해 온라인 게임을 즐기거나, 그냥 콘솔게임을 하는 것으로 제재를 피하고, 오히려 모 게임의 경우에는 미성년자만 차단할 방법이 없다고 아예 서버 자체를 셧다운제 시간 동안 차단해버려 애꿎은 성인 게이머까지 피해를 받기도 했지요. 시행 전부터 이렇게 될 것이 너무 뻔하게 보였기 때문에 반전이 없는 게 반전일 지경입니다(...)

 셧다운제는 여러 방면에서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은 제재입니다. 우선 첫 번째로는 제도가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은 분명하지 않은 반면에 침해하는 법익은 지대하다는 것. 의학적인 연구결과에 의하면 아직까지 게임중독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임중독자의 뇌가 중독 증세를 나타내는 건 사실이지만, 어떻게 해야 그런 결과가 초래되는지에 대해선 모른다는 것이지요.

 즉, 담배를 태우면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누구나 니코틴에 의해 중독현상이 일어나는 것과는 다르게 게임중독은 똑같이 게임을 해도 중독이 일어나는 사람이 있고,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개개인 각자의 정신적인 부분에 좌우되는 면이 크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약물 등에 의한 화학적인 중독이 아니라 정신적인 내부 작용으로 초래되는 중독은 그 인과관계의 성립이 명확하지도 않은 데다 게임뿐만이 아니라 도박, 스포츠, 쇼핑 등 다른 수많은 요인에 의해서도 중독현상이 초래될 수가 있는데, 유독 게임분야에만 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엄연히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며, 부당한 자유권의 침해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는 이중제재의 문제. 도박중독의 경우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도박이 성공했을 때의 적은 노력으로 막대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에 따라 뇌내화학물질이 분비돼 중독현상에 빠지기 쉽다는 인과관계가 비교적 명확하게 입증되어 있기 때문에 제재의 근거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광범위하게 사행적인 놀이문화에 대해 법적으로 금지를 가하고 있으며, 당연히 사행성 있는 게임에도 규제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도박게임은 중독문제로 청소년은 물론 때로는 성인들도 함부로 접근을 하지 못하게 여러 방면으로 규제가 이뤄지고 있는데, 다시 게임전체가 중독성이 있다는 불확실한 이유로 셧다운제를 실시하는 건 정당한 이유 없는 이중제재에 해당하는 것으로 옳지 않다고 판단되는군요.

 마지막으로는 제도의 실효성 문제입니다. 실질적으로 셧다운제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없음은 이미 앞에서 언급을 했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셧다운제가 청소년들의 게임접근을 막는 실질적인 장벽은 되지 못한다고 해도 무언가를 사회적으로 금지한다고 내거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 경고의 의미가 되어 무의식적으로 게임에 대한 접근을 막아 조금이라도 중독을 예방할 수 있는 효과가 있을 거라 하시더군요. 말하자면 논밭의 새들을 쫓는 허수아비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할까요. 허나 사람은 새가 아니며, 새조차 허수아비 정도는 겁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실질효가 없는 제재는 청소년들에게 어릴 적부터 “법을 어겨도 별일 없구나”, “법이라는 게 쓸모가 없을 수 있구나”와 같은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할 가능성이 큽니다. 셧다운제에 의한 미미한 심리적인 억제효과와 청소년들이 가지게 될 법에 대한 불신의 폐해를 이익형량으로 저울 지었을 때 어느 쪽이 무거울지는 명확하다고 보이는군요. 이런 허점투성이 제도로 함부로 법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것은 미래에 사회의 주역이 될 아이들의 법질서 준수의식을 떨어뜨려 장차 막대한 사회적 비용의 손실을 초래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 학부모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여가부의 게임에 대한 적대감은 무슨 합당한 근거가 있다기보다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일반적으로 반응하는 무분별한 포비아에 가깝습니다. 열악한 시절을 보내느라 게임을 거의 접해본 일이 없는 기성세대에게 게임에 대한 정당한 판단을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죠. 오해하시는 분이 있을까 첨언하자면, 저는 가난한 우리나라를 일으켜 세운 부모님 세대를 존경합니다. 허나 그것과 게임 및 게임 산업 발전에 대한 올바른 평가능력은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는 일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게임에 대한 폐해와 게임중독현상을 무시 내지 경시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게임을 비롯해 오락/대중문화 전반에 몰이해를 아낌없이 드러내는 시대착오적인 여가부의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으며, 자칫 해당산업까지 말아먹을 위험성마저 있다고 보이네요. 여가부의 구성원에 대대적인 변화를 주거나, 아니면 여가부 자체를 해체시키고 좀 더 해당 분야에 집적도가 높은 인원들로 구성된 새부서를 만들어 그 기능을 대체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과장 섞어 게임에 대한 여가부의 인식은 이런 수준에 불과하다]





1. 사운드 호라이즌(Sound Horizon)




"무너질 것만 같던 나를 언제나 지탱해주었던 건
당신이 마지막으로 남겨준 이름도 없는 노래(詩)이어라."


- Sound Horizon, Chronicle 2nd, 辿りつく詩 中 -



 고백하자면 전 음악적 소양이 없거나 거의 없습니다. 중세시대의 민초들이 장엄한 성당건물을 보며 마냥 크고 화려하면 다 좋은 줄 알았던 것처럼 저 또한 선율이 웅장하거나 가사가 멋들어지면 그냥 좋은 음악인 줄 압니다. 그런 저에게 환상악단(幻想樂團)을 자칭하며 빵빵한 오케스트라와 앨범 자체의 모든 곡이 개별적인, 혹은 하나의 유기적인 ‘이야기’로 이어지는 ‘사운드 호라이즌(Sound Horizon, 이하 사호)’의 음악은 그야말로 취향에 직격이었네요.

 특히 2011년은 사호의 내한공연도 성사가 되는 등 점차 우리나라에서도 그 입지가 점점 확장되고 있는 것 같아 일개 팬으로서는 꽤나 기쁘기도 합니다. 아쉽게도 전 제반사정으로 내한공연에 참가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저 같은 게 걱정할 것도 없이 성황을 이루었다는 후기가 많이 보여 마음이 놓였네요.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호도 메이저 데뷔를 하면서 꽤나 음악활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곡의 구성이 더욱 풍부해진 것은 물론 여러 객원가수, 전문성우를 기용해 환상악단이라는 명칭에 걸맞은 앨범을 내고 공연을 보여주고 있더군요.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갈수록 정교해지는 악곡구성에 비해 점점 매너리즘 성향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라 해야 할까요. 사실 사호가 메이저 데뷔 이후에 낸 주요 앨범들은 인디시절이나 데뷔 초창기에 인기 있었던 앨범의 주요 소재들을 재구성한 부분이 많습니다.

 가령 『Moira』의 경우는 서양 중세시절을 배경으로 운명에 저항하고 또 그에 스러지는 사람들의 비극과 희망을 그린 『Chronicle 2nd』의 호메로스 서사시(+그리스 신화) 판의 재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Chronicle 2nd』에서 드러나는 알베르쥬 ↔ 게펜바우어, 로자 여왕 ↔ 킬데베르트 6세, 뇌신(雷神) ↔ 사신(邪神), 루키아 ↔ 노아, 하얀 까마귀 ↔ 서의 마수 등의 이원론적인 대립구조가 『Moira』에서는 그대로 레온티우스 ↔ 스콜피우스, 헬레네스 ↔ 바르바로이, 레온티우스 ↔ 아메티스토스, 타나토스 ↔ 모이라의 도식으로 이어집니다.




Chronicle 2nd. 크로니카로 상징화되는 운명에 저항하는 용기 있는 자들의 이야기.
서양 중세의 역사를 기반으로 재창조된 레보 씨 특유의 세계관이 인상적.





운명의 여신, Moira에게 농락 당하는 영웅들의 이야기.
그리스 신화, 호메로스 서사시의 소재를 배경으로 웅장한 무대가 펼쳐짐.



 그밖에도 운명을 지배하는 크로니카와 Moira의 닮은꼴이라거나, 역사 밖에 존재하는 ‘책’에서 알 수 있는 메타픽션적인 요소에서도 강한 연관성을 느낄 수 있죠. (물론 레보 씨는 꼭 이 두 작품만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사호 앨범에서 메타픽션적인 요소를 잊지 않고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최근 『Märchen』에서도 『Elysion』과의 상당한 유사성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Märchen』 경우에는 단순히 등장인물이나 용어상의 연계뿐만이 아니라 곡의 컨셉 면에서도 약간 과장되게 말하자면 전의 앨범(Elysion)의 리뉴얼이라 불러도 크게 잘못된 표현은 아닐 듯싶더군요.




망령 같은 가면 쓴 남자가 불행한 소녀들을 이끌고
낙원이라 불리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이야기.





마찬가지로 죽음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남자가 기독교 7대 죄악과
관련이 있는 소녀들의 복수를 돕는다는 기괴한 이야기.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림형제의 동화 등 독일민담이 주요 소재.



 물론 그렇다고 안이하게 예전 소재들을 재탕한다며 레보 씨를 공격하고자 이런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에요. 사실 메이저 데뷔한 창작자가 아마추어 시절이나 메이저 초창기 시절에 다루었던 소재를 다시 사용하는 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창작능력이 부족해 ‘소재의 고갈’이라는 위기에 직면하여 어쩔 수 없이 그런 행위를 저지르는 창작자도 있으나, 대부분은 미숙한 시절에 불완전 연소시킨 소재를 완전 연소시키기 위해 재시도를 하는 것이며, 레보 씨의 경우도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호의 데뷔 이후 근래의 작품들에서 느끼는 진정한 아쉬움은 가사의 ‘이야기’에서 레보 씨 특유의 색채가 많이 빠졌다고 느껴지는 점입니다. 분명 이야기의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각종 역사·신화·설화적인 소재의 차용방식은 전에 비해 훨씬 그 속이 깊어지고 세련되어 졌으나, 그런 만큼 원본소재의 굴레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기도 합니다. 데뷔 전의 사호음악이 역사·신화 등을 소재로 한 판타지 소설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사호음악은 그냥 역사소설이나 민담모음집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물론 완성도는 단연 지금의 곡들이 높지만, 개인적으로는 예전의 앨범들이 좀 더 취향에 맞았네요.

 그래서 사호의 차기작품에 귀추가 주목되더군요. 이제 인디시절의 굵직한 앨범들의 소재는 한 번씩 대대적으로 재구성을 시도했기 때문에 - 굳이 치자면 『Lost』는 살짝 불완전연소한 감이 있지만 - 다음 신작은 아마 전의 앨범들과 연관성이 미미한 이야기가 될 공산이 큰데, 여기서 레보 씨가 매너리즘에 빠져 소재를 반복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로망의 날개를 활짝 펼치기 전에 미련이 남은 소재들을 완전 연소시킨 것뿐인지 판가름이 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러쿵저러쿵 주제넘은 훈수를 늘어놓았지만, 사실 사호의 음악들은 작년의 제가 멘탈붕괴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일등공신이었어요. 아름답고 화려한 선율은 물론이거니와 주로 비극의 형태를 띤 가사 속에서 시련을 겪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위안을 많이 얻었습니다. 이런 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카타르시스 효과인가 하는 거창한 생각도 들었네요. 아무쪼록 앞으로도 사호의 음악이 계속 건승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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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쓸데없이 길기만 한 데다 찌질(...)거리기까지 한
구제불능의 졸문을 읽어주신 인내심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이 싸늘한 변방까지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좋은 일이 가득하시기를 바라며,
또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바톤 넘겨주신 스완 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드리며 이만 글을 닫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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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range.net BlogIcon 밋첼™ 2012.01.12 08:4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키워드가... 저와는 많이 다르군요^^;;;
    너무도 개인적인 사건들이 많았던 한해 였기에, 전 그런 부분들을 생각하는데...
    안단테님은 사회적인 키워드 부터, 이슈들... ㅋ

    사람들에게 행복한 일보단 나쁜 일들에 대한 인상이 더 깊겠죠?
    올 한해는 따뜻하고 행복한 일들의 안단테님만의 키워드가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1.12 23:17 신고 address edit/delete

      밋첼 님의 한 해 키워드는 어떠셨을지 궁금하네요!
      으, 밋첼 님이 바쁘지 않으셨다면 바톤을 보내드렸을 텐데 아쉬워요ㅠ_ㅠ

      확실히 나쁜 일이 좋은 일보다 인상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허나 어르신들에게 시간이 더 많이 흐르면 오히려 행복한 추억만 기억에 남는다는 말씀을 듣고 희망이 생기더군요. 밋첼 님도 멋진 키워드가 그득하신 2012년 되시길 바래요~>.<

  2. Favicon of http://heben.tistory.com BlogIcon 아우프헤벤 2012.01.12 10:5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허허.. 나비효과라고 해서 과거 웹툰의 나비효과를 떠올려 버렸네요.(...) 물론 그 쪽도 나름대로 의미심장한 웹툰이었긴 합니다만. 여하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건에 대해서 얘기를 꺼낼 때만 해도 상황이 오늘 날에 이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겠네요. 짤방으로 들어간 이미지가 저렇게 적절하다니... 어쩌면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일들이, 사실은 대단히 작고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덴마는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중인 그것이군요. 화수가 굉장히 많아서 1화부터 정주행하기에는 부담이 느껴질 정도로 꽤 오래 연재중인 작품으로 압니다. 별점이 여타 웹툰들에 비해 살짝 낮은 감이 있던데, 본문에서 언급하신 마초 판타지라는 장르 특성 때문인가 보네요. 남자의 순정을 몰라보다닛!!(...)

    오오.. 인용문이 뇌신 시리즈(?) 중 한 곡이군요. 사실 학교 폭력이 오늘 날처럼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게 매스컴의 발달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과거나 지금이나 있어왔지만, 과거에는 그것이 밖으로 드러날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 했던 게 아닐까 합니다. 그 문제야 어찌 되었건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결하느냐겠죠. 말씀대로 현 세대만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일본에서 들어 온 좋지 않은 문화라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해결도 되지 않을 겁니다.

    셧다운제는 인터넷에서도 포풍같이 까이던 그것이네요.(...) 아무래도 셧다운제가 나타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세대 차이겠죠. 말씀처럼 부모님 세대에서는 게임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많으니까요. 한 편으로는 새로이 법적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는데, 해당 안건에 대한 분석이 저렇게 얕을 수가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법에 대해서는 무지한 입장이라 법안을 만들어서 제도를 시행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는지는 잘 모르지만, 얼마가 되었건 제 눈에는 낭비로밖에 보이지가 않네요.

    마지막 키워드는 사운드 호라이즌이 차지했네요. 개인적으로도 몽환적이면서 웅장한 선율, 서사시적이면서 독특한 가사가 마음에 들어서 사호의 노래는 고등학교 무렵부터 즐겨 듣고 있습니다. 나름 오래 듣기는 했지만 라이트하게 노래만 즐기는 편이다보니 각 앨범, 트랙 간의 연관성이나 설정 등을 알아보기 시작한지는 얼마 안 되었네요. 여하튼 노래를 들을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ㅎㅎ 그러고보면 Revo씨의 가사는 대부분 비극적인 결말이 많은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희극을 조금 더 선호하는 편이라서 다소 아쉽지만, 노래 분위기 상으로는 역시 비극적인 느낌이 더 어울리는 것 같네요. 메르헨의 전주곡 격인 앨범까지는 들어봤는데, 7번째 지평선 메르헨은 아직 못 들어봤네요. 조만간 들어보기로 하고... 앞으로도 사호 특유의 인상적인 노래들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上)편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지나가는 바톤이라도 열심히 작성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러고보니 오늘 오후에 시험인데 잠깐 들른다는 것이 꽤 오래 지체해버렸네요. ㅎㅎ 얼른 가서 마저 정리하고 시험보러 가야겠습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1.12 23:37 신고 address edit/delete

      아, 나비효과라는 웹툰도 누군가 어떤 소재와 관련해서 링크해주신다거나 했을 때 드문드문 본 기억이 나네요. 꽤 센스가 좋고 인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었어요. 우리 다섯살훈이 전시장님은... 심지어 반대편 사람들에게 진정한 개혁가라는 빈정거림까지 듣고 있는 형편이니, 정말 세상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이 나더군요^^;;

      덴마는 마초성에 대한 여성독자들의 거부감도 그렇지만, 당시 양영순 씨가 예고도 없이 '플루타크 영웅전'을 연중한 것이랑 만화가 올라오는 시간이 다소 늦는 것 때문에 별점이 낮아지게 되었네요. 물론 지금은 다들 익숙해져 "덴마가 일찍 올라오면 꼭 지구 어딘가에 재난이 터지더라. 그러니 늦게 올라오는 게 좋아!"라며 농담까지 던지고 있는 형편이지만요^^;;

      저도 학교폭력이 매스컴과 인터넷이 발달한 것으로 더 문제점이 되고 있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이면 그냥 묻혔을 사건들도 이제는 숨기기가 힘들어지니... 허나 그와 별도로 실질적인 폭력의 정도나 빈도 또한 늘어났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무튼 어느 쪽이든 간에 말씀처럼 문제의 원인을 찾아 근본적인 해결을 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셧다운제는 좀 많이 까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셧다운제 자체의 폐해도 물론이거니와 실은 셧다운제에 포함된 게임중독에 대한 정당한 논의까지 여가부의 셧다운제가 워낙 밉상을 보여 제대로 꺼내기 힘들어졌다는 점까지 더해 여러모로 악영향만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헌법소원 제기되었다고 들었는데, 부디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헤벤 님도 사호를 좋아하셨군요! 이런 반가울 때가~ 저도 마음 편하게 듣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열렬하게 찾아보는 편은 아니에요. 뭐랄까, 생각의 여지가 있는 게 즐겁기 때문에 지나치게 배경지식에 함몰되면 역으로 듣는 맛이 줄어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실제로 레보 씨 또한 사람들이 여러 해석으로 즐길 수 있도록 일부러 애매하게 가사를 쓰기도 한다고...) 저도 전반적으로는 등장인물들이 행복해지는 이야기가 좋지만, 결말이 나쁘지 않다는 전제 하에 그 과정이 힘든 여정으로 가득 차 있는 이야기도 좋네요^^

      아니, 그나저나 귀중한 시험 당일에 이렇게 글을 읽어주시고 덧글도 달아주시다니 어떻게 감사함을 표해야... 오늘 시험 잘 보셨기를 바라며, 아직 남은 시험이 있다면 그 또한 좋은 결과 내시길 바래요~!

  3.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2.01.12 12:5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1. 정말이지 2011년에도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지요. 때로는 정말로 영화를 능가하는 현실이 펼쳐지기도 했구요;

    역시나 한치 앞도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든 것이 세상사인 것 같습니다.

    일견 상호 간에 어떠한 연관 관계도 없어보이던 요소들이 상호 작용하여,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불러오고 말았으니까요.


    생각해보면, 데스노트나 코드기어스의 주인공처럼 매우 우수한 인재들도 항상 사건의 흐름을 통제하지는 못할뿐더러 자신이 만들어나갔던 세계선의 궤적 끝에 기다리고 있을 운명의 반동 역시 예측하지 못했는데.....

    2011년 국내 정계를 휩쓴 사건 역시 비슷한 측면이 있지 않나 싶어요.

    아무리 우수한 사람이라도, 어떠한 부메랑 효과에 실신하게 될지 모르니 항상 겸손과 중도의 감각을 잃지 않는 미덕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2. 오옹.. 『덴마』라....

    이러한 작품이 있었는데 무려 2년 동안이나 모르고 지내왔다니..... 시간이 날 때마다 보러가야겠어요! ㅎ.ㅎ)b

    SF 장르의 콘텐츠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상당히 끌리는 웹툰일뿐더러 감성을 자극하는 드라마적요소가 작품 전반을 수놓고 있다하니 더욱 시선이 가네요.



    3. 학교 폭력 부분은.... 분명 일본의 이지메 문화가 건너와서 변형된 것이라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수준을 넘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왕따 문화로 발전(!;)했다고 하니 왠지 씁쓸한 느낌이예요;

    이런 부분에서는 청출어람이 필요가 없는데...(....)

    분명 약하기 때문에 공격을 받는 것이고, 이는 자연의 지극히 당연한 섭리이므로 공격당하지 않도록 강해지면 된다....라는 논리가 맞을 수도 있겠지만, 그 것이 여의치 않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학생들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보니...

    강해져서 벗어나면 된다라는 선택지가 현재로써는 가장 확실한 해법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 이것은 상당히 잔인한 사회의 논리가 아닌가 ’라는 생각에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사냥감이 되지 않기 위해 맹수의 무리에 들어가야만 하는 현실을 거쳐온 사람들이 성장하여 사회를 구성해나가는 것이라면, 그 국가의 미래상이란 꼭 좋은 것만은 아닐 것 같거든요;



    4. 셧다운제는 특히 게임업계 종사자분들이 분노하시는 정책이지요.

    일반 학부모 시점에서 볼 때에야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인지 모르겠으나, 그 대척점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특히 게임과 관련된 직업으로 생계에 영향을 받으실 수 있는 분들에게는 상당히 끔찍한 제도임에 틀림이 없어보입니다.

    그래서인지 블로그스피어 등 여러 매체를 통하여 다각도의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어쨌든 사회 구성원의 상당수가 게임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못한 관계로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힘들었던 것 같네요.


    물론 고등학교까지의 입시 전쟁을 거쳐 수능 시험날 단 하루 동안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운명이 결정되다시피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보니 공부에 저해가 될만한 요소들이야말로 청소년의 미래를 망치는 惡이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안단테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게임 이외에도 중독 요소를 지닌 유희 문화는 여러가지가 존재하는데 유독 게임에 철퇴가 가감 없이 휘둘러지는 것은 『게임은 안좋은 것이다』 라는 사회통념에 기반한 횡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설령 게임에 그러한 위험요소가 있어서 청소년으로 하여금 접근을 제한할 필요성과 당위성이 입증된다 하더라도, 이를 셧다운제 같은 극단적인 수단으로 일방적인 차단을 가하기보다는 여러 단계에 걸쳐 게임 과몰입 방지를 위한 체계적인 학습 과정을 별도로 마련함으로써 어째서 게임에만 몰입하면 안되는지,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자신을 제어하는 방법을 알려주어야하지 않나 싶어요. (일단 게임 기획 및 설계 단계에서 유저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플레이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중독 요소들을 집어넣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이러한 중독성의 위험을 회피할 방법은 알려주어야 할 듯)

    이 방식대로라면 청소년들이 게임에 대한 접근하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틀어막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으나 그 이외의 것들을 스스로 통제하는 방법이나 필요성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한채로 졸업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물론 이러한 우려에 대하여 그 것은 극히 개인 단위의 문제일 뿐으로, 술이든 담배이든 낚시이든 너무 빠져들어 자신을 망치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망할 사람이다라는 논리가 제시되며 또한 이 것이 당연하게 여겨집니다만....

    현재를 즐기며 살아가는 것에 좀더 적극적인 현재 10대 청소년층의 성향을 생각해 볼 때 모든 것을 개인의 자제력 문제에 전가하며 방관하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는 미래 사회에 독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망상이 스치고 지나가는...(끌려간다)




    5. 마지막은 사운드 호라이즌!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대중가요도 괜찮지만, 때로는 웅장한 서사시를 담은 노래 역시 깊은 감동을 선사하지요.
    설령 해당 음악 분야에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요즘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등 여러 분야에서 오케스트라와 교향곡이 사용되고 있는만큼... 어느사이엔가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더랍니다.
    이번에 소개해 주신 Chronicle 2nd와 Moira 역시 노래가 품고 있는 서사시적 요소 때문인지 관심이 가네요! +_+)!!


    여러모로 알찬 키워드 선정 릴레이글 잘 읽었습니다~ :D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1.13 00:00 신고 address edit/delete

      1. 해마다 시끄럽긴 하지만, 정말 2011년도 스펙터클한 한 해였던 것 같아요^^;; 어디서 사건이 터지고 또 그게 어떻게 문제가 되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정확히 할 수 없으니... 작품 속의 대단한 주인공들도 세계나 운명을 상대로 하는 싸움에서 왜 고전을 면치 못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은 심정이 드네요. 저 또한 이럴 때일수록 흔들리지 않는 자기 자신을 굳건히 가지고 중용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해요!

      2. 소디언 님도 SF물 참 좋아하신다고 하셨죠^^ 덴마의 설정 자체는 크게 독창적이거나 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그걸 활용하는 작가가 베테랑이라 그런지 내용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소디언 님께도 즐거운 감상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3. 분명 일본의 조직적인 학교폭력의 영향을 만화나 영화 등을 통해 어느 정도 받은 면도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역시 학교폭력의 본질은 인간이 집단을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스트레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해요. 확실히 괴롭힘을 받는 아이가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대부분의 가해자는 힘이 셀 뿐만 아니라 무리를 이루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대항하기 참 힘든 일이지요. 우리나라도 빨리 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되어 피해를 줄였으면 좋겠어요.

      4. 저도 무조건 게임에 대한 차단보다는 욕구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힘을 써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이에요. 우리나라의 기성세대는 그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게임을 무작정 악으로 규정하며 그것만 없애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하는 게 너무 답답하더군요. 실제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방안에 숨는 아이들이 그나마 접할 수 있는 게 게임일 뿐이지, 게임만이 아이들을 방안에 붙잡아 두는 게 아닌데도 말이에요. 셧다운제에 관련한 논의로 살펴보니 솔직히 현재의 여가부 구성원들에게는 제대로 된 이해를 구하기는 힘들 것 같더군요. 그러니 위에서 말한 것처럼 빨리 인원이나 조직을 교체시켜 정말 현실적으로 게임중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동시에 게임산업 발전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부서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5. 요즘은 정말 음악이 음악 자체뿐만이 아니라 다방면의 여러 컨텐츠에 결합이 되기 때문에 한층 더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 같아요. 사호의 경우도 자체 앨범뿐만이 아니라 몇 번 게임OP이나 애니의 이미지 앨범 제작에 참여한 일이 있네요^^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4. Favicon of http://yuuren.tistory.com BlogIcon 유우렌 2012.01.12 23:0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나비효과... 슈타인즈게이트에서도 자주 등장하지요.. ㅋㅋ 그러고보니 지금와서 생각하니까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반대 여파가 일을 여기까지 끌고 왔군요. ㄷㄷ 과연 이후에도 효과가 지속될지 눈여겨 봐야겠습니다. 이제 대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말이죠. ㅎㅎ

    덴마로군요. 저도 양영순 작가의 작품은 플루타크 영웅전을 본 적 있습니다. 네이버 웹툰에 올라오던 것을 봤었는데, 말씀해주신 것처럼 연재중단이 되어서 매우 슬펐어요. ㅠㅠ 그리고 차기작인 덴마는... 언제 한번 정주행할까 하고 살펴봤더니, 연재 진도가 엄청나게 나가있어서 손을 못 댔지요... 지금은 더욱 불어났겠군요... 물론 편당 분량이 적은 편이라 금방 보겠지만 한번 시기를 놓치니 다시 잡기 어려운 작품 중 하나였어요... ㅋ

    요즘 학교폭력 엄청나죠... 오늘은 고전영화로 파리대왕을 감상했는데, 정말 최근의 학교폭력이 이에 맞먹을 정도... 아니, 더 하겠네요... 특히나 더 심각한 것은, 교사들이 자기 지위에 연연하느라 문제점을 등한시한다는 것이죠. 제가 사교육을 좋게 보는 편은 아니지만, 폭력문제가 이리 심해서야 공교육을 유지하느니 홈스쿨링으로 교육제도의 전환이 일어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구요... 우리나라 교육사업이 어디까지 막장으로 가나 제 눈으로 지켜볼겁니다. ㅋㅋ

    셧다운제... 네, 저도 할 말이 그닥 없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헌법을 배우면서 의회의 입법능력에 상당히 호의적인 태도를 갖고있었는데, 이번 계기로 인해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죠... 좀 과장되게 말해서 행복추구권 침해에요 이건! ㅠㅠ 실용성은 말할 것도 없고... 취지만 좋고 아무런 대책이 없는 제도라서 너무 실망스럽네요.

    사호 노래가 좋다는 건 일찍부터 알고있었지요. 헌데 원체 특정 그룹에 깊이 빠지는 체질이 아니라서 많은 작품을 접해보지도 못하고 고작 몇 곡만 소장 중입니다... 사호 음악은 제 취향에도 잘 맞는지라, 이번에 단테님께서 언급해주신 작품들을 찾아서 들어봐야겠어요~ 원래 이런 데서 정보를 겟하는 것이지요! 하핫


    마지막으로... 제가 아무렇게나 툭 던지고 간 바통을 이렇게 성심성의껏 작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벼우면서도 읽는 재미가 있고, 개인적인 관심사 및 최근의 이슈들까지 적절히 배합된 글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키워드들이 서로 섞여있어서 독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글! 저는 너무 일관되게 범주화해서 지루한 글을 써버렸지만요. ㅠㅠ

    그렇지 않아도 요즘 읽을거리가 없어서 목말라하던 참에 재밌는 글 발행해주셔서 흥미롭게 읽었답니다. ㅎㅎ 바통 잘 이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이후에도 재밌는 바통이 제게 오거나, 행여 제가 새로 만들게 된다면 종종 들고 오겠습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1.13 00:16 신고 address edit/delete

      역시 진리의 슈타인즈 게이트! ...아마 전시장에게 D-Mail을 사용하게 한다면 분명 과거의 자신을 말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정말 선거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아 갈수록 흥미진진해지는 것 같아요. 부디 이 혼란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앗, 스완 님도 전부터 양 작가의 작품에 관심이 많으셨군요~ 확실히 뭔가 시기를 놓치면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는 작품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지금 그런 식으로 미뤄두고 있는 게 몇 개^^;; 말씀처럼 홧수는 많아도 한 화당 분량이 적으니 내키실 때 팍 정주행해버리세요~!

      진짜 악질적인 노하우가 축적되는 탓인지 요즘 학교폭력은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교묘해지는 것 같아요. 저 역시 논란이 될까봐 본문에는 적지 않았지만, 공교육의 완전자율화도 생각해 볼 만한 화두인 것 같더군요. 실제로 전 학교보다는 학원에서 의욕 있는 친구들과 함께 실력 있는 강사 아래서 나름 좋은 관계를 맺으며 즐겁게 공부했기 때문에 더 그런 마음이 드네요. ...물론 세상에는 저처럼 학원에 마음대로 갈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는 아이들도 많으니 함부로 일반화할 수는 없는 이야기지만요.

      셧다운제는 참... 헌법소원 제기되었다고 들었는데,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온다면 대충 어떤 내용일지 짐작 가는 부분이 있지만, 만의 하나 끔찍하게도 합헌이 나온다면 무슨 논리로 셧다운제를 긍정할 수 있을지 진짜 상상도 가지 않아요. 말씀처럼 사실 게임중독을 걱정하는 취지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그에 대한 대책이 적의감에 가득 찬 포비아에 근거하고 있는지라 오히려 올바른 논의를 망치고 있는 면이 커 한숨만 푹푹 나오네요ㅠ_ㅠ

      스완 님도 사호를 들어보셨군요~ 저도 사호를 제외하면 이 정도로 지속적으로 파고 있는 그룹이나 가수는 거의 없네요^^;; 저 역시 대개는 좋은 음악 몇 곡만 소장하고 있는 형편~ 스완 님도 괜찮은 그룹이나 곡이 있으면 종종 소개 부탁드려요~


      무슨 말씀을... 본문에서도 적었지만, 저야말로 넘겨주신 바톤에 즐겁게 글을 작성했네요^^ 오히려 전 너무 개인적인 성향에 치우친 제 글보다 스완 님의 중립적인 키워드 소개가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무튼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그저 기쁠 따름이네요! 다음에도 좋은 바톤이 있으면 던져주세요~ 저도 재미있는 바톤을 받으면 스완 님께 Pass 드릴게요^^

  5. 하얀바람. 2012.01.13 01:2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학교폭력과 셧다운제는 참 문제였죠. 학교폭력은 개인적으로 가해자에게 오는 처벌이 극히 약해서 오는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선생님한테 맞는거 보다 동급생한테 맞는게 몇배는 더 무서우니까요-_-;; 모국가에서는 폭력을 행사할 경우 최소 정학 최대 퇴학이다보니 애들이 주춤거렸었죠.

    물론 배째고 싸운놈도 두 놈 있었지만 한녀석은 20일 정학 그리고 나머지 한녀석은 퇴학당하자 소문이 수군수군. 좋은쪽으로 컬쳐쇼크를 느꼈었습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1.13 23:28 신고 address edit/delete

      정말 한 해를 뜨겁게 달군 이슈 중 하나였죠. 학교폭력의 경우는 물론 가해학생에 대한 효과적인 제재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어디까지나 처벌은 학교폭력을 '억제'하는 역할일 뿐으로 처벌이 약해서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건 아닌 만큼 보다 근원적인 예방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러분이 기억하는 2011년은 어떻습니까?
: 개개인이 기억하는 지난 2011년 한 해의 키워드를 약 10여 가지로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 위하여 제작된 바통입니다. 본 바통은 아는 지인 세 분께 전달해주시면 됩니다. 주제 및 작성 형식은 장황한 글, 시, 포토로그 등등 자유입니다. 2011년, 여러분이 기억하는 소중한 기억을 들려주세요!


바통의 출발지 : 로로레나 님
바통의 이동 경로 : 로로레나 > Swan > 안단테 [누적 작성]
현재 바통의 도착지 : 푸른 종이 울리는 밤
다음 바통의 도착지 : 잡식성 냥씨 님, 비욘더 님, 소감공 님






스완 님께서 감사하게도 이런 재미있는 바톤을 넘겨주셨는데,
워낙 제 글 솜씨가 부족하다 보니 처참할 정도로 지루한 내용이 되어버리고 말았네요.
이게 바로 시스템이 좋아도 사람이 그르면 안 된다는 전형적인 예(...)

일단 다른 분들과 되도록 키워드가 겹치지 않게 노력하였으며, 한 해의 굵직한 사건이라기보다는
제 개인적인 심상에 관련된 선택을 한 점,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START~!





■■■




『안단테가 기억하는 2011년 Keywords 上』





10. 무기력증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by 키에르케고르


 사실 키에르케고르는 지극히 기독교적인 죄와 구원의 관점에서 위와 같은 말을 했다고 하지만, 문구 자체가 워낙 인상적이라 인용하게 되었습니다. 어째 (순서상) 첫 번째 화두부터 음울하고 칙칙한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 면목이 없긴 하지만 2년이 넘도록 이어진 제 우울증(?) 증세를 빼놓고는 2011년을 논할 수가 없으니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마 제가 느낀 무기력증은 키에르케고르가 지적하는 신앙적인 자아상실은 당연히 아니고, 셀레히만의 실험에서 밝혀진 ‘학습된 무력감’에 가깝지 않나 싶더군요. 회피 불가능한 전기충격에 익숙해진 개들은 나중에 도망칠 수 있는 조건을 주어도 가만히 전기충격을 감수하고만 있는 것처럼 저 또한 가정사의 불행에 더해 시험실패와 연이은 공모전 낙선 등으로 한 때 의욕을 잃은 적이 있었네요. 작년 6개월 동안 제 블로그에 포스팅이 올라오지 않은 이유는 그 때문.



[도망칠 수 없는 운명(전기충격)에 완전히 의지를 상실하는 개]



 물론 지금은 재활훈련(?)을 거쳐 많이 좋아졌습니다. 전처럼 3~4시간만 숙면을 취해도 하루 종일 멀쩡하던 체력은 사라졌지만, 최소한 아침에는 일어나게 되었네요. 전 극도로 스트레스를 느끼면 그냥 잠이 오는 체질이라(현실도피) 요 2년간은 정말 수면욕에 지배당하는 나날이었어요ㅠ_ㅠ (요즘에는 단지 나이가 들어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조금씩이나마 회복되어 가고 있는 비결(?)은 그저 무조건 눈앞의 일에만 집중하는 것.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하고 초조해 할수록 더욱 정신만 피폐해지는 것 같더군요. 그냥 케세라세라 정신으로 당면한 일처리에 몰두하는 게 무력감에 벗어나는 제일의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미래를 사는 게 아니라 현재를 사는 것이니 말이에요.



음, 그러니까 윗글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가 아니라,




...이런 내용?





9. 법의 정신




“가장 넓은 뜻에서 법이란 사물의 본성에서 유래하는 필연적인 관계를 말한다. 이 뜻에서는 모든 존재가 그 법을 가진다. 신(神)은 신의 법을 가지고, 물질계는 물질계의 법을 가지며, 인간보다 뛰어난 지적존재(天使)도 그 법을 가지고, 짐승은 짐승의 법을 가지며, 인간은 인간의 법을 가진다.”

-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동서문화사, 25면. -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낭비하는 와중에 그나마 유익했던 몇 가지 일 중 하나를 꼽자면 우선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완독한 일이군요. 과연 현대의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정체(政體) 구성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저서답게 참고할 내용이 많았습니다만… 그렇게 생각한 건 1,2부의 정치체제와 권력분립의 원리 등에 대해 논한 부분까지고 3부 이후부터는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직행하고 말았습니다(...)

 가령 3부에서는 각 지역이나 기후에 따른 사회문화와 법의 관련성에 대해 논하고 있는데, 이게 완전히 편견과 오류로 점철된 소위 ‘야메’ 과학수준(;;;) “더운 나라의 민족은 노인처럼 소심하다. 추운 나라의 민족은 젊은이 같이 용감하다.”라든가, “북방 민족의 거대한 몸과 거칠고 큰 섬유는 더운 지방 민족의 섬세한 섬유보다 상해를 입기 어렵다는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거기서는 영혼이 괴로움에 대해 보다 둔감하다.” 따위의 내용이 곳곳에 등장하는데, 빈말로도 그럴 듯하다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엉터리 내용들입니다.

 물론 그건 시대적 한계일 뿐으로 몽테스키외 본인의 허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종차별주의나 골상학의 폐해에서 나타날 만한 위험이 내재되어 있긴 하지만, 법과 제도의 성립을 귀납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으로 밝히려 한 과학적인 태도 자체는 상당히 높게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분명 우리 시대의 과학지식도 먼 미래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처구니없다며 웃음거리가 될 공산이 큰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 우리의 시절이 있기에 미래의 시절도 있을 것처럼 몽테스키외의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의 시절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법의 정신』을 읽으시는 분들께는 딱 2부까지만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8. 대학 상업화



"대학을 기업과 단순히 비교하긴 어렵다 해도 대학 사회에
경계를 넘어서는 과도한 ‘주인의식’이 퍼져 있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냉철히 말하면 학생은 학교가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를 받는 대상이다."


- 박용성 前이사장의 중앙일보 칼럼 中 -
(이건 딱히 마음에 들어 인용한 문구가 아님)



제가 다니던 모교도 두산그룹에 인수되더니
뭔가 건물을 많이 짓고 점점 시설이 화려해지는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로스쿨 대비로 지은 법학관이 위용을 자랑했으나,
지금은 명실상부 정문의 R&D센터가 최고를 뽐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학교 내부에 여러 프렌차이즈 가게들이 생겼네요.



[크고 아름다운(...) R&D센터]







[뚜레쥬르, 한솥도시락, 24시간 맥도날드 ETC]



 이밖에도 베트남 쌀국수집이라든지, 모닝글로리라든지, 편의점이 세 곳 이상이나 들어선다든지 등등 교내 편의시설이 부쩍 늘었습니다. 솔직히 가까이서 다 해결할 수 있는 건 좋은 것 같은데, 나중에 등록금이 높아진다거나 싼값에 끼니를 제공하는 학관식당 등이 문을 닫는다거나 하여 모든 게 학생 부담으로 돌아오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면이 있긴 하네요. 뭐, 저야 이미 상관없는 몸이긴 하지만(...) 사실 대학 상업화 현상에 대해선 뭐가 옳고 그른지 아는 바가 없네요. 이런 쪽으로 잘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문제점(혹은 이점) 지적 부탁드려요.




7. 페르소나4 (Persona4)



"Now I face out, I hold out. I reach out to the truth of my life!"

- Persona4 OST Reach Out To The Truth 中 -



주말마다 찔끔찔금 플레이하다 해를 넘겨서까지(...) 간신히 클리어에 성공한 게임.
한 작은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신비한 능력을 지닌 소년소녀들이 합심하여
해결한다는 이야기로 무기력증으로 인한 저의 멘탈붕괴를 막아준 귀중한 작품 중에 하나이기도 하네요.



시골 황태자(...)인 작품의 주인공 '나루카미 유우'. (애니판 이름)
참고로 전 '미나토 유우지'라는 이름으로 플레이 했었네요.


몇 번이나 목숨의 위기를 넘기고 추리는 빗나가며 뿌연 안개 속에 길을 헤매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내는 진실에 도달하는 주인공 일행의 모습에 얼마나 위안을 받았는지…

특히 전투시마다 흘러나오는 OST "Reach Out To The Truth"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으며, 곡의 가사 자체도 작품 내용과 잘 어울려 좋았습니다.




[희망적이면서도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결말]





6. 신주신위신악(神咒神威神楽, 카지리카무이카구라)



"반했다구, 코가의 공주님! 난 당신을 위해 죽겠다!"




"우리의 황혼이 그토록 죄가 깊었어?"



 시나리오 작가인 마사다 타카시 씨는 전작인 『Dies irae ~ Acta est Fabula』를 해보지 않아도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고 했지만,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새빨간 거짓말(...) 아직 중반 정도까지 진행 중이지만, 전작을 모르면 절반도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더군요. 물론 전작을 해본 사람에게는 대사나 상황 하나하나가 심금을 울리는 맛이 있으니 만족스럽지만요-_-b

 작품의 배경은 전작 『Dies irae』의 메인헤로인 마리루트의 IF 세계관. 마리가 신좌(神座)에 앉아 제5천 황혼의 여신으로 자애롭게 세상을 감싸 안던 중 깨우지 말아야 할 존재를 깨우게 됩니다. 그로 인해 새로이 출현한 파순(波旬, 부처를 유혹하다 실패하는 마왕)이라는 패도신(覇道神)에게 전작의 등장인물들이 전부 패배한 후 다시 재구축된 신세계에서 새로운 주인공들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게 본작의 내용입니다.



"아아, 가렵다. 아아, 역겹다. 어째서 네놈들은 날 유일하게 놔두지 않는 거냐."
자기애(自己愛). 자기애. 대욕계천구도(大欲界天狗道), 여기에 완성.
역대의 신좌에 있어 최강최악의 이치가 드디어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전작에서 신좌에 앉아 세상을 감싸는 여신이 된 마리.
파순에 의해 '완전소멸'



[간신히 살아남아 겨우 존재만 유지하고 있는 후지이 렌(전작 주인공) 일행]


  
  
  
  

[그들은 구세계의 영웅이었으나, 신세계에서는 악신취급을 받음]




진정한 악신이라 할 수 있는 파순의 세계에서 태어난 신작의 주인공 일행.
이들이 천마(天魔)라 불리는 전작 주인공을 퇴치하러 가는 게 작품의 주내용.







.........
......
...

시나리오 작가는 S인 게 틀림없습니다!

그게 좋지만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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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2.01.12 02:0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1.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생각이 너무 앞서가면 바로 앞에 놓인 일조차 제대로 몰입하지 못하고 오히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있지요.

    반대로, 지난 날의 일에 연연하여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풍경조차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마인드 역시 마찬가지일테구요. (문득 슈타인즈게이트 애니메이션 오프닝 곡 가사 중 한 구절이 생각나네요. ‘과거에 사로잡혀 미래를 한탄한다’는...)

    어떻게본다면 단편적인 시각이겠지만, 현재의 삶에 나름의 만족을 느끼며 버티어나가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


    저 역시 안단테님처럼 인간 관계라든가 추진하던 계획의 실패 등으로 상심하면 블로그를 비롯한 인터넷 활동을 중단하기도 한답니다.

    아무래도 마음이 편해야 블로깅이든 채팅이든 리뷰든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어쩌면 조만간 또 잠수를 타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안단테님의 블로그를 알게 되면서 언제 찾아가든 마음의 휴식처가 될 수 있는 장소를 하나 더 발견한 느낌이어서 다행이예요! +_+)

    세월이 흐르고 인간의 마음을 비롯한 모든 것이 변해가지만.... 안단테님은 여러가지 거짓된 정보나 선동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유지하실 수 있는 분이라 생각하니까요.



    2. 저 시대에 지역의 특수성에 기인한 사회 문화와 법 제도의 차이를 고찰하다니... 몽테스키외가 활동한 시점을 감안하면 그도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였음에 틀림없어보입니다.

    비록 논리상에 약간의 위험성이 내포되어있다고는 하지만, 안단테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어떠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곧 그 사회에 통용되는 관념을 체화하였음을 의미하기도 하니까요.

    그러한 사고의 틀을 깬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뿐더러, 상당한 리스크마저 감수해야하기도 하구요.... 'ㅂ');



    3. 대학의 상업화라..... 은연중 뇌리에 『대학이란 지식을 탐구하는 상아탑』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켜온지라 약간은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이 것이 시대가 변화해가는 흐름이아닌가 싶네요.

    그래도 왠지 사람들간의 관계가 점점 더 계산적으로 변해간다는 느낌이 들어서 아쉽기도 합니다.


    4. 페르소나4는 쿠지카와 리세가 진리입니다! (우득)


    5. 신주신위신락. 다소 생소한 명칭이면서도 무려 디에스 이레의 후속작이라고하니 바로 관심이 생기네요!;

    그나저나 신세계라고하면 왠지 꿈과 희망에 가득찬 해피 엔딩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듯 싶은데.... 더욱 흉흉하게 변한 저 분위기라니.....(....;)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1.12 03:35 신고 address edit/delete

      앗, 하편 작성할 때 마침 같은 시간대에 계셨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정말 너무 바로 앞에만 집착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멀리만 바라보는 것도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그 중용을 택하면 딱 좋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 그래서 그런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처럼 바로 닥친 일에 집중하다 보면 대개는 잘 풀려간다는 생각이 요즘에 들기 시작하네요.

      온라인 활동은 마음이 편해야 할 수 있다는 말씀에 완전 공감! 전뇌세계로 현실도피하는 경우도 없는 건 아니지만, 역시 기분 좋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접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나저나 잠수 타게 되실지도 모른다니 그런 슬픈 말씀을ㅠ_ㅠ
      부디 잘 해결하시어 앞으로도 계속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으, 높게 사주신 것은 정말 감사하지만, 저도 참 실수가 많은 우자인지라 부끄러울 따름이네요. 그저 기대에 1%라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히려 저야말로 매번 소디언 님 블로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니 감사드려요^^

      2. 말씀처럼 실제로도 당대에 무신론적이라며 교회 등에게 많은 공격을 받은 모양이더군요. 그럼에도 꺾이지 않고 연구를 계속해 자신의 저서와 생각을 알리는 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니 여러모로 본 받을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3. 특히 우리나라의 대학은 좀 더 좋은 자리에 취직하기 위한 일종의 자격증이나 경력 같은 개념이 강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지식에 대한 탐구나 배움에 대한 열정을 찾아보기 힘들어 아쉽더군요. 정말 교육장사라는 이미지가 점점 강해지는 것 같아 씁쓸해요. ...근데 이렇게 말하는 저도 별로 알찬 대학생활을 보낸 것은 아니라 얼굴이 화끈화끈(...)

      4. 리세치 귀엽지요^^
      ...허나 나나코를 진정한 헤로인으로 꼽는 위험한(?) 신사분들도 상당수(...)

      5. 소디언 님도 디에스 이레를 하셨군요! 그렇다면 추천! 작품 자체는 꽤 괜찮은 내용인데, 진짜 전작을 모르면 제대로 감동을 느끼기 힘든 전개를 하고 있어 처음 접하시는 분들께는 권하기가 어렵더군요^^;;

      ...확실히 신세계라고 하면 좋은 어감이지만, 파순에 의해 창조된 우주는 극도의 자기애만이 중시되는 세계라 모두가 자신만을 최고로 생각해 진정한 의미의 우정이나 사랑도 없는 세상이라 하더군요.

      종교는 물론 심지어 영혼조차 없어진 세상이라 한 번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는 모양... 작중에서도 전작에서 나름 끔찍한 감옥이었던 메르쿠리우스의 영겁회귀 세계가 파순의 세계에 비하면 무르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네요(...)

  2. Favicon of http://sarange.net BlogIcon 밋첼™ 2012.01.12 08:4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제게는 어렵고 먼 이야기군요^^
    전 아직 어려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프답니다ㅎㅎㅎ
    안단테님께 의욕을 팍팍!! 채워드릴 사건들이 올해는 빵빵 터졌으면 하네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1.12 22:05 신고 address edit/delete

      읏, 밋첼 님께서 어리다고 겸손해하시면 저야말로
      부끄러워 어디 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 되고 마네요^^;;

      응원 감사합니다! 밋첼 님의 일년도 행복한 일이 가득 있으셨으면 좋겠네요~
      물론 이 일년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3. Favicon of http://heben.tistory.com BlogIcon 아우프헤벤 2012.01.12 10:0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트랙백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보다... 트랙백 제목에 (上)이라는 글자가 있어서 순간 눈을 의심했네요. 지나가는 바톤마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열심히 작성해주신다는 느낌이 제목에서부터 느껴졌습니다.

    10번... -번호를 역순으로 하신 이유는 짐작이 가지 않지만- 제가 안단테님 블로그에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 안단테님은 활동이 없는 상태셨죠. 힘든 일이 많이 있었지만 모두 이겨내시고 블로그에도 와주셔서 다행입니다. 말씀대로 힘이 들 때는 아무 생각없이 눈 앞의 일에 집중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아요. 통계적으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을 희생하기보다는, 지금 하는 일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안단테님도 지금 하시는 일에 집중하시면서, 거기서 작은 행복을 찾으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법의 정신에 대한 글은 작년 언젠가 읽은 기억이 있네요. 서양사 수업을 들으면서 계몽주의 사상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몽테스키외의 이야기도 잠깐 들을 수 있었습니다. 교양 수준 수업이라 자세하게 다뤄지진 않았지만, 안단테님의 글 덕분에 일종의 예습(?) 효과를 얻을 수 있었네요. ㅎㅎ

    제가 다니는 학교는 평소부터 건물을 많이 짓더군요.(...) 최근에는 송도에 새로 캠퍼스를 짓는다고 해서 학생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그래서 학교 측에서 마지못해서 체육관과 중앙도서관을 리모델링 해줬네요. 대학의 상업화에 어떤 장단점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로 인해 힘없는 학생들이 피해받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페르소나4는 작년에 TVA로 했던 그것이려나요..? 아니, 2쿨이면 지금도 하고있겠군요. 해야 할 일은 많은데 해야 할 미연시도 많고... 아니, 할 일이 없는 것보단 행복한 거겠죠?(...)

    디에즈 아이레는 저번에 추천해주셔서 잠시 찾아봤는데 지뢰작이라는 소리를 조금 듣더군요. 그래도 완전판은 상당한 수작이라는 의견들이 많아서 시간 되는대로 완전판을 해볼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본문을 보니 신주신위신락이라는 작품을 하려면 디에즈 아이레를 먼저 클리어해야 될 것 같네요.. 종교나 신화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하는 느낌은 없습니다만, 소설이나 시나리오 등에서 사용되는 것은 좋아하는 편입니다. 어릴 때부터 종교적인 분위기에 익숙지 않았기 때문에 이국적인 느낌을 받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 act est fabula 2012.01.12 19:32 신고 address edit/delete

      디에스이레는 카스미루트는 지뢰작 맞습니다
      그래서 카스미루트랑 미완전 마리만 잇는 초기작이 지뢰작이라고 불리는 이유고여
      디에스이레는 보통 카스미 : 지뢰
      케이 : 평작
      마리 레아 : 명작 (드라마 cd and 후일담 포함)
      이정도입니다
      그리고 신신신은 오마케를 적용안하면 완전 클리어 전까지 디에스이레측 즉 천마 및 류메이 , 영창등이 노이즈로 들려서 플레이하기 힘드실겁니다 많이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1.12 22:35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야말로 트랙백 허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헤벤 님도 팍팍 걸어주세요~!

      글은 쓰다 보니까 너무 길어져서 읽어주시는 분들께 폐가 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염치 없이 그냥 올려버렸어요(...) 역순의 이유는 10위부터 1위까지 중요도를 표시해보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딱히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사안들이 아닌지라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도 드네요^^;;

      미래를 원하는 대로 꾸며가는 것도 행복한 일 중 하나가 되겠지만, 정말 이 순간을 얼마나 충실하게 즐길 수 있는가에도 행복의 조건이 달려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나중을 위한 극기를 강조하는 면이 있어서 그런지 요즘 들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어요. 헤벤 님도 미래는 물론이거니와 지금 이 순간에도 행복을 잡으실 수 있기를 기원드려요!

      예전에 썼던 법의 정신 리뷰... 많이 난잡한 글이었는데, 끝까지 봐주셔서 참 감사했어요. 수업을 들으시는데 도움이 되신 면이 있다니 저도 글을 올린 보람이 있어 기쁘네요! 혹시라도 잘못된 정보나 해석이 있었다면 너그럽게 봐주세요^^;; (물론 지적도 환영!)

      대학 상업화 관련은 저도 아는 바가 적기 때문에 함부로 이야기를 꺼내기 조심스럽지만, 말씀처럼 대학 본연의 일과는 거리가 먼 장삿속 때문에 애꿎은 학생들이 피해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더욱이 우리나라는 취직을 위한 생존전략으로 학생들이 대학을 어쩔 수 없이 나오도록 사회 시스템이 강제하고 있는 면도 있기 때문에 차후 그런 부조리한 면을 바꾸는 것과는 별도로 실질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적은 학생들의 사정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저희 학교 전 이사장의 말에 많은 부분에서 이의를 가지고 있어요.)

      예, 애니메이션도 작년부터 방영을 시작했지요~ 물론 아무래도 게임의 독특한 구성을 그대로 옮기는 건 힘들기에 좀 유치하거나 개연성이 떨어져 보이는 점도 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기대했던 것 이상 원작 재현도가 높아 마음에 들더군요^^ (저도 할 일이 없는 것보다는 할 일이 많은 게 행복하다는 말씀에 동감!)

      Dies Irae에 상반된 평가가 있는 건 찾아보신 것처럼 초반에 미완성작을 떡하니 내버린 탓^^;; 그것도 완전판에 비해 1/4밖에 안 되는(히로인 루트 달랑 하나. 그것도 배드엔드필;;;) 분량에 불과해 엄청나게 비난을 받았지요. 발매 전부터 G유우스케 씨의 수려한 작화와 다소 과장된 선전이 덧붙여져 Fate / Stay Night의 아성을 뛰어넘을 작품으로 기대가 모인 감이 크기 때문에 더 원성이 높았던 걸로 기억해요. 물론 그 이후로 2년에 걸쳐 추가루트를 발표하고 예전에 게임을 구입했던 분들은 홈페이지에서 무료다운(2기가 정도) 받을 수 있게 조치한 덕분에 재평가가 되어 2009년의 인기투표에서는 9위를 차지하기도 했지만요.

      저도 종교나 신화적인 소재가 픽션에 쓰이는 것은 꽤 좋아하는 편이에요. 재미있는 이야기나 발상도 많고, 무엇보다 해당 작품을 풍부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네요. 제가 싫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픽션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의 언행^^;;

  4. Favicon of http://yuuren.tistory.com BlogIcon 유우렌 2012.01.12 22:1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우와.... 정말 어떤 퀄리티의 글이 나올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무려 상, 하편으로 나뉘어진 포스트가 등장했네요!

    첫 번째 키워드에서 두 번째의 만화 컷에 많이 공감합니다. 확실히 시작이 반이라고 일단 뭐든지 잡고 하다보면 길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단테님도 케세라세라를 언급해주셨는데(이런 작은 용어 하나에도 단테님의 지식이 얼마나 방대한지 느낄 수가 있...) 저 역시 그와 비슷한! Let it be의 자세로 살아가고 있지요. ㅎㅎ 물론 이것이 너무 심화되면 그저 방종에 지나지 않겠지만, 역시 도가 철학에서 말하는대로 세상일은 뭐든지 알아서 흘러가는 듯 합니다. 단, 그 한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은 우리의 몫이겠지요. ^^

    으와와 법철학에까지 손을 대시는군요! 저희 아버지도 법대를 나오셔서 철학으로 박사를 하신지라 그야말로 법+철학의 대가....라고나 할까, 아버지와 철학을 주제로 대화하다보면 그날은 멘탈붕괴가 일어납니다... 하여간... 몽테스키외는 권력분립을 제창한 법학자로서만 알고있었을 뿐,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소개받는군요~

    대학 상업화는 역시 최근 우리 사회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는 소재죠. 역사적으로 교육기관은 대학에서부터 그 유래가 이어져 온 것이며, 이후에 초,중등 교육기관이 파생된 것인데, 지금은 대학이 과연 진정으로 학문을 전수하는 목적으로 설립된 것인가 회의가 들기까지 하죠. 지극히 비판적으로 보면, 대학이 비싼 돈 내고 그저 개인의 스펙을 쌓는 것에 그치는 요소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대학 내 편의시설들이 생기는 것은 좋지만 학문에 열을 올려야 할 캠퍼스가 상업의 중심지로 변모할 수도 있을 우려를 새삼 하게 되네요.

    페르소나4군요... 저는 5화 정도였나까지 보다가 하차했던 걸로 생각합니다. 뭐랄까, 개인적으로 내용이 고전적인 성향을 띠는 것 같아서 약간 지루하게 느껴졌다랄까요... 그래도 항상 고전작일 수록 내포하는 주제는 이상적이고 올바른 경우가 많으니 작품 자체로서는 딱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크... 요즘 세계고전문학을 영화로 만든 DVD세트를 아버지가 사오셔서... 하루에 두 편씩 보느라 힘들군요.. ㅠ_ㅠ 총 120편인데 2월 지나기 전까지 다 보라고 하셔서... 엉엉

    6번 키워드는 뭔가 재밌어 보이는 스토리네요! 차기작이 전작 설정을 이어간다는 측면도 그렇고, 주인공 일행의 결말이 꼭 긍정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참신함이 돋보이는군요. 특히 구세계의 영웅이 악신으로 변질된 위 일러가 엄청 끌리는....! 설마 나도 S인건가!!

    으흠... 올려주신 음악 들으며 잘 읽었습니다~ 그럼 이제 저는 후편으로 슝~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1.12 23:05 신고 address edit/delete

      좋은 바톤을 던져주신 덕분에 재미있게 글을 쓸 수가 있었어요!
      물론 읽어주시는 분도 즐거우실지는 심히 걱정되지만요^^;;

      예, 저도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시작하기 전에 심사숙고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대개는 사람이 참 약한 존재이다 보니 리스크를 핑계로 도망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아무튼 젊음의 특권은 실수가 용납되는 것이라고도 하니... 일단은 Let it be~!

      아뇨아뇨, 그저 저서를 잠깐 들추어 보았을 뿐으로 감히 법철학에 손을 대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수준에 불과해요^^;; 전부터 살짝 언급이 있으셨지만, 역시 스완 님의 춘부장께서는 굉장히 학식 높고 사려가 깊으신 분이셨군요! 아버지와 대화가 많고 사이가 화목하신 것 같아 참 보기 좋고 부럽네요^^

      확실히 우리나라 대학은 배움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차후 취직활동을 위한 경력과 인맥을 쌓는 곳으로 전락한 듯한 느낌이 들어 아쉽기도 해요. 한 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지방의 어떤 대학들은 진짜 상업적인 목적만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고 말이에요. 분명 저희 학교 전이사장 말마따나 학생들이나 교수들이 대학운영에 밝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면 우리들이 아무 걱정없이 학문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신뢰를 보여주었으면 한다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그러네요···.

      확실히 게임은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것이 주가 되기 때문에 다소 스토리적인 부분이 약해도 상대적으로 괜찮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역시 영상만으로 즐겨야 한다면 부족함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아요. 뭐랄까, 저는 사실 캐릭터들이 하나 같이 전부 사랑스러워 좋아하는 빠심도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가는 불가능할지도^^;; ...그나저나 세계고전문학 영화를 120편이나 보셔야 한다니! 정말 힘든 여정이겠지만, 전부 완수하고 나면 상당히 교양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힘내서 좋은 감상되시길 응원드려요~!

      다소 허세끼가 있는 전기물을 싫어하지 않으신다면 전작과 신작 전부 추천드려요! 사실 마사다 씨(라이터)의 글과 설정은 좀 난잡해 몰입감이 떨어지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확실하게 분위기를 고조시켜주고, 무엇보다 BGM과 일러스트가 모든 단점을 커버할 정도로 괜찮다고 생각해요^^

      ...근데 스완 님도 S셨군요! 하지만 전 M입니다! (뭐래;;;)

  5. Favicon of http://lchocobo.egloos.com BlogIcon lchocobo 2012.02.15 23:2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대학에 R&D 센터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대학은 R만 하는 장소가 아니었나...아무튼 전 2011년이.....어 어느새 다 갔죠!? 라는 느낌?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2.19 17:49 신고 address edit/delete

      으읏, 그런 정곡을 찌르는 말씀을~ (퍽)
      진짜 갈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아서 무서워요ㅠ_ㅠ

  6. Favicon of http://joshua-akiba.tistory.com BlogIcon 조슈아 2012.08.05 17:2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神咒神威神楽이 저런 게임이었다니...
    감사합니다.

    이로써 저는 올해를 무사히 보낼 수 있겠네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8.05 23:42 신고 address edit/delete

      앗, 플레이하실 생각이시군요!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작품이긴 하지만, 위에서도 적은 것처럼 전작 '디에스 이레'를 해보지 않으면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점이 참 아쉬운 작품이에요^^;;

    • Favicon of http://joshua-akiba.tistory.com BlogIcon 조슈아 2012.08.06 01:08 신고 address edit/delete

      당연히 전작도 해야지요! 으헤헤...
















얼마 전에 13화로 절묘한 타이밍에 1기가 완결이 되었지요.
벌써부터 디렉터스컷(?)이 추가될 블루레이와 4월에 시작될 2기가 기다려지네요.

개인적으로 13화 파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라이더와 웨이버의 대화였지만,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으라면 역시 캐스터와 류노스케의 종교관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아쉽게도 애니메이션은 다소 삭제된 부분이 있어 이번에도 원작소설을
잘 반영한 드라마CD 일부의 번역과 그에 대한 단상을 적어보았습니다.





■■■




■ 본문에 앞서 간단한 배경 및 인물설명





성배전쟁(聖杯戦争):
만능의 소원장치(願望機)인 성배를 쟁탈하기 위해 일본 후유키시에서 마술사들이 벌이는 사투.
7명의 마술사들이 성배의 힘을 이용해 신화/역사상의 영웅들을 불러내 각각의 서번트(servant)로 삼아
서로 간 혈투를 벌여 최후에 살아남는 1팀만이 성배를 차지할 수 있는 일종의 배틀로얄.

각각의 영웅들은 세이버, 아처, 랜서, 라이더, 캐스터, 버서커, 어새신의 7개 클래스로
임의로 나누어 소환되며 소환된 지역과 그 시대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성배로부터 부여 받고
약점 등을 들키지 않기 위해 보통은 클래스명으로만 서로를 부름.

생전의 일화가 전설이 되어 세계를 지키는 수호자의 좌에 오른 영령을 소환하여
일개 패밀리어로 부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후유키시 성배의 만능성이 증명된다고 함.




우류 류노스케(雨生龍之介):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연쇄살인마. 우연히 마술사의 가계인 것이 계기가 되어
캐스터를 소환해 마스터가 됨. 정작 본인은 성배전쟁에 참가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음.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서 본인은 살인에 아무런 죄책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매우 밝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항상 새로운 자극을 원하고 있음.




캐스터(Caster):
정체는 현세에 소환된 질 드 레. 일명 푸른 수염.
성녀 잔 다르크가 조국의 배신으로 화형 당해 죽음에도 방치한
신(神)을 저주하며 생전과 마찬가지로 악마소환과 유아살해에 진력함.
정신 오염된 그와 제대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건 마스터인 류노스케 정도.








[Sound Drama Fate/Zero Vol.3 「캐스터와 류노스케」]




류노스케: 이게 무슨 일이야! 끔찍해… 너무하다고……!
인육의자도, 내장 태피스트리도, 해골 테이블도! 이, 이, 이, 모두……!


캐스터: 이 파괴의 흔적으로 보아선 사용된 건 대성보구(對城寶具) 아니면 대군보구(對軍寶具).
정면으로 대결하기엔 매우 위험한 적이라는 것…
오늘 먹잇감을 사로잡는데 다소 애를 먹은 건 오히려 불행 중 다행이었네요.

류노스케: 심혈을 다해 우리들이 쌓아올린 아트가…
너무 잔혹해! 이런 게, 이, 이게 인간이 할 짓이냐!!

캐스터: 아아아, 류노스케, 당신은 인간성이라는 것의 안에 잠자고 있는 진정한 추악함에 대해 아직 이해가 부족했군요. 그렇다면 비탄에 젖는 것도 당연하지요…… 이봐요, 류노스케. 진정한 미(美)와 조화(調和)를 이해할 수 있는 건 극히 소수의 인간뿐이랍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속물들은 예술의 성성(聖性)에 닿는 순간 질투에 눈이 먼 짐승으로 변하지요. 놈들에게 있어 미(美)라 함은 파괴의 대상에 지나지 않아요.

캐스터: 우리들의 창조는 항상 우매한 파괴와 상극한다는 시련에 처해있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조물에 과잉적인 애착심을 품는 건 금물이에요.
한 번 형태를 이룬 것은 언젠가 부서질 운명에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들 창조자는 창작하는 과정에 기쁨을 느껴야 하는 법이에요.

류노스케: …부서진 만큼 다시 만들면 된다는 얘기야?

캐스터: 바로 그래요! 언제나 그렇지만 류노스케, 그 단적인 이해야말로 당신의 미덕이랍니다.

류노스케: 우리들, 너무 즐긴 탓에--- 혹시 천벌을 받은 걸까?

캐스터: 류노스케!

류노스케: 나, 나리……?

캐스터: 이것만큼은 말해두겠어요, 류노스케.
…신(神)은 결코 인간을 벌하지 않습니다. 단지 희롱할 뿐이에요.

캐스터: 일찍이 나는 어림잡아 지상에 구현할 수 있는 모든 악행과 신성모독을 계속해왔습니다. 류노스케, 당신이 행한 사악(邪惡)은 내 행위에 비하자면 어린애 흉내나 마찬가지에요. 허나 아무리 죽이고 더럽혀도 이 몸에 신벌(神罰)이 내려지는 일 없이--- 정신을 차려보니 사악에 대한 탐구는 8년에 다다르도록 계속 방치되고, 간과되었습니다. 천이 넘는 유아들의 한탄과 비명은 모두 덧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지요!

류노스케: …….

캐스터: 결국 최후에 날 멸한 것은 신이 아니라 나와 같은 인간들의 욕망이었습니다. 교회와 국왕이 단죄의 명목으로 날 묶어 처형한 것은 결국 내 수중에 있던 부와 영토를 빼앗기 위한 간계에 지나지 않았던 겁니다… 내 배덕을 저지한 것은 심판과는 한참 거리가 먼 그저 약탈! 내가 저지른 죄보다도 한층 더 무시무시한 사람의 악덕이었단 말이지요!

류노스케: 하지만, 나리… 그래도 신은 있는 거지?

캐스터: 어째서, 류노스케? 신앙도 없고 기적도 모르는 당신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요?

류노스케: 그게 말이지, 이 세상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허나 뒤지면 뒤질수록 기상천외한 것들이 엄청 많다고.

류노스케: 옛날부터 생각했어. 이렇게나 도처에 유쾌한 일들이 숨어있는 세상이란 것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고 말이야. 조금만 시점을 바꾸면 눈치 챌 수 있는, 지혜를 쓰면 찾아낼 수 있는 복선이 만재하고 있어. 아예 본격적으로 즐기려고 생각하면 이 세상 자체보다 더 뛰어난 엔터테인먼트는 달리 없다고. 분명 누군가 쓰고 있는 거야. 각본을 말이야. 등장인물 50억의 대하소설을 쓰고 있는 엔터테이너가 있다고. …그런 녀석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이건 뭐 신이라고밖에 부를 도리가 없지.

캐스터: 그럼 류노스케, 과연 신은 인간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류노스케: 그거야 뭐, 홀딱 반했지.

류노스케: 이 세상의 시나리오를 몇 천 년인지 몇 만 년인지 쭉 쉬지 않고 계속 쓰고 있다면 그야 사랑이 없다면 해먹지 못하지 않겠어? 응. 분명 신이 나서 쓰고 있다고 생각해.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즐기면서 말이야. 사랑이나 용기 같은 것에 감동하기도 하고, 비극에는 뚝뚝 눈물을 흘리며, 그러면서도 공포나 절망에는 ‘하아하아’ 눈을 부라리며 흥분하는 거지.

류노스케: 신은 용기나 희망 같은 인생찬가를 정말 좋아하기도 하고,
그와 동일하게 피바람이나 비명이나 절망 역시 정말 좋아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생물의 뱃속이 그렇게 선명한 색을 띨 리가 없어.

류노스케: 그러니 나리, 분명 이 세상은 신의 사랑으로 넘쳐나고 있다니까.





캐스터: 이 시대는 더 이상 백성들에게 신앙심은 없고,
위정자 역시 신의(神意)를 버린 말세의 땅이라 생각했거늘…
설마 이렇게나 새롭고 싱싱한 신앙이 싹을 트고 있을 줄이야.

캐스터: 감복했습니다, 류노스케. 나의 마스터여.

류노스케: 아니, 뭘. 쑥스럽게.

캐스터: 허나--- 당신의 종교관에 의하면 제가 행한 신에 대한 모독도 일개 촌극에 지나지 않는 걸까요.

류노스케: 아니지, 망가지는 역도 제대로 살려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이 일류 엔터테이너 아니겠어.
나리의 용서 없는 추궁에는 분명 신도 엄청 기뻐하며 얼간이 짓으로 회답할 거라 생각하는데 말이야.

캐스터: 신에 대한 모독도! 예찬도! 당신에게 있어선 다를 바 없이 동일한 숭배라고 하시는 겐가!
아아, 류노스케. 정말이지 당신이란 사람은 심오한 철학을 가지고 계시는군!
모든 이를 널리 애완인형 취급하는 신조차 그 자신 역시 광대란 말이지…
과연! 그렇다면 그 악랄한 취향도 납득이 가는구나!

캐스터: 좋습니다. 그렇다면 한층 더 선명한 절망과 통곡으로 신의 정원을 물들여주지 않겠습니까.
오락의 정수를 알고 있는 건 신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천상의 연출가에게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류노스케: 뭔가 또 굉장한 걸 하는 거지!? 나리!

캐스터: 예, 기대를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류노스케.

캐스터: 그렇게 정했다면, 전야제를 해야겠군요.
류노스케, 오늘의 연회는 특별히 유별난 취향으로 즐기도록 하죠.

류노스케: 완전 찬성이야! 불타버린 그 어느 작품보다도 COOL한 걸 준비할게, 나!




■■■




 전 절대신의 실재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자에 가깝기는 하지만, 그리스 신화나 기독교 신화 등에서 말하는 인격적인 신(神)은 부존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정말로 세상만물을 자아내는 제1원인이나 그에 준하는 초월적인 존재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인간과 닮아 주로 인간만을 우대한다는 기이한 목적을 가지고 세상만물을 창조했다고 보기에는 이 우주는 너무 넓고 그에 비해 지구와 인간은 너무나도 보잘것없으니까요.

 이런 발상의 뒷받침이 되는 현대의 천문학적 지식은 한참 기독교가 득세했을 때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나 코페르니쿠스 등의 연구가 왜 교회에게 심한 배척을 받아야 했는지 아주 명쾌하게 납득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하지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게 되는 순간 절대신이 인간을 위한다는 증명 하나가 무참히 사라지는 셈이니까요. (참고로 지동설에 대한 비난은 가톨릭교회뿐만이 아니라 신교도의 루터와 칼뱅 역시 성서에 위배된다며 심하게 공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 설령 세상이 정말 의지를 가진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것이며, 그 엄청난 행위를 행할 만한 절대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가정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 절대적인 누군가는 인간의 도덕과 벼룩의 생존(뜀뛰기능력)을 동일하게 평가하는 가이아 여신과 같은 좀 더 중립적이고 무형적인 힘에 가까울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오컴의 면도날이 당연히 만능은 아니겠지만, 기독교 등에서 말하는 인간을 위하는 절대자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려면 이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정말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덧붙이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런 기만을 행하느니 그냥 신은 없다고 말하는 편이 훨씬 논리적으로 합당하기 때문이지요.

 허나 만보 정도 양보를 해서 종교인들이 말하는 인격적인 절대자가 있다는 전제를 인정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또 하나의 커다란 문제가 생기는데, 그건 다름 아닌 위의 캐스터 콤비가 논하는 것과 같이 세상에 만연해 있는 악(惡)의 존재입니다. 제가 굳이 예를 들 것도 없이 다들 보고 느끼시는 것처럼 우리네 세상은 참으로 불완전하고 부조리하고 불행하기 짝이 없지요.

 아니, 절대자가 그토록 선하시고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하시는데, 왜 굳이 이런 세상과 이런 피조물을 만들어야 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선 저뿐만이 아니라 이미 몇 천 년 전부터 많은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고심을 한 모양이더군요.

 가령 플라톤은 우리가 사는 현상계는 이데아의 불완전한 복제품일 뿐이라 보았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념적으로 완벽한 신은 불완전한 이쪽 세상을 인식조차 할 수도 없고 관여하지도 않으려고 하니 우리가 지성을 갈고닦아 신에 가깝게 다가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상을 폈습니다. 반면에 그노시스주의자들은 과감하게 우리가 사는 이 감각계는 불완전한 신(데미우르고스=야훼)에게 창조되었기에 필연적으로 악성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더군요. 물론 후자의 입장은 결국에는 성경을 상징적인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지금의 기독교의 바탕을 이루는 이들이 득세하는 시절에 이단으로 몰려 처형당하기까지 했지만요.

 점차 그리스도교가 세를 넓혀 지성 내지 이성보다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신앙의 시대에는 마침내 세상의 악성에 대해선 단순히 “신께서 시련을 주시는 것”이라거나, “신의 뜻은 오묘해 일개 미천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그것을 파악할 수 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려지게 됩니다. 실제로 그 영향권 하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스피노자의 경우에는 선과 악은 그저 시대에 따른 인간의 상대적인 관점에 불과한 것으로 종국적으로 세상만물의 모든 것은 신의 뜻 아래 최고선으로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라이프니치는 단자론과 예정조화설로 비슷한 관념을 긍정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선악(善惡)이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상대적인 것이라는 발상에는 꽤 공감하는 편이지만, 그것을 통해 안일하게 절대자의 의지를 긍정하는 모순적인 태도에는 도저히 찬성할 수가 없더군요. 언뜻 듣기에는 어느 정도 그럴 듯하고, 여러 신성모독적인(?) 생각에서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게는 결국 눈앞의 문제에서 도피해 생각하는 걸 포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입니다. 그밖에도 세상의 악(惡)은 악이 아니라 단순히 불완전한 선(善)일 뿐이라는 한결 나아보이는 논리를 편 사람도 있었지만, 그것은 신이 악하지 않다는 변호는 될 수 있을지언정 완전한 신이 왜 불완전한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되지 않지요.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정녕 세상이 종교에서 말하는 인격적인 절대자가 지배하는 세상임에도 그가 제일로 우선하는 피조물이 부조리에 울부짖어야 하는 현실이 엄연히 존재한다면, 아쉽게도 전 위에서 류노스케가 논한 종교관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종교에 대해 비우호적이었던 버트런드 러셀 또한 세상에 악성이 만연하고 있는데도 전지전능한 초월자가 존재한다는 논리가 양립이 가능한 그럴 듯한 이유를 하나 찾자면 “절대자는 매우 변덕스럽고 잔혹한 신이어야 할 것이다”라며 신랄한 지적을 던진 바가 있더군요.

 만약 세상만물을 다스리는 절대자가 그처럼 잔인한 존재라면 그에게는 사람들이 경배하고 숭배하며 신앙심을 갖출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악신(惡神)’의 변덕이 두려워 지극히 계산적인 태도로 순종하고 받들어 줄 테니 제발 우리를 좋게 봐달라는 식으로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차원에서 가지는 Give&Take의 신앙이라면 또 모르겠지만요. 실제로 구약성서의 야훼는 본래 뿌리가 일개 약소민족의 부족신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런 원시신앙의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지요.

 정리하자면, 진정 유일신교에서 말하는 최고선이며 전지전능한 존재가 세상을 주관하고 있다면 애당초 세상에 악성이 만연하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결국 그런 절대자는 부존하는 것으로 볼 수가 있으며, 반대로 정녕 그가 실재하고 있는데도 세상이 이 모양이라면 그 절대자는 성격 참 고약한 것이기에 경건한 마음으로 숭배할 대상은 아니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이것을 단순히 “신의 시련”이라거나 “신의 오묘한 섭리”와 같은 도피적인 사고방식으로 납득을 한다면야 전 거기에 대해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말 그대로 맹신은 논증의 대상이 아니니 그걸 남에게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멋대로 신앙하건 말건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다만, 그런 도피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진정 자기 나름의 확고한 논리에 따라 신을 믿는 분이 계시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 듣고 싶기도 해요. 딱히 그런 분들의 생각을 비꼬기 위함이 아니라 저는 도저히 위와 같은 논리에 따라 신앙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기에 흔히 있는 자기 기만적인 맹신이 아니면서도 신앙을 가질 수 있는 분들의 사상은 어떨지 굉장히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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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yuuren.tistory.com BlogIcon 유우렌 2011.12.30 13:2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이번 글도 잘 읽었습니다. 헌데 저는 개인적으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종교나 정치 논쟁은 가급적 하지 않는 편이라서 이번에는 말을 좀 아끼도록 할게요 ^^;

    우선 절대자의 존부에 대해서는 저도 단테님과 같은 생각을 갖고있습니다. 가장 공감하는 부분이 '절대자가 창조한 세계의 완전성'이네요. 아인슈타인도 그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었죠. ─ "나는 자신의 피조물을 벌하는 창조주를 믿을 수 없다" ─ 인간의 불완전성을 기독교에서는 '원죄'로 해명한다지만, 그렇다면 그 원죄라는 것을 만든 주체는 절대자보다 위에 있는 다른 존재일까요? 만약 절대자가 원죄를 상정하고 자신의 피조물로 하여금 그에 대한 심판을 내린다면 이것은 위 캐스터의 말처럼 '신이 인간을 우롱한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한 선악의 상대성이라는 부분도 논리적으로 많은 허점이 존재합니다. 먼저 어떤 것이 선인가, 어떤 것이 악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 인격적 절대자가 있다면, 그는 절대자의 지위에서 물러나야 겠지요.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인간사회에 국한해서 봤을 때 그 역시 절대자와 마찬가지 아닌가 생각합니다. 초인은 그 스스로 사회의 도덕률을 정하고 자연법을 따르는 명확한 정의관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지금 우리가 논의중인 절대자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헌데 이러한 능력이 결핍된 존재가 절대자라 한다면, 단테님 말씀처럼 굳이 그를 숭배할 필요가 없겠지요.

    허나 성경에서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 악(惡)을 어느정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선악의 상대성을 주장하다니, 과연 그 사람은 성경을 제대로 읽었는지부터 의심스럽네요.

    사실 종교 가치관과 이데올로기 가치관의 대립은 똘레랑스(tolerance)의 자세로 서로 타협점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좋은 대처방법 같습니다. 우리나라 철학계의 태두이신 서울대 전 김태길 교수님께서도 어느 강연에 나와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 "내가 너희들이 교회 나가는 것에 대해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처럼, 너희도 내가 교회 나가지 않는 것에 참견마라" ─ 즉, 개인이 어떤 종교를 갖는지에는 아무도 왈가왈부 할 수 없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특히나 이러한 예의가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자신과 전혀 무관계한 사람에게 이따위 말을 전도하면서 타락할 대로 타락한 교회에 발붙이기를 강요하고 있으니...

    아무튼 절대자라는 것은, 과연 그가 존재한다면 로고스적 존재에 지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바, 단테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여기에 인격이 부여되고부터는 '선악'이라는 지겹고도 실익이 전혀 없는 소모적 논쟁으로 치닫을 테니까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1.01 01:20 신고 address edit/delete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이런 문제에 대해선 스완 님 말씀처럼 워낙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보니 조심스럽게 다루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허나 저는 요새 내놓은 몸이라(응?) 그냥 손가는 데로 쓰고 있으니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

      말씀처럼 그렇게 선하다는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악마나 죄의 존재를 상정한다는 것부터가 참 우스운 일이죠. 종교인들은 세상의 나쁜 것을 '악마'가 벌이는 일이라고 하거나, 신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기 때문에 악에 빠질 수도 있다고 논점을 회피하는데, 결국 그 악마는 그럼 누가 만들었으며, 어쨌든 최고선인 절대자가 만든 세상에 왜 '악' 자체가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설명이 안 된다고 봐요. 설령 신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그토록 존중해 '악에 빠질 자유'(...)를 주었다면 벌도 주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더군요.

      약간 우습게 말하자면 "YO~ Man~! 니한텐 나쁜 짓을 할 권리가 있어. 전지전능하고 최고선의 조물주인 내가 그렇게 만들었거든. 허나 넌 나쁜 짓을 하면 죽어서도 영원토록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될 거야. 그래도 좋으면 나쁜 짓 해봐. Understand? Huh~?" 뭐, 이런 식인데... 이것의 어디가 자유의지일까요;;; 결국은 교회 등의 권력자들이 민중을 다스리기 편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 낸 거짓말이라는 게 뻔히 보인다고 생각해요.

      절대자의 존재와 선악의 상대성 개념에 대한 모순 지적에도 공감이 가네요. 개인적으로는 개신교인들에게 이런 논리적 허점을 많이 발견하는데, 그들은 아무튼 자신들이 옳다고 하기 위해서 무조건 아무거나 아전인수격으로 막 끌어들이기 때문에 유독 위와 같은 우스운 결론에 도달하는 게 아닌가 싶더군요. 일전에 어떤 분께서는 "문화 상대주의가 올바른 가치라면 우리 기독교인들이 우리만을 진리라고 하며 타 종교를 비판하는 것도 존중해줘야 하지 않느냐"라고 신경질을 부리던데, 그런 분의 주장에는 헌법의 방어적 민주주의 개념이 적절한 반박이 되지 않나 싶더군요. "자유를 버릴 자유"라는 발상은 확실히 재미있긴 하지만, 그걸 진짜로 실천하는 짓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지요.

      저도 주변에 좋게 말하면 독실한, 나쁘게 말하면 극성스러운 기독교 지인이 많다 보니 김태길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참 공감이 가네요. 정말 그렇죠. 자기들도 참견 당하기 싫으면 남들에게도 참견하지 않는 게 당연한 예의이고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황금률'인데, 무조건 자신들의 믿음은 진리이니 뭘 해도 좋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건 개인적인 체험담인데, 2년 전에 대학에서 교양으로 한 번 경제과목을 선택한 적이 있었어요. 근데 하필이면 교수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더군요. 수업 중 좀 지나치게 개신교 교리를 지나가는 이야기로 꺼내는 감이 있어 제가 용기를 내어 그 부분에 대해 자제해달라고 요청을 하자 교수왈, "나쁜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이야기니까 일단 들어봐요." (...)

      아무래도 그 사람들에게는 선교가 아주 당연한 신자의 의무라 TPO를 가리지 않으면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더군요. 그 뒤에 저도 오기가 생겨 개신교 교리내용이 나올 때마다 일일이 반박해봤다니 제 마음에 악마가 산다며 신경질까지 부리는데... 그 때 "아, 나름 상위 지성인이라 할 수 있는 교수의 이성마저 타락시킬 수 있는 게 종교구나"하고 몸서리를 쳤던 기억이 나네요(...)

      뭐랄까, 사실 정말 인간을 위하는 신이 존재해 소위 말하는 '큰형님'처럼 우리 뒤를 봐주면 좋기는 좋을 거라 생각해요. "신이 없다면 발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라는 말처럼 말이에요. 허나 역시 픽션과 현실은 구분해야 올바른 생활을 보낼 수 있을 터인데... 일부(?) 어떤 분들은 그 구분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문제^^;;

  2. Favicon of http://heben.tistory.com BlogIcon 아우프헤벤 2011.12.30 16:3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마침 어제 제로 12화를 봤었는데 타이밍이 적절했네요.. ㅎㅎ

    저는 종교에 관심이 없는 부모님 영향을 받은 것인지 무신론 쪽을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덕분에 안단테님이 결론부에 남겨두신 질문에는 답할 수가 없겠네요. (물론 저도 그런 분들이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종교를 가진 분과 특별히 논쟁을 해본 적이 없다보니 따로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 같군요.. ^^;; 굳이 신이라는 이름을 갖다붙일 만한 존재를 찾자면 제 상식 선에서는 기계론적 우주관에서 말하는 제 1 동력자 정도가 떠오릅니다. 헌데 이 최초의 동력자라는 것이 어떤 의지를 가지고 우주에 간섭하거나 인간들의 일에 개입하거나 하는 일은 일절 없는 것을 보면 신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이라는 관념과의 연결 고리가 너무나 느슨해서 그닥 신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1 동력자의 초기 개념이 어떻게 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존재는 인격체로서의 신이라기보다는 보다 현상적이고, 과학적으로 입증 가능한 무언가가 아닐까하는는 것이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그렇다보니 사실상 제로 12화에서 류노스케와 캐스터의 심오한(?) 종교관의 이야기 역시 그러려니 하고 큰 감흥없이 들렸네요. ㅎㅎ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1.01 01:39 신고 address edit/delete

      앗~ 마침 해당화를 보셨다니 운명적인 타이밍~☆ (탕)

      부모님께서도 종교에 별 관심이 없으시고, 헤벤 님 자신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실 수 있다니 개인적으로는 참 부럽네요. 저희 집은 친가 쪽은 전부 가톨릭이고, 어머니 사촌 중에는 목사가 3분이나 있어 뭐랄까, 어떤 의미로는 신구교 종교전쟁 같은 상태라 해야 할까요. 제 자신도 아직 종교적인 관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고요ㅠ_ㅠ

      제가 어릴 적에는 어머니가 친가의 영향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하자 어머니의 사촌인 목사가 직접 찾아와 약 3시간 가량이나 좋게 말하면 회유, 나쁘게 말하면 횡포를 부리고 간 적도 있네요;;; 사실 제가 종교에 대해 좀 민감하게 반응하고 특히 한국 개신교에 신랄하게 평하는 건 그런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영향이 아닐까, 안단테는 안단테는 자기분석 해보기도 하고... (퍽퍽퍽)

      저도 사실 배움이 일천하다 보니 제1원인 등과 같이 거창한 주제에 대해 논할 만한 실력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굳이 이야기를 꺼내보자면 헤벤 님 말씀처럼 의지를 가진 신적인 무언가가 우리에게 간섭하고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더군요. 일본 대지진의 참상을 지켜본 일본의 한 기자였나 칼럼니스트가 "신도 부처도 없다"고 한탄했다 하던데, 그게 정답이라 생각합니다. (허나 우리나라의 모 목사님 몇 분과 신도님들은 그걸 두고 신앙심이 부족한 나라라 재앙이 일어났다는 식으로 말했다죠-_-)

      물론 종교인들은 저희 같은 불신론자들이 아둔하여 신의 오묘한 진리를 깨닫지 못할 뿐으로 신심을 가지고 기도와 수행을 거듭해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만물의 모든 일이 결국은 신께서 예비하신 위대한 계획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데... 뭐, 그 부분은 언터쳐블. 믿음은 자유이며 믿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고도 하니까요.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만 존중해 줄 수 있는 믿음(혹은 망상?)이 아닐까 싶어요.

  3.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2.01.01 18:5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어쩌면, 『신과 기적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라는 전형적이고 식상한 문구야말로 하나의 해답이 되어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경우 역시 스완님이나 헤벤님과 마찬가지로 종교 관련 논쟁은 회피하는 편이라 이에 대하여 심도있는 고찰을 해본 적은 없지만, 세상의 여러 부조리와 관련하여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 정도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가져볼만한 주제가 아닐까 싶네요.


    어쩌면 현존하는 상당수의 신화와 전설ㆍ그리고 그 안에서 등장하는 신의 위엄과 기적이라 함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의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 세계 역시 어떠한 초월적인 존재의 주도하에 치밀한 계산에 따라 구축되어 운영되는 하나의 시뮬레이션일지도 모른다는 망상 역시 가지고 있구요 (...HAHA!;)


    전쟁과 천재지변ㆍ질병과 기아. 그리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과 증오...

    그토록이나 전지전능하며 동시에 인간을 사랑한드는 신이 어찌하여 이토록이나 부조리한 세상을 만들어내고 또한 방치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여러 각도에서 고찰이 이루어져온 듯 하지만, 아직도 명쾌한 해답을 내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지요.

    어쩌면 본문에서 류노스케가 지닌 종교관이야말로 정답일수도 있고, 반대로 신이 인간에게 의도적으로 시련을 주고 그를 견디어 내어 영적으로 성장한 존재만을 낙원으로 인도한다는 가르침이야말로 유일한 구원의 열쇠일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무슨 악성 코드 필터링 시스템도 아니고... 그냥 처음부터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방법도 있었을텐데;)


    저의 경우에는 세상에 만재하는 여러 부조리를 견디어 내고 삶의 희망을 얻기 위해 현실의 상황에 맞게 종교의 교리 등이 재단되어온 것은 아닌가 추측을 해보기도 한답니다.

    굳이 비유를 해보자면, 『주어진 옷』에 「몸」을 맞추는 행위가 지극히 당연한 숙명임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나아가서는 삶의 행복도를 올릴 수 있도록 말이지요.

    이를 하나의 문구로 요약하자면, 『인간이 만들어낸 신』이라고나 할까요....


    더불어, 지금 이시간에도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현상들을 살펴보면, 설령 신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인간만을 특별 대우 해준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더군요.

    어쩌면 지구상의 현존하는 생명체들 중 먹이 사슬의 거의 최상단을 차지하게 된 종으로서의 입지와 우월감이 그러한 생각을 가지도록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뭐, 정말로 창조주에게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일수도 있겠지만 지금 인류가 환경 파괴 등을 행하며 지구를 뒤집어놓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高위험군 악성 코드급 재앙처럼 보이는데... 'w'); (우득)


    조만간 창조주가 『인류』 플러그인을 언인스톨하고 다른 대채제를 설계하지 않을까 하는 망상마저 스치고 지나가네요. (이래서 멸망설이 사라지지 않는 것인가 봅니다;)

    신이 인간을 특별히 사랑하여 그를 중심으로 만들어준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끼리 서오 증오하며 죽이고 상처입힌다는 부조리.

    그리고 그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선함을 유지하며 영적으로 성장한 존재만이 결국 구원받는다는 잔혹한 아이러니의 극치...

    하지만 그 속에는 동시에 희망의 가능성도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먼 훗날 인류를 구원하는 것은 신이 아닌 같은 인간일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비록 적지 않은 종교가 그 교리상의 배타성으로 인하여 여러가지 문제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적지 않은 부분에서 사회에 공헌을 하기도 하는 만큼.... 각자의 마음 속에 지닌 신념을 서로 존중해주며 융화ㆍ발전해 나가는 인류가 되기를 기원해봅니다.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사상과 행위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삶의 의미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마치, 페이트 제로의 질드레와 류노스케가 그러했고, 사야의 노래 주인공과 사야의 관계가 그러하였듯이...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1.01 21:38 신고 address edit/delete

      이 세상의 구조라거나 절대자의 존재 같은 주제는 거창한 만큼
      아무리 생각해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이 부분을 지나치게 한쪽으로만 치우쳐 진지하게 생각하시는 분들과
      얘기를 나누는 건 꽤나 지치는 일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에요^^;;

      그나저나 덧글 중간중간에 신과 인간의 관계를 악성코드필터링 등의
      컴퓨터 프로그램 용어로 센스 있는 비유를 해주신 덕분에 뿜으며 잘 읽었네요~
      확실히 절묘하게 들어맞는 부분이 있는 듯^^;;

      저도 종교에서 말하는 신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 낸 신'이라는 말씀에 동감이에요.
      신의 모습이나 교단의 교리를 하나하나 잘 따져보면 상당 부분 사람들의 바람이나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짜여져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너무 작위적이라 해야 할지...
      "신의 이름을 들어 그냥 우리를 옭아매고 싶은 거 아냐?"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실제로 이런 부분에 대해 역사적 기록이나
      심리학적인 연구를 통해 밝혀낸 책들도 있는 것 같더군요.

      아무튼 설령 신적인 무언가가 실재한다고 해도 종교에서
      말하는 개념과는 꽤나 동떨어진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을지...

      그래서 그런지 처음 위에서 인용하신 문구가 참 마음에 와 닿네요.
      결국 사람을 구원하는 건 같은 사람일 거라는 말씀도요.

      아직은 곳곳에서 불행한 충돌이 많긴 하지만 점점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고, 또 노력하고 싶네요^^

  4. maintenant 2012.03.06 13:0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아따 류노스케만큼 포지티브하지 않으면 신같은건 믿을수 없당께!?
    진짜 류노스케나 정복왕, 영웅왕같은 사람은 신의 축복을 아주 제대로 받고 계시는 분들인듯요. 세상 자체가 이분들 취향하고 참 잘맞으니... 그러고보면 노부나가나 티무르같은 사람들도 힘들고 아프고 이런거와는 상관없이 다른사람들보다 아주 재미지게 살다 죽긴 했을듯.
    근데 갠적으로 스피노자의 사상은 세상 자체가 신이므로 세상 전체가 선이다. 뭐 이런거라고 알고 있는데...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3.06 21:42 신고 address edit/delete

      정말 류노스케의 긍정적 사고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대단한 듯싶어요-_-b 말씀처럼 현시창인 세상에서 사회일반과 정반대되는 비도덕적인 짓을 하면서도 희희낙락하게 신까지 찬양하며 즐기려면 보통 정신구조로는 되지 않을 듯... 괜히 그 질 드 레마저 감복한 게 아니겠지요^^;;

      류노스케를 비롯해 그밖에 정복왕, 영웅왕 등은 취향도 취향이지만, 무엇보다 자기 취향대로 행동해도 크게 지장을 받지 않을 뛰어난 기량을 타고 났다는 점이 진정한 신의 축복이 아닌가도 싶더군요. 웨이버가 라이더에게 질투하며 열등감을 느끼는 심정이 참 절절히 이해ㅠ_ㅠ

      예, 스피노자의 사상은 일종의 범신론 중에 하나로서 모든 세상은 신의 일부인지라 당연히 모든 만물도 신의 뜻대로 움직이고 것이니 선이나 악은 어디까지나 신(세상)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협소한 인간의 관점으로 멋대로 정의한 것에 지나지 않을 뿐, 궁극적으로는 전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 주장했지요.

      개인적으로 이런 주장은 범신론의 탈을 쓰고 있을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교회나 성직자들이 민중들의 의심을 차단할 때 "원래 미개한 인간은 위대한 신의 뜻을 이해할 수 없음. 닥치고 신앙하셈"이라며 제시하던 아전인수격 논리의 연장선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 maintenant 2012.03.07 01:23 신고 address edit/delete

      글쎄요, 이런 범신론을 딱히 닥치고 찬양이나 하자는 논리로 볼 수가 없는게...
      스피노자의 논지대로라면 만약 사람이 신을 찬양하지 않고 깔보고 욕하고 모독하고 뭐 이래도 이것도 또한 선이라는 얘기거든요. 세상 전체가 선이라는게 대전제니까요.
      이거하고 비슷한게 니체가 자연주의자들을 대판 까댄 글이 있는데, 자연의 순리에 따라 행동한다는건 어떤 사람들이건, 설령 가장 추악한 살인범이라도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일이므로 순리에 따라 살아가라고 말하는건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당신네들이 말하는 (약육강식이니 상호 호혜적인 자연이니 하는)것들은 오직 당신네들의 편의에 의해서 해석된 자연이다. 그니까 스스로 의도해서 순리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니네들은 인지부조화.ㅇㅇ 뭐 이런 내용이었죠. 스피노자도 '신이 금지한것은 할 수 없는 일과 하고싶어하지 않는일 뿐이다.'라는 말을 한적이 있으니까 이 부근에 대한 선긋기는 확실하게 되어있었던 거겠죠.

    • maintenant 2012.03.07 01:32 신고 address edit/delete

      오히려 이런 종류의 범신론은 선험적인 선악이 부재하다는것,(모든것이 선이면 선악의 의미가 없어요.) 혹은 그것이 존재하더라도 사람들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그건 오직 사람들의 안녕과 편의에 의해 추구되는 것이라는 식의 현대적인 도덕관에 가깝다고 봄요. 어설프게 입 잘못 놀리면 맞아죽는 시대였으니까, 차마 신은 죽었다느니 이따위 불경스런 말을 입에 못담았을 뿐이지.
      (근데 이렇게 유화정책을 펴내도 이사람 종교인들한테 암살위협을 몇차례나 받았다던가...)

    • maintenant 2012.03.07 01:45 신고 address edit/delete

      신을 죽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욱 많은 신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랄까, 너무 많아졌기때문에 가치도 의미도 없어져서 사멸한다는거죠. 이건 17세기 사상가, 것도 종교 출신인 인간의 머리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혁신적인 발상인데, 너무 많아져서 가치가 떨어지고, 외면받아서 사라질 것이라는 발상은 신도 하나의 상품이라는 대전제가 깔리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자본주의적인 발상이거든요. 자본주의 이딴 말도 나오지 않았을 시대인데, 스피노자 이사람 내가 생각해봐도 천재임.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3.07 01:47 신고 address edit/delete

      음, 아무래도 maintenant 님이 알고 계시는 스피노자와 제가 공부한 스피노자의 사상에 약간 이해의 차이가 있는 듯싶네요. 스피노자가 선과 악의 개념정의를 부정한 것은 세상 전체가 선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인간은 신(세상)의 일부일 뿐으로 개체로서 '자립하지 않음'에도 '자립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선과 악이라는 '허상'을 멋대로 정의하고 있을 뿐이라 말했지요. 즉, 이 부분에 관한 스피노자의 사상의 중점은 '유한자는 존립하지 않는다', '오로지 신(자연)만이 존립한다'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존립하지 않는 유한자(개인)가 멋대로 갖는 선과 악의 정의와 거기에서 오는 희망과 공포 같은 정념을 부정적으로 보았고요.

      그러므로 여기서 제가 이런 범신론을 '닥치고 찬양'의 연장선으로 본 것은 사상 자체에 대한 지적이라기보다는 그 이면에 깔린 무의식적인 윤리의식이랍니다. 위에서 니체의 예를 드신 것이 제가 말하고 있는 것과도 비슷한 면이 있는데, 실제로 스피노자는 선과 악이 허상이라고 보았음에도 그 본인은 굉장히 도덕적이고 선량하게 산 인물이었다고 하지요. 실제로 그의 사상 같은 경우는 "선과 악이 허상이니 뭐든지 다해도 된다"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선과 악은 허상에 불과하니 세상의 부조리에 절망하지 말자'는 '위안의 철학'에 가깝습니다. 버트런드 러셀 같은 경우도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고요.

      저는 바로 이런 부분을 기존의 교회가 주장하던 '닥치고 찬양'의 세뇌(?)가 아예 윤리도덕 자체의 탈피를 주장할 수도 있었던 스피노자의 사상이 상당히 점잖은 방향으로 정착하게 된 원인이라 보고 있고 위의 본문과 덧글에서도 그러한 논리에서 글을 적었네요.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해석에 불과하니 얼마든지 다른 관점도 있을 수 있겠지요. 아무튼 요점은 스피노자의 사상의 과격함이 실제로는 그의 생애와 사상 전반에서는 기존 윤리도덕과 의외로 빗나가지 않는 방향으로 정합이 된다는 것에 주목을 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네요. (즉, 스피노자의 사상 자체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기반에 비해 크게 과격해지지 않는 위화감에 대한 지적. 위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당대의 시대 분위기 때문에 일부러 과격함을 줄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제가 알고 있는 스피노자의 생애와 그 사람의 유화적이지만 완고한 인격으로 봤을 때는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이더군요.)

    • maintenant 2012.03.07 01:51 신고 address edit/delete

      글쎄, 마르크스나 니체 자신도 실제 생활면에서 법을 어기거나 한적은 없는걸로 알고있으니 실생활을 가지고 철학자의 사상을 정의한다는건 그렇게...
      스피노자가 부정적으로 본 선과 악이라는게 선험적인 선과 악인지, 혹은 후 경험적으로 편의에 의해 만들어진 선과 악인지 하는면이 중요하겠죠. 전자를 부정적으로 본다는건 뭐 현대인들도 다 하고있는 일이니까.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3.07 01:53 신고 address edit/delete

      니체 본인의 실생활은 크게 법을 어기지는 않았어도 자신이 말한 것을 스스로 지키지 못한 면이 많았지요. 사상 전반에서도 처음에 말한 것과 후에 말한 것이 모순되는 일관성의 결여도 발견이 되고요. 허나 스피노자 자신은 '실생활 뿐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사상에서 선과 악이 허상이라고 말하면서도 다시금 사상 전반에 윤리적인 구석이 많이 엿보입니다. 가령 희망과 공포 같은 감정을 갖는 것이 부정적이라고 말하면서 정념의 통제를 주장하기도 하고요. 반복하지만 스피노자 사상 자체에 크게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위화감 지적'이랍니다^^

    • maintenant 2012.03.07 02:09 신고 address edit/delete

      똑같이 감정을 절제하면서 살아가라고 말해도 그것이 윤리적인 맥락에서 주장됐는지 실용적인 맥락에서 주장됐는지에 따라 의미는 크게 차이가 나죠.
      고대 그리스인들이 감정의 통제를 중요시한 이유와 중세 프랑스인들이 감정의 통제를 중요시한 이유는 커다란 차이가 있으니까요. 뭐 이런 종류의 잔소리는 개인 철학과는 별 상관없는 영역에 있기도 하고. 이방인같은 소설을 보면 아나키한 사상과 중산층 월급쟁이의 생활이 어떻게 상호 모순없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잘 보여주죠. 실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경우가 대부분인듯. 오히려 테러리스트같은 사람들을 보면 정의감에 불타는 인간들이 더 많기도 하고요.

      근데 까놓고 보면 전기/후기 나눠봤을때 상반되는 주장을 하거나 예전에 자기가 했던말 자기가 까는 철학자들 은근 많이 보임요. 비트겐이라던가 마르크스도 그렇고.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3.07 02:18 신고 address edit/delete

      스피노자는 비교적 일관성 있는 주장을 한 철학자로 유명하고 그것을 실생활에 대부분 실천한 것으로도 존경을 받는 사상가이지요. 스피노자의 경우에는 윤리적인 맥락에서 그런 주장을 한 것이 맞지 않을까 싶네요. 그의 저서 중에 '윤리학'이라는 저서가 있기도 하고.

      실제로 스피노자는 그의 사상대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철저한 결정론'의 사상을 주장했습니다. 그럼에도 "신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으며, "증오심은 보복하면 더 커지지만, 사랑의 힘으로 없어지기도 한다. 사랑의 힘으로 극복된 증오심은 사랑의 감정으로 옮아가는데, 이런 사랑은 증오심을 먼저 경험하지 않은 경우의 사랑보다 더욱 위대하다"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즉, 스피노자의 범신론과 결정론적인 형이상학은 니체처럼 탈도덕적인 초인(스피노자의 경우에는 반대로 탈도덕적인 신의 세포라고 할 수 있을까요)을 긍정할 수도 있었음에도 그 전반에는 지금까지 흘러내려오는 기존의 윤리의식과 신에 대한 경외를 완전히 버릴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 대해 러셀은 "스피노자는 실제로 가톨릭 교도들의 말을 대변하고 있음에도 형이상학적인 사상의 과격한 요소로 괜한 공격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고 있더군요.

  5. Favicon of http://rtrt11@naver.com BlogIcon x - man 2012.04.29 14:5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모두가 야훼(예수)를 믿고 교회와 왕권이 지배하던 시대를 암흑시대라고 불렀다고 하지요.
    그 시대가 모두 모두가 부정적인게 아니지만 역사에서 괜히 암흑기라고 하는게 아닌 것 같습니다.아마 유대민족의 유대 신화와 그 주인공 야훼가 잔인하고 굉장히 베타적이라 그런지 지금 기독교의 별의 별 일들이 예수보다도 유대신화의 야훼와 구약의 유대인들을 더 닯아서 그런것? 같습니다.
    토머스 페인이 말하기를 잔인한 하나님에 대한 사람이 잔인한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었지요.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4.29 23:26 신고 address edit/delete

      예, 동감이에요. 비록 서양의 중세가 암흑시대라고 불리게 된 이유 중에는 근대로 넘어가는 시절에 과거 기성권력을 부정하기 위한 신규세력에 붙은 지식인들이 필요 이상으로 매도를 한 감이 크다고 하더라도,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심하게 문화/사상/기술의 발전 등이 정체된 시절인 것만큼은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체의 이유에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 시절의 주된 권력세력과 사상이 그리스도교 관련이다 보니 부정적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이네요.

      일부 유일신교의 배타성은 정말 무섭죠. 그리스도교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악성은 민족종교인 유대교에서 유래된 면이 크다는 게 정설이라고 알고 있는데, 아무리 문화다양성이 중시되는 사회라도, 아니 오히려 문화다양성이 중시되는 사회이기에 더욱 자기들이 옳다는 증명을 위해 상대방을 부수려 드는 독선적인 사상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6. 솔플 2012.12.06 11:2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이번에 나온 신작 PSYCHO-PASS가 페이트제로보다 더어두워 보이던데.......아예대놓고 디스토피아라고 말해주는 세계관.뭐 '고어물'이라서 비위가 약한사람들은 보기그렇지만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12.06 20:47 신고 address edit/delete

      예, 우로부치 씨 성향에 딱 맞는 작품인 것 같아요.
      저도 재미있게 보고 있답니다^^

  7. 베라모드 2013.07.25 21:1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성경을 파고들수록 이런 괴상한 오류가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는 유대교 -> 기독교 라인이 엄청난 설정덧붙임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초반인 모세 5경과 유대 역사서들을 살펴보면 여기서 언급되는 여호와 - 신의 모습은 수메르 신화의 신들이 보이는 '징벌자'로서의 면이 부각되는, 딱 헤브라이 민족주의를 감싸고 정당화하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벌을 주는 민족신의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사실 이 땐 선악의 구분법이 딱 '여호와는 절대적이시니까 절대자의 말을 어기면 그게 악'이라고 할 정도로 개념이 단순했던 시절이라 이게 잘 먹혔죠. 이후 이스라엘, 유다 왕국이 멸망하고 바빌론 유수, 페르시아 지배기에 들어서면서 조로아스터 교의 이원론과 천사&악마 설정을 받아들이면서 선한 면은 전부 여호와에게 넘기고 나쁜건 전부 악마들의 몫으로 떠넘기면서부터 뭔가 꼬이기 시작한거죠. 요약하자면 '초자연적인 징벌자'에서 선한 면을 좀 '많이' 강조한 것이 후대 기독교의 신이고 좀 구린 면은 악마에게로 몰아버리는 식으로 처리해서 좀 더 착한 이미지로의 변신에 성공. 이런 착한 이미지 메이킹은 훗날 초기 기독교의 로마 제국 내의 전파에 덕을 좀 봤습니다. 아, 기존의 유대교를 '신을 팔아서 장사해먹는 악의 축'으로 깎아 내린 건 덤이고요.(뭐, 이건 실제로도 틀렸던 건 아니지만...) 개인적인 사견이기는 하지만 현대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악은 신의 시련'이라는 소리는 저 역시 별로 와닿지는 않지만 정말로 신이 무능력해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계를 만든건지, 신의 악의에 의해 선과 악이 공존하게 되었는지, 혹은 성경대로 인간의 호기심에 의해 악이 세상에 퍼진 건지는 몰라도 '저놈보다 내가 우월해지려면 저놈은 나쁜놈이어야하고 난 착한놈이어야 해'라는 기본적인 인간의 생각에 의해 악이 필요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애초에 절대적인 악이 세상에 없듯이 결론적으로 타인 혹은 타 조직에 비해 자기편이 좀 더 우월해지고픈 욕망에 의한 정당화의 도구로서 선과 악이라는 개념을 내세우고 거기다 선측에 신의 이름을 서로 가져다 붙인 거라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실제로 어느 종교 경전을 들춰보면 종교마다의 세계관은 조금씩 다를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서로 피 안보고 착하게 살자'라는 건 별반 다를 바가 없거든요. 어디 종교인들이 저놈은 착하게 안사니까 서로 싸우던가요. 다른 신 믿으니까 싸우자! 는 식이죠. 좀 쓸데없는 이야기가 많이 덕지덕지 나온거 같지만 혹여나 이 세상을 창조한 절대자가 있다면 그 양반이 직접 선과 악을 세상에 만들진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다만 인간더러 알아서 하라는 자유의지를 줬을 뿐이고고 그걸 인간들이 이용해서 자기들의 입맛대로 선과 악으로 갈라서 치고 박을 뿐이니까요.

    P.S - 사실 세상에 선과 악을 세상에 만들었다고 해서 그 창조주가 무조건 어느 한쪽 편에 속해 있다는 말은 창조주 입장에선 굉장히 웃기는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자기는 자기 피조물들을 만들고 얘네들이 살아갈 환경과 조건도 갖추게 해줬으며 덤으로 기본적인 메뉴얼(?)도 딸려서 줬는데 사이좋게 살지는 못할망정 서로 설정덧붙임(?)이나 하면서 치고 박고 있으니...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3.07.26 00:22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리스도교의 기반을 제공한 유대교의 야훼는 본래 유일신도 뭐도 아닌 그저 자기 민족만 보호해주는 부족신이었을 따름이었지만, 바빌론 유수를 전후하여 위기를 느낀 유대민족이 절대적인 유일신으로 야훼를 변모시키고, 민족의 이탈을 막아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배타성도 강화하였지요. 그것을 상당 부분 흡수한 그리스도교는 그 후에 말씀처럼 여러 종교를 짜깁기해 교리와 의식이 좀 더 정교해지고, 본격적으로 로마 제국의 위세를 등에 업은 후에는 아우구스티누스 등의 소위 교부 신학자들과 토마스 아퀴나스 등에 의해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참고해 고급신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된 것이고요. 사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절대자의 형이상학적인 면모는 많은 부분에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그 기반을 찾아 볼 수가 있더군요. 물론 우리나라의 개신교인들은 그 사실을 거의 인정하려 들지 않거나, 아주 조금 영향을 받았을 뿐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위에서도 적은 말이지만, 저 또한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실존한다고 했을 때, 그가 선악의 기준을 나누었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고 생각해요. 이건 조금만 생각하면 여러 모순점을 찾을 수 있는 전제니까요. 만약 인간의 선악이 절대자의 기준과 같다면 만능인 선한 절대자는 세상에 악이나 부조리를 만들 리가 없지요. 천지를 창조하고 시작이자 끝인 존재가 악을 만들었다면 그는 이미 선한 존재가 아닌 셈이니까요. 그렇다면 악과 부조리가 존재하는 세상에 창조주인 절대자가 만능이라 가정하면 그는 인간의 선악과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는 존재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매우 악하거나 변덕스러운 존재라는 이야기가 되지요. 이때 전자의 경우는 일종의 거대한 자연법칙과 같이 중립적이거나 아예 인간사에 간섭하지 않는 초월적인 존재이니 어차피 숭배할 이유도 필요도 없으며, 후자의 경우는 그건 섬겨야 할 절대자가 아니라 악신(惡神)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거부하거나 처단해야 할 존재이지, 마찬가지로 숭배해야 할 대상은 결코 아니지요.

      그러하니 반복되는 말이지만 만약 절대자가 존재한다 해도 그는 철저하게 중립적이거나, 혹은 아예 인간의 인지가 닿지 않는 초월적인 존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그것이 인간의 선악이나 신앙이라는 것으로 어떻게 가늠할 수 있는 존재일 리는 없겠지요(물론 종교인들은 이 시점에서 그러니 어설픈 인간의 지성으로 나대지 말고 신의 말씀을 따르자고 주장하지만, 애당초 그 신의 경전과 말씀이라는 것이 어디서 나왔는지, 왜 그것을 따르는 게 옳은지는 그 유명한 순환논법으로 빠질 따름이지요.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과 이성의 포기는 별다른 문제인데, 의외로 구별 못하는 분들이 많은 듯싶어 안타깝기도 해요).
















...
좀 뒷북인 이야기지만, 저번 주 『Fate / Zero』 11화에서 원작소설 2권의
가장 볼거리라고 할 수 있는 ‘왕들의 연회’를 담은 부분이 방영이 되었지요.

역시 시청자 사이에서 논란이 된 것은 세이버(아서왕)와 라이더(알렉산드로스 대왕)가
서로 간의 왕도(王道)를 놓고 평행선 논쟁을 벌인 부분으로서 어느 쪽의 군주론(?)이
옳은가에 대해 설왕설래 의견 차이가 많았다고 하네요.

허나 정작 애니메이션에서는 방영시간 때문에 안타깝게도 잘린 부분이 많더군요.

그래서 누구의 왕도가 옳은지 올바른 비교를 하기 위해 원작소설의 일부를 번역해볼까 하다가
너무 양이 많은 것 같아 대신 제법 원작을 충실히 구현한 드라마CD 2권의 『성배문답』 트랙과
『왕들의 광연』 트랙의 7분 8초 부근까지 번역해봤습니다.

원래는 이왕 하는 김에 11화에 해당하는 파트 전부를 번역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역시 라이더가 왕의 군세를 사용하는 부분까지는 너무 길기도 한 데다 라이더 쪽이 너무 멋지게 보여(...)
공정한 판단이 불가능할 것 같아 딱 왕들의 논쟁이 마무리되는 부분에서 끊었어요^^;;

다른 분들은 과연 어느 쪽의 왕도(王道)에 찬성하실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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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앞서 간단한 배경 및 인물설명





성배전쟁(聖杯戦争):
만능의 소원장치(願望機)인 성배를 쟁탈하기 위해 일본 후유키시에서 마술사들이 벌이는 사투.
7명의 마술사들이 성배의 힘을 이용해 신화/역사상의 영웅들을 불러내 각각의 서번트(servant)로 삼아
서로 간 혈투를 벌여 최후에 살아남는 1팀만이 성배를 차지할 수 있는 일종의 배틀로얄.

각각의 영웅들은 세이버, 아처, 랜서, 라이더, 캐스터, 버서커, 어새신의 7개 클래스로
임의로 나누어 소환되며 소환된 지역과 그 시대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성배로부터 부여 받고
약점 등을 들키지 않기 위해 보통은 클래스명으로만 서로를 부름.

생전의 일화가 전설이 되어 세계를 지키는 수호자의 좌에 오른 영령을 소환하여
일개 패밀리어로 부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후유키시 성배의 만능성이 증명된다고 함.




세이버(Saber):
정체는 현세에 소환된 아서왕. 일명 기사왕. 전설에서 전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그 실체는 미소년으로 착각될 정도로 가녀린 소녀. 강직하고 올곧은 성품을 지녔음.




라이더(Rider):
정체는 현세에 소환된 알렉산드로스 대왕(아랍어로는 이스칸다르). 일명 정복왕.
역사에서 전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2m가 넘는 거구의 사내.
호쾌하고 굴절이 없으며 표리가 일치하는 성격으로 이번 왕들의 연회를 마련한 인물.




아처(Archer):
정체는 현세에 소환된 수메르 신화의 길가메시. 일명 영웅왕.
인류최고(人類最古)의 영령으로서 세상의 모든 보구는 그가 가진 보물창고에서 기원한다고 함.
(본인은 신을 싫어한다지만) 신격이 높고 어마어마한 무수의 보구를 소유한 탓인지
성품이 극도로 오만하여 자신 외의 다른 사람들은 “잡종”이라며 업신여김.









[Sound Drama Fate/Zero Vol.2 「성배문답」]




라이더: 오, 이 성에는 중정(中庭)이 있는 건가. 좋군!
자, 네놈들도 앉아라. 앉아!

라이더: 이건 히샤쿠(柄杓)라고 해서 다소 기묘한 형태지만,
이것이 이 나라의 유서 깊은 주기(酒器)라는 모양이다.

라이더: 성배는 그에 합당한 자의 손에 들어갈 운명이라 하더군.
그걸 가리기 위한 의식이 이 후유키시에서 행해지는 투쟁이라는 듯하나,
그저 선별하기 위함이라면 꼭 피를 흘릴 것까지도 없지.

라이더: 영령 간에 서로의 “격(格)”에 납득이 갔다면 그걸로 스스로도 답을 낼 수 있다. 받아라.


세이버: …….

라이더: 호오.

세이버: 그래서, 우선은 이 나와 “격”을 겨루자는 이야기냐, 라이더.

라이더: 바로 그렇다. 양자가 “왕”이라 칭하며 물러설 생각이 없다면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지.
말하자면 이것은 『성배전쟁(聖杯戰爭)』이 아닌 『성배문답(聖杯問答)』… 과연 기사왕과 정복왕,
어느 쪽이 보다 “성배의 왕”으로서 어울리는 그릇일까? 그것을 술잔에 물으면 명확해진다는 거다.

라이더: 아아, 그러고 보면 우리들 외에도 한 명 더 “왕”이라 내세우는 녀석이 있었지.


아처: ---흰소리는 그쯤 해두어라, 잡종.

세이버: 아처!


아이리스필: 어째서 이곳에…….

라이더: 아니, 그게 말이다. 거리에서 이 녀석을 발견한지라 일단 권유는 해두었지.
---이거 늦지 않았는가, 휘황찬란. 뭐어, 짐과 달리 걸어왔으니 어쩔 수 없나.

아처: 하필이면 이런 성가신 곳을 『왕의 연회』 장소로 고를 줄이야.
그것만으로도 밑바닥이 보이는군. 이 몸을 일부러 행차하시게 한 무례를 어떻게 사죄할 텐가?

라이더: 뭐어, 그런 딱딱한 소리 하지 말게. 자아, 온 김에 한 잔 들이켜라.

아처: 뭐냐, 이 싸구려 술은? 이 따위 걸로 진정 영웅의 격을 잴 수 있다고 생각한 게냐?

라이더: 그러냐? 이 지역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것 중에선 상당한 일품이던데?

아처: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네놈이 진정한 술이라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잡종 녀석아.

아처: 보도록 해라. 그리고 깨달아라. 이게 바로 『왕의 술』이라는 거다.

라이더: 오오, 이거 금상첨화로다.

라이더: 오오, 큰소리 친 만큼 이건 향기도 각별하군! 어디…….

라이더: 어이, 세이버! 네놈도 잔을 들지 않겠나.

라이더: 호오, 이거 맛있군!!

세이버: 이건… 어찌나 향기롭고 맛 좋은 술인가. 설마 이 정도의 일품일 줄이야…….

라이더: 굉장하구만, 이봐! 이건 사람이 행한 양조가 아닐 테지. 신대(神代)의 물품이 아닌가?

아처: 당연하지 않나. 술도 검도, 이 몸의 보물창고에는 지고의 재산밖에 들어 있지 않다.
---이걸로 왕으로서의 격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겠군.

세이버: 농담 마라, 아처! 주고(酒庫) 자랑으로 논하는 왕도(王道) 따위 듣기 우습다.
우스갯소리는 왕이 아닌 광대의 역할이다.

아처: 천박하구나. 연회자리에서 술조차 내지 못하는 놈이야말로 왕과는 한참 거리가 멀지 않은가.

라이더: 이봐이봐. 둘 다 논하는 게 시시하군.

라이더: 아처여, 네놈이 가진 극상의 술이야말로 지보(至寶)의 잔에 붓기 어울리다.
허나, 공교롭게도 성배는 주기(酒器)와는 다르지. 이것은 성배를 쟁취할 만한 정당성을 묻는 성배문답.
우선 네놈이 얼마나한 대망을 성배에 품고 있는가, 그것을 듣지 않고선 시작되지 않아.
그럼 아처, 네놈은 한 사람의 왕으로서 여기에 있는 우리 두 사람 다 매혹시킬 만한 대언(大言)을 논할 수 있나?

아처: 주도하지 마라, 잡종.
첫째로 성배를 “쟁탈한다”는 전제부터 이치에 맞지 않는다.

아처: 애당초 그것은 이 몸의 소유물이다.
세상천지의 보물은 단 하나도 남김없이 그 기원을 이 몸의 창고에 두고 있지.
좀 시간이 경과한 탓에 다소 흩어져 없어지긴 했으나, 그것들 모두의 소유권은 지금도 변함없이 이 몸에게 있다.

라이더: 그럼 네놈은 과거에 성배를 가진 적이 있다는 거냐? 어떤 건지 정체도 알고 있다고?

아처: 모른다.

아처: 잡종의 척도로 재지 마라.
이 몸이 가진 재보의 총량은 이미 오래 전에 이 몸의 인식을 넘어서 있다.
허나 그것이 『보물』이라는 시점에서, 이 몸의 재보임은 명백하지.
그것을 멋대로 들고 가려는 짓은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거다.

세이버: 네가 하는 말은 캐스터의 망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착란 중인 서번트는 그 녀석 하나만이 아니었던 모양이군.

라이더: 아니, 아니지. 과연 어떨까.

라이더: 짐은 어~딘가 이 휘황찬란한 녀석의 진명에 짐작 가는 구석이 있다.
뭐어, 이 이스칸다르보다 거만한 태도를 하고 있는 왕이라는 것만으로도
떠오르는 이름은 하나밖에 없었지만 말이지.

라이더: 그럼 뭐지? 성배를 원하면 네놈의 승낙을 얻으면 된다는 거냐?

아처: 그렇다. 허나 네놈들 같은 잡종에게 이 몸이 보상을 치하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군.

라이더: 네놈, 설마 수전노냐?

아처: 천치놈. 이 몸의 은정(恩情)을 받을 자는 이 몸의 신하와 백성뿐이다.

아처: 그러니 라이더, 네 녀석이 이 몸 밑으로 들어오겠다면
잔 하나 둘쯤은 언제라도 하사해 줄 수도 있지.

라이더: …뭐, 그건 수락할 수 없는 권유다만.

라이더: 그럼 말이다, 아처. 네놈은 별로 성배가 아까운 것도 아니지 않나?
뭔가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어 성배전쟁에 참가한 게 아니란 말이지.

아처: 물론이다.
허나 이 몸의 재보를 노리는 도적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심판을 내려야만 하지.
요는 도리의 문제다.

라이더: 그건 즉--- 뭐냐, 아처? 그럼 거기에 어떤 의(義)가 있고, 어떤 도리가 있다는 거지?

아처: 법이다. 이 몸이 왕으로서 선포한 이 몸의 법이다.

라이더: 완벽하군. 스스로의 법을 관철해야 왕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말이지~ 짐은 성배가 갖고 싶어서 어쩔 수가 없단 말이야.
그러니 원하는 이상 약탈하는 것이 짐의 신조다.
왜냐하면 이 이스칸다르는 정복왕이기 때문이지.

아처: 시비를 가릴 것도 없지. 네 녀석이 범하고, 이 몸이 벌한다.
문답할 여지 따위 어디에도 없어.

라이더: 음, 그렇게 되면 남은 건 검을 마주하는 것뿐이다.

라이더: ---허나, 아처여. 아무튼 이 술은 전부 마셔버리지 않겠나?
사투(死鬪)라면 나중에 벌여도 되니 말이지.

아처: 당연하지. 아니면 네놈, 설마 이 몸이 향응한 술을 업신여길 생각이었나?

라이더: 농담 마라. 이만한 미주(美酒)를 가만 내버려 둘 수 있겠나.

세이버: 정복왕이여. 그대는 성배의 정당한 소유권이
타인에게 있다고 인정하고서도 그것을 힘으로 빼앗을 생각인가?

라이더: ---음? 그렇다. 당연하지 않나?
짐의 왕도는 『정복』… 즉 『약탈』, 『침략』에 종결하는 것이니 말이다.

세이버: 그렇게까지 하면서 성배에 무엇을 바라나?

라이더: 수육(受肉), 이다.


웨이버: 하아? 너너너, 너 말이야! 소원은 세계정복이었던 게… 끄악! 아파~~!

라이더: 멍청한 놈. 그저 잔 따위에 세계정복을 맡겨서 뭐하나?
정복은 자기 자신이 이뤄야 할 꿈.
성배에 맡기는 건 어디까지나 그걸 위한 첫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아처: 잡종. 설마 그런 걸 위해 이 몸에게 도전하는 거냐.

라이더: 이봐, 아무리 마력으로 현계하고 있다고 해도 어차피 우리들은 서번트.
이 세상에 있어선 기적에 가까운… 말하자면 무슨 동화에 나올 법한 나그네 취급이다.
네놈들은 그걸 만족하는 거냐? 짐은 만족 못해.
짐은 전생(轉生)한 이 세상에 한 사람의 생명으로서 뿌리를 내리고 싶다.

웨이버: 아, 아파라… 너 그래서 영체화하는 걸 그렇게 싫어했던 거야?
하지만 왜… 그렇게까지 육체에 구애 받는 거야?

라이더: 그것이야말로 『정복』의 기점이기 때문이지.

라이더: 홀몸으로 나 자신을 내세워 천지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것이 정복이란 “행위”의 모든 것.
그런 식으로 개시하여, 밀고나가, 성취하는 것이야말로 내 패도(覇道)다.
허나 지금의 짐은 그 “홀몸”조차 결하고 있지. 그래선 안 돼. 시작될 것도 시작되지 않아.
누구에게도 거리낄 것 없는 이 이스칸다르 단 혼자만의 육체가 있어야만 해.

아처: 정했다, 라이더. 네놈은 이 몸께서 직접 죽여주지.

라이더: 흥, 이제 와서 강조할 것도 없지 않은가.
짐도 말이지, 성배뿐만이 아니라 네놈의 보물창고라는 것을 전부 약탈해버릴 생각이니 각오해두고 있게나.
이 정도의 명주(名酒)를 이 정복왕에게 맛보인 것이 실책이었구나.

세이버: (이런 게 왕도라고? 단지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성배를 구하겠다는 건가.
그런 건 왕이 취할 자세가 아니다. 이래선 단지 폭군에 지나지 않은가.)

라이더: 이봐, 그나저나 세이버. 그러고 보면 아직 네놈의 속내만 듣지 못했군.

세이버: 난 조국의 구제(救濟)를 바란다. 만능의 소원장치를 가지고 브리튼 멸망의 운명을 바꾸겠다.








[Sound Drama Fate/Zero Vol.2 「왕들의 광연」일부]



라이더: 이봐, 기사왕. 혹시 짐이 잘못 들은 건지도 모르겠다만.

라이더: 네놈은 지금 “운명을 바꾼다”라고 말했나? 그건 과거의 역사를 뒤집겠다는 뜻인가?

세이버: 그렇다. 설령 기적으로도 이룰 수 없는 소원이라 해도 성배가 실로 만능이라 한다면 분명히---

라이더: 으음, 세이버? 확인해두겠네만…
그 브리튼이라는 나라가 멸망한 건 네놈이 살던 시대의 이야기지?
네놈의 치세 하에 벌어진 일이지 않느냐?

세이버: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난 용납할 수가 없어. 그렇기 때문에 후회스러운 거다.
그 결말을 바꾸고 싶은 거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책임으로 벌어진 일이니…….

아처: (웃음소리)

세이버: …아처, 뭐가 우습나?

아처: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며, 모두에게 왕이라 칭송 받은… 그런 녀석이 “후회스럽다”고?
이게 웃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걸작이다! 세이버, 넌 극상의 광대구나!

라이더: 잠깐 기다려, 잠깐 기다려라, 기사왕이여.
네놈, 하필이면 스스로 역사에 새긴 행위를 부정하겠다고 하는 거냐?

세이버: 그렇고말고. 왜 의아해하나? 왜 비웃나?
왕으로서 신명(身命)을 바친 고국이 멸망했다.
그걸 괴로워함이 어째서 이상하다는 거냐?

아처: 어이어이, 들었나, 라이더! 이 기사왕이든가 뭔가 하는 계집은…
하필이면! “고국에 신명(身命)을 바쳤다”는 모양이다!

세이버: 비웃음 당할 이유가 어디에 있나?
왕이 된 자라면 이 한 몸 바쳐 다스리는 나라의 번영을 바랄 터!

라이더: 아니, 틀리다. 왕이 바치는 게 아니야.
나라가, 백성이, 그 신명(身命)을 왕에게 바치는 거다. 결코 그 역은 아니다.

세이버: 무슨 말을--- 그건 폭군의 치세지 않은가!
라이더, 아처, 네놈들이야말로 도저히 왕이라 할 수 없는 외도(外道)다!

라이더: 그렇다. 우리들은 폭군이기 때문에 영웅이다.

라이더: 허나 말이지, 세이버.
스스로의 치세를, 그 결말을 후회하는 왕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단지 암군(暗君)이다. 폭군보다 더 질이 나쁘지.

세이버: 이스칸다르. 네놈 역시… 대가 끊기고 쌓아올린 제국은 4등분으로 찢겨나가 무너졌을 터다.
그 결말에 네놈은 어떤 미련도 없다고 할 텐가?
지금 다시 한 번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면 고국을 구할 길이 있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는가?

라이더: 없다.

라이더: 짐의 결단, 짐을 따른 신하들의 삶의 끝에 다다른 결말이라 한다면, 그 멸망은 필정이다.
괴로워도 하지. 눈물도 흘리지. 허나 결코 후회하지는 않아. 게다가 그걸 뒤집겠다고!
그런 어리석은 짓은 짐과 함께 한 시대를 쌓아올린 모든 인간들에게 대한 모독이다!

세이버: 아니, 쇠락의 미를 영예로워하는 건 무인(武人)뿐이다.
백성은 그런 걸 바라지 않아. 구제(救濟)야말로 그들의 바람이다.

라이더: 왕에 의한 구제(救濟)라고?
알 수 없군. 그런 것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냐?

세이버: 그거야말로 왕이 된 자의 본분이다!
올바른 통치. 올바른 치세. 모든 신민(臣民)이 바라는 게 아닌가.

라이더: 호오, 그래서 왕인 네놈은 “올바름”의 노예냐?

세이버: 그걸로 좋다. 이상(理想)에 몸을 바쳐야만 왕이다.
사람들은 왕의 모습을 통해 법과 질서가 어떠한 것인지를 안다.
왕이 체현하는 것은 왕과 함께 없어지는 덧없는 것이어서는 안 돼.
보다 숭고하고 불멸한 것이다.

라이더: 하아아아아… 그런 삶은 사람의 것이 아니다.

세이버: 그렇고말고. 왕이 되고자한다면 사람으로서의 삶은 바랄 수 없다.
정복왕, 그저 자기 한 몸이 아까워 성배를 구하는 네놈에게는 결코 내 왕도를 이해할 수 없겠지.
마르지 않는 욕망만을 채우기 위해서 패왕(覇王)이 된 네놈에게는!

라이더: 무욕(無慾)한 왕 따윈 장식보다 못하다!

라이더: 세이버여, “이상에 몸을 바친다”고 네놈은 말했지. 과연 왕년의 네놈은 청렴하고 결백한 성자였을 것이다. 분명 고귀하고 범접할 수 없는 모습이었을 테지. 허나 말이다, 순교(殉敎)라고 하는 가시밭길을 대체 그 누가 동경하지? 거기서 무슨 애타게 그릴 만한 꿈을 볼 수 있단 말이냐? 성자란 말이다, 설령 민초를 다독거려 줄 수 있다고는 해도 결코 이끌어 줄 수는 없다. 확고한 욕망의 형태를 제시하고 나서야, 극한의 영화를 구가하고 나서야, 백성을, 국가를 이끌 수가 있는 법이다!

라이더: 왕이란 누구보다도 강하게 욕망하며, 누구보다도 호쾌하게 웃고,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분노하며, 청탁(淸濁)을 다 끌어안아 사람의 임계점을 극한까지 추구하는 자. 그렇게 존재하기 때문에 신하는 왕을 선망하고, 왕에게 이끌린다. 민초 하나하나의 마음에 “우리 또한 왕과 같이” 되자는 동경의 불빛이 켜지는 거다!

세이버: 그런 치세에… 대체 어디에 정의가 있다는 거지?

라이더: 없지. 왕도에 정의는 불요. 그렇기 때문에 후회도 없다.

세이버: …읏!

라이더: 기사들의 영예로운 왕이여. 분명 네놈이 내세운 정의와 이상은 한 때는 나라를 구하고, 신민을 구제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네놈의 이름이 전설에 새겨질 만큼 위업이었겠지. 허나 말이지, 그저 구해지기만 했을 뿐인 무리들이 어떤 말로에 다다랐는가, 그걸 네놈이 모르진 않을 거다.

세이버: 뭐---라고?

라이더: 네놈은 신하를 “구하기”에만 급급했을 뿐, “이끈다”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왕의 욕망』이라는 형태를 제시하지 않아 길을 잃은 신하를 버려두고, 그저 혼자서만 시원스러운 얼굴로 빛 좋은 이상(理想)이라는 것을 애타게 찾고 있었을 뿐이지. 그렇기에 네놈은 진정한 “왕”이 아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왕”이라는 우상에 사로잡혀 있을 뿐인 계집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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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처(길가메시)는 말 그대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나님이 세계최고라는 게 너무 강하게 드러나서 애당초 논할 거리조차 되지 않기 때문에 역시 주가 되는 건 세이버(아서왕)와 라이더(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왕도대결이라 할 수가 있겠군요.

 애초에 군주정과 민주정은 정체(政體)가 확연히 다른 만큼 단순비교를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보통 위정자들에게 바라는 모습을 꼽으라 한다면 역시 세이버의 왕도가 아닐까 싶네요. 군주 자신의 모든 사리사욕을 포기하고 오로지 올바른 법도를 세우는 것과 백성들의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열변은 라이더의 지적처럼 흡사 성자(聖者)를 연상시키는 모습이기도 하지요.

 반면에 라이더는 철저하게 왕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야 된다는 입장이지만, 그 주장을 잘 살펴보면 세이버가 말하는 것처럼 단순한 폭군의 횡포가 아니라 사람들보다 언제나 앞서 나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자야말로 왕의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신민들이 “모두가 왕과 같이” 되기를 바라며 향상심을 품게 만드는 것이 라이더가 말하는 왕도의 진정한 목적이지요. 약간 이상한 비유일지도 모르겠으나 어떤 면에서는 ‘패션리더’나 ‘얼리어답터’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라이더의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논어 등의 군자개념에 버금가는 훌륭한 개인으로 상정한 “긍지에 찬” 혹은 “대범한” 사람과도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독교식의 겸허하고 금욕적인 성인을 부정하고 누구보다도 뛰어난 능력을 가지며 부와 명예를 중시하지만 결코 거기에는 얽매이지 않고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위풍당당한 인물을 긍정했다고 하지요.

 물론 실제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점은 거의 없다는 것이 학자들의 주된 견해라는 모양이지만, 아무튼 위 픽션에서는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마케도니아의 왕자가 스승으로 알려진 현자의 사상을 잇고 있다는 점이 또 숨은 재미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한 면에서 기독교적인 가르침과 통하는 면이 있는 세이버의 왕도를 라이더가 부정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흐름이라 볼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위정자에게 요구하는 모습은 세이버의 왕도에 가깝다고 생각되나, 의외로 이 부분을 읽은 팬들 사이에서는 라이더의 왕도가 지지를 많이 받는 것 같더군요. 그 이유로는 머뭇거리는 세이버에 비해 호쾌하고 당당한 라이더의 태도나 성배문답 뒤에 보여주는 ‘왕의 군세’의 멋진 모습인 덕분도 있겠으나, 역시 가장 큰 이유는 개인의 욕망을 분출시키는 데에 익숙한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답답한 세이버의 주장보다는 거침없는 라이더의 말이 더 매력적으로 들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라이더는 세이버의 왕도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실천할 수 없는 동떨어진 이상(理想)이며,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성인은 불쌍한 이를 어루만져 줄 수만 있을 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 수는 없다고 신랄한 지적을 가합니다. 라이더의 지적에는 저도 동의하는 바이지만, 그래도 역시 위정자가 가져야 할 태도는 세이버가 말하는 금욕적인 왕도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극의 분위기 상 간과되고 있기는 하나, 실은 라이더가 말하는 왕의 모습 역시 세이버가 주장하는 성인왕(聖人王)만큼이나 실현하기 어려운 이상(理想)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라이더의 왕도가 성립하려면 왕은 '모든 방면에서 다른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인물'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야 언제나 사람들 앞을 걸으며 최상의 욕망실현을 보여주는 것으로 동기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현실에는 그런 완벽한 인물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군주정에서는 신분에 따라 ‘규제’가 존재하고 ‘차별’이 존재합니다. 실질적으론 별로 우수하지 않은 데도 제도상 사람 위에 서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 아예 규율로서 밑의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치고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지요. 즉, 현실의 왕들은 라이더가 말하는 것처럼 신민들에게 “우리도 왕과 같이” 되고 싶도록 향상심을 부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도저히 왕에 범접할 수가 없는 미천한 이들”이라는 패배적인 선입견을 심어주는 데 치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런 이유로 압도적인 권력을 가진 위정자가 세이버의 왕도처럼 행동을 해야 그나마 균형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라이더의 왕도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상을 가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각자가 “왕”이라는 마음으로 미래를 개척하기에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주장이라 생각되지만, 한 나라를 이끌고 다른 많은 개인들을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할 힘을 가진 위정자가 가질 만한 신조로는 합당치가 않다고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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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range.net BlogIcon 밋첼™ 2011.12.22 08:4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과거의 인물들을 불러내어 전쟁을 치른 다는 것 부터가 재미있네요
    그런 인물들이 다시금 시대를 통치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의 이익만을 위해 당파싸움을 해대는 그들을 한칼에 베어버리거나.. 잡종 취급을 하려나요?
    정치를 하면서 책임은 뒤로한채 잘난척만 해대는 누군가들에게도 보여주면 좋겠네요...

    오늘이 동지입니다. 팥죽! 꼭 드시고~
    날씨 많이 춥네요. 내일은 영하 11도까지도 내려간다고 하니...
    건강 조심하시고~ 행복 가득한 하루 되세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1.12.23 01:25 신고 address edit/delete

      재미있게 봐주셨다니 저도 부족한 실력이나마 번역한 보람이 있어 기쁘네요^^ 확실히 전설이나 역사 속의 먼 옛날의 인물, 그것도 픽션의 캐릭터에 불과하긴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만큼은 주목할 만한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말씀처럼 요즘 위정자들은 정치가라기보다는 정치꾼인 분들이 많다고 여겨져 씁쓸하네요···.

      에고, 아쉽게도 동지 팥죽은 못 먹고 넘어가고 말았네요^^;; 밋첼 님께선 잘 드셨는지요. 전 내년을 다시 노려봐야 겠어요~ 영하 11도라니 듣는 것만으로도 온 몸이 떨리는 느낌이네요;;; 밋첼 님도 방한 잘 하시어 감기 걸리시는 일 없이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래요!

  2. Favicon of http://yuuren.tistory.com BlogIcon 유우렌 2011.12.22 18:0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사실 라이더의 주장은 끝까지 파고들었을 때 상당히 위험한 주장이라 생각합니다. 그의 주장은 왕이 건재할 때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는 있죠. 허나 그의 사후에는 그만큼 왕이라는 지위를 동경하는 다수의 무리들로 인해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겠지요. 여기까지는 단테님께서 올려주신 번역 내용에도 들어있군요. 라이더는 이것에 대해서 아무런 후회도 없다고 했지만, 과연 국가가 그렇게까지 된 책임에 있어서까지 자유로울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국가가 멸망한 것을 단순히 '나의 신하들의 책임'으로 넘겨버리고 자신만이 홀로 그 부담감에서 빠져나오겠다는 것일까요? 물론 그의 사후에 몇 대에 걸쳐서 국가가 유지되었다면 공동체가 붕괴된 책임에서 어느정도 면제가 되겠지요. 허나 알렉산더 대왕이 요절한 직후 국가가 그 모양이 되었는데, 여기에 어떠한 일말의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다면 그를 제대로 된 위정자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왕은 남다른 대우를 받는만큼 그에 걸맞는 책임도 따르는 것일진데, 라이더의 주장을 계속 듣고 있자니 그가 어떠한 책임을 가지고서 국가를 경영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픽션이라는 가정하에서요. 그가 약탈한 영토나 전쟁에서 승리한 것 등은 확실히 국가발전에 이바지했겠지요. 헌데 그 모든 것을 인간이 누리는 욕망의 한계에 다다르는 것으로 해석해버리다니, 이건 단순히 욕망을 추구하는 행위가 우연하게 국가를 살린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만약 라이더같은 가치관을 갖고있는 위정자가 약소국을 통치하고있다면 이건 단순한 폭군이네요. 자신의 말로는 폭군이기에 영웅이라는데 과연 이것을 여기에도 대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반면 세이버의 경우는 치세에 대한 책임감은 넘쳐나지만, 반대로 백성들에게 통치자에 대한 동경심을 심어주지 않는다는 면에서, 왕 사후에는 라이더의 결말과 똑같네요...;; 다만 차이점이라 하면 세이버의 경우는 국가의 쇠락이고 라이더의 경우는 국가의 사분오열이라는 것이지만...
    역시 뭐든지 중간이 좋은 것 같습니다. 왕의 호탕함도 보여주는 동시에 그만큼 책임감도 가져줘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도 단테님과 같은 생각이군요.

    그리고 길가메시는... 뭐 별로 할 말이 없네요... 아니, 사실 제시된 내용이 별로 없어서 뭐라 토를 달 수도 없는 듯...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1.12.23 01:43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4차의 라이더는 저도 정말 좋아하는 캐릭터이고 그 주장에도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쉽게 찬성해도 될 만한 왕도라고 보기에는 힘들지요. 특히 '책임' 부분을 지적하신 것에 가장 공감이 가네요. 확실히 옛날 군주정과 현재의 민주정의 가장 큰 차이점 중의 하나가 역시 국정을 잘못 운영했을 때 정치적 책임을 지느냐 아니냐에 달린 것 같더군요. 물론 과거의 왕들도 책임을 아예 지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정자들이 짊어지는 책임과는 비할 바가 못 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4차의 라이더 캐릭터는 역사 속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거의 전제국의 군주에 가까웠다는 것을 생각할 때 사상적인 면에서도 제법 구현이 잘 된 것 같아요. 지금처럼 국민들이 대표로서 위정자를 뽑는 게 아니라 그저 특출난 자신이 왕으로서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 같은 건 애초에 고려할 만한 사항이 아니었을 듯...

      반면에 작중의 아서왕은 그 등극 방식부터 국민의 투표로 뽑지 않았다 뿐이지, 검에 의한 선정(하늘의 뜻)으로 백성들을 대표해 구국의 영웅으로 활동하는 면이 강했으니 자연히 책임을 중시하는 쪽에 왕도가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듯싶더군요.

      허나 실제로 역사에선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헬레니즘 문화의 꽃을 피운 반면에 아서왕 전설에 많은 영향을 준 기독교 문명은 오랜 기간 중세의 서양을 정체에 빠뜨린 것을 생각해 보면 결과론적으론 라이더의 왕도가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 등 머릿속이 좀 복잡해지네요^^;;

      물론 그 부분은 썩어도 준치라고 아무리 기울어가는 중이라고는 하나 마케도니아가 규합한 그리스 문명은 그동안 쌓아올린 저력이 어마어마하기도 했고, 또 알렉산드로스 본인도 역사적 실존인물 중에서는 가장 신화적인 업적을 세운 인물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대단한 왕이기도 했으니 단순히 라이더의 왕도가 옳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만 보기에는 힘들겠지만 말이에요. (애초에 위의 라이더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픽션이기도 하고요;;;)

      아무튼 라이더의 왕도에는 책임감이 부존해 위험하다는 지적에 정말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황새 잘못 따라가다가 다리 찢어진다는 말처럼 작중의 라이더와 같은 규격 외의 기량이 있다면 모를까 저희 같은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함부로 그런 왕도를 긍정했다가는 누구도 수습하기 힘든 엄청난 비극이 벌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길가메시는, 아마도 나님의 나님에 의한 나님을 위한 왕도로 요약될 수 있을 듯^^;;

    • Favicon of http://yuuren.tistory.com BlogIcon 유우렌 2011.12.23 02:08 신고 address edit/delete

      음, 그렇군요. 확실히 이스칸달이 생존했던 시대상에 비추어보면 긍인될 수 있는 가치관이 될 수는 있군요. 헌데, 그렇다는 것은 애초에 세이버와 라이더의 논쟁에 깔린 기본 전제부터가 어긋나있었다는 것인데, 그 상태로 문답을 진행시키다니 어쩌면 배경지식이 적은 독자들의 경우는 이를 통해 상당히 편파적인 정치관을 갖게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 역시 픽션이라는 전제하에서 말하는 거지만요 ^^; 아무튼 인간의 인식은 그가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법인데, 작중의 라이더는 그 점을 간과하고 세이버의 신념을 무시해버리기만 하니, 저는 이런 점이 꽤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4차 성배전쟁에서는 이스칸달, 5차에서는 아쳐(에미야)를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삼고있지만, 역시 위와 같은 주장은 비판받아야 할 것 같아요.

      흠...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번 단테님의 답글을 보면서 다시금 푸코의 '에피스테메' 개념을 떠올리게 됐네요. 저도 아버지께 철학교육을 받으면서 몇몇 주제에 있어서는 상대적인 시각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볼 것을 지적받았는데, 이번에도 그것을 간과하고 말았네요. 언제나 이 블로그에 댓글을 달면서 여러가지를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단테님께 부러운게 하나 있다면, 정말 어휘력이 뛰어나신 것 같아요. 으허 저도 언제 그런 고급스런 단어들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될지 ㅠㅠ 역시 작가님이십니다 -_-b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1.12.24 01:42 신고 address edit/delete

      길가메시는 무려 이불 속 처녀 운운하며 성희롱을 하지 않나, 라이더는 힘찬 웅변과 멋진 연출에 가려져서 그렇지 정말 자기 할 말만 싹 다하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 세이버가 불쌍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얄밉게 느껴지기도 하죠;;; 특히 라이더가 왕의 군세를 소환해 나는 친구가 많다(!)는 것을 과시하는(?) 부분에서는 가장 가까운 가신은 물론 혈육에게마저 배신 당한 세이버가 비참하게 보일 정도(...) 허나 또 그런 부분에 한편으로는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하면 과연 전 S인 걸까요, M인 걸까요? (퍽)

      으, 그나저나 미숙한 절 너무 높게 사주시니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는 말처럼 스완 님께서 멀리까지 보이시니 저도 괜찮게 봐주시는 것 같아 송구스럽네요. 저야말로 매번 스완 님과의 의견교환이나 블로그 포스팅에서 많은 걸 얻어가고 있답니다^^

  3.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1.12.26 00:0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성배 문답편에 대한 상세한 분석 내용 잘 봤습니다~ :)

    왕으로서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신념과 추구하는 가치관 등에 차이가 있었을 뿐, 세이버와 라이더 모두 나름 훌륭한 업적일 이룩한 전설적인 왕의 위명에 어울리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 이외에, 길가메시의 경우에...는 안단테님과 스완님께서 위에 댓글로 의견을 교환하신 내용과 같이 『자의식 과잉에 가까운, 왜곡된 형태의 영웅왕』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


    비록 세이버와 라이더는 각기 활약했던 시대상의 차이에 따라 다소 다른 가치관과 신념ㆍ정의 등을 확립하여 성배 문답에서 줄곧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만 한편으로는 빛나는 왕의 위광 뒤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왕의 역할과 국가의 발전에 대해 고심했던 영웅적인 면모 역시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세이버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쳥렴결백하며 올곧은,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왕의 체현을 통하여 국가의 기틀을 세우고 강화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서서히 그러나 안정적으로 발전해나가는 국가의 발전 정책을 추진한 반면,

    라이더의 경우에는 제국주의 정책에 기반을 둔 빠른 영토 정복을 통하여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에게 행복을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끊임없는 전쟁이란 결국 이에 참여하는 당사자 -국민- 들에게 심신의 피폐함을 안겨줄 뿐이지만,만약 세계 정복에 가까울 정도의 영토 확장을 이루어내고 식민지 운영(이라고 쓰고 수탈이라고 읽...)에 따른 이익이 발생하기 시작한다면, 그 혜택을 자신의 국민들에게는 나누어줄 수 있을테니까요.


    음, 그러니까 식견이 다소 얕은 저의 지식 수준 내에서 설명을 하자면..;

    로마가 지속적인 정복 활동을 통하여 상당한 영토를 획득하고 식민지 정책을 통하여 적지 않은 이익을 창출하게 된 이후, 로마의 시민이었던 국민들 중 상당 수가 귀족에 가까운 삶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던 부분에 비추어 이러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라이더는 자신의 국민들 한명 한명이 모두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강함을 지니기를 원했던 것일 수도 있겠지요.

    세이버가 제시한 이상적인 왕의 인도에 의한, 법과 제도의 정비를 통한 국가 기틀의 형성과 강화ㆍ백성들의 사상 계몽에 따른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국가 발전 정책은 틀림 없이 훌륭해보이지만, 나름의 리스크 역시 존재하니까요.


    강대한 국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체계적으로 안정화된 국가의 틀이 갖추어질 때까지 결코 적지 않은 세월이 필요한데다, 이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에서 그 가시밭길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왕이 없어야할테니까요.

    하지만, 과연..?;

    일반적인 인간의 범주 내에서 생각해본다면 아무리 막중한 책임을 지닌 왕이라 하더라도,

    FM대로 살면서 추가 근무에 야근(?)을 마다하지 않고 그야말로 자신을 불살라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려 하기 보다는 적당히 일 때워놓고 맛있는 것 먹으면서 편하게 지내고 싶을테니까요.


    설령 세이버가 당대에 성공적으로 위업을 달성했다하더라도, 그 이후 2~3대를 거치면서 흐지부지 되지는 않았을는지... 'w');

    게다가, 세이버는 보다 수동적인 국민의 상을 원했던 것 같기도 하구요. (이 부분에서도 라이더와 정반대의 평행선을 달리는군요;)


    뭐, 결국은 각기 다르지만 나름의 일장일단이 있는 군주의 상을 추구했던 영령들의 대화인지라 상당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소재였습니다. +_+)!!

    ※※※※※※※※※※※※※※※※※※※※※※※※※※※※※※※※※※※※※※※※※※※※※※※※

    아, 결론적(?)으로 저는 세이버의 군주론에 찬성하는 편입니다!(응?;)

    라이더가 추구하는 왕의 위상이란, 그 업적을 이을만한 재목이 후계자가 되지 않는 한 당대에 그칠 뿐더러... 목적을 위해 어떠한 수단이든 정당화 할 수 있다는 사상의 일반화라는 시한 폭탄을 안고 가게 되니까요.

    물론, 이상이란 아름답고 원대하기에, 그만큼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겠지만.... 그렇기에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는지...


    p.s- 저도 스완님처럼 단테님 블로그에 와서 많은 것들을 보고 배워갑니다.. ㅠ_ㅠ)b

    뭐라고 해야할까, 요즘 어렵고 복잡한 것보다는 쉽고 빠르게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시대의 경향이 되기도 했고, 이래저래 사회 곳곳에서 사고의 단락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지라...


    단테님처럼 블로그에서 무엇인가를 깊게 고찰하면서 한편으로는 취미 생활과도 연계시킬 수 있는 분이 드문 것 같아요! +_+)b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1.12.25 21:51 신고 address edit/delete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작중에 등장하는 왕들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통치에 대한 그들의 진정성과 신념이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특히 현대의 우리 사회 위정자들은 실망스러운 이미지가 만연해 있는지라 한층 이런 픽션에 끌리게 되는 것도 같더군요.

      말씀처럼 기사왕의 왕도가 정적이고 소극적이라면 정복왕의 왕도는 동적이고 적극적이지요. 예로 드신 로마 제국을 비롯해 동서양의 많은 열강들이 타국을 침략하는 형태로 역사를 움직여 문명을 발달시켜 온 부분도 분명히 적지 않으니 정복왕의 자신만만한 왕도자랑을 부정하기 힘든 면도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런 왕도가 자아내는 시대의 물결에 저항할 도리 없이 휩쓸려가는 힘없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마냥 좋게 볼 수만도 없는 노릇이지만요^^;;

      어떻게 보면 기사왕의 왕도를 긍정할 수 있는 것도 문명이 발전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언뜻 들었어요. 흔히 비꼬는 말로 배가 부르니까 딴 생각을 한다고도 하는데, 그것을 긍정적으로 보자면 물질적인 면이 안정이 되어야 이상을 추구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역시 가장 좋은 건 세이버의 청렴결백과 라이더의 향상심을 조화시키는 것이 아닐지^^

      으, 소디언 님께서도 과찬의 말씀을 보내주시니 막 얼굴이 붉어지는군요. 그저 재미있게 봐주셨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또 없네요^^ 저야말로 소디언 님의 알찬 리뷰와 점점 굇수(...)로 진화하시는 연출실력에 매번 감탄하며 잘 보고 있답니다~!

  4. 베라모드 2013.07.25 21:4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알렉산드로스(이스칸달)의 정복활동은 페르시아 원정까지만하더라도 마케도니아 인들이 지지하던 원정이었기에 별 불평 없이 왕의 명령에 따랐지만 왕의 이상에 찬동해서 따랐다기보단 정복자로서의 영예를 누리고 싶어서(혹은 평소 잘난체하던 놈 한대 패주자) 라는 개개인의 욕망에 충실했다고 보는 쪽이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실제로 페르시아 원정 이후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휘하 장수들에게 잦은 반발과 반란 위협을 겪었으며 인도 원정 조차 제대로 된 성과 없이 병사들의 파업으로 인해 철군해야 했었습니다. F/Z에서 나온 이스칸달의 왕도가 역사속의 알렉산드로스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실제 역사속에서 왕의 이상에 반해 죽어서까지 우르르 몰려오는 충직한 부하들이 있을 정도로 이상적이었냐면 글쎄올시다(...)라는 생각만 듭니다. 페르시아 원정 직후까지라면 그럭저럭 납득할만합니다만 그 이후는 철저히 왕의 개인적 욕망에 의해 죄없는 병사들만 사지로 내모는 폭군이라는 말밖에 안나오거든요. F/Z에서 등장하는 이스칸달은 정복왕으로서의 이상적인 모습은 보여줬지만 후대의 독단적인 폭군으로서의 면은 스리슬쩍 묻어버린 경향이 있어 조금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덤으로 '모든 면에서 만능인 지도자'는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라기보단 스승인 플라톤의 철인정치 쪽에 더 가깝죠(다만 이쪽은 단순히 잘난 놈을 데려다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잘난놈들을 모아다가 고르고 골라서 아주 철저한 검증 후에 세우자는 이론이지만...)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3.07.26 00:25 신고 address edit/delete

      작중의 세이버나 길가메쉬에서 이미 알 수 있는 것처럼 Fate의 영령들은 어디까지나 실존 인물이나 신화 등에서 모티브를 따왔을 뿐이지, 현저하게 다른 인물을 그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양자는 별개의 존재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에는 전국 BASARA라는 작품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지요. 제가 위에서 논한 이스칸다르의 왕도 또한 실존인물 알렉산드로스와의 관계보다는 '작중에서 설정되어 있는 이스칸다르'의 이상적인 군주의 면모를 고찰한 것뿐이랍니다.

      또한 제가 위에서 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범한 사람'은 작중 이스칸다르의 주장과 인물상이 그에 가깝다는 것이고,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지도자'는 작중 이스칸다르의 왕도가 긍정되기 위해서는 왕이 그러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미로서 '대범한 사람'과 '만능의 지도자'는 별개의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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