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종이 울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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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Moratorium
by 안단테♪

'백합'에 해당되는 글 10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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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혈마왕의 전후처리] 00. 얼어붙은 시간 (2)
  3. 2016.11.23
    [간단감상] FLOWERS 가을편 VITA판 구입
  4. 2016.05.02
    [간단감상] 소피의 아틀리에, 뒤늦게 클리어! (4)
  5. 2016.04.15
    [자작소설 캐릭터] 내 피는 영원과 같이 - 엘리자베스 (2)
  6. 2016.04.14
    [자작소설 캐릭터] 내 피는 영원과 같이 - 율리아나 (2)
  7. 2016.04.12
    [자작소설 캐릭터] 내 피는 영원과 같이 - 카린 (2)
  8. 2016.04.11
    [자작소설 캐릭터] 내 피는 영원과 같이 - 다미 (2)
  9. 2016.04.10
    [자작소설 캐릭터] 내 피는 영원과 같이 - 도토리 (2)
  10. 2016.04.08
    [단편] 내 피는 영원과 같이 (完) (2)







(작중 등장인물은 전원 여성이며 정통 판타지적인 요소는 없습니다)









■■■








01. 마왕이 된 이유


 헤미스피어 대도서관.
 인류의 빛나는 지혜들이 무수한 별처럼 반짝이는 서적의 바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제정시절 황제의 권위를 뽐내기 위해 지어진 이 반구형의 거대한 건축물은, 오로지 장서의 보관과 심미적인 외관에만 중점을 두고 설계된 탓에 이용자들의 편의는 조금도 고려되지 않은 게 특징이었다.

 그 비효율성을 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 바로 도서관 중심부의 풍경.
 장엄한 돔 아래 특수하게 가공된 합금서장이 벽을 따라 15층 건물의 높이까지 솟아올라 있고, 그 안에는 온갖 역사적인 장서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주위에는 책장을 밝힐 화려한 보석등불이 촘촘히 박혀 있으며, 오색으로 찬란한 색유리stained glass 아래 당대 유명한 예술가들의 대리석 조각상과 금은의 장식품들이 천상의 방문객 마냥 내부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
 계단도 사다리도, 그밖에 다른 무엇도 아무것도 없다. 하늘을 바라보듯 고개를 젖혀야 그 끝이 보이는 책장 저 끝까지 닿을 수단은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굳이 사람 키를 넘어서는 상단 부분의 책장까지 손을 뻗고 싶다면 고층 사다리를 준비하든지, 부유마법을 사용하든지, 아니면 최근 전쟁에서 발명된 부유석을 장착한 비행 장비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서적이 아닌 업적을 보는 공간.
 내용이 아닌 위용에 감탄하는 공간.

 호의를 갖고 포장하자면 풍성하고 강성했던 제국시절 최전성기의 흔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악의를 갖고 매도하자면 단순한 허세라고 일축할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단연 후자 쪽이라 생각하지만 말이야. 평범한 사람들도 종종 단 한번 읽어본 적 없는, 괜히 어려워 보이는 책들을 책장에 진열해 두곤 할 때가 있잖아? 남들이 그걸 보고 자신의 교양과 학식을 과대평가해주길 은근히 기대하면서. 이 도서관은 그런 흔해 빠진 심리가 국가적 규모로 드러난 것에 지나지 않아. 말하자면 이 도서관 전체가 황제의 책장이었던 셈이지.

 난 어둠 속에서 언젠가 지인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전적으로 그 의견에 동의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도서관 어딜 가나 중심부와 비슷한 꼴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책상과 의자가 생긴 것도 제정시절이 끝난 후대의 일로써 그 전까지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조차 제대로 없었다고 한다.

 영원히 가는 영광이란 없다.
 한때는 수천의 보석등불이 도심지의 야경처럼 환하게 밤을 밝히던 도서관 내부도 지금은 여느 파괴된 도시들처럼 어둠에 잠긴 채 고요하다. 마왕군과의 극심한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해진 탓에, 더는 도서관에 연료를 공급한다는 ‘사치’를 부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뭐 내 입장에선 딱 좋지만.”

 슥. 난 책장을 넘기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빛도 사람도 없는 밤의 도서관은 독서를 하기에 정말 좋은 환경이다. 조용한 것도 조용한 것이지만, 무엇보다 ‘사람 눈치’를 전혀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가령 주위에 보는 사람만 없다면 공중에 누운 채 아주 편한 자세로 책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어둠 또한 독서에 어떤 방해도 되지 않는다. 악마의 피가 흐르는 내게 있어 빛은 사물을 인식하는 필수조건이 아니니까.
 하지만 내 안식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 여어, 딸내미. 잘 있었냐. 여전히 우중충하게 살고 있군.

 세상을 한없이 잠식해 들어가는 검은 목소리. 불청객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마왕, 이클립스……!”

 마치 왕관처럼 머리를 감싸고 있는 큼직한 황금색 산양의 뿔. 그 아래 홍옥Ruby처럼 빛나고 있는 불타는 적색 머리카락. 박쥐를 닮은 표층차원의 흉측한 여섯 장 악마의 날개.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심층차원에 숨어 있는 열세장의 그림자 날개. 털 하나하나가 대마법을 행사할 수 있는 막대한 마력을 내포하고 있는 악마의 사자꼬리…….
 현재 인류의 최대 천적이라 할 수 있는 마왕이 지금 내 앞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알비노스 왕국의 아크메이지 클래스의 마법장벽들은……. 쳇, 아예 발동조차 하지 않았군.”

 덤으로 내가 몰래 쳐놓은 다차원수호결계도 마찬가지.
 사실 충분히 힘 있는 존재에게 이런 방어막을 부수는 것쯤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힘 자체를 갖추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그러나 부수지 않고 그냥 통과한다는 것은 단순히 힘이 있고 없고의 문제를 떠나 또 다른 차원의 초월성이 요구되는 난제이다.

 가령 어떤 사람을 여러 겹의 튼튼한 줄로 촘촘히 묶어 두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줄 하나하나마다 조금만 흔들려도 심하게 소리가 나는 종을 잔뜩 매달아 두었다고 하자. 이야기 속의 영웅처럼 충분히 힘이 세다면 근육을 부풀리는 것만으로도 실처럼 줄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관절을 기묘하게 빼거나 뒤틀 수 있는 재주를 가진 달인이라면 어떻게든 줄을 헐겁게 해 탈출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자들에게도 아예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속박에서 자력으로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리라.

 이 여자가 마도사들의 마법장벽이나, 내 다차원결계를 무시하고 여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런 종류의 기적 같은 솜씨에 가까웠다.
 과연 마왕. 악마들의 왕이자, 마법의 왕이라 불릴 만 하다.

 - 하하. 이봐, 딸. 너무 기죽을 거 없어. 다른 떨거지들과 다르게 네 다차원결계는 꽤 훌륭했으니까. 솔직히 좀 놀랐다. 설마 심원영역의 잠행까지 차단하고 들어올 줄이야. 역시 내 딸들 중에선 네가 제일 잔재주가 뛰어나.

 웃으며 말하는 마왕. 일단 딸이라고 치켜세워주는 걸까? 하지만 ‘잔재주’라 칭한 시점에서 이미 칭찬이고 뭐고 없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욕하는 걸로 간주하고 한바탕 싸움이라도 벌였을지 모르지만, 이 여자는 이게 순수한 감탄의 토로이니 상대하기 곤란하다. 뭐 싸워봤자 이길 수 있는 상대도 아니니 무시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

 “……요즘 문명파괴에 다망하신 분이, 대체 무슨 일로 여기에 오신 건지?”

 잔뜩 비아냥거리며 물었지만, 사실 난 이 여자가 왜 날 찾아왔는지 대충 짐작이 되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소름끼치도록 아름답고 차갑게, 달빛처럼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마왕. 하지만 언제나 변함없을 것 같은 이 여자의 완결성에는 지금 작지만 커다란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비유 같은 게 아니다. 문자 그대로 마왕의 왼쪽 가슴은 심장과 같이 뻥 뚫린 채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설마 소문이 진짜였다니……. 낮의 소란은 이게 원인이었군.’

 영웅이 드디어 마왕을 쓰러뜨렸다는 사람들의 환호성. 이 여자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는 나는 그저 헛소문이라고 치부했다. 사실 전쟁 중에는 사람들의 소망을 투영한 근거 없는 이야기rumor가 민들레 홀씨처럼 이곳저곳 떠도는 게 일상다반사다. 하지만 언제나 올바른 사람이 있을 수 없듯이, 언제나 틀린 소문만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만큼은 소문이 진실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가 단지 부상만 입고 돌아온 줄 알았는데 이런 업적을 올렸을 줄은. 아무래도 내가 인간 측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 피들, 어떻게 하지?’

 마왕의 상처에서 쏟아지는 혈액은 순수한 마력덩어리라 전부 공중에 흩어질 뿐, 물리적인 흔적을 남기거나 하지는 않는다. 청소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건 좋지만, 고농도의 마력은 산소와 마찬가지로 생물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만약 이대로 두면 이 일대는 한동안 사람이 살지 못하는 땅이 되고 말리라.

 물론 최악의 경우 내가 그 마력들을 먹어치우면 된다. 실제로도 그럴 생각이긴 하지만, 그때는 마성魔性이 짙어져 인간성을 아예 상실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어디선가 발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본적으로 이 도서관에서 책만 읽으며 지내고 싶은 내게는 매우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내 심정을 알 리 없는 마왕은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 무슨 일로 왔냐고? 그냥 딸내미 얼굴 좀 보려고 왔지. 너 300년인지 400년인지 여기서만 계속 일하고 있던데, 지겹지도 않냐?

 “내가 여기 속하게 된 지는 이제 곧 100년이야. 지겹기는커녕 아주 잘 지내고 있고. 그리고 내 나이는 아직 300살. 400년 전에는 태어나지도 않았어.”

 - 그랬나? 딱히 나이 같은 건 평소 생각해 본 적도 없어서 실수했군. 뭐 100년도 제대로 못 사는 인간들처럼 세월에 민감할 이유가 없으니 이런 쪽은 아무래도 둔감해지네. 네가 이해해라. 아! 근데 100년이라도 인간들 기준에선 꽤 긴 세월이잖아. 너 여기서 그렇게 오래 있어도 돼? 인간들은 수명이 짧아서 늙지 않는 존재는 이상하게 생각하던데. 음, 나도 그 아이…… 그러니까 네 모체 되는 여자랑 잠깐 같이 살 때 그걸로 좀 고생했지.

 여전히 무신경한 발언. 하지만 화를 내봤자 내 손해다. 어차피 죽어가는 괴물, 조금은 친절히 대해줘도 문제될 건 없으리라.

 “당신이 말하는 ‘잔재주’로 인식장애 마법을 걸고 있으니 괜찮아. 주기적으로 직급과 이름을 바꾸며 다른 사람처럼 꾸미고 있기도 하고.”

 - 그거 괜찮은 방법이군!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나도 그때 그런 방법이 떠올랐다면 그 애랑 좀 더 같이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는 듯이 탄식하는 마왕. 이해는 된다. 손짓 한번으로 가볍게 도시 하나는 소멸시킬 수 있는 존재가 인간들의 사고방식에 맞춰 자신을 꾸며야 한다는 발상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오히려 나를 낳아준 어머니를 생각해 겉모습이나마 인간처럼 꾸미고 30년 넘게 같이 지냈다는 것 자체가 거짓말처럼 놀라운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쓸쓸한 죽음을 목격한 나는 이런 말을 내뱉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무슨……. 당신이 우리 엄마를 사랑하기는 했어?”

 - 당연하지! 그렇지 않으면 네가 태어날 리가 없잖아. 아직도 그 아이는 내 기억 속에 선명해. 뭐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

 순간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 했다. 딱히 이 여자를 위해서가 아니다. 여기서 잘못 힘을 개방하면 내가 안식처로 삼고 있는 이 도서관 자체가 붕괴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후…….”

 진정하자. 이 여자가 무신경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까.
 200년 전에도, 이 여자는 불쑥 내 앞에 나타나 엄마를 찾았었다.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넘은, 끝까지 마왕을 그리워하다 외롭게 눈을 감은 우리 엄마를. 내가 엄마의 죽음을 전하자, 이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 아, 그러고 보니 인간들은 수명이 짧았지. 난 생각이 짧았고. 하하. 간만에 얼굴 좀 보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

 그 뒤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다음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난 피투성이로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으니까.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변할 만큼 이성의 끈이 끊긴 내가 마왕에게 덤벼들었다가 도리어 신나게 얻어맞고 빈사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때 싸움의 여파로 대륙 북부의 산맥 하나가 등이 끊어지고 만 것은 내 부끄러운 사춘기의 흔적이다.

 - 응? 이 녀석이 날 죽이려고 한 게 아니었다고? 내 자리를 노리거나 날 넘어서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럼 왜 덤빈 건데? 엄마에 대한 애정에서 오는 섭섭함? 음, 잘 모르겠지만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넌 인간들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

 참고로 내가 그 싸움에서 죽지 않은 것은 마왕의 자비 따위가 아니다. 이 여자는 설령 자기 딸이라도 덤벼온다면 용서 없이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살 수 있었던 것은, 마왕의 오랜 친구이자 비서관을 자처하는 한 몽마Succubus가 내 심정을 설명하며 죽이지 말 것을 요청한 덕분이라고 한다.

 아무튼 그때 이후로 난 이 여자에게 무언가 인간적인 감정을 기대하는 것을 포기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이 여자는 인간이 아니니까. 게다가 나도 이제 300살. 감정에 휘둘릴 나이는 한참 전에 지나고 또 지났다.
 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입을 열었다.

 “빨리 용건이나 말해. 오늘은 읽고 싶은 책이 좀 많으니까. 정말 내 얼굴만 보러 온 건 아닐 거 아니야.”

 - 응. 맞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너 말이야. 이런 어두침침한 데서 100년이나 일했다면 좀 지겹지 않냐?

 여전히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여자다. 하지만 대화를 포기할 게 아니라면 이쪽에서 맞춰주는 수밖에 없다.

 “아니, 아까도 말했지만 안 지겨워. 딱 내 성정에 맞고 좋아.”

 - 그러니까 말이지, 너 내 뒤를 이어라. 나 대신 마왕군 좀 지휘해. 그럼 심심하지 않고 딱 좋잖아? 어때 마음에 드는 제안이지?

 “…….”

 아, 진짜 대화를 포기하고 싶다. 여기가 내가 일하는 도서관만 아니었다면 이미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여자는 상대가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강행수단’을 써서 억지로 말을 듣게 만든다. 물론 내 힘으로는 이 여자와 싸워서 이기는 건 무리라도 도망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유서 깊은 헤미스피어 대도서관은 폐허조차도 아닌 평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심장을 잃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해도 이 여자에게는 아직 그만한 힘이 남아 있다.
 그래도 역시 이 여자가 날 찾아온 이유는 예상한 대로다. 난 상대가 듣지 않는다 해도 최대한 진심을 담아 거절의 말을 꺼냈다.

 “싫어. 그런 건 당신의 다른 자식들, 내 언니들이나 동생들에게 부탁하라고. 혼혈인 나와 달리 순혈종인 그 녀석들이 어차피 나보다 힘도 세잖아. 당신 뒤를 잇기에는 더 강한 쪽이 낫지 않아?”

 내게는 위로는 언니가 넷, 아래로는 여동생이 둘, 배가 다른 자매들이 있다. 한명을 빼고는 다들 이 여자를 닮아 손쓸 도리가 없는 잔학한 폭군들이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이 여자를 닮아 힘만큼은 확실하다. 솔직히 마왕의 자리에는 나보다 다른 자매들이 훨씬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마왕은 고개를 저었다.

 - 언니들과 동생들이 아니라 ‘언니와 동생’이다. 나머지는 다 죽었어.

 “……뭐?”

 -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야. 어떻게 된 거냐 하면…….

 자세한 얘기를 들으니 다른 자매들은 요 200년 동안 내가 관심을 끊고 있는 사이 전멸한 모양이다. 언니들 중 둘은 엄마인 마왕의 자리를 뺏기 위해 도전했다가 죽었고, 나머지 자매들은 서로 영역 다툼을 벌이다가 공멸했다고 한다. 그 싸움에서 언니와 동생 중 각각 하나가 살아남았지만, 둘 다 깊은 상처를 입고 잠에 빠져들어 향후 수백 년은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모양이다.
 ……과연 이 여자의 딸들답다. 동시에 내게도 같은 피가 흐른다는 사실이 끔찍하다.

 - 그런 이유로 내 뒤를 이을 사람은 너밖에 안 남았다. 뭐 꼭 내 딸이 아니더라도 다른 능력 있는 녀석이 있으면 뒤를 물려줄 생각이었지만, 인간이나 용종들과의 싸움에서 많이들 죽은 탓인지 쓸 만 한 것들이 안 보이더라고. 해서 나를 빼면 현재 네가 실질적인 마왕군 2인자야. 기쁘지?

 아니 하나도. 그래도 이 여자가 내 기분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지껄여준 덕분에 나 역시 양심의 가책 없이 함부로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내 대답은 변하지 않아. 난 당신의 뒤를 이을 생각 없어. 마왕군 따위 망하든지 말든지. 아니 차라리 망하면 속 시원하겠군. 최소한 내가 사는 지역이 위협당할 일은 없어질 테니까. 무조건 인간들 편만 들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내게는 인간들이 더 친숙해. 인간들의 문명을 즐기는 내 입장에선 마왕군을 응원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 음, 그럼 우리 딸이 많이 곤란해질 텐데…….

 “하! 내가 왜? 곤란한 건 당신이겠지. 이제 곧 죽을 사람이 위협해봤자 소용없어.”

 - 응? 죽는다고? 누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는 듯이 묻는 마왕. 난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의 뻥 뚫린 왼쪽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성검에 심장이 꿰뚫린 당신이 죽지 내가 죽겠어? 설마 그런 어설픈 연기로 얼버무릴 수 있다고…….”

 - 아아! 그러고 보니 오늘 한방 먹었었지! 그래서 그런 착각을 하고 있었군. 잠시만 기다려.

 마왕이 가볍게 말하며 가볍게 손을 상처로 가져가자, 파괴된 심장이 단번에 재생하며 출혈이 멎고 뚫린 가슴이 순식간에 메워졌다.
 난 경악에 표정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영웅의 성검, 센트럴 도그마에 심장이 뚫리고도 어, 어떻게……!? 그 성검은 예지계의 존재원형을 직접 파괴하는 살신殺神의 법리를 가졌어! 단지 물리적으로만 대상을 멸하는 게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세계에서 지우는 힘을 가졌다고! 초월자들조차 그 검 앞에서는…….”

 그러나 마왕은 이해하지 못하는 날 오히려 이해하지 못했다.

 -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존재하는 데 왜 세계가 필요해? 나는 나로서 존재할 뿐인데. 그걸로 충분하잖아.

 질렸다. 이 여자가 상식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던 모양이다. 대체 뭘 어떻게 실수하면 세상의 온갖 법칙을 무시하는 이런 무지막지한 존재가 튀어나올 수 있는 걸까. 이런 여자가 지금껏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았다는 게 신기하다.

 - 이봐, 딸. 그게 네가 하고 있는 두 번째 착각이야.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한 마왕의 지적. 그녀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 난 딱히 세상을 멸망시키고 싶은 게 아니야. 단지 놀고 싶은 거지. 그걸 위해 이 전쟁을 지휘하고 있는 거고. 성과는 나름 있었어. 너도 봤다시피 내가 가슴에 입은 상처……. 분명 이건 인간들에게 영웅이라 칭송 받는 그 아이가, 이번에도 무력하게 쓰러질 거라 생각한 그 아이가, 예상을 뛰어넘고 죽을 각오로 없는 힘까지 짜내 내게 입힌 상처다. 박수를 보내 마땅한 투지였고, 실제로 나도 감동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물러나 주었지.

 마왕은 모험을 꿈꾸는 어린아이처럼 두근거리는 얼굴로 오늘의 싸움을 회상했다. 하지만 그 표정은 곧 유년기의 꿈을 잃은 지친 어른의 얼굴로 변했다.

 - 동시에 깨달았다. 이게 인간들의 한계라는 것을. 인간들의 세력이 최절정기에 달했을 때, 인간들 사이에 신들의 힘을 이어받은 역대 최고의 영웅이 등장했을 때, 신들마저 죽일 수 있는 최강의 무기가 그 영웅의 손에 들어갔을 때 싸움을 걸었지만, 그래도 인간들은 날 죽일 수 없었어. 물론 용왕들이나 내 힘을 이어받은 딸들마저도. 더 이상 내가 이곳에서 지금까지 얻은 이상의 자극을 얻을 리는 없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미친 괴물이라고는 알고 있었던 이 여자가 누군지 다시 모르게 되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반쯤은 알 수 없는 공포심에 쫓기며 물음을 던졌다.

 “당신은, 대체 뭘 할 생각이야?”

 마왕은 간명하게 대답했다.

 - 떠날 거다.

 “떠, 떠난다고? 어디로?”

 아직 감정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당혹해하는 나와 대조적으로 마왕은 표표한 시선으로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 아예 이 세계를 벗어나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떠나려고. 그렇군. 우선은 초차원성검을 벼려낸 초월자들의 세계에 가볼까. 그들이라면 충분히 내 상대가 될 수 있겠지.

 초월자. 다른 이름으로는 해탈자. 또는 먼저 떠난 이들. 혹은 앞서 빛이 된 자들.
 초월자란 인류나 다른 마물들이 있기 훨씬 전, 이 지구상에 존재했다는 전설 속의 첫 번째 종족을 가리키는 말로서, 초고도문명을 이룩한 끝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신적인 존재가 되어 상위차원으로 떠났다고 전해지는 이들이다. 인간들 사이에 신神으로 숭배되는 존재가 다름 아닌 그들로서, 성검 센트럴 도그마는 과거 이들 종족이 실존했다는 역사적 증거 중 하나였다.

 “이, 이길 수 있겠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마왕은 씩 웃으며 답했다.

 - 그걸 모르겠으니까 가보려는 거야.

 다시 꿈꾸는 아이 같은 표정을 짓는 마왕. 그 얼굴에 이것저것 모든 게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든 나는 큰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초월자들이 우리랑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엄청난 재앙이겠군. 난데없이 이세계에서 침략해 오는 마왕이라니, 완전 B급 소설이잖아. 뭐 잘 알겠어. 당신이 얌전히 다른 곳으로 떠나준다면, 우리 입장에선 참 고마운 일이지. 근데 내가 왜 떠나는 당신 뒤를 이어야 하는 거지? 이제 와서 당신이 이끌던 마왕군에게 책임감이라도 느끼는 거야?”

 마왕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이상하군. 넌 내 딸들 중에선 제일 머리가 돌아가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도발 아닌 도발에 발끈한 나는 고속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

 “각 개체는 강하지만 결속력이 없는 마물들…… 루치아의 기치 아래 단단히 뭉쳤지만 심하게 쇠퇴한 인간들……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용왕들……. 그렇군. 당신이 갑자기 사라지면 싸움이 한층 격렬해질 수가 있겠어. 자칫 멈춰야 할 시기를 놓치면 이 지상의 문명은…….”

 - 사라지거나, 적어도 엄청나게 퇴보를 하겠지. 그건 곧 네가 한가롭게 여기서 책을 읽을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잠깐, 뭐야. 그러지 마. 이제 와서 무슨…… 웃기는 소릴…….”

 믿을 수 없지만 예상되는 대답을 부정하기 위해 고개를 저었지만, 마왕은 언제나 그렇듯 거리낌 없이 자기 할 말을 했다.

 - 그래, 널 위해서다.

 전에 없이 진지한, 그리고 상냥한 눈빛. 사고가 정지된 내가 침묵하는 동안 마왕은 말을 이었다.

 - 나야 이 세계에 아무런 미련이 없으니 그냥 떠나도 상관없지만, 넌 아니잖아? 너 정도의 힘이라면 설령 세상이 멸망해도 혼자 살아갈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넌 지상의 문명을 사랑하는 모양이니 기회를 주는 거야. 내 뒤를 이어 상황을 수습하라고. 이 세상 문명의 몰락을 막으라고 말이지.

 “그걸 지금, 말이라고……!”

 - 거창하게 말하자면, 마왕이 돼 세상을 지켜라. 내 친구Succubus에게 말해 뒤를 이을 준비는 다 해뒀으니 넌 그냥 수락만 하면 돼. 물론 거절하는 것도 네 자유야. 그 결과를 네가 감당할 수 있다면 말이지.

 “잠깐, 잠깐만……!”

 - 그럼 작별이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래도 난 이 세계에서 제법 즐거웠어. 그러니 너도 즐겁게 살길 바란다, 내 딸아.

 마왕은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하며,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다는 듯이 사라졌다. 붙잡을 새도 한방 먹일 새도 불평 한마디 할 새도 없이.

 “빌어먹을……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무책임한 여자……!”

 확실히 마지막까지 이 여자는 최악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딸의 마음은 더더욱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딸이 즐겁기를 바란다는 그 유언 아닌 유언만큼은 진심이었다는 것을 어쩐지 알 수 있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이미 벌어진 일에 불평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어. 해야 될 건 문제에 절망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것. 최대한 빨리 세상에서 당신의 흔적戰災들을 지우고, 평온하게 살아주겠어!”

 그렇게 난 그 여자의 뒤를 이어 마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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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8.09.10 18:5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아앗... 이 것은 마치 잔뜩 망친 조별 과제의 마무리를 떠맡은 임시 조장(전임 조장은 도망감)의 기분! ㅠ_ㅠ

    만약 제가 작중 신임 마왕의 상황이라면 인류연합군측과의 협의를 거친 후 적절하게 짜여진 판에 마왕군의 병력을 의도적으로 축차투입•축차소모시키는 과정을 통하여 마왕군의 궤멸을 유도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난 이후에는 연합군 수뇌부측과의 사법거래(?)로 다시 평화로운 독서생활 속으로 Comeback & Dive~ >_<)/


    ... 하지만 이는 단지 막연한 계획일뿐 마왕군 세력 내부에도 나름의 신임 마왕의 능력 검증과 견제 및 감시를 위한 안전장치라든가 머리 좋은 책사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을테니 쉽지는 않을테지요. 흑흑(/orz)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8.09.12 06:57 신고 address edit/delete

      다음 편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별과제... 딱 적절한 비유를 들어주신 듯-_-b 오히려 중고등학교보다 대학교에서 무책임함이 난무하는 모습은 참 안타까웠던 기억이 나요ㅠ_ㅠ


      확실히 평온을 얻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주인공인 마왕의 딸이 직접 마왕군을 내부에서부터 빠르게 붕괴시키는 것이겠지만, 말씀처럼 마왕군 수뇌부가 견제하는 것도 있고, 또 무엇보다 주인공 본인이 그런 일을 바라지 않고 있기도 하네요. 주인공은 비록 인간 쪽에 더 호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혼혈로서 나름 마물이라 불리는 다른 종족들에 대한 이해도 있는 편이라 더욱 대등한 관계에서 소강상태로 끌고 가려는 마음이 있기도 해요.

      저번 댓글에서도 살짝 말씀드린 것처럼 최대한 무겁지 않게 가려고 생각 중이기 때문에 작중에서는 이런 사정이 자세히는 나오지 않을 예정이지만,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 선에서 위와 같은 내용도 다루어 보고 싶네요^^











(작중 등장인물은 전원 여성이며 정통 판타지적인 요소는 없습니다)









■■■








00. 얼어붙은 시간


 푸른 달빛이 흩어지는 폐허.
 한때 인류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수도의 중심부도 지금은 옛 위용은 온데간데없이 형태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스러질 수밖에 없다는 쓸쓸한 진리를 체현하고 있을 따름이다.

 돌이킬 수 없는 상실. 회복할 수 없는 영광.
 지상의 모든 것을 제패하고 천상까지 길게 손을 뻗으려 했던 고귀한 인간들의 도시는, 신이 아닌 마왕의 손에 의해 그 오만을 심판받았다.

 - 모든 것은 모래로 그린 그림…… 참으로 덧없군.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혼잣말. 마치 검정 물감으로 세상을 덧칠하듯, 스스로도 진저리가 날 만큼 오싹하고 눅눅한 음색이다. 확실히 본모습을 드러낸 나는, 세상 그 어떤 인간보다도 그 여자를 닮았다. 인간들의 세상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은 그 여자를.

 “아직, 우리는 끝나지 않았다.”

 그때, 내 우울한 감상에 저항하는 금빛 목소리가 짙은 어둠絶望 속에 맑게 울려 퍼졌다. 나는 뒤를 돌아 상대를 바라보며 음미하듯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 임페리얼 루치아. 인류의 마지막이자 첫 번째 희망, 루치아 안젤리나 임페리얼 제이드.

 밤을 밝히듯 춤추는 화려한 금색 머리카락. 불처럼 강렬하면서도 얼음 같은 침착함을 내포한 짙은 녹색 눈동자. 초연의 내음이 깊숙이 스며든 붉은 제복이 권위 있는 여왕처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그녀Lucia는, 실제로 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직위에 앉아 있었다.

 인류연합 최고대표. 인류군 총사령관.
 역대 그 어떤 권력자도 동시에 가져본 적이 없는 최고 권력을 양손에 쥐고 있는 루치아 임페리얼. 하지만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지금 그녀가 앉은 자리를 탐내거나 부러워하진 않으리라.

 “그야 그렇겠지. 너희들 마왕군의 공격에…… 아니, 마왕 이클립스의 힘에 유린당한 탓에 인류의 세력권은 절반 이상 축소되고 말았으니까. 패전의 책임에선 누구나 도망치고 싶어 하지.”

 내가 삼키고 있던 말을 눈치 챈 걸까. 루치아는 씁쓸하게 웃으며, 하지만 눈빛에는 확실한 분노를 담아 날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용기 있는 자들은 일찍이 다 죽었다. 다름 아닌 네놈들의 손에. 남은 건, 나 같이 어둠에 벌벌 떨며 간신히 서 있는 게 고작인 잔챙이들뿐. 아주 통쾌하겠군. 인간을 먹이로밖에 보지 않는 너희 마물 놈들에게는.”

 과소평가다. 어처구니없을 만큼 지나친 자기비하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힘 있고 의무 있는 자들부터 도망친 최악의 상황에서도 무릎 꿇은 사람들을 독려하고 규합해 마왕군과 호각으로 맞선 그녀Lucia를 누가 비웃을 수 있을까. 아마 그녀 본인은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난 그녀야말로 진정한 인간들의 왕이라 생각한다. 그런 그녀를 조소하는 것은, 설령 그 본인이라도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입장상 난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밝힐 수는 없었다. 대신 난 한껏 폼을 잡으며 상대를 내려다보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 그런 것치곤 제법 배짱 있는 인간이군. 내 손짓 한 번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약하고 미약하고 허약한 존재가, 겁도 없이 홀로 나와의 회담에 응하다니. 대담한 용기일까 아니면 단순한 만용일까. 어느 쪽인지 심히 궁금한데.

 떠보는 내 물음에 루치아의 입가가 살짝 비틀렸다.

 “미안하지만, 난 혼자가 아니야.”

 쿵.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떨어지듯 착지한 백은의 기사. 빈틈없이 갑옷으로 온몸을 감싼 하얀 영웅은 말없이 오색으로 찬란히 빛나는 검을 날 향해 겨누었다.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난 모른 척하며 입을 열었다.

 - 그렇군. ‘선대’ 마왕의 심장을 꿰뚫은 초차원 성검…… 인류의 마지막이자 두 번째 희망인 반신demigod의 영웅이 함께라면 내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겠어.

 루치아가 인류의 정신적 지주라면, 이 백은의 기사는 물리적 지주.
 성검에게 선택 받은 영웅은 인류군이 무참히 패주하는 상황에서도 단신으로 마물들의 공세에 맞서 몇몇 도시들을 지켜냈다. 그 모습에서 다시금 희망을 찾고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루치아와 함께 그 기사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

 말없이 노려보는 시선. 투구로 얼굴은 가려도 살기까지 감출 수는 없다.
 루치아는 그 무구한 살의의 대변자가 되어 입을 열었다.

 “경솔했군. 이런 자리에 어떤 대비도 없이 혼자 나오다니. 마왕이 죽은 지금, 구심점인 너마저 사라지면 마왕군은 더 이상 세력을 유지할 수 없다. 급속도로 붕괴하고 말테지. 너희 마물들은 ‘왕’없이는 절대 뭉치지 못하는 존재. 아무리 각 개체가 강하다 해도, 그것만으로 ‘인류’는 이길 수 없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정확한 지적. 지상을 지배하고 있던 인류문명을 붕괴직전까지 몰아넣은 이 악마 놈들이 얼마나 구제불능의 멍청이들인지는, 어떤 인간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애초에 내 몸에 흐르는 피의 절반은 그들과 같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도 난 입장상 그 말을 가만히 수긍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 글쎄, 그대라는 지도자가 없어지면 무너져 내리는 건 인간도 똑같지 않나? 오지 않을 구원자를 고대하며 발걸음을 멈추고, 누군가 이끌어주기를 기다리며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들의 종족적 특성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물론 그 또한 인간의 나약한 일면이지. 하지만 사람에게는 그 나약함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강함이 있다. 설령 내가 이 자리에서 네 손에 죽는다 해도 결코 우리人間는 멈추지 않아. 다면성을 갖지 못하는 너희 악마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미래에 대한 신뢰로 강하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 사람을 향한 찬가를 노래하듯 선율과도 닮은 그녀Lucia의 목소리에 난 그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지금의 난, 싫어도 악마들을 대변해야만 하니까.

 - 시험해볼까. 정말 그대를 죽여도 인간들이 절망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지를.

 눈을 가늘게 뜨고 힘을 아주 조금만 발산한다.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 상대를 죽이지 않도록 조심하며. 그럼에도 이 일대는 폭풍이라도 휘몰아친 것처럼 폐허의 잔해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역시 이 모습으로 힘을 조절하는 것은 어렵다.

 “이건, 교섭결렬의 의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아니면 달리 해명할 말이 있나?”

 다행히 먼지가 걷힌 후 모습을 드러낸 루치아는 멀쩡했다. 백은의 기사가 성심력을 펼쳐 내 마력방출을 중화시킨 것이다. 난 내심 안도하며, 동시에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 한층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과연 인간들의 영웅님. 이 정도는 문제없이 막아내는군. ‘마왕을 쓰러뜨릴 때 입은 상처’가 아직 남아 있다 해도.

 「……!」

 덜그럭. 짧지만 강렬한 동요. 하얀 기사는 아직 루치아만큼 능숙하게 마음을 다스리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뭐 잘 숨겼어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내게는 무의미한 일이었겠지만.
 난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인 하얀 영웅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 잠깐 기다려.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죽을 각오로 자살특공을 하겠다」는 생각은 버려라. 모든 일이든 서두르고 보는 건 짧은 시간밖에 살지 못하는 인간들의 좋지 않은 습성이지. 비록 그것이 때로는 신들조차 예상치 못한 위업을 달성하는 경우가 있다 해도. 뭐 좋다. 방금 질문에 대답해주마. 난 교섭결렬의 뜻으로 내 힘을 너희에게 보인 게 아니야. 단지 말 그대로 너희들을 시험해 봤을 뿐이다. 너희들이 날 ‘교섭이 가능한 상대’인지 가늠해 보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처럼.

 루치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녀Lucia는 손을 들어 기사의 성검을 내리게 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좀 더 생각을 들려주면 고맙겠군.”

 이제부터가 진짜 승부. 난 미리 준비된 대답을 꺼냈다.

 - 그대의 말마따나 스스로의 힘에 취해 쉽게 통솔되지 않는 우리惡魔는, ‘왕’없이 오래 결속을 유지할 수 없다. 내가 분발해봤자 선왕처럼 무리를 규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겠지. 내게는 그만한 지도력charisma이 없으니까. 분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들이 다시 유리해질 것이라는 그대의 예측은 크게 빗나가지 않을 거다. 하지만…….

 난 루치아의 맑은 녹색 눈동자를 위안 삼아 내키지 않은 말을 이었다.

 - 고작 우두머리를 잃는 정도로 한번 결집한 세력이 하루아침에 쉽게 무너지지도 않지. 설령 너희가 이 자리에서 날 죽이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마왕군이 당장 해체되는 기적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 오히려 일시적으로나마 마왕군 전체가 고무될 가능성마저 있다. ‘비겁한 수’에 선왕의 후임자가 암살당했다고 말이야. 우리 쪽에도 그 정도 기교를 부릴 책사 한둘쯤은 있으니까. 그런 상황이라면…….

 고맙게도 다음 말은 루치아가 대신 받아 이어주었다.

 “싸움은 한층 격렬해지는 동시에 교착상태로 접어들겠지. 마왕군이 당장 붕괴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로, 쇠락할 대로 쇠락한 인류 또한 당장 강성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거기에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용왕들이 개입이라도 하는 날에는…….”

 - 양쪽 모두 극심한 피해를 입을 테지. 운 나쁘면 사이좋게 공멸일 테고, 운 좋게 어느 한쪽이 이긴다 해도 상처뿐인 승리 그 이상 이하도 아닐 터. 더 이상 우리가 전쟁을 벌여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내 결론을 들은 루치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 생각과 비슷하군. 다행이야. 그쪽이 마왕과 달리 말이 통하는 상대라서. 죽은 마왕과는…… 일전에 딱 한번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도저히 교섭이 가능한 상대가 아니었다. 혹시나 비슷한 성향일까 걱정했지만 그저 기우에 불과했던 모양이군.”

 음. 이해한다. 확실히 어떤 대단한 화술을 지닌 인간이라도 그 여자와 무언가 교섭을 한다는 건 불가능했으리라. 기본적으로 그 여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밖에 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는 자기가 좋아하는 얘기밖에 하지 않고.

 “하지만, 과연 우리에게 교섭이 가능할까. 서로에게 타협의 여지가 있을까. 인류는 이미 너무나도 많은 희생을 치렀다. 마왕군의 공세에 멸망한 나라만 열셋, 파괴된 도시는 수천을 헤아린다.”

 웃음기도 잠시. 루치아의 얼굴에 다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여기엔 나도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너희 인간들이 도시를 세우기 위해 불태운 숲은 본래 누구의 것이었나? 너희들이 악마나 마물 등으로 뭉뚱그려 부르는 숲의 주민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이번 마왕군과의 전쟁에서 죽은 이들은, 공식적으로 사망이 확인된 자만 1억 명에 가깝다. 너희들은 너무 죽였어. 전쟁터의 병사들뿐만 아니라 민간인, 병자, 갓난아기까지 가리지 않고 전부 학살했지.”

 - 인간들이 지상의 패권을 쥔 이후 희생시킨 다른 존재들은 셈하지 않나? 보기에 멋지다고, 연금술에 도움이 된다고, 심지어는 맛있다고…… 너희들은 탐욕스럽게 인간 이외의 다른 종족들을 죽이고 범하고 사육하고 멸종시켰지. 이제는 지상에 단 한 마리밖에 남지 않은 일각수의 비극은, 결코 인간들의 유일한 죄악이 아니다.

 교차하는 시선과 시선. 충돌하는 주장과 주장. 이대로는 아무리 말을 나누고 또 나누어도 양자 간의 간극을 좁힐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입을 열면 열수록 앙금은 커지고 골은 깊어져만 갈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Lucia와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 그대와 나는, 우리와 너희는, 결코 타협할 수 없다.

 “우리가 서로 손을 잡기에는, 그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죽음이 가로막고 있다.”

 - 하지만 타협이란, 바로 타협할 수 없는 걸 타협하기 위해 하는 것이지.

 언젠가 들은 문장가의 말을 입에 담은 순간,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럼 협상을 시작해볼까, 마왕의 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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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8.08.24 14:0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와이, 와아아~ 안단테님의 신작이다요! >_<


    흡사 은세계의 은월을 떠올리게끔 하는 머나먼 미래의 포스트아포칼립스적 풍광에, 마왕용사의 첫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산뜻함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는 것 같아 다시금 시선이 가네요.

    수많은 부조리와 참상의 연쇄 끝에 비로소 도달하게 된 화합으로의 길,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너무나도 많은 피해 앞에 벌어지고 곪아버린 서로의 물리적 상처와 심리적 거리감이 크나큰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 아닐까 해요.

    수많은 서브컬쳐계 창작물의 이야기 속 세력간의 대립이 그러했고, 현실의 한반도를 포함한 분단국가들의 현실이 그러하듯이...


    ... 하지만 중요한건 이게 아니라(?) 신작의 향후 전개가 기대된다는겁니다 +_+ 므흐흐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8.08.25 18:04 신고 address edit/delete

      이번에도 눈을 두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마왕과 용사가 실은 협력관계에 있다는 유명한 장르의 힘을 빌린다면 부족함이 많은 제 글에도 조금은 재미있는 요소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쓰고 보니 의외로 크게 변한 게 없는 것 같아 살짝 좌절하기도 했네요^^;; 그래도 다른 실력 있는 분들이 앞서 다져 놓은 장르의 힘을 믿고 시간 날 때마다 천천히 이야기를 진행시킬 생각이에요.


      말씀처럼 치열하게 대립하던 두 세력이 서로 화해하고 협력의 길에 도달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고, 현실에서는 오히려 그 시도가 좌절되는 경우가 압도적이지요.

      사실 이번 소설은 코미디(...)를 예정하고 있어 그런 암울하고 복잡한 배경에 대해 자세하게 다룰 예정은 없지만, 그래도 이른바 세상의 정의나 평화를 추구하는 데 있어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작중에서 조금이라도 표현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면, 제가 쓰는 글에도 얼마간 의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럼 다시 한번 읽어주신 데 감사의 말씀드리며, 좋은 하루되시길 바라요!










※ 내용누설/네타바레/스포일러 주의!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간략한 감상입니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잡담에 불과한 내용이니
유용한 정보가 없어도 양해 부탁드려요^^;;











 드디어 3번째 이야기 돌입. VITA판의 발매시기는 계절과도 딱 맞아떨어져 한층 좋았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에서 가장 화려한 외모의 두 사람과 활달한 쌍둥이 캐릭터가 조명이 되는 이야기인 만큼 전부터 여러모로 기대가 많이 되었네요.




 여전히 미려한 일러스트와 다양한 고전 인용, 그리고 가벼운 추리요소가 적당히 개성 있는 등장 인물들과 함께 백합 장르와 어우러져 제법 좋은 맛을 내는 작품이라 생각해요. 다만, 바꿔 말하자면 이중 한 요소만 결락된다 해도 선뜻 손이 가지 않을, 다소 애매한 구석이 많은 것도 사실이네요.



 실제로 그 단점이 첫 번째 시리즈인 봄편에서 가장 두드러졌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짜증이 느껴질 만큼 꽤 소심한 주인공과 다소 고리타분한 히로인들이 솔직히 좀 지루했었네요. 더욱이 백합 장르를 표방하면서도 동성애를 금기시한다거나, 여자끼리의 사랑은 학교 안에서만 허용되는 '한때의 감정'이라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도 마이너스였어요.

 물론 어떻게 보면 그런 묘사가 '현실적'이라 할 수는 있겠지만, 애당초 이런 작품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그런 현실을 '거부'하거나, '바꾸고' 싶은 마음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최근 백합 장르에서는 여자끼리의 사랑은 '당연시'되며, 법률개정으로 결혼은 물론, 나아가 (마법이나 과학의 힘을 빌려) 서로 아이를 가진다는 농후한 전개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거의 10년 전 감각으로 이제 와서 여자끼리의 사랑을 금기시하는 설정은 전보다 한층 팬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들지 않나 싶더군요.

 심지어 (비록 후속작을 예견하고 있긴 했지만) 트루엔딩에서는 맺어지는 상대가 돌연 학교를 떠나버린다는 비극적인 결말로 막을 내리기 때문에 일웹에서도 꽤 안 좋은 평을 눈에 둔 적이 있네요. 저도 그런 요소 때문에 그냥 돈 버렸다 생각하고 이만 접으려고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두 번째 시리즈인 여름편에서 부정적인 면을 상당 부분 쇄신! 다리에 장애를 앓는 냉소적인 또 다른 주인공 소녀와 한때 예능계에서 활동하다 모종의 이유로 그만두고 전학을 온 새로운 소녀의 만남을 참 매력적으로 그려냈더군요.

 성격이 둘 다 모질다 보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으르렁거리던 두 사람이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는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었네요. 웹에서의 비판을 의식했는지,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시각도 전에 비하면 꽤 많이 줄어들었고요.



 그리고 3번째 이야기... 현재까지 진행한 부분에 의하면 전편에 비해 크게 나빠진 점은 없는 듯싶어요. 다만, 시나리오를 쓰신 분이 나이가 많은지 여자끼리의 사랑을 종종 고전적인 '남녀 관계'에 비추어 풀어내려는 시각이 다소 아쉽긴 하네요. 그래도 백합 장르를 왜곡할 만큼 크게 문제가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나저나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들이 전면에 나와 즐겁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겨울편이 좀 걱정되는 면이 있네요. 이제 재미있는 등장인물들은 다 소모(?)해 다시 봄편의 그 지루한 감각으로 돌아가는 건 아닌지 하고 말이죠. 부디 여름편처럼 매력 있는 새로운 캐릭터라도 투입해 재미를 살리는 동시에 확실한 해피엔딩, 혹은 해피엔딩이 아니더라도 동성애를 부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마무리를 잘 지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아무튼 구입 기념으로 오프닝 무비~




雨が静かに この場所包み込んで
고요히 이 장소를 감싸는 빗소리에
少し冷たく 並ぶ足音
조금은 차갑게 섞여 들리는 발소리
(きらきら 奏で 重ね 寄り道 ほんの少し)
(반짝반짝 연주하듯 겹치네 아주 조금 한 눈을 팔듯)


流される雲が いま 消えかけてる
흘러가는 구름이 지금 사라지려 해
覗いた太陽 そっと 描く
훔쳐 본 태양을 살며시 그리네

七色の橋を越えて行く 手を繋いで 顔を上げて 明日へ
무지갯빛 다리를 건너서 가자 손을 잡고 얼굴을 들어 내일로
(Ah 行こう彼方 明日へと)
(Ah 가자 저편으로 내일을 향해)


虹の魔法 叶えられる 悔やまないで歩こう
무지개의 마법 이룰 수 있어 후회하지 말고 가자
(さあ この 魔法)
(자 이 마법을)


いまは遠く儚い夢も 信じている掴める日が来ることを
지금은 멀고도 덧없는 꿈을 믿고 있어 붙잡을 날이 온다는 것을
(Ah 夢も いつか Ah Ah)
(Ah 꿈도 언젠가 Ah Ah)


この胸に 刻み込んで誓う 虹色の願い
이 가슴에 새겨진 맹세 무지갯빛 맹세
(見て 虹の空)
(봐 무지개 뜬 하늘을)

(きらきら 咲く虹 きらきら きらきら)
(반짝반짝 피어난 무지개 반짝반짝 반짝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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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누설/네타바레/스포일러 주의!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간략한 감상입니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잡담에 불과한 내용이니
유용한 정보가 없어도 양해 부탁드려요^^;;










실은 이미 작년에 발매되자마자 구입한 후
열심히 플레이하다 결말을 보기 아깝다(...)는 이유로
마지막 보스 앞에서 계속 미루고 있었네요^^;;

하지만 저번 주말에 큰 마음 먹고 이제야 클리어~

개인적으로는 내용도 캐릭터도 게임성도
그리고 백합 요소도 전부 만족스러웠어요! >.<


우선 내용면에서는 아주 거칠게 정리하자면,
「생태학자와 개발론자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을 듯^^;;

만물의 성질을 무시하고 자연을 희생시키는 대신
재료에 구애 받지 않고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근절의 연금술에
맞서는 것이 후반부 스토리의 큰 흐름이라 할 수가 있네요.


캐릭터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들 맑고 유쾌하면서도
그것이 자연스러운 느낌이라 굉장히 편안히 다가왔어요.
개인적으로는 왠지 페르소나 4의 주인공 일행이 생각나기도^^;;

다만, 바꿔 말하자면 악역까지 포함해 진짜 '나쁜 인물'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스토리와 관련해서
이 부분은 심심하게 느끼시는 분도 있을 것 같네요.


게임성 부분은 제가 일가견이 없어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전반적으로 저와 같은 라이트 유저도 꽤 배려해 준 것 같아요.

다만, 조합 부분은 전에 플레이했던 메루루의 아틀리에에 비하면
퍼즐 요소가 도입돼 좀 더 어려워진 듯도 싶은데, 또 그것이 맞추는
재미가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것저것 조합하며 놀았어요^^;;


백합 요소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겠지만,
제 주관적인 감상은 완전히 백합 게임이었네요>.<

또 한 명의 주인공인 플라흐타와의 강한 유대 관계는 물론,


이처럼 마을의 유명 웨이트리스 소녀와 여자끼리
'첫 데이트'를 하는 이벤트까지 있을 정도이니~

'밤이 없는 나라'에 이어 '소피의 아틀리에'에서도
이렇게까지 해주다니, 정말 기뻤네요>.<



아무튼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으며 앞으로도 줄곧
많은 이를 행복하게 하는 연금술을 함께 추구하자고 다짐하는 두 사람으로 대단원~
(올해 제 안의 베스트 커플상은 벌써 정해졌...)


언제나처럼 즐거운 시간을 줘서 정말 고마워요, GUST!





.........
......
...

[소피의 아틀리에 프로모션 영상]



새로운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자아진다.

[소피의 아틀리에 ~ 신비한 책의 연금술사 ~]

의욕도 120%의 마을 아가씨
소피 노이엔뮐러

“괜찮다니까! 맡겨 줘!”

한편의 책과 가지는 신비한 만남

기억을 잃은 하드커버
플라흐타

“예. 잘 부탁드려요, 소피.”

그리고 그녀들은 성장한다.

한 사람은 연금술에 소원을 바라고,
다른 한 사람은 연금술의 모든 것을 바랐다.

연금술을 배우고, 소원을 바라는 연금술재생RPG

슬슬 세계를 구하는 이야기도 질렸다.

“소피의 아틀리에 ~ 신비한 책의 연금술사 ~ 프리미엄 박스도 동시발매.”



[소피의 아틀리에 오프닝 영상]



ひとりで悩んでた夢の探し方
나 홀로 고민하던 꿈을 찾는 길
あなたは分かるかな
당신이라면 알 수 있을까
ねえ、わたし何を叶えたいの?
저기, 난 무엇을 이루고 싶은 걸까?

(答えはどこにあるの?)
(답은 어디에 있는 거야?)

見つけたい——
찾아내고 싶어——
(一緒に探してほしい)
(나와 함께 찾아 주었으면 해)


一から始めるよ
처음부터 시작하자

ぐるぐるっと釜を混ぜたら
빙글빙글 가마솥을 휘저으면
うまれる知らない知識
태어나는 알지 못하는 지식
まっしろなページ手繰って
새하얀 페이지를 더듬으며
ひとつずつ大切に綴ろう
하나하나 소중히 적어가자

紡いだレシピの分だけ
자아낸 레시피의 수만큼
(きっと)わたしは知る
(분명) 난 알게 되겠지
探さなくてもここにある
다른 곳에서 찾지 않아도 여기에 있는
夢のかたちを
꿈의 형태를

Lalala…夢を歌おう
Lalala…꿈을 노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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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6.05.03 01:4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음음, 무릇 누구나 자신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어떠한 훌륭한 작품일수록 그 향유의 끝에 기다리고 있을 필연적 고별의 순간을 최대한 유예하고 싶어하기 마련인 것 같아요.

    또한 그만큼이나 좋아했던 그 무엇인가이기에, 두번 다시는 맛보기 힘들 감동의 순간이 지나간 직후 찾아올 아련한 그리움과 가슴 속 어딘가에 남아버릴 한조각의 공허감 역시...

    비록 세간에서 종종 언급되는 번아웃 신드롬만큼의 부정적 요소는 아니겠지만, 그러한 이유들 때문에 이를테면 맛있는 음식일수록 천천히 음미하게 된다거나 흥미있는 전개의 추리 소설을 하루 몇페이지씩 나누어 읽게 되는 모양이예요. 후후 :D

    덧 - 이번에도 따스한 분위기가 한가득!! >_<) 더불어, 작 중의 주요 등장 인물 중 그 본성 자체가 악한 사람은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획 상의 안배에도 자꾸만 시선이 가네요~ +_+)b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6.05.03 09:44 신고 address edit/delete

      예, 정말 맛있는 음식을 아껴먹는 심리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말씀처럼 좋아하는 작품을 '완료'했을 때의, 더 이상 그 즐거운 시간도 끝이라는 아쉬움 또한 마지막을 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인 듯싶어요. 문득 기동전함 나데시코에서 작중 인기만화의 최종화 감상을 오랫동안 미루었던 주인공의 심정이 이해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끝을 아쉬워할 만한, '내 마음에 쏙 드는 작품'과 만났다는 사실은 굉장히 기뻐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작품일수록 끝까지 함께 해야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겠지요.

      ...사실 몇 달이나 미루던 작품을 갑자기 클리어하게 된 것도 평소보다 조금 몸 상태가 안 좋아지자 '이러다 결말도 못 보고 죽는 거 아냐?' 같은 심히 엄살스러운 생각에 다시 진행을 하게 되었네요^^;;

      아무튼 역시 끝이 아쉽긴 하지만, 그런 '끝이 아쉬울 수 있는 작품'과 더 많이 만나고 싶은 마음이에요~>.<


      덧. 일상물이나 치유물이라 불리는 작품에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것처럼 역시 그런 부담없이 편안한 요소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평가가 많이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인 듯싶어요. 제 경우는 독毒이 잔뜩 들어간 자극적인 작품도 좋아하지만, 이런 왕도적으로 맑은 작품도 매력적이라 생각해요>.<

  2. Favicon of https://ylived.tistory.com BlogIcon 의지수 2016.05.26 07:3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프로모션 영상을 보니 아틀리에 시리즈가 참 많이 나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신비한 연금술의 세계가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예전에 에리의 아틀리에를 해보다가 말았었는데 시리즈 소식은 계속 보고 있습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6.05.30 20:40 신고 address edit/delete

      예전부터 쭉 계속되는 시리즈이다 보니 역사가 쌓였다는 느낌이지요^^

      전 의지수 님과는 반대로 전부터 이름은 들어 왔지만 직접 플레이해 본 적은 없다가, 비교적 최근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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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순혈'이라 불리는, 처음부터 흡혈귀였던 존재.

대략 천 년의 세월을 살아 왔으며 여러 이름이 있으나,
현재는 '엘리자베스'란 개체명으로 통하고 있음.

흡혈귀 중에서도 피의 농도가 매우 짙어 세계적으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강함을 지니고 있지만, 그다지 공격적인 성격은 아닌 탓에
교단에서 자체적으로 측정한 위험도는 10순위 안팎에 불과.

그러나 엘리자베스 본인은 조용히 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저평가에 기뻐하며 될 수 있으면 교단을 비롯한
다른 세력들도 더욱 자신을 무시해 주기를 바라고 있음(...)

평소 힘을 억제하고 있을 때는 금발이지만, 힘을 발휘할수록
머리카락이 점점 붉게 변하다 최고조에 이르면 완전히 흑발로 변색.

본인은 자각이 없지만, 혈속으로 삼는 인간은 전부 자기 취향(...)인 여성뿐.

그렇기에 첫사랑은 첫 번째 혈속인 옥타비아라 할 수 있지만,
워낙 연애감정에 둔한 탓에 자각하기도 전에 끝나 버렸음.

율리아나에게는 한때 정체를 숨기고 시골 마을에서 함께 생활할 때의
추억이 있어 마치 여동생을 대할 때와 같은 친애의 감정을 가지고 있음.
그것이 앞으로 사랑으로 발전할지는 미지수.

...물론 주인공 소녀 또한 무의식적으로 마음에 들어 혈속으로
되살린 만큼 자칫하면 차후 수라장 전개가 펼쳐질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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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6.04.16 23:1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평상시 기품이 넘치는 금발의 모습도 좋지만, 이러한 흑발의 면모 또한 그 진중한 분위기의 존재감이 한층 깊이를 더하는 느낌이라 훨씬 매력적인걸요! >_<)

    ... 하지만 역시나 저러한 초강력 연애 자석(...) 급의 표상 아래에 장승이나 돌하르방조차 한수 접어줄 정도의 둔감함이 자리잡고 있다니;;;

    과, 과연 이번의 순환 주기에서는 새로운 변환점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힘내라 토리!)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6.04.19 07:30 신고 address edit/delete

      나쁘지 않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사실 금발인 모습도 그리고 싶었지만, 금발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제대로 습득하지 못해 그냥 검게 칠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예전의 그림들을 보면 조금은 나아진 것 같다는 착각이 들 때도 있지만, 역시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압도적으로 많아 그림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ㅠ_ㅠ (그렇다고 글이 쉽다는 것도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얀데레와 마찬가지로 개그 요소로서의 '둔감' 속성은 꽤 좋아하는 편이에요~ 다만 그것이 시리어스 파트에서 발휘되면 보는 사람 복장 터져 죽는 발암 요소가 된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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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평범한 시골 처녀였으나 모종의 일로 각성해
교단 굴지의 악마퇴치사이자 단 둘뿐인 권능행사자 중 한 명이 됨.

'사상장악事象掌握'이라는 광기와 특수제작된 경전을 통해
일종의 창조를 행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음.

그러한 능력과 실적을 인정 받아 교단에서는 '성녀'로 불리고 있으나,
정작 본인은 절대자와 그 신앙에 대해 이른바 '악의 문제'에
해당하는 이유 등으로 심한 회의를 품고 있음.


그녀가 가진 의문을 대충 정리하자면...

『교리에선 절대선이자 전지전능한 유일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고 '예정조화'에 따라
다스리고 있다고 하는데, 왜 세상에는 온갖 고통과 비탄 등이 존재하는가.』

『유일신이 진정 선하고 모든 것의 처음이자 끝인 존재라면
'당연히' 세상에는 악 자체가 없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악이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연유하는 것이라면,
왜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는가?』

『모든 것의 '근원'이자 '창조주'인 존재가 부여한 자유의지에서
악이 발생했다면, 당연히 그 신도 절대선이라 부를 수는 없지 않을까?』

『게다가 교리에 의하면 악행을 저지른 죄인은 지옥에서 벌을 받는다고 하는데,
나쁜 짓을 저지르면 벌을 준다는 구조 자체가 과연 '자유'라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여기에 어떤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발현되는 악은 신의 뜻이 아니라고도 하는데,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연유하는 악성은 전지전능한 신의 예정조화마저 초월하는,
더욱 굉장한 무언가라는 말인가? 그럼에도 그런 신을 전지전능한 존재라 볼 수 있는 걸까?』

『또한 하다못해 인간이 만드는 '온라인 게임'에서조차 '살인(PK) 금지 구역' 등을
설정할 수가 있는데, '전지전능'하다는 절대자는 왜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가?』

『최소한 무력한 '어린아이'만큼은 죽거나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지 않도록
'세계의 법칙'으로서 설정해 보호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왜 하지 않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애초에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능력 부족이거나,
심지어 인간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변덕스럽고 잔혹한 악신惡神이지 않을까?』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전지전능하지도 절대선도 아니거나,
심지어 악할 수도 있는 존재를 왜 신앙해야 하는가?』

『반대로 유일신이 진정 실재하고 전지전능하며 절대선이라면,
그 부족한 것 없는 '완벽한 존재'가 왜 굳이 삼류 졸부나 권력자들처럼
자기 피조물들이 떠받들어주고 칭송해 주기를 원한단 말인가?』

『결국 그 신앙심이란 건 가설 속의 절대자가 원하는 게 아니라
그 절대자의 대리인을 자칭하는 교단과 성직자들이 자신들에게
민중과 세속권력을 복종시키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나?』

...등등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누구도 그녀에게
납득할 만한 대답을 주는데 성공한 적은 없음.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작중 율리아나는 교단의 교리를
삼류 소설보다 못한 설정구멍(...) 투성이로 보고 있음.


그밖에 작중 엘리자베스에게 실은 연심을 품고 있지만, 자신의 지위나
과거에 있었던 일 등으로 솔직하게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있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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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6.04.14 21:3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그, 그렇군요! 무릇 만인이 경외하고 또한 사랑해마지 않는 십자 죄인의 성녀 직위 조차도 실상 그녀 자신에게 있어서는 실상 덕질(...)의 연장선상이자 유일한 정인에게로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니...

    과연 이 사실을 베르나르도 신부가 알게 된다면 그는 과연 어떠한 표정을 짓게 될까요.

    아무튼 저렇게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아이를 무려 수백 년 동안이나 울린 엘리자베스가 무조건 잘못 한거예요!!! `ㅂ' ( ...무엇인가 논점이 어긋나 있어!! )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6.04.15 23:22 신고 address edit/delete

      전작의 베르나르도 신부는 의외로 크게 신경 쓰지 않을지도...

      그의 경우는 어릴 적 악마에게 고아원 식구들이 몰살 당한 것에 대한 트라우마 및 복수심과 유일하게 남은 여동생과도 같은 존재인 '파티마의 눈(또 다른 성녀)'을 지키겠다는 무의식적인 보호본능으로, 인간사회(+교단)에 해가 되는 존재라면 마물이든 인간이든 거의 병적으로 제거하고 보는 주의이기 때문에 아마 남 말할 처지는 아닐 듯싶어요^^;;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를 제거할 수만 있다면 동기나 이유 같은 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일종의 전투광인 데다, 처음 컨셉도 '신을 믿지 않는 사제'였으니(...)


      ...아무튼 엘리자베스의 둔감이 나쁘다는 것에 백번 동의! <-
      (율리아나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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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제국(로마)의 재건을 꿈으로 삼고 있던 귀족 영애 출신으로
주인공 소녀를 제외하면, 엘리자베스의 마지막 남은 혈속.

아직 귀족주의적인 성향을 버리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수백 년 동안 변화되는 시대를 지켜보며 결국은 자신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있기에 오히려 더욱 괴로워하고 있는 인물.

본인의 재능과 흡혈귀의 특성을 이용해 오랜 세월 인간사회 뒤편에서
암약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한 정계에의 영향력과 재력을 가지고 있음.

다소 어려 보이는 외모 탓에 부하들 앞에서는 위엄을 주기 위해
시가를 태우기도 하나, 실제로는 담배 연기를 매우 싫어함.

진짜 좋아하는 것은 단것으로 흡혈귀의 특성 덕분에 아무리 먹어도 살찌지 않음에도부러워
'자제심'을 잃지 않기 위해 항상 적당량만 섭취할 정도로 의지가 강한 성격.

다만, 같이 꿈을 추구하던 연인 옥타비아가 죽은 뒤에는
실의에 빠져 모든 활동을 접고 은거에 들어감.

본편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본거지에는 카린을
열렬히 추종하는 비서이자 시녀가 한 명 있음.

카린이 활동을 접고도 아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 시녀가
주인의 부재 중에도 줄곧 대리인 역할을 해준 덕분도 적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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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6.04.12 20:2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무릇 불세출의 영웅 뒤에는 항상 그를 지탱하는 우수한 참모가 함께 하는 법.

    어쩌면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시대의 풍광 속에서도 그녀가 마지막의 마지막 긍지를 잃지 않음은, 다름아닌 그녀의 헌신과 희생 덕분이었던 것은 아닐까요.

    아아... 그나저나 짧게는 수백년에서 길게는 수천년에 가까운 여정을 단 하나의 비원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감내할 정도의 열정을 지닌 카린의 마음이, 이제는 다시금 일편단심의 연정으로 바뀌어버리고 말았으니 과연 토리는 그 메가데레의 후폭풍을 어찌 수습할는지 ;ㅁ;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6.04.14 13:39 신고 address edit/delete

      많은 경우 현실은 시궁창이긴 하지만, 최소한 작품 속에서는 우수한 인물을 보좌하는 뛰어난 부관의 존재도 참 매력적인 인간관계로 다가오지 않나 싶어요>.<

      그 시녀의 경우는 이런저런 일로 고통 받는 처지에 있다가 카린에게 구원 받은 케이스라 할 수 있는데, 주인의 연인인 옥타비아 또한 인정하고 있었기에 그동안은 몸을 빼고 있었네요.

      ...하지만 과연 도토리의 존재는 인정할 수 있을지(...) 이야기가 계속된다면, 아마 주인의 마음을 차지한 주인공 소녀를 못 마땅하게 여겨 얀데레적인 제재에 나서는 등, 실로 라이트 노벨틱한 전개가 펼쳐지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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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설정의 다미는 얀데레(...)

실은 도토리를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더욱 속박시키기 위해
일부러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척을 한다거나 하는 악녀 캐릭터였네요.

나중에는 광기 '심애深愛'를 발동해 흡혈귀와도 식칼로 호각으로
싸우는 전개까지 생각했다가 너무 바보 같아서(...) 싹 뜯어 고쳤어요^^;;

개인적으로는 나중에 4컷 만화 등을 그리게 된다면
개그 요소로서 한 번 다시 집어넣고 싶은 설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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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6.04.11 09:2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역시 얀데레의 왕도는 식칼! >_< (으아니 잇살람이)

    거기에다 세간에서 일명 '바보털' 로 불리는 더듬이 머리 속성마저 지니고 있다니 표변한 이후의 모습이 정말 무서울 것 같아요. ;ㅁ;

    음음, 만약 다미가 원안 그대로 갔더라면 토리는 지켜지는 공주님 포지션이었을지도?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6.04.12 10:20 신고 address edit/delete

      '식칼'은 일상에서 매우 친숙한 도구이자 엄연한 흉기로서 그 위력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으니, 극단적인 애증극에 무엇보다 잘 어울리는 소품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한때 유명했던 모 시나리오 라이터의 지적처럼 얀데레 캐릭터는 별 이유도 없이 인기 있는 하렘물의 주인공과 같이 안이하게 독자에게 대리만족감을 줄 뿐인 부정적인 발상이라는 비판도 분명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임팩트가 강렬한 만큼 쓰기에 따라 작품의 재미나 긴장감을 배가 시킬 수 있는 매력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개그 요소로써의 얀데레 속성은 좋아하는 편이에요^^;;










※ 심미안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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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체구에 이름이 다소(?) 이상하다는 것 외에는 평범한 여고생이었지만,
우연히 괴물들의 싸움에 휘말린 것을 계기로 흡혈귀가 된 작중 주인공.

본래 초기 설정에서는 '싸움을 매우 잘 하는 깡패 여고생'이라는 노선도
생각하고 있었지만, 세계 제일의 실력자들 틈바구니 속에서 그깟 싸움 실력
조금 있는 건 크게 살리기 힘든 특성일 듯싶어 아예 빼게 되었어요.

그에 더해 모 철혈 건담처럼 '미화시켜서는 안 될 대상'을 미화시키게 되는
위험성도 있을 것 같아 그냥 지금과 같은 설정으로 간 것도 있네요.
(물론 클라나드의 토모요처럼 깡패 잡는 깡패라는 샛길도 있긴 하겠지만^^;;)



덧.
어제 사전 투표를 하고 왔는데, 진짜 간편하고 좋더군요.
투표함 관리에만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정말 괜찮은 방식이라 생각해요.

제 경우는 최근 교조적인 종교정당, 우파단체는 물론 여당 대표마저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나,
성 소수자 적대 발언을 서슴지 않는 모습에 한심하고 안타깝고 우려스러운 마음이 들어
'차별금지법 제정' 등에 찬성하는 후보와 정당에게 표를 던졌어요.

구시대의 기준과 사고방식 하에서는 '부당하게' 고통 받고 삶을 유린당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더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부디 다른 분들도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시기를,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세상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되돌리지 않는 선택을 하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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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6.04.10 13:3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과연! 비록 키가 작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스타일 좋은 미녀였군요~ >_<)

    흔히 세간에서 언급되는 아직 연마되지 않은 원석의 느낌이랄까... (카린이 옆에서 조금만 도와준다면!!! )

    아참, 그리고 저의 경우에는 수요일날 투표하러 갈 예정이예요. +ㅁ+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6.04.11 07:10 신고 address edit/delete

      정확하게 봐주신 것처럼 원래는 키가 작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몸의 비율을 낮추고 싶었는데, 실력이 부족한 탓에 그냥 평소처럼 그리고 말았네요^^;;

      말씀처럼 도토리의 스승으로는 엘리자베스보다 오히려 카린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만약 시리즈가 계속된다면 두 사람의 좌충우돌 사제관계(?)를 그려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소디언 님도 좋은 투표 되시길 바라요! >.<)











(아마도 본편과는 관련 없는 인용입니다)




“분명 본질은 변하지 않아. 난 그 시절 그대로인 걸…….”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라고, 침묵이 방안에 감돌았다.
 하지만, 정적을 깨며 그건 아니라고, 난 단언했다.

“이봐, 치도리. 전에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지?”

“……응. 그러니까 난 변하지 않아. 성악설을 믿는걸.”

“그렇군, 나도 너처럼 성악설론자다.”

 이렇게 말하자, 침대에 누워 있는 아미티에가 경직된 게 느껴졌다.
 난 일부러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잘 들어. 성악설이란 악인은 악인, 사람은 날 때부터 범죄자,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순자가 말한 성악설이란 건 말이지, 이 경우의 악惡이란 학습하지 않고 배우지 않는 인간을 가리키는 거야.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니 처음에는 악하지만, 자력으로 배워 나가 선인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란 말이지.”


- Innocent Grey, FLOWERS 여름편 中 -










■■■








[내 피는 영원과 같이 (完)]


 작은 보석 알갱이처럼 다채롭게 반짝이는 전구장식. 듣는 이의 발걸음까지 흥겹게 만드는 경쾌한 선율carol. 저물어 가는 한 해를 아쉬워하듯, 다가오는 새해를 환영하듯, 거리의 불빛은 겨울이 깊어질수록 현란해져만 간다.

 먼 과거에는 태양의 부활을 기뻐하고, 한때는 구세주의 탄생을 기념하다, 이제는 단순한 연말 이벤트 중 하나에 그치게 된 축제기간christmas. 그렇기에 비로소 더 많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된 이 시기에, 불행히도 난 마음 편하게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후우…….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하얗게 흘러나오는 한숨. 방금 전까지 난 학교에 있었다. 지금은 평범하게, 수업을 받고 귀가 중이다.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끝장 난 줄만 알았던 ‘일상’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기뻐하고 감사해야 마땅한 일이겠으나, 난 도저히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음?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나? 괜찮다면, 이 혈주에게 털어나 봐. 웬만한 일은 다 해결해주지.”

 가슴을 펴며 믿음직스럽게 입을 여는 엘리자베스. 전과 달리 어딘가 생기가 넘치는 표정이 한층 그녀의 미모에 매력을 더한다.

“흥.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주로 부수는 것밖에 없으면서 뭘 잘난 듯이 말하는 거죠? 괜히 엄한 사람 곤란하게 만들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신랄하게 엘리자베스를 쏘아 붙이는 율리아나. 하지만 거기에 전처럼 증오심이나 적대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하하. 혈속으로서 부정해주고 싶지만, 확실히 우리 혈주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지. 오래 산거에 비하면 인간사회에 대한 지식도 의외로 허술하고 말이야.”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일 만큼 크게 웃으며 엘리자베스를 놀리는 데 참가하는 카린. 마찬가지로 그녀의 얼굴도 절망에 지쳐 어둡던 첫 만남의 인상과 달리 환하게 밝아 보인다.

“으음. 전부 사실이니 반론하기가 어렵군. 그래도 막내血屬 앞에서 위신이 떨어지니 좀 봐주지 않겠나. 가끔은 나도 폼 좀 잡게 도와줘.”

 엘리자베스 또한 곤혹스러워 하면서도 그리 싫은 얼굴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녀를 놀리는 두 사람의 어조에는 얼마간 친근감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와 율리아나. 그리고 카린.
 각각 흡혈귀와 악마퇴치사, 혈주를 증오하는 혈속이라는 복잡하고 뿌리 깊은 원한관계에 얽혀 있었던 세 사람의 사이는, 최근 급속도로 개선이 되었다.

 원인은 무너진 성당에서 있었던 그날 밤의 사건.
 떠올려 보면 조금 낯부끄럽긴 하지만, 고맙게도 이들은 내 풋내 나는 각오를 진지하게 받아주었다. 물론 그것만으로 모든 응어리가 다 풀린 것은 아니겠지만, 애초에 그녀들은 서로를 진심으로 미워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들에게는 작은 계기가 필요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단지 그 계기 자체를 만드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는 점이 문제였다면 문제였겠지만.

‘뭐, 우연이라도 내가 그 역할을 잘 해낸 거라면 다행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이건…….’

 난 내 곁에 있는 그녀들을 한 번 슬쩍 돌아본 후 마음속으로 크게 외쳤다.

‘이건, 교복은, 좀 아니잖아――!’

 그렇다. 교복. 그녀들은 여전히 내가 다니는 고교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엘리자베스와 율리아나는 물론, 카린마저.

- 네 말대로, 이제부터는 나도 나 자신을 위해 살아 보기로 했다. 마침 마녀가 적당히 자리도 마련해 주었으니 한 번‘학생’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며칠 전, 엘리자베스는 내게 고맙다고 말하며, 내가 전혀 고마워할 수 없는 선언을 뜬금없이 내뱉었다.

- 어, 어쩔 수 없군요! 당신들 같은 위험한 흡혈귀를 감시하지 않을 수 없으니, 저, 저도 당분간, 가, 같이 해야겠어요.

 율리아나는 볼을 붉히며 본인 딴에는 적당한 이유라 생각했는지 마찬가지로 학생을 자처했다.

- 흠, 왠지 재미있을 것 같은데. 마침 나도 신경 쓰이는 녀석이 있으니 함께 해볼까.

 카린 또한 제 혈주를 따라 거리낌 없이 우리 교실에 들이닥쳤다.
 여기서 의외로 카린만큼은 인식장애 같은 이상한 술수가 아닌 진짜 신분증명서 등을 가지고 정식으로 입학을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도 기분 나쁜 미소만 지을 뿐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궁금증은 나중에 하리를 통해 풀 수가 있었다.

- 아, 카린의 경우는 저래 봬도 몇 백 년 전부터 세계 각국의 정재계에 영향을 미쳐온 거물급 인사라 새롭게 신분을 만드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에요. 어떤 의미론 순혈 흡혈귀나 교단의 성녀보다 성가신 인물이라 해야 할까요. 뭐, 그녀가 단순한 몽상가만은 아니었다는 얘기겠죠.

 카린은 과거 고대 제국의 재건을 목표로 엘리자베스의 첫 번째 혈속인 옥타비아와 함께 진력을 다한 적이 있었다. 그 활동은 본인들의 비상한 머리와 재기才器, 그리고 흡혈귀로서의 특성을 십분 활용한 덕분에 꽤 성과를 보았다고 한다. 그런 그녀들도 비록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었지만, 오랜 세월 쌓아온 정계에의 영향력과 숨겨둔 재력은 상당 부분 남아 있다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그녀들이 되지도 않는 학생 흉내를 내며 내 평온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것이다. 난 마녀에게 어떻게든 해결해 줄 수 없느냐고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 음, 마음은 이해하지만 현재로선 딱히 해가 되는 것도 없거든요. 오히려 싸울 생각을 버린 율리아나가 감시 명목으로 이대로 있어 준다면, 당분간은 교단에서도 새로 전력을 파견하는 일 없이 조용할 테니 이득이에요.

 하리의 말에 의하면, 엘리자베스나 카린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서운 존재로서, 세계 뒤편에서 암투를 벌이는 세력들에게는 거의 ‘마왕’이나 다를 것 없는 엄청난 취급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런 두 사람을 율리아나가 성공적으로 견제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교단 내에서 그녀의 입지가 한층 강화되는 것은 필연. 그에 따라 차후 교단의 성가신 개입도 얼마간 그녀의 선에서 차단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 아무튼 그런 이유로 뭔가 새로운 변화가 생길 때까지는 특별하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그러니 그쪽도 우선은 느긋하게 크리스마스를 즐겨 보는 게 어때요? 전 이번에야말로 선배랑 성야性夜를……후후후후.

 내 입장에서는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지만, 마녀는 혼자 결론을 내리고 뭔가 위험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

“마왕, 이라…….”

 난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교복 차림으로 어느새 길거리에서 산 와플을 각자 한손에 들고 있는 흡혈귀와 성녀. 누가 봐도 영락없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난 그녀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위화감을 발견하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잠깐! 흡, 혈귀는 인간의 피밖에 마시지 못하는 거 아니었어?”

 머리가 지쳐 있는 탓일까. 그 탓에 알아차리는 게 늦었다. 카린은 단순히 와플을 들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한입 베어 물어 삼키기까지 한 것이다.

“응?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난 처음 듣는데. 왜 우리가 피밖에 못 마셔. 우리도 평범하게 식사할 수 있다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한쪽 눈을 찡그리는 카린.
 난 다소 당황해 하며 입을 열었다.

“하, 하지만 전에 하리……마녀가 ‘흡혈귀는 오로지 인간의 피밖에 마시지 못한다’고 말했는데…….”

“아마도 그건 표현상의 문제였을 것 같은데. 실제로 우리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건 인간의 피 뿐이니까. 하지만 다른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딱히 해가 되는 건 아니야. 그저 영양분이 되지 않을 뿐, 맛도 그대로 느낄 수 있지.”

“……정말? 그럼 엘리 씨도 나랑 같이 점심시간에 ‘먹는 척’을 했던 건 왜 그랬던 거지?”

“그냥 혈주의 취향일 걸. 저 사람, 피 외의 다른 건 그다지 먹고 싶어 하지 않거든.”

 카린은 와플을 든 손으로 엘리자베스를 가리켰다. 그녀의 말마따나 엘리자베스는 기껏 산 와플을 아직 입에도 대지 않은 채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보고만 있었다.
 난 떠오르는 단어를 소리 내어 입에 담았다.

“혹시, 결벽증?”

 내 목소리가 들린 걸까.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돌리며 부정했다.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저, 우리는 소량의 피만 섭취해도 오랜 시간을 버틸 수가 있는데, 음식을 먹는 건 심한 낭비처럼 느껴져서 말이지. 무엇보다 식사란 ‘다른 생명’을 빼앗는 것. 꼭 필요하지 않다면 하고 싶지 않아.”

 ……뭐랄까. 굉장히 환경 친화적인 흡혈귀다. 이쯤 되면 누가 괴물인지 원. 가까운 미래에는 엘리자베스와 같은 이들이 재평가를 받게 되고, 오히려 교단 같은 독선적인 교조주의자들은 사회에 해가 되는 한갓 광신자 취급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당신은 옛날부터 지나치게 복잡하게 생각하는 게 문제에요. 그러고 보면 예전에 제가 만든 치즈를 거절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군요. 가끔은 그냥 즐겨 보라고요!”

 율리아나는 자신이 들고 있던 와플의 일부를 떼어내어 강제로 엘리자베스의 입에 넣었다.

“웁!”

 엘리자베스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율리아나의 손길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순순히 율리아나가 입에 넣은 와플을 뱉어내지 않고 삼켰다.

“어, 어때요?”

 율리아나의 물음에 엘리자베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맛있어.”

 우와. 뭐냐 이건. 그냥 연인 사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동반자살을 꾀했을 만큼 애증이 깊은 사이였으니 거기서 증오가 사라지면 남는 건 사랑뿐인가.
 하지만 아무래도 그 마음은 일방통행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군. 역시 먹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 먹는 건 잘못된 일이야. 그렇다고 먹을 걸 버리면, 그것이야말로 도리어 생명을 모독하는 짓이 되겠지.”

 엘리자베스의 말에 율리아나가 옆에서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다고요! 그러니 모처럼 제가 골라준 거 끝까지 먹…….”

 엘리자베스는 도중에 율리아나의 말을 끊으며 들고 있던 와플을 건넸다.

“자, 네가 대신 먹어. 이러면 아무 문제없겠지. 먹을 필요가 있는 사람이 먹는 거니까.”

 아아. 저질렀다. 둔감한 것도 저런 수준까지 가면 죄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응? 뭐야. 왜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지? 아, 혹시 이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맛인가? 아니면…….”

 엘리자베스는 잔뜩 볼을 부풀린 채 고개를 돌린 율리아나를 달래느라 진땀을 빼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도와줄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저 사람은 좀 곤혹스러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후후. 우리 혈주 머리가 좀 굳어 있어야 말이지. 옥타비아랑, 나도 얼마나 답답한 적이 많았는데. 그나저나 이거, 내가 아는 와플이랑은 생판 다르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하군. 너도 좀 먹을래?”

 카린은 킥킥거리며 들고 있던 와플을 반으로 잘라 큰 쪽을 내게 주었다. 내가 고맙다고 인사하자 카린은 “별 말씀을”하고 붉은 머리카락을 흔들며 씩 웃었다.

‘의외로 호감이 가는 사람이야.’

 최악이었던 그날 밤의 인상과는 달리, 사람이 변한 혹은 원래대로 돌아온 카린은 꽤나 붙임성이 좋은 소탈한 성격이었다. 긍정적인 의미로 ‘어른’이라고 해야 할까. 방금 ‘옥타비아’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살짝 눈빛이 흔들리긴 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엘리자베스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지 않고 평정을 유지했다.

‘덕분에 나도 율리아나랑 화해할 수 있었지.’

 날 죽이고 다미를 납치하기까지 했던 교단의 성녀. 예전의 나라면 절대 그녀를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카린이 엘리자베스와의 관계를 회복한 것을 보고 나도 간신히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물론 율리아나 또한 우리에게 정중하게 사죄를 했다.

- 아, 앞으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다면……. 하, 하지만 또 도토리한테 손대면, 저, 저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다미는 잔뜩 떨면서도 날 위해 있는 힘껏 목소리를 높였다. 율리아나도 이번 일로 느낀 바가 있었는지 다미의 용기를 비웃지 않고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며 재차 약속을 해주었다.

‘그럼 가볼까. 다미에게 줄 선물을 사러.’

 난 한층 가벼워진 마음으로 즐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다미와 난 매번 생일 이외에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서로 선물을 준비해 교환을 해왔다. 오늘 귀갓길에 다미랑 같이 하지 않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지금쯤 다미도 어딘가에서 내 선물을 고르고 있으리라.
 하지만 난 슬슬 꿀꺽 삼키는 데 한계가 있어 내뱉어야 할 말이 있었다.

“저기, 다들 한가해? 이만 각자 볼일 보시지? 난 지금부터 개인적으로 따로 들를 곳이 있는데.”

 눈치 없게도 졸졸 따라오는 흡혈귀 둘과 성녀가 하나. 아무리 다미와 내가 아직 친구 사이라고는 해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모습을 지인들에게 보이고 싶진 않다. 부끄러우니까.
 그러나 내 혈주에게 그런 섬세함은 기대할 수가 없었다.

“따로 들를 곳이 있다고? 무슨 일이지? 괜찮다면 나도 함께 하지. 뭔가 도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다, 당신이 간다면, 저, 저도 내키진 않지만, 함께 해야겠군요. 가, 감시해야 되니까.”

 여기에 얼빠진 성녀가 한 명 더 추가. 요즘 들어 율리아나는 마음의 족쇄가 풀린 탓인지 엘리자베스만 연관이 되면 순식간에 바보가 되고 만다. 뭐, 그만큼 엘리자베스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면 듣기에는 좋겠지만, 내 입장에선 민폐가 아닐 수 없다.

“뭐야, 애인한테 선물이냐? 그런 거라면 보석을 추천한다. 나도 옥타비아한테 30캐럿짜리 팬시 다이아몬드들로 조각된 보석장미 꽃다발을 선물한 적이 있었지. 혹시 보석에 대해 잘 몰라 고민 중이라면 같이 골라줄까?”

 카린은 예리하게 내 목적을 간파했지만, 다른 쪽으로는 마찬가지로 눈치가 없었다. 덧붙여 그 보석 꽃다발은 살 수 있고 없고를 떠나 절망적으로 악취미라 생각한다.

 왜 이들은 이렇게나 내게 간섭하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절레절레 고개를 저을 수 있으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사실 난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 적어도 인간으로서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순 있어!

 그날 밤 내가 외친 선언. 난 그녀들의 절망을 막고자 기약 없는 희망을 던졌다. 그것을 그녀들이 받아들인 이상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쯧. 어쩔 수 없군.”

 난 한 번 가볍게 혀를 찬 뒤,

“따돌리는 수밖에.”

 마침 주위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후후. 귀여운 짓을 하는군. 한 번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조금 기다려줘 볼까.”

 예상대로 혈주 일행은 날 곧장 쫓지 않았다. 아마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고 얕보고 있는 것이리라.

“좀 열 받는데. 좋아, 누가 이기는지 한 번 해보자고!”

 오늘 목표는 혈주 일행에게 잡히지 않고 무사히 다미의 선물을 준비하는 것. 방심은 금물이라는 사실을 톡톡히 일깨워주겠다.

“…….”

 고작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는 데도 이런 고생을 해야 하다니. 대체 앞으로도 얼마나 그녀들에게 시달리게 될까. 솔직히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이 되리라.

“후후, 후후후.”

 하지만 힘껏 달리면서 난 분명, 웃고 있었다.


- 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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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6.04.08 14:2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무무무무무무무엇을...! ;ㅁ;

    이 것은, 틀림 없이 정진정명한 좌충우돌 ☆하렘 라이프☆의 시작이 아닌가요!!! (쿠쿵)

    크흑, 역시 주인공 보정 앞에 모든 것은 무의미하군요~ C=C=C=ㄴ(ㅠ_ㅠ)ㄱ [ - 눈물을 흘리며 석양 속으로 달려나간다 - ]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6.04.10 10:17 신고 address edit/delete

      말씀처럼 이번 편은 특히 가볍고 행복한 느낌의 엔딩으로 마무리를 지었네요~

      실은 '모든' 캐릭터가 도토리에게 완전히 반하는 백합하렘 엔딩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내용을 표현하기에는 아직 제 실력이 많이 부족해 지금과 같은 분위기로 안정(?)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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