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종이 울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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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Moratorium
by 안단테♪

'인용'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18.07.31
    역사는 증오하기 위해 배우는 게 아니다 (2)
  2. 2018.06.15
    기회 또한 위기일 수 있다 (10)
  3. 2017.12.11
    국가, 민족, 그리고 자국 콘텐츠에 대한 단상 (2)
  4. 2017.11.01
    세상의 부적절한 것들에 대처하는 법
  5. 2017.08.03
    캐릭터에 대한 애정, 그렇게 비웃음 당할 일일까
  6. 2017.04.27
    전 지나친 PC에 반대합니다
  7. 2017.04.26
    동성애는 반대를 받을 이유가 없다
  8. 2017.04.06
    그들은 국민을 대변할 수 없다
  9. 2017.03.10
    민주사회에서 책임을 진다는 것
  10. 2017.01.09
    국기로 화장하는 갈라진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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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소설에서 그린 약소국으로서 조선의 운명이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사드 배치를 두고 중국에 압박을 당하고 있다


 A.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에 대한 정돈된 견해는 없다. 다만 약소국가로서 강대국 틈에 끼어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병자호란 항복 후 우리의 주권은 훼손됐다. 군사·외교 주권을 다 포기해야 했고, 여자들 잡아다 청나라에 바치며 200년 이상을 살았다. 청에 대해 굴욕적 사대를 한 것이다. 그 전에는 명에 대해 사대를 바쳤다.

 나는 이런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니다. 치욕스런 역사다. 하지만 영광과 자존만으로 인간 역사를 구성할 수는 없는 것이다. 치욕과 모멸 또한 역사의 중요한 일부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사대는 약자가 강자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술로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사대를 옹호하는 게 아니다. 그게 자랑이나 영광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교과서에서도 그 점을 정확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빼거나 뭉개려고 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 중앙일보, 소설가 김훈의 『남한산성』 100쇄 기념 간담회 인터뷰 중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아마 한국에서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종종 언급되곤 하는 매우 유명한 문구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세간에서는 흔히 신채호 선생이 이러한 말을 남겼다고 전해지지만, 위키에 따르면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이는 누가 남긴 말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출처 불분명한 문구로서, 처칠이 남겼다는 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과거를 잊은 국가에게 미래는 없다)가 원형이 되었으리라는 추측이 있을 따름이다.

 아무튼 위 문구의 출처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역사에서 배워야 함을 강조하는 표현이나 사고방식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든지 존재한다. 나 역시 역사 배움의 중요성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사람은 과거에서 교훈을 얻어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한데 정말로 그런가? 정말 우리 사회에서 역사 교육은 국가와 시민들을 과거의 잘못에서 보다 나은 길로 이끄는 올바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내가 보기에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역사 교육은 도리어 민족감정과 국가 간 대립을 자극해 과거의 잘못을 부추기는 경향마저 존재한다.

 본래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배워야 할 역사가, 단지 과거의 치욕을 설욕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변질된다. 과거 전쟁의 참상에서 그 무엇보다 평화가 우선임을 배우기보다는, 다음 전쟁에서는 우리 민족이 승자여야 비참한 꼴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비뚤어진 결의만을 굳힐 따름이다.

 자신의 배경이 되는 국가나 민족의 영광은 드높이는 반면 굴욕은 되갚아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당연한 심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고방식이 지금껏 어떤 비극을 일으켰는지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바로 그 비극의 연쇄를 끊기 위해서라고 난 생각한다.

 “서로 싸움에 임하는 데 있어 그 유일한 목적이 평화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디선가 듣기로 문호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 역시 무엇을 위해 역사를 배우는지, 그 목적을 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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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8.08.05 15:3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보다 나은 미래로의 일보 전진을 위해 편찬되고 가르침이 이어져야 할 역사의 분야가, 고도의 정치적 계산 하에 증오의 연쇄와 진영논리에 기반한 국민과 대중 선동의 수단으로써 악용되기도 한다는 현실이 참 씁쓸하고 안타까워요... ;ㅁ;

    그러고보니 며칠 후 개봉할 영화 <공작>에서 실화를 토대로 각색되어 다루어진 북풍 사건의 전말을 보며 안단테님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네요. (관람 후기를 작성하는 조건으로 개봉전 시사회에 참여할 수 있었어요)

    불현듯 단지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은하영웅전설 자유행성동맹 말엽의 사회상이 그 비극의 궤적 위로 겹쳐보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지... 그래도 분명 대한민국 사회는 점차 나아지고 있고, 또 새로운 희망의 여지를 보여준만큼 제 다음 세대에는 그러한 씁쓸함과 안타까움의 반복이 일소되길 바랄 따름이예요. >_<

    덧 - 단발머리 소녀 귀여워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8.08.07 04:28 신고 address edit/delete

      말씀처럼 역사 교육의 의의가 현실에서는 조금도 살아나지 못한 채 다른 목적들에 악용되는 모습을 보면 여러모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현실이 언제나 이상을 반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정반대 방향으로 질주하는 건 정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정치나 외교는 물론 사소한 일상에서조차 가령 모 인기 모바일게임 관련해서는 오히려 이벤트 내용이 우익사관을 비판하는 전개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1945년이 배경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비난부터 가하고 보는 분위기라든지, 얼마 전 월드컵에서는 '어떤 나라를 응원할 수 없는 이유'라면서 그동안 한국이 침략이나 불이익을 받은 사실을 쭉 나열하며 상대국을 마음 놓고 야유해도 된다는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들을 꽤 본 적이 있는데, 그게 과연 정말 올바로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인지 심히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북한과 관련해서도 말씀하신 은영전에서 자유행성동맹과 은하제국 간의 해묵은 대립에서 벌어지는 불필요한 소모들을 생각해 보면 여러모로 반성할 점과 얻을 교훈이 많지요. 그럼에도 역사적 사실들이 단지 '원한을 되새김질하고 복수를 부추기는 장치'로밖에 작용하지 못하는 점은 참(...)


      결국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역시 민족주의 국가주의적인 세계관이 크게 작용하고 있지 않나 싶더군요.

      은연중 혹은 대놓고 자신의 정체성을 민족과 국가에 동일시 시키는 것으로 인해 '개인의 자존심'이라는 감정적인 부분이 역사적인 판단에도 섞여 들어가 문제를 올바르게 바라보는 데 심한 장애를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어릴 적부터 민족주의 교육을 주입받아온 사람으로서 그런 감정에서 아주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그럴 때면 자기 선조가 누구냐는 질문에 '10억년 전쯤 바다의 해파리 같은 생물'이라고 대답한 양 제독님의 현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네요.

      말씀처럼 저희 다음 세대는 좀 더 자유롭고 공정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부족한 그림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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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한 압승의 순간이란 없다. 승리도 패배도 있는 지속적 싸움의 과정이지만, 장기적으로 민중의 의식은 성장한다. 그렇기에 참을성과 끈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승리’하지 않을 때에도 다른 모두와 함께 가치 있는 일에 참여했다는 즐거움과 성취감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1999년에 남긴 말 -



 선거가 끝났다. 모든 결과가 만족스럽진 않지만,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부적절한 정당이 다시금 관에서 기어 나오지 못하도록 못질을 했다는 점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었다고 본다. 죽어야 될 것이 무덤에서 기어 나오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는, 이미 우리는 수많은 영화와 소설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다만, 당연히 불안한 요소도 많이 남아 있다. 당선된 민주당 후보 중에서도 전근대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 수준 미달의 의원들이 있으며, 진영 논리에 따라 표를 던지는 분위기도 여전하고, 민주당을 견제하고 자한당을 대체할 만한 제2정당이 확립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게 다가온다.

 더욱이 교육감 선거에서 매우 부적절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후보들이 의외로 지지율이 있어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아마도 거기에는 이런 조직표 또한 작용한 모양이다.








 저런 식의 사고방식을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고 안타까운 기분이 든다.

 분명 한국 사회에서 아직 여성들이 많은 차별을 받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는 남녀 모두가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하며, 여기에 대한 이견은 일절 없다.

 한데 저런 부류의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당신은 페미니스트이기 이전에 이 사회의 구성원이다.

 자, 한번 생각해 보자. 왜 우리 사회에서 여성차별을 철폐하고 남녀평등을 이뤄야 할까? 그건 남녀 불평등으로 인해 부조리한 권력구조가 발생하고, 거기서 여성이 사회적 약자로서 ‘차별과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페미니즘이 약자보호와 양성평등의 가치를 저버리는 순간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할 당위성도 같이 상실한다.

 그래 맞다. 분명 페미니즘은 여성해방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주의이다. 즉, 남녀평등이 목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여성의 이권 확장에 진정한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딱히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연히 누구나가 그렇듯 ‘~~이스트’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엄밀히 말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인권이 신장되어야 하는 것은, 결코 여자가 우월하기 때문도 아니고 남자보다 소중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누구나 누려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페미니즘도 휴머니즘의 기반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휴머니즘적인 요소를 도외시하고 페미니즘을 이기적으로 추구하겠다? 그럼 안타깝지만, 사회적 공감대도 얻을 수 없을 뿐더러 연대는 파괴될 수밖에 없다.

 (아마 보신 분도 많겠지만) 이에 대해선 내 빈약한 말보다는 이분의 말이 훨씬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런 의견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른바 '맨스플레인'이라고 말이다-_-

 하지만 이런 충고를 무시하고 위의 트위터와 같이 독단적인 태도를 계속해서 견지한다면······.
 그럼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



 다른 분들이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사회를 바꾸기 위한 싸움은 이제 막 시작한 수준이다. 비록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긴 했어도 그 불만의 에너지는 마치 스프링처럼 반대 진영에 더 축적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쇄신의지가 무뎌진다면, 그리고 트위터 등지에서 자신들의 ‘이즘’에 따라 과격한 주장을 펼치는 이들처럼 사회 공통의 연대와 정의를 외면하고 배타적 독단적인 이권 주장만을 반복한다면, 우리도 금세 우경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본다.



덧. 우경화에 대한 우려나 트럼프의 정치성향에 대한 내 불호와는 별도로, 북미회담을 비롯한 현재 트럼프의 대북정책 행보는 매우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그런 트럼프의 성과를 어떻게든 깎아내리기 위해 왜곡을 행하는 미국 내 언론의 태도와 지난 미대선 때 트럼프와 그 가족들에게까지 과도한 모욕과 비난을 일삼은 미국 좌파들의 행태는 올바르지 않았다고 본다.

위의 유튜브 영상 캡쳐 내용을 첨부한 이유는 트럼프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식의 과도하고 부당한 비난이 장기적으로는 반대진영의 세를 불리고 자신들의 입지를 줄이게 될 수 있음을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위의 캡쳐 내용에서도 트럼프에 대한 독설을 걸러내고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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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7.09 14:04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8.07.09 19:57 신고 address edit/delete

      안녕하세요! 과분한 말씀에 많이 부끄럽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도 제 글에 관심이 없으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읽고 싶다고 말씀해 주시니 기쁠 따름이네요. 어느 글인지 말씀해 주시면 설정을 다시 공개로 전환할게요.

      잊지 않고 찾아주신 것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드리며,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요!

  2. ㅇㅇ 2018.07.09 14:0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티스토리 처음 써봐서 비밀댓글이 작성자한테도 안보이는 줄 몰랐네요.
    혹시 저거 보이시나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8.07.09 19:58 신고 address edit/delete

      예, 잘 보인답니다. 아마 비로그인 비밀글의 경우는 해당 블로그 유저에게만 보이고, 로그인 비밀글의 경우에 블로거와 작성자분 모두에게 보이는 것 같네요.

  3. ㅇㅇ 2018.07.10 16:1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글 전부 정독하는 중이었는지라 전부 열어주신다면 제일 좋겠지만 마지막으로 보던건
    어느 은하수 다방의 대장장이 스토리가 생각 나는데 제목을 모르겠네요..ㅜ
    사실 도입부만 보고 제일 끌리는 것 부터 조금씩 구경해와서 모든 작품을 조금씩은 읽었어요.
    어느 대학생 밴드가 역할문제로 갈등하던 내용도 기억 나네요.
    해와 달의 생사여탈권은 폰에 넣어놓고 꺼내볼정도로 크게 감명 받았습니다ㅎㅎ
    계속 작품연재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문체가 풍부하셔서 배경묘사나 감각묘사가 웬만한 웹소설 작가 보다 훨씬 출중하시다고 생각해요.건필하셨음 좋겠네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8.07.11 06:48 신고 address edit/delete

      과찬의 말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지난 작품도 기억해 주시고, 또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글쓴이로서 정말로 감사하고 힘이 되는 말씀이에요.

      비공개로 돌린 글들은 틈이 날 때마다 다시 공개로 돌리도록 할게요. (제가 아직 티스토리 사용법을 잘 몰라서 그런지 일일이 수동으로 풀어야 해서;;;)

      음, 다만 제가 비공개로 돌린 글들은 대개 카테고리 앞에 [보류]라고 붙인 글들인데, 이 글들은 앞으로 다시 쓸 생각은 없고, 나중에 리메이크를 하게 된다 해도 제목만이 같을 뿐 아예 딴 내용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가령 세계관은 같아도 캐릭터가 전혀 다르다든지, 캐릭터 이름은 같아도 성격이나 역할은 물론 심지어 성별조차 달라진다든지 등등) 그런 부분은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 글을 써가는 데 있어 조금이라도 기대에 미칠 수 있도록 힘내고 싶은 마음이에요. 다시 한번 보내주신 응원과 격려에 감사의 말씀 드려요.

      그럼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요!

  4. ㅇㅇ 2018.07.11 21:1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네 감사합니다ㅎㅎ다른 작품들도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8.07.12 06:35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야말로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5.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8.07.14 17:3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안단테님, 그동안 격조했습니다! ㅠ_ㅠ); 나름 친밀한 티스토리 이웃으로서 활동하려했는데 이렇게 다시금 올려주신 글을 한달만에야 발견하다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다 화끈거리네요. llorz


    자아 이제 다시 본론의 화제로 돌아가서, 저 역시 지난 지역 선거 때 주위의 지인 및 가족들과 많은 토론을 나누고 또한 투표에도 참여했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소불위에 가까운 권력과 민중의 지지도로 기염을 토하던 정당이, 그 열성적 지지자였던 50대 이상 어르신들에게마저 외면받고 있다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또한 새롭게 권좌에 오른 여당 역시 (설령 극히 일부의 사례일지언정)다소 방만한 마인드 하의 국정 운영 방침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재차 경악하고 말았네요.

    이번 선거 때는 투표장에 가기 앞서 중앙선관위에서 공개한 후보자관련 정보를 꼼꼼히 살펴보기로 했는데, 놀랍게도 제가 속한 거주지의 여당 후보가 어쩌면 향후 재정 파탄을 초래할지도 모를 막연한(예산 한계치는 없이, 돈이 모자랄때마다 국고에서 더 끌어오면 된다는 식) 계획안을 공표한 반면 그 대치점에 선 야당측 인사는 의외로 전문성을 갖춘 인재에다 나름의 안전장치로써 예산 한도를 설정해둔 상황이라 정말 웃픈 심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답니다. (흡사 삼국지 게임마냥, 쇠락해가는 군소 세력에도 쓸만한 사람은 있는걸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지난날의 여당이 그토록이나 유리한 위치와 환경을 부여받고도 작금의 처지로 전락한 것은 그만큼 대다수 민중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줄만큼의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며, 그 반작용으로써 현재의 여당 또한 다소의 미흡한 부분들이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에 가까운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게 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즉 서브컬쳐계 식 표현으로 요약하자면 이 모든 것은 인과율의 섭리... (퍼퍽)

    마지막으로 지난 정권 하의 국정 농단 사태를 상기해볼 때, 건설적인 견제와 균형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모색되어야 하지 않나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분명 현직 대통령님은 한 국가의 통치자로서 바로 전임자와 비교해볼 때 정말 헌신적으로 잘해주시고 계시지만, 그 휘하의 관료 중에서 부패와 전횡의 사례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말이예요.


    덧 - 국내 트위터 생태계가 서비스 초창기만 하더라도 지금같은 질척질척 진흙탕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그마나 조용히 일상잡담계로 활동하시던 유저들마저 하나 둘 떠나는 상황이네요. 흑흑 역시 퍼거슨 감독님의 말이 맞았던 걸까요... ;ㅁ;

    덧2 - 지난 몇 달 간 신규 발행 게시물의 부재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지켜보며 혹시나 안단테님께서 독자층의 반응 저조에 상심하여 떠나신게 아닐까하고 안타까워 했었어요. ‘사실 이렇게 홀대 받으실 필력의 소유자가 아닌데...’ 하고 말이예요. 에... 가끔씩은 글 올려주실거죠? 하하 >_<);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8.07.15 17:29 신고 address edit/delete

      오랜만에 안녕하세요! 저야말로 자주 찾아뵙지 못할 뿐만 아니라 포스팅마저 뜸해 여러모로 부끄러울 따름이네요^^;;


      말씀처럼 부패하고 무너져 가는 정당에도 난사람은 있지요. 한창 그들의 세력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분석한 어떤 신문기사를 본 기억이 나는데, 그 기사에 의하면 오히려(?) 당시 한나라-새누리당의 하부 조직에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인재가 많았다고 하네요.

      생각해 보면 한 나라의 실권을 쥐고 있고, 자금도 충분히 공급되고 있는 정당에 뜻을 펼치고 싶은 엘리트들이 모여 드는 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 같은 인터넷 젊은층의 편견과는 달리 당시 여당의 공약 중에는 사회 문제점을 정확히 찌르고 있는 현실적이고 필수적인 내용들도 많았고, 당시 민주당을 비롯한 여타 야당들이 급하게 그 공약들을 베껴서 주먹구구식으로 선거를 치르기도 했다는군요.

      (물론 기사의 논점은 그래서 한나라-새누리당이 대단하다는 것이 아니라, 당시 여당에게 부당하게 운동장이 기울어진 상황을 지적하며 야당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꼬집은 것)

      하지만 이미 우리가 알다시피 아무리 좋은 공약들이 있어도 그건 전부 空約으로 그칠 뿐이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역량을 재벌이나 정치 권력자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만 다 쏟아부으며, 심지어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고 과거 독재정권을 미화하는 데까지 나아갔지요.

      사회에서 내놓으라 하는 경력을 가진 엘리트들이 죽은 독재자의 계승자들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곡학아세할 수밖에 없는 전근대적인 구조, 반대의견은 검열하고 반대자들은 배제하는 그 비민주주의적인 권위주의적 통치가, 단기적으로는 그들의 세력을 강화시켜주는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결국 조직을 부패시키고 실질적인 국정운영능력도 잃어버려 모든 지지기반을 상실하는 내리막길로 들어서게 하는 악수였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저도 위에서는 잘난 듯이 진영논리를 비판하는 글을 썼지만, 사실 한국의 정당정치 지형에서 진영논리에서 자유로워지기는 힘들다고 봐요. 일부 열심히 잘 하는 사람이 있거나 번지르르한 공약을 내건다고 해도 정당을 이끄는 주요 인사들에게 문제가 있으면 그런 긍정적인 요소가 구단위를 넘어 사회에 반영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오히려 그런 일부 괜찮은 요소가 부패한 상층부의 실책과 횡포를 가리는 방패막이로 이용되기까지 하고 말이에요.

      그래서 문 대통령이나 더민주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분명 국정을 수행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고 있지만, 일부 친문 사이트에서 보이는 찬양에 가까운 과도한 지지에는 다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해요. 어차피 더민주도 영원히 정치권력을 잡을 수는 없고, 그것이 바람직하지도 않은 이상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비슷한 수준의 다른 정당이 빨리 대두했으면 좋겠네요. 최소한 더민주가 실책했을 때 새누리 잔당들이 다시 반사적 이익을 얻어 무덤에서 기어 나오는 최악의 사태만은 막아야······.


      결국 지금 한국의 선거에서는 최선은 물론이거니와 '차선'을 뽑는 일조차 여의치 않다고 생각해요. 그저 현재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악'을 피하는 일이 아닐까 싶더군요. 최악의 집단이 정치권력을 잡는 일을 막으며 조금씩이나마 사회 부조리를 고쳐 나가다 보면, 후대에는 '차선'을 뽑을 수 있는 정치환경이 갖춰지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이 있네요.


      덧. 전 트위터의 경우 가끔 온라인 이웃들의 안부나 어떤 사건이 있었을 때 사람들 반응이 궁금해 살펴 보는 정도밖에 이용하지 않아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말씀처럼 예전과 달리 분위기가 많이 험악해졌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하네요.

      정말 그 악화가 사실이라면, 얼마간 공간이 열려 있어 다양한 의견이 오갈 수 있는 대형 사이트의 게시판과는 달리 차단 기능을 통해 싫은 사람과 그 의견은 아예 원천봉쇄를 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만 팔로우를 통해 모여 폐쇄적인 커뮤니티 속에서 계속 자기들의 의견만 배타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는 토양이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현 SNS의 구조적 특성상 오히려 온라인 속에서 이용자들의 배타성과 폐쇄성이 강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인 듯... 물론 그에 못지 않은 순기능도 많으니 마냥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라고 SNS를 써본적 없는 문외한이 말하고 있...;;;)


      덧2.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기쁜 말씀이지만, 역시 그동안의 제 글과 캐릭터들은 진정한 '재미와 감동'보다는 자기만족적인 요소가 더 강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읽어주시는 분들에게도 재미를 드릴 수 있는 내용과 캐릭터를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과연 잘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힘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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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김치 같은 브랜드를 통해 스스로 우월한 사회적 유전자를
가졌다는 걸 끊임없이 타자(他者)로부터 확인받으려는 경향이 있고,
이 타자는 대개 강대국 또는 강대국에서 온 사람들이다.

- 문화비평가 이택광 교수의 말 중 -



 이상과 같은 네 가지 요인들은 환경과 관련된 크나큰 차이점들로,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하며 여기에는 논쟁의 여지도 없다. 뉴기니인들이 대체로 유라시아인들보다 똑똑하다는 나의 주관적인 생각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뉴기니가 유라시아에 비해 면적도 훨씬 좁고 대형동물의 수도 훨씬 적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학자들 틈에서 이 같은 환경의 차이들을 언급하기만 하면 당장 ‘지리적 결정론’이라는 딱지가 붙는데, 그러면 화를 내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 명칭 속에는 어떤 불쾌감이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 가령 인간의 창의성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뜻이냐, 우리 인간이 기후, 동물군, 식물군 따위를 통하여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수동적인 로봇에 불과하다는 것이냐,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런 걱정들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창의성이 없었다면 우리 모두는 오늘날까지도 수백만 년 전의 선조들처럼 석기로 고기를 썰어 먹어야 했을 것이다. 모든 인간 사회에는 창의적인 사람들이 있다. 다만 어떤 환경은 다른 환경에 비해 더 많은 재료를 구비하고 있으며 발명품을 이용할 수 있는 제반 여건도 한결 유리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 문학사상, 621면 이하. -



 한국에서 자국의 문화 콘텐츠를 창작물에 접목시키기란, 아예 옛 시대를 다루는 사극 같은 특정 장르를 제외하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몇몇 작가분들처럼 아직 국가와 민족 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시절에는 ‘한국식 ○○’을 만들어 보기 위해 나름 노력을 해보았지만,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창작자로서의 능력과 노력 부족’이라는 나 자신의 가장 큰 문제를 제외하면, 그 실패에는 크게 3가지 외부요인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첫 번째는 순수하게 문화 자료와 장르 기반의 부족이다.
 우리의 문화는 식민통치로 인한 공동체의 좌절 및 단절과 한국전쟁으로 전국이 초토화되는 비극으로 인해 ‘리셋’이라는 표현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 한 번 백지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

 그 후에는 아무것도 없이 가난한 나라에서 다들 ‘먹고 살기 바빠’ 사회적으로 제대로 된 문화적 기반을 마련하기 힘들었으며, 그나마 성행하게 된 영화와 만화를 비롯한 대중오락 문화들도 군부정권의 검열 아래 철저히 유린되어 간신히 싹이 텄던 장르적 기반마저 심하게 위축되고 말았다.

 과학자들이 그렇듯 창작자들 또한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난쟁이’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한국 판타지 소설을 부흥시킨 일등공신 중 한 명으로 평가 받는 이영도 작가의 초기작이 D&D 설정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은, 당시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던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참고할 수 있는 ‘자국 콘텐츠’가 없었던 탓도 있었다고 본다. 한복이나 김치만으로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 수 없다.

 두 번째는 창작자와 독자를 매료시킬 만한 한국 문화 고유의 매력이 없다는 데 있다.
 물론 이건 일부러 자극적으로 적은 것으로, 나 자신은 당연히 한국 문화에도 많은 매력이 잠재되어 있다고 본다. 이는 비단 한국 문화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문화가 각자 고유의 멋과 빛나는 개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첫 번째 이유에서 언급한 것처럼 문화에 관련된 기반이 부실한 사회에서는 그런 자기들 고유의 매력을 발견하기도 발전시키기도 어렵다. 가령 여성 한복의 경우 옷 자체는 매우 아름답지만, 부르카나 히잡 마냥 여성의 신체를 지나치게 감춰 - 실제로 중동 지역에서 대장금 등 한국 사극 드라마가 인기 있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극중 여인들의 차림새가 자신들 문화와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신문기사가 나온 바 있다 - 현대에는 그 매력을 어필하기 힘들 수 있는데, 그에 대한 개선은 장기간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미라는 EBS방송의 개량한복 캐릭터가 당시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내며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것도, 그동안 이미지가 일관되고 빈약했던 한복 차림새에 대한 반동이 아니었을까. 사실 전통한복에 대한 자료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중국의 한푸 복식을 보면, 꼭 개량한복이 아니더라도 현대에 충분히 통할 만큼 세련되고 맵시 있는 디자인이 많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 전에는 그런 자료들을 일반 창작자가 발품을 팔지 않는 이상 쉽게 접하기는 힘들었고, 요즘에도 그 양이 많거나 잘 정리되어 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우리의 만주 웨스턴은 조선 독립이라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절대치가 이미 주어져 있었고, 그것을 마음껏 우롱하거나 의심하는, 파격을 자행하는 자유와 생각의 여유가 없었다. 서슬 시퍼렇게 버티고 선 검열 앞에서 고만고만한 자기복제와 표절로 근근이 연명하다가 사라져버린 불쌍한 만주 웨스턴.

- 오승욱 감독의 저서 『한국 액션영화』에서 (나무위키 출처) -



 “네가 요스비의 아들임을 증명하기 위해 네게 있지도 않은 복수의 의무 따위를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다. 복수니 뭐니 하는 말을 꺼내기 전까지 너는 네 동족들에게서 도망쳐온 것을 부끄럽게 여기진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을 꺼낸 지금 너는 부끄러워하고 있다. 왜 네게 있지도 않은 복수의 의무를 억지로 네 자신에게 뒤집어씌운 다음 그것을 실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수치스러워 하는 거지? 단지 요스비의 아들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걸 위해서라면, 네 말처럼 네 모습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네 믿음이면 충분하고.”

- 이영도,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륜에게 건네는 케이건의 말 -



 마지막 3번째는 다름 아닌 지나치게 일본 문화를 적대시하는 것에서 오는 폐해를 들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싶어 하지만, 한국 문화에는 일본 문화적인 요소가 이미 떼어내기 힘들 만큼 농밀하게 섞여 있다. 예전부터 있었던 역사적인 상호 교류에 더해 일제 식민시절 같은 체제에 속해 있었던 영향,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다들 쉬쉬하면서 발전된 일본을 롤 모델 삼아 그들의 방식을 답습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80년대 시대상을 다룬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소설에도 그런 부분이 잘 묘사되어 있는데, 작중 아직 백화점 알바라는 개념이 생소했을 무렵 팀장이 일본의 백화점 비디오를 보여주며 저렇게 고객을 대하라고 직원들을 교육시키는 장면이 있다. 이런 모방은 비단 백화점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온갖 곳에서 일어났던 현상이며 – 심지어 법조문이나 판례까지! - 창작물도 당연히 예외는 아니다.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결코 과거 일본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비판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에 따라 그들을 옹호하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일본에 대한 호불호와는 별개로 ‘있는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해야 하며 왜곡이나 부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만약 사실을 사실 그대로 직시하지 않으면 한일 축구 경기에서 마징가Z 주제곡을 우리나라 노래로 착각해서 부르는 것과 같은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으며, 그건 단지 한때 수치스러운 꼴을 당하고 마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과장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런 태도는 문화사업 전반에 대한 쇠퇴나 정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서로 다른 문화끼리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설령 어느 문화가 일시적으로 우위를 점한다고 해도 전혀 부끄러워할 일도 우려할 일도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개인의 자아는 압살되기 힘들며, 치명상을 입어도 끈질기게 다시 회복되기 쉬운 성질을 지녔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마따나 어느 고유의 문화 역시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난 생각한다.

 가령 한국을 포함해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유럽의 세계화’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각국의 사람들이 입는 옷부터 먹는 음식까지 서구식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언뜻 비슷해 보이는 이 생활 양태는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의 문화가 결합되어 지역마다 고유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라졌다고 생각한 과거의 전통도 변형된 형태로 부활하거나 재결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애당초 우리가 ‘전통문화’라고 부르는 것들도 처음부터 그 고유의 성격이 있었던 게 아니다. 각자의 생활환경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와중에 자생하거나 혹은 밖에서 들어온 외부요소가 시간이 흐르며 변형되고 결합돼 어떤 일정한 특징을 가지게 된 것에 불과하다. 이 흐름은 지금도 진행 중에 있으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아주 조금 각도를 달리하여 그은 두 선이 출발점은 같아도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그 격차가 서로 벌어지듯이 문화 또한 그러하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현생 인류의 출발지는 아프리카 대륙이라고 하는데, 우리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아프리카인들과 굉장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그 흐름을 원활하게 잘 돌리느냐에 있는 것이지, 과거의 변화와 발전의 산물에 불과한 전통문화를 잘 지키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반면 한국의 정체성을 지킨답시고 자국 내 일본문화적인 요소를 병적으로 배제하려 든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태도는, 변화와 발전의 건전한 흐름을 저해해 한국 고유의 문화를 가꾸어 나가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다.

 일본 문화적인 요소를 배척하면, 그 일본 문화만 감쪽같이 쏙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와 결합되어 있는 한국 고유의 문화 역시 같이 사라지는 것이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한일전 마징가Z 합창 사건처럼 분명하게 일본의 영향을 받았는데도 그것을 쉬쉬하며 감추게 되면 무엇이 우리 문화인지 제대로 알 수 없게 돼 마찬가지로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모두 우리 문화의 정체로 이어진다.

 다시 반복하지만,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 영향을 주고받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상호 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가령 유명한 일본의 ‘건담 시리즈’나 ‘은하영웅전설’과 같은 작품은 미국의 스타워즈 시리즈에 제법 영향을 받았다. 한데 재미있게도 이 스타워즈는 일본문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조지 루카스 감독은 일본 문화 애호가로 알려져 있으며, 그 이름 높은 제다이들의 컨셉은 일본의 사무라이, 유도, 검도 등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또 일본의 유서 깊은 SF애니메이션인 마크로스 시리즈는 서양의 고전SF소설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매우 히트를 친 그 스타크래프트가 오마주를 한 작품들 중 하나에 바로 마크로스가 있다. 비슷하게 일본의 공각기동대는 서구의 고전SF소설과 심리학 저서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고, 워쇼스키 자매의 매트릭스에는 그 공각기동대가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의 한국에서는 이런 선순환이 상당한 지장을 받아왔다. 사실 일본이 가장 심했다 뿐이지 중국은 물론 때로는 미국 문화적인 요소마저 ‘전통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공격하거나 외면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창작자들은 그렇지 않아도 척박한 환경에서 ‘친○파’가 되지 않기 위해 ‘자기 검열’이라는 족쇄까지 차고 작품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니 의욕 있게 작품 활동을 할 수도 없고, 수준 높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힘들며, (극히 소수의 작가를 제외하면) 팬덤이 형성되기도 어려워 그동안 온전한 시장이 성립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일본 문화적 요소에 대한 병적인 금기시가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음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국가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돼.”

 “뭐 국가에 얽매이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라 봐요.”

 “물론 국가에 살고 있는 이상 그곳의 규칙은 지켜야겠지만.”

 “제가 목소리를 높여 말하고 싶은 건 말이죠. 정말 뭐라 해야 하죠,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국가’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거예요. 사람을 위해서 국가가 존재하는 거지, 국가를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게 아니란 말이죠.”

 “그렇지. 그러니까 전체주의 같은 걸 경계해야지.”

 “아니아니, 오히려 지금 거꾸로 가고 있지 않나요?”

 “뭐 되돌아왔다고도 하지. 다들 역사에서 배워야하는데…….”

 “다들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죠. 나라의 긍지 따위를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잠깐만요!’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들은 딱히 나라를 위해서……아니,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그 사람들의 ‘삶의 편의성’을 위해 공동체로서 국가가 생긴 거죠. 혹은 그런 목적으로 만든 게 국가라는 공동체로서, 그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들이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다들 인식했으면 좋겠어요.”


- 동방Project 원작자 ZUN의 라디오 방송에서 -



 일전에도 가볍게 언급했지만, 일본의 유명 컨텐츠 동방Project는 한국과 중국은 물론 서양의 외국인들에게도 많은 인기가 있다. 한데 해당 시리즈에서 가장 유명세를 가지고 있는 동방홍마향은 흡혈귀, 마녀, 메이드 등 서구문화적인 요소가 다량 포함되어 있으며, 무녀 레이무와 함께 지속적으로 출연하는 또 다른 주인공 중 한 명인 마법사 마리사는 전형적인 서양 마녀의 복장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사소한 사례에서도 현재 우리네 세상이 얼마나 세계화가 되었는지, 동시에 타국의 문화가 자국 문화를 마냥 침범해 집어삼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조화를 이루어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단서를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민주사회가 성숙하고 경제발전과 더불어 인터넷 사회의 도래로 인해 대중들 사이에 폭넓은 정보의 공유화가 이루어지면서 소위 ‘국뽕’으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국가주의적인 분위기의 쇠퇴와 함께 점차 한국 고유의 문화 컨텐츠도 발전해 나가고 있다. 민족주의자들의 거창한 바람과는 다르게 난 오히려 탈민족 · 탈국가적인 분위기 속에서야말로 각 문화의 고유한 멋이 살아나고, 또 그것을 뛰어넘는 융합과 발전이 있을 것이라 본다.

 난 어릴 적부터 학교와 사회에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주입당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것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잔재는 창작을 하는 데도 작품을 감상하는 데도 매우 방해가 되고 피곤하다. 조금이라도 그 틀에서 벗어나는 글을 쓰려고 하거나 그런 장면을 보게 되면 은연중 어릴 적 주입 받은 그 뇌 속의 검열기관들이 ‘거슬린다’고 경고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내게는 그 경고신호야말로 거슬린다.

 부디 후대의 아이들은 우리 세대와는 달리 좀 더 공정하고 객관적이면서도 자유로운 관점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창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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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7.12.11 20:3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강건한 국수주의의 기조는 필시 일제 강점기에 연이어 찾아온 6.25의 참상 속에서 국가의 자원과 국민들의 의사를 하나로 결집시켜 탄력적이고도 과감한 선택과 집중으로 그 위기를 극복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음에 틀림이 없어 보이지만, 이제 그 잔영을 그만 마음 속에서 놓아줄 때도 되었으니 말이예요.

    돌이켜보면 무수한 대학교의 교양 수업들에서도 국제화 시대의 자본과 문화, 인력은 국경의 경계를 초월하여 세계 곳곳을 끊임없이 순환한다는 내용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사회 전반은 지난 고도 성장기로부터 고착화된 사고의 틀은 넘어서지 못한 채 또다른 변혁의 시기-4차산업혁명-를 맞이하고야 말았으니 뭔가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분명 착실하게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으며, 세대를 거듭함에 따라 의식도 점차 성숙해져가고 있기에 수십년 후의 풍광은 분명 지금보다 많이 발전된 미래의 어느 순간을 비추고 있을 것이라 기대해봐도 되겠지요. :D

    덧 - 곧 출시를 앞둔 월드오브 워크래프트 신규 확장팩을 주제로 한 일러스트레이터 흑요석 작가님의 작품(https://goo.gl/AHXgA4) 또한, 안단테님께서 언급해주신 문화 콘텐츠 요소의 융합 및 상승 작용의 좋은 사례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_+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7.12.12 06:29 신고 address edit/delete

      말씀처럼 민족주의 등은 위기를 맞아 휘청거리는 공동체에 효과적인 '지팡이' 노릇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강대국에서는 제국주의 침략에 그 민족주의가 이용되었지만, 반대로 강대국의 침략에 저항하는 약소국에서는 그 민족주의가 다시금 방패로 사용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한국의 좌파들이 외국과는 다르게 본래 우파의 정체성인 민족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데서 연유하는 것이라 하더군요.)

      다만 "자신에 대한 환상은 혼자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유익한 지팡이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허약함을 증대시킨다"는 에리히 프롬의 말마따나 그것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반드시 여러 폐해가 발생한다고 봐요.

      현재 '국뽕'이라는 단어가 널리 유행하며 국가나 민족을 추켜세우는 방식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것도, 다들 이런저런 경로로 민족주의 등의 폐해를 실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그 중 한사람이고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상황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데 저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녹록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미력이나마 한 목소리를 보태 보았네요^^;;


      덧. 링크해 주신 그림 잘 봤어요! 마치 흑인 성모나 한복 성모와도 같이 해당 게임의 이미지를 적절하고 멋지게 재해석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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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나를 이용하듯이 나도 언론을 이용한다.”
“나는 무료로 뉴욕타임스에서 홍보한다.”

- 도널드 트럼프의 저서에서 (출처 나무위키) -



 ‘우리의 무관심이 낳은 결과’라는 카피와 광고 스토리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행동을 단호히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 물론 쓰레기를 버리는 행동 자체를 반대하는 메시지가 설득적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그런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그런 행동은 남들도 다 하는 별 것 아닌 행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회적 증거의 법칙은 사람들이 가장 대중적인 행동 방침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뜻하므로, 대중적 행동이 바람직한 경우는 괜찮지만 그 반대일 경우에는 해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이와 비슷한 예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수많은 병원이 예약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환자들을 점잖게 꾸짖는 포스터를 대기실 벽에 붙여 놓지만, 예약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늘어난다. 정당들은 투표율이 점점 더 떨어지면, 유권자의 무관심을 비난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이 아무 소용없다고 오해한다.

 애리조나의 ‘화석의 숲’ 국립공원을 찾는 사람들은 ‘땅에 떨어진 석화된 나무 조각을 가져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공원의 존립 자체가 위협 받고 있다’는 내용의 표지판을 보고 재빨리 도둑질을 배운다. 표지판에는 정확히 이렇게 적혀 있다. “나무 조각을 훔쳐가는 사람들 때문에 매일 우리의 유산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작은 조각 하나씩만 가져가도 매년 14톤가량의 석화된 나무가 유실됩니다.”

 이러한 캠페인을 주도하는 실무자들은 부정적인 사회적 증거가 그 행동의 부적절함보다는 ‘만연한 현상’이라는 점에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점을 미처 알지 못한다. 비록 이런 예들이 현실 상황을 그대로 말하는 것뿐이고 선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밖에 안 될 수도 있다.


- 로버트 치알디니 外, 설득의 심리학 2권, 21세기북스, 39면 이하. -



 근래 우리 사회의 치부와 민낯을 드러내는 굵직한 사건들이 여럿 터지면서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이 한층 심화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이런 충돌의 여파는 사회가 발전하고 변화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겠지만, 어디서나 그렇듯 현실을 부정하고 자기 머릿속의 편향된 이데올로기나 이기적인 소망만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자들이 문제지요.

 특히 몇몇 극우단체나 종교단체들이 벌이는 소란과 SNS 등지에서 쏟아내는 막말은,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웬만한 민폐나 진상손님보다 더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떤 네티즌 분들은 저들 단체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고 성토하기 위해 저들의 발언을 옮기며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쓰시더군요.

 하지만 위의 인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런 대응들은 자칫 역효과를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사람은 뇌신경학적으로도 타인이나 집단의 행동을 따라하려는 경향이 확인된 바 있는데, 설령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한다고 하면 은연중 ‘괜찮은 것’으로 인식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일본에는 “빨간 신호도 같이 건너면 무섭지 않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겠지요. 즉, 어떤 식으로든지 ‘알리는 것’ 자체가 저들 단체의 힘이 될 수가 있습니다.



 저 부절적한 단체들에게 대처하는 첫 번째 방법은 우선 “트롤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는 유명한 표현에 따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각종 극우단체 등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트롤, 어그로, 관심병자 등으로 불리는 유형의 인물들과 비슷한 행동을 합니다. 혹은 아예 관심병자에 속하는 인간들이 세간의 주목을 쉽게 받기 위한 방편으로 일부러 저들 단체에 동조하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요.

 저들이 관심병자의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트럼프와 같이 계산적으로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과격한 발언을 일삼는 자가 있는가 하면, 정말 관심종자 부류와 같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게 기분 좋아서 그런 행동을 하는 자도 있습니다. 특히 후자의 유형은 과거의 갈채를 그리워하는, 일선에서 물러나 한물 간 연예인이나 전직 방송인 등에게서 종종 발견할 수가 있더군요.

 이미 여러 인터넷 게시판에서 증명이 된 것처럼, 저 관심종자들에게 제일 잘 통하는 것은 ‘무대응’입니다. 이유는 각자 다를지언정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라는 목표는 저들 모두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될 경우 저들은 심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반드시 모종의 ‘이익’을 얻게 되기 때문에 많은 욕을 먹으면서도 부적절한 언행을 일삼는 것이고요. 그러니 ‘무시’당하는 것만큼 저들에게 뼈아픈 일도 없지요.

 이 효과는 고기값을 떼어먹은 모 극우인사나, 일인다역으로 여론을 조작하려다 걸려 망신을 당한 한 극우만화가의 예에서도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언제부터인가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들의 글과 그림은 물론, 이름조차 거론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금지하며 철저하게 무시를 했는데, 그 결과 이들은 과거에 비해 영향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언론에도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지요.

 (그밖에 독일의 한 지역에서는 네오나치 등 극우시위에 대해 시민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등을 돌린 채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퍼포먼스를 펼친 적도 있다고 하더군요.)


- 나무위키 '병먹금' 항목에서 발췌 -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어디까지나 ‘무대응’이지, 결코 ‘무관심’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당연히 극우세력이나 종교 근본주의자 등의 영향력은 시민사회의 질을 떨어뜨리고 민주주의 정신과 헌정질서를 훼손할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으므로 지속적인 경계와 견제가 필요합니다.

 위 위키의 한 대목처럼 한계까지 무대응으로 일관하며 조용히 증거를 축적하다 법적대응을 한다거나, (김기춘 거짓증언 증거제보처럼) 상대의 치명적인 실수를 강력하게 치고 나가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직접적으로 저들 세력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저들의 주장만을 비판하는 간접적인 견제방식을 택할 수도 있겠지요. 또는 부정적 가치에 대한 비판보다는 긍정적 가치에 대한 설파에 더 비중을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성 소수자의 경우라면, 동성애자 등을 부정하고 탄압하는 호모포비아들의 만행보다는 성 소수자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이해자들의 사례를 소개하는 일에 중점을 두는 편이 세간의 인식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성 소수자 인권탄압을 소홀히 다루어도 된다는 주장은 절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이슈가 커졌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해당 세력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본격적으로 다 함께 그 부적절함을 성토할 수밖에 없겠지요. 다만 그것이 우려되는 분들 중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불을 끄고 싶은 마음에서 성급하게 싸움을 시작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위에서 논한 것처럼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만 떠올려 주시고 행동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 우려되는 마음에 사족을 달자면, 전 결코 ‘행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최후에는 행동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지요. 단지 ‘타이밍’을 재는 것은 때로는 그 행동만큼이나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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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일본에선 『삼국지』는 ‘기업경영 교과서’처럼 보는 경향이 있잖아요. 시바 료타로 작품에서 배우라는 식으로.”

 “시바 선생님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저는 독자로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제게도 그런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기억하는 게 『은영전』 소설 제3부가 나갔을 때였는데, ‘비즈니스맨의 필독 전쟁 로망’이라는 광고가 나와서 ‘이건 절대 아닌데.’ 싶었어요. (웃음)”

 “하지만 그 광고를 보고 책을 산 비즈니스맨들도 분명 당황하지 않았을까요? (웃음) 세상에는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가치관으로만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라.”

 “저는 요즘 점점 그런 가치관을 비웃는 일이 많아졌어요. ‘젊은 세대가 버추얼 리얼리티에 빠져서 스토리와 현실의 구별을 못 하죠.’라는 소릴 들은 적이 있어서, 전 원래 강연 같은 걸 안 하는 성격이지만, 십 몇 년 만에 했던 모교의 강연 때 ‘그래봤자 나잇살 먹은 정치가며 재계 사람들부터 현실 역사와 시바 선생님 소설을 구별하지 못하는데 어쩌겠어요.’라고 딱 부러지게 말했죠. (웃음)”


- 은하영웅전설을 만드는 법, 다나카 요시키 인터뷰 Part 10 중 -



 종종 창작물의 2차원 캐릭터에게 애정을 쏟는, 소위 ‘오덕’들을 겨냥해 ‘현실을 볼 줄 모른다’며 비웃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한데 사람의 관점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정작 경전 속 인물인 예수 등에게 푹 빠져 살며 새벽기도를 꼬박 나가고 십일조를 바치는 신앙인들에게 많은 이들은 ‘견실히 살고 있다’는 평을 내리면 내렸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비웃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소위 성경이라 불리는 기독교의 경전은 매우 허구적인 요소가 많다. 가령 지구의 나이, 진화론 등에서는 과학이론과 배치되며, 실제로 헤로데 왕은 예수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으며 당시에는 인구조사도 실시되지 않았다는 점 등에서는 역사적 사실과 대치되고, 예수의 족보와 행적이 복음서마다 다르다는 점 등 성경 자체에도 내용상 여러 불일치와 모순점이 존재한다.

 물론 예수의 모델이 된 인물은 실존했을 가능성이 높고, 성경 또한 사료나 문학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것은 고대의 많은 기록들이 그러하듯 부정확하거나 오류가 많아, 당연히 변치 않는 진리도 아니며 신빙성이 결코 높다고 할 수도 없다.

 즉, 인간 예수는 존재했을지 몰라도 그 예수가 신성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수렴한다. 쉽게 말해 성경의 내용은 유대인들의 종교를 기반으로 당대의 유명한 인물이나 사건을 참조해 적당히 재구성한 일종의 판타지 역사소설이라 보면 이해가 빠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최소한의 고증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이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계시종교들도 비슷하게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대체 이런 성경을 맹신하는 종교인과 환단고기를 신봉하는 일명 환빠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난 둘 사이에 어떤 차이점도 발견할 수가 없다.

 그에 비해 오덕들은 최소한 자신이 즐기는 게 ‘허구’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애니나 게임 캐릭터의 생일을 레스토랑에 가 축하하고 심지어 캐릭터와 결혼식까지 올리는 중증 마니아들도 결코 그것을 현실과 혼동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애당초 ‘현실과 달라’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것이든 현실을 도외시하며 지나치게 매몰되는 것은 좋지 않다. 다만, 일전 셧다운제와 관련해서 ‘아이들이 밤늦게 게임하는 것은 건강에 걱정이 돼 막아야 한다면서, 밤늦도록 공부시키는 건 괜찮냐’는 비판이 일었던 것처럼 자신의 관점이 과연 공정한가에 대해서는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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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 당신이 옳았소. 세계를 변혁시키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남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타인의 의지(SENSE)를 존중하고, 그리고 스스로의 의지(SENSE)를 믿는 것. 그것이 당신의 유지(SENSE)였소…….”

- 코지마 프로덕션, 메탈기어 솔리드 4 중 -



 저도 성 소수자이지만, 상대에게 PC, 즉 지나치게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애당초 언어 자체가 애매모호한 성질이 있으며, 사람마다 주관이 다르기에 쓰이는 맥락도 다릅니다. 거창하게 비트겐 아무개 선생을 댈 것도 없이 당연히 그 사람의 평소 생각과 쓰인 상황까지 고려해 그 워딩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판단해야지요.

 한데, 다소 과격한 페미니스트 분들이나 성 소수자 분들 중에는, 너무 대의에만 눈이 멀어 앞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 경우가 있는 것 같더군요. (아니면 단순히 '가르치는' 우월감에 젖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정확하게 기억 나는 건 아니지만 칼 포퍼라는 사람이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더군요.

 '어떤 사람이 전체주의를 민주주의라는 뜻으로 쓰고 있고,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용어를 바로잡는 데 지나치게 구애 받을 필요는 없다.'

 또 이런 말을 했다고도 합니다.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을 수도 있다. 진리에 가까이 가는 것이 누가 옳고 그른지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이 논의가 끝날 때쯤 우리 모두 이 문제를 전보다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기를 바라자. 이러한 목표를 염두에 둘 때에만 우리는 토론에서 자신의 입장을 최대한 옹호할 수 있다.”


......
 지난 토론에서 동성애에 대한 문재인 후보의 입장은 분명하게 동성애 차별에 반대한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당선 가능성이 낮은 심 후보를 제외한 다른 어떤 후보보다 동성애에 우호적인 입장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성 소수자로서 문재인 후보의 발언에 아쉬운 점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말 그대로 그건 아쉬운 점일 뿐입니다. 우리의 의견을 전달하고 토론해 점차 이해자를 늘려나가면 될 일이에요. 그것을 마치 문 후보가 동성애를 혐오했다고 몰아붙이며 공격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전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의 강요는 상대에게 실례가 될 뿐만 아니라 도리어 불쾌감을 유발해 이해와 협력을 저해하는 역효과가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도 일상 생활에서 이성애자 분들의 아무렇지 않은 한 마디(가령 이성을 만나 가정 꾸려 애 낳고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등)에 가끔 상처를 받을 때도 있지만, 전 그것이 그분들의 '선의'라 생각하고 한편으로는 고맙게 여기기도 합니다. 그만큼 저에게 신경을 써준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 제가 성 소수자임을 알고 있는 친구와 대화할 때, "난 결혼할 생각도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지만, 너의 그런 말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축복으로 생각한다"고 전하니, 친구도 그 말에 동의하며 정말 좋은 뜻으로 한 말이었다고 하더군요. 이처럼 무턱대고 투쟁하며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는 것보다는 상대방과 이해를 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투쟁과 정치적 올바름의 강조가 중요한 시점도 있습니다. 바로 이번 대선의 홍준표 씨 같은 경우나 기독교, 이슬람의 근본주의자들, 여타 호모포비아들을 겨냥할 때가 바로 그렇지요.

 위의 인용에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남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란 표현 또한 무조건 수구적으로 세상을 정체시키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후손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지금 있는 세상의 좋은 가치와 문화들을 파괴하지 말고 지키자는 맥락이지요. 당연히 극우주의자나 근본주의자들의 극단적인 주장은 지금까지 '발전해온 세상'을 파괴시키는 것이니 충분히 싸울 명분이 있습니다. 그 화살을 애먼 사람에게 돌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친박 집회의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휘날린다고 하여 그들이 대한민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듯, 과격한 성 소수자 단체들의 부적절한 행동이 성 소수자들을 대변한다고 전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의 행동에 성 소수자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역시 사회의 일원으로 대표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저 그런 인식이 더는 퍼지지 않도록, 그리고 성적지향 이전에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람'으로서, 더 좋은 삶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서로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행동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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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에 대한 사회의 잘못된 인식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여성이 매력적이거나 먼저 유혹했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군대에서 남자 성폭력 피해자의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다. 군대에서 남성이 성범죄 피해를 입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동성애자 혹은 여자만큼 예쁜 사병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들도, 가해자들도 자신을 동성애자로 인식하지 않으며, ‘여성적 매력’이 성폭력 원인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중략)

 그렇다면 성폭력은 혈기왕성한 성욕 때문에 발생한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물론 이것도 거짓이다. 그 이유는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연령 분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학자들은 이를 ‘권력 행사 욕구’로 해석한다. 교도소와 같은 집단 수용시설에서의 강간을 살펴보면 내부 권력 갈등에서 권위를 세우기 위한 우월감 경쟁에서 비롯되어 발생한다는 것이다. (중략)

 글로벌 인권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Human Right Watch)의 보고서에 따르면 성폭력의 주요 원인은 성적 욕구나 성적 만족이 아니라 모든 순간에서 자신의 결정권과 자율성이 상실된 무력감이라고 한다. 심리적 무력감과 마주한 인간에게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보강하려는 본능적 욕구가 강하게 작동한다. 힘이 있는 인간이고 싶고, 누군가를 통제하는 인간이고 싶은 것이다.

 병사들은 2년 동안 자유를 반납하고 위계질서에 편입되어 지위가 가장 낮은 조직원이 된다. 먹는 것, 입는 것, 일상생활의 매우 소상한 부분까지 제약이 가해진 삶 속에서 이들은 권력과 자율을 박탈당한다. 이들은 박탈당한 자유만큼 보충해야 할 본능을 발견하며 이를 다른 한편에서 채우려는 것이다.


- 이창무 · 박미랑, 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 메디치, 63면 이하. -



 이번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도 이슈가 되었습니다만,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동성애는 결코 군내 동성 간 성범죄의 원인이 아닙니다. 이는 박민규 작가의 지구영웅전설에서 미국의 패권주의를 상징하는 영웅 중 한 명인 배트맨이 수하인 로빈이나 주인공 바나나맨을 굴복시키기 위해 강간을 한다든지, 몇몇 유인원 중 무리의 수컷 우두머리가 다른 수컷에게 우위를 과시하기 위해 성폭행을 행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볼 수가 있죠.

 마찬가지로 동성애가 군내 전력을 약화시킨다고 하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가령 유명한 군사국가 스파르타의 경우 동성애를 유대관계 강화에 좋은 문화라 보고 오히려 권장하기도 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스파르타의 소년기숙사에는 ‘누군가 비겁한 행위를 한다면 그의 소년애인이 대신 벌금을 낸다’는 규정이 있을 정도로 공식화되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밖에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테베에는 300명의 게이 커플로 구성된 ‘신성부대’라는 집단도 존재했습니다. 위키에 따르면 플라톤은 향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는군요. “연인으로만 이루어진 국가나 군대를 만들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모든 병사들이 연인과 함께 싸운다면 아무리 적은 세력이라도 세계를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부대로 명성이 높았으며, 스파르타 군을 격파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심지어 동성애를 탄압한 것으로도 악명 높은 나치스의 히틀러조차 직전까지 그 조치에 망설였다고 합니다(『나치즘과 동성애』 참조). 왜냐하면 당·친위대·돌격대·히틀러청소년단 등 나치 체제를 뒷받침했던 주축 조직이 대개 ‘남성동맹’이었는데, 바로 근대 부근까지만 해도 동성애는 오늘날처럼 크게 금기시되지 않고, 오히려 위에서 말한 사례처럼 서로의 유대를 강화하는 요소로 인정받았기 때문이지요.

 이와 같은 사례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군내 사기를 저하시키고 전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강요에 의한 성폭력이지 결코 동성애가 아닙니다. 성폭력은 이성애/동성애를 불문하고 개인의 인격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금지되어야 마땅한 행위이며, 동성 간 성범죄조차 위 인용의 사례처럼 그 주체는 동성애자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저기, 형. 만담 중에 외눈박이 나라 얘기 있잖아.”

 “응, 나도 안다. 상당히 블랙유머지, 그거.”

 어떤 남자가 변경에 있는 외눈박이 나라를 찾아갔다. 외눈박이를 잡아 데려와 구경거리로 삼으려고 계획했던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자신이 그들에게 붙잡혀 ‘신기한 두눈박이 인간’으로 구경거리가 되고 만다.

 오랫동안 구경거리가 되는 사이에 사내는 두눈박이인 자신이야말로 이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해, 결국 자신의 한쪽 눈을 없애 버렸다. 다수가 정상이고 소수가 이상하다고 단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비웃는 이야기다.


- 다나카 요시키, 창룡전創竜伝 3권, 소미미디어, 188면. -



 물론 단순히 군대 문제를 벗어나 사회 차원에서도 동성애 등 성 소수자의 성적지향은 반대를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전 스스로가 성 소수자인 동시에 동성애를 비롯한 여러 성적지향이 이성애자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얼마 전 올렸던 내용에 살짝 수정을 더했습니다.)


 첫째, 흔한 세간의 편견과 달리 동성애 등은 정신질환이 아닙니다. 세계보건기구나 미국정신의학회의 질병분류기준에서는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하지 않으며, 성 소수자 집단 특유의 어떤 유전적인 결함이나 사회심리학적 부적응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둘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여러 국가에서는 동성 결혼을 인정하거나 그에 준하는 동성 커플제를 운용하고 있으며, 파리나 베를린 등에서는 게이라고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 시장이 당선 및 재선된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실 그들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그런 동성애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부정하는 일부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테러입니다.

 셋째, 동성애를 비롯한 성 소수자는 선천적으로 그런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다수설이라 하며, 이는 6살 때 이미 자신이 성 소수자임을 자각한 제 경험과도 일치합니다. 즉, 이성애자가 이성을 사랑하는 데 특별히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잘못될 것도 없는 것처럼 동성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넷째, 에이즈는 동성애자가 많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남성과 성관계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이 걸리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남성과 성관계 경험이 없거나 적은 독신주의자나 레즈비언 여성은 에이즈 감염률이 이성애자보다 낮다는 뜻이 됩니다. 만약 에이즈 감염률을 근거로 동성애자(특히 게이)를 배척하는 호모포비아들의 논리대로라면,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성적지향은 이성애가 아닌 여성동성애나 무성애가 될 것입니다.

 남성 간 성관계 경험자에게 에이즈 감염률이 높은 것은, 에이즈 감염은 주로 혈액이나 정액 등 체액 교환을 통해 일어나는데, 남성 간 성관계는 특성상 출혈 가능성이 높고 콘돔을 착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에이즈 감염은 단순히 성관계 방식에 따른 문제로서 동성애가 옳지 않다는 부정적인 증거로는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이제는 에이즈 바이러스 자체도 숙주를 죽이지 않기 위해 점점 약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의학의 발전으로 약만 잘 먹어도 기대수명까지 건강관리가 가능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최소한 에이즈를 빌미로 동성애 등을 부정하는 주장을 펼치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한지는 충분히 설명이 되었으리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성 소수자 중 특히 동성애자나 무성애자는 아이를 낳지 않아 후대를 잇지 못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라 비판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독신주의자나 또는 유전적인 결함이나 후천적인 사고 등에 의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된 사람들의 사랑이 부정 받을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동성애자 등의 사랑 또한 부정될 수 없다는 반박이 가능합니다.

 [KISTI 과학향기] 정자와 난자의 수정 없이 후손이 탄생?

 [인공 난자 첫 성공, 불임-유전병치료 새 길 열려]

 더욱이 위 링크된 기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줄기세포를 이용한 무성생식이나 동성 간 임신 가능성도 동물실험 단계에서 얼마간 성과가 나왔다고 합니다(일반 체세포에서 인공으로 생식세포인 정자와 난자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여성으로부터 '인공정자'를, 남성으로부터 '인공난자'를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기술이 문제없이 적용될 수준으로 발전되어 안정되기 전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사회적 거부감과 기존의 윤리문제를 넘어서는 데도 여러 진통이 예상됩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는 가까운 미래에 충분히 실현이 가능한 기술이라는 점입니다. 쉽게 말해 성 소수자 반대파의 최후의 보루였던 종족번식의 문제에서도 더 이상 동성애 등 성 소수자의 성적 지향은 반대를 받을 이유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위키에 따르면, 동성애는 무리생활을 하는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흔히 발견된다고 합니다. 가령 펭귄의 경우는 약 5%가, 양은 10%, 검은 고니는 무려 25%에 달하는 비율이 동성 커플이라 하는데, 특히 검은 고니의 경우는 오히려 동성커플의 알 부화율이 이성커플보다 높다고 합니다.


 저는 위의 인용에서의 블랙유머처럼 외눈박이가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것도 원하지 않고, 반대로 두눈박이가 자기 눈 하나를 스스로 빼버리는 세상도 원하지 않습니다. 더 보스(MGS)의 표현을 빌리자면, ‘타인의 뜻을 존중하며 자신의 뜻을 믿을 수 있는 것.’ 바로 그런 세상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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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상 깊게 본 만화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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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민은 일차적으로 각 계급의 낙오자들을 대표하는 집단이다. 이 때문에 폭민을 국민과 혼동하기 쉽다. 국민 역시 사회의 모든 계층을 아우르기 때문이다. 국민이 모든 혁명에서 진정한 대의제를 위해 투쟁했다면, 폭민은 항상 ‘강한 자’, ‘위대한 지도자’를 소리 높여 외친다. 폭민은 자신을 소외시킨 사회를 증오하며, 자신을 대변해주지 않는 의회 역시 증오하기 때문이다.

-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권, 한길사, 242면. -



 근래 ‘언론 및 표현의 자유’가 새로운 이슈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언제나 있어 왔던 논란으로 새삼스럽게 놀랄 일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이번에는 그것을 주장하는 주체가 과거 한국 사회에서 주류를 차지해 왔던 ‘박정희 신화’의 지지 세력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그들은 말한다. 박근혜 피의자의 탄핵과 구속을 반대하는 자신들의 주장도 엄연한 ‘소수의견’으로서 사회운영에 반영이 되어야 한다고. 박근혜 피의자를 옹호하는 이른바 ‘태극기 집회’도 그저 촛불집회와 ‘다른 의견’일 뿐이므로 비판 받지 말고 존중되어야 하며, 언론에 비중 있게 그 의견이 전달되어야 한다고.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다름’과 ‘틀림’의 문제를 교묘하게 혼동시킨 다음, 민주주의에 기반한 문화 상대주의를 악용하여 자신들의 부적절한 의견을 관철하려는 악의적인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비판자들을 항상 탄압해 왔으면서도 정작 수세에 몰리자 상대방의 논리를 이용해 보호를 요청하는 그들의 얄팍함과 뻔뻔함도 웃음이 나오는 일이지만,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애초에 그들의 의견 자체가 존중 받을 수 있는 소수의견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연히 민주주의 사회에서, 특히 ‘다수결’이 기본원칙인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소수자의 의견존중’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만약 이것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다면, ‘다수에 의한 독재’라는 심각한 폐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유명한 역사적 사례로는 히틀러와 나치당의 대두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든 의견’이 똑같은 비중으로 전부 존중을 받을 수는 없다.
 가령 어린아이를 성폭행하고 싶다는 강간범의 욕망도 하나의 ‘의견’으로서 존중될 수 있을까? 실제로 미국에서 있었던 사례처럼 연쇄살인범에게 카리스마를 느끼고 그를 응원하는 ‘팬’들의 의견도 ‘똑같은 소수의견’으로 보호를 하고 사회운영에 ‘반영’해야 할까? 인종차별이나 노예제를 긍정하는 주장은?

 더욱이 ‘존중’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다른 글에서도 밝힌 바가 있지만) 결코 비판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무리 소수의견이라도 사실과 다르거나 반박할 부분이 있다면 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기서 원활한 의견전달을 위해 한 번 내 사례를 들어 보겠다.
 나는 성 소수자이다. 그리고 동성애를 비롯한 여러 성적 지향을 긍정한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단지 소수의견이기 때문에, 내가 성 소수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또 무조건 다원주의를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성애를 비롯한 성 소수자도 이성애자와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인정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동성애 등 성 소수자를 긍정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흔한 세간의 편견과 달리 동성애 등은 정신질환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나 미국정신의학회의 질병분류기준에서는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하지 않으며, 성 소수자 집단 특유의 어떤 유전적인 결함이나 사회심리학적 부적응도 발견되지 않았다.

 둘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여러 국가에서는 동성 결혼을 인정하거나 그에 준하는 동성 커플제를 운용하고 있으며, 파리나 베를린 등에서는 게이라고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 시장이 당선 및 재선된 일도 있다. 하지만 기실 그들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그런 동성애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부정하는 일부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테러이다.

 셋째, 동성애를 비롯한 성 소수자는 선천적으로 그런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다수설이라 하며, 이는 6살 때 이미 자신이 성 소수자임을 자각한 내 경험과도 일치한다. 즉, 이성애자가 이성을 사랑하는 데 특별히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잘못될 것도 없는 것처럼 동성애 또한 마찬가지이다.

 넷째, 에이즈는 동성애자가 많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남성과 성관계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이 걸리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남성과 성관계 경험이 없거나 적은 독신주의자나 레즈비언 여성은 에이즈 감염률이 이성애자보다 낮다는 뜻이 된다. 만약 에이즈 감염률을 근거로 동성애자(특히 게이)를 배척하는 호모포비아들의 논리대로라면,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성적지향은 이성애가 아닌 여성동성애나 무성애가 될 것이다.

 남성 간 성관계 경험자에게 에이즈 감염률이 높은 것은, 에이즈 감염은 주로 혈액이나 정액 등 체액 교환을 통해 일어나는데, 남성 간 성관계는 특성상 출혈 가능성이 높고 콘돔을 착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즉, 에이즈 감염은 단순히 성관계 방식에 따른 문제로서 동성애가 옳지 않다는 부정적인 증거로는 사용할 수가 없다.

 더욱이 이제는 에이즈 바이러스 자체도 숙주를 죽이지 않기 위해 점점 약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의학의 발전으로 약만 잘 먹어도 기대수명까지 건강관리가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최소한 에이즈를 빌미로 동성애 등을 부정하는 주장을 펼치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한지는 충분히 설명이 되었으리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성 소수자 중 특히 동성애자나 무성애자는 아이를 낳지 않아 후대를 잇지 못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라 비판하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독신주의자나 또는 유전적인 결함이나 후천적인 사고 등에 의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된 사람들의 사랑이 부정 받을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동성애자 등의 사랑 또한 부정될 수 없다는 반박이 가능하다.

 [KISTI 과학향기] 정자와 난자의 수정 없이 후손이 탄생?

 [인공 난자 첫 성공, 불임-유전병치료 새 길 열려]

 더욱이 위 링크된 기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줄기세포를 이용한 무성생식이나 동성 간 임신 가능성도 동물실험 단계에서 얼마간 성과가 나왔다고 한다(일반 체세포에서 인공으로 생식세포인 정자와 난자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즉 여성으로부터 '인공정자'를, 남성으로부터 '인공난자'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기술이 문제없이 적용될 수준으로 발전되어 안정되기 전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사회적 거부감과 기존의 윤리문제를 넘어서는 데도 여러 진통이 예상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는 가까운 미래에 충분히 실현이 가능한 기술이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 성 소수자 반대파의 최후의 보루였던 종족번식의 문제에서도 더 이상 동성애 등 성 소수자의 성적 지향은 반대를 받을 이유가 없어지고 있다.




 따라서 결국 내가 저 앞에서 인용한 문장 속에서 조지 클라크 경이 말한 결론, 즉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역사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는 이론 대신에 의미는 무한하다는 이론, 즉 그 어떤 의미도 그것과 다른 어떤 의미보다 더 올바르지 않다 – 이것은 결국 어떤 의미든 거의 똑같다는 것이 되는데 – 는 이론을 얻게 된다.

 뒤의 이론이 앞의 이론만큼이나 옹호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어떤 산이 보는 각도를 달리 할 때마다 다른 형상으로 보인다고 해서, 그 산은 객관적으로 전혀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거나 무한한 형상을 가진다고 할 수는 없다.

 해석이 사실들을 확정하는 데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고 해서, 그리고 현존하는 어떠한 해석도 완전히 객관적이지 않다고 해서, 이 해석이나 저 해석이나 매한가지이며 역사의 사실들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객관적인 해석을 내릴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에드워드 핼릿 카, 역사란 무엇인가, 까치, 45면 이하. -



 내가 굳이 커밍아웃까지 하면서 동성애 등 성 소수자 옹호 주장을 상세하게 밝힌 것은, 소수의견이라 하여 ‘무조건’ 긍정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성에 대한 논란이 벌어질 경우 그것이 왜 ‘긍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함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언뜻 ‘문화상대주의’라는 단어만을 보면 그것이 가지는 다원성이나 융통성이나 관용 같은 요소가 마법 같이 좋은 쪽으로 이끌어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무정부상태에서 벌어지는 무질서와 혼란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문화상대주의의 무조건 혹은 극단적인 적용은 오히려 ‘자신만이 지배적인 문화가 될 자격이 있다’라는 생각을 가진 배타적인 문화의 폭주를 막지 못하게 되어 문화상대주의의 기반마저 파괴할 염려도 적지 않게 존재한다.




 -장하나 의원 후원회장을 맡았단 보도를 처음 봤을 때 사실 별 감흥이 없었어요. 소설가가 정치적 지지를 표하는 게 드문 일도 아니고. 그런데 김영하 작가 소설을 읽으면서 새삼 궁금해졌어요. 이런 사람이 웬일이지?(웃음) 개인주의를 옹호하고 정치나 서사, 엄숙주의를 극도로 혐오해온 사람이?

 “많이 바뀐 거죠. 저도 웬만한 상황이라면 나서지 않았을 거예요. 상황이 워낙 엄중해서 개인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싸워야 될 때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전체주의가 오니까요. 전체주의야말로 예술의 적입니다. 예술가들은 진보일 수도, 보수일 수도 있고 엉뚱한 거를 믿을 수도 있죠. 유에프오(UFO)를 믿을 수도 있고 극단적 환경주의자가 될 수도 있어요. 전체주의는 다른 모든 ‘~주의’를 압살하는 거잖아요. 최근에 연극계를 비롯해서 문화예술 분야에 사실상의 검열제도가 부활하고 있는 것, 그리고 이걸 당연하게 여기는 것, 그게 결국 자기검열로 이어지는 것…. 조짐이 좋지 않아요. 아주 안 좋아요.”


- 『나의 정치는 개나리언덕에서 피어났다』 소설가 김영하 씨의 인터뷰 중 -



 나 자신은 문화와 전혀 무관하고 완벽하게 보편타당한 도덕규범은 없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에게도 보편타당한 도덕규범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사람’이라 불리는 것은 그저 모든 개인의 총합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도덕’이 ‘개인의 도덕’과 일치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며, 하물며 그것이 개인의 행복이 될 수 있다는 보장은 더더욱 희박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사람은 일정 부분 자유를 희생하고 제재를 받을 필요가 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란 유명한 말처럼 각자 다른 기준을 가진 각 개인들을 제한 없이 풀어놓으면 도리어 서로의 기준이 서로를 침범하는 불행한 결과를 야기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한 제재는 신중하게 가해져야 하며 될 수 있는 한 최소한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의 기준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일전 언급한 밀의 ‘해악원리’나 독일기본법의 ‘방어적 민주주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이와 같은 사고방식에 따라 1) 그것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피해를 주는가. 2) 그것이 사회통념상 흔히 보편적이라 말해지는 인권 등의 가치에 반하는 면이 있는가. 3) 각 개인들에게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자유나 선택권이 실질적으로 주어져 있는가 등을 요건으로 하여 어떠한 주장이 허용되어야 할 것인지, 금지되어야 할 것인지를 판단한다.

 위의 요건에 전부 해당된다든가, 혹은 일부만 해당된다 하더라도 그 침해 정도가 극심하다면, 해당 사상이나 그에 연유한 행동 등은 제재와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난 군국주의, 독재정권의 미화, 그리고 박근혜 피의자를 지지하는 자들의 주장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고 본다.

 물론 내가 들고 있는 위의 요건이 올바르지 않다든가, 혹은 그 적용이 현실성이 없다거나 하는 등의 비판은 언제나 귀담아들을 생각이며, 요건 자체의 수정 및 개선도 계속해서 해나갈 것이지만, 일정한 기준으로 무언가를 판단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박근혜 피의자를 비롯한 독재자에 대한 개인숭배를 옹호하는 폭민들의 주장은, ‘국민의 주장’인 소수의견으로서 다루어질 수도 없고, 사회 운영에 반영될 수도 없다. 난 극우단체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이들을 ‘국민이 아니다’라고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다. 가령 연쇄살인범도 엄연한 국민이며 범죄자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그 연쇄살인범의 살인충동이 사회에서 허용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박근혜 피의자와 소위 태극기 집회가 옳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그에 합당한 근거를 밝히고 논지를 펼쳐라. 하지만 단지 소수의견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에 따라 범죄자와 범죄행위에 대한 옹호도 긍정해달라고 하는 주장에는, 위에서의 논지에 따라 일절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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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참고로 아래 허지웅 씨가 SNS에 올린 주장도 읽어주시면, 제 부족한 의견이 좀 더 잘 전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이 쓰인 시점은 약 2달 전으로 한창 박근혜 하야 및 탄핵 촛불시위가 전개될 때지만, 아직까지 시의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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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란 그렇게나 좋은 것일까? 은하연방의 민주공화정은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라는 추악한 기형아(독재자)를 낳지 않았던가.”

 “…….”

 “게다가 경이 사랑해 마지않는, 아…… 이건 내 생각이네만, 그런 자유행성동맹을 내 손에 팔아넘긴 것은 동맹의 국민 다수가 자신의 의지로 선출한 국가원수였네. 민주공화정이란 국민이 자유의지로 자기 자신의 제도와 정신을 타락시키는 정치체제인가?”

 여기까지 오면 양도 반론해야 했다.

 “실례지만, 각하의 말씀은 화재의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불 그 자체를 부정하시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흐음…….”

 라인하르트는 입술을 일그러뜨렸으나, 그러한 몸짓조차 금발 젊은이의 우아함을 해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전제정치도 같지 않은가? 이따금 폭군이 출현한다 하여 강력한 지도성을 가진 정치의 장점을 부정할 수는 없을 텐데.”

 짐짓 생각에 잠긴 척한 표정을 지으며 양은 상대를 바라보았다.

 “저는 부정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말인가?”

 “국민을 해칠 권리는 국민 자신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루돌프 폰 골덴바움, 또한 그보다도 훨씬 소인배지만 욥 트뤼니히트 같은 자를 권좌에 앉힌 것은 분명 국민 자신의 책임입니다. 남을 책망할 수 없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전제정치의 죄란, 국민이 정치의 해악을 남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 죄악의 크기에 비하면 100명의 명군이 베푸는 선정도 조그맣게 보일 정도지요. 하물며 각하처럼 총명한 군주가 출현하는 일이 지극히 드문 것을 고려해 본다면 장단점은 명백해지지 않을지요…….”


-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이타카, 354면 이하. -



 2017년 3월 10일. 탄핵 인용. 마침내 피의자 박근혜 씨가 파면되었네요. 민주 시민으로서 우리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은 ‘난 박근혜를 뽑은 적이 없다’라는 말로써 불쾌감을 표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미 ‘다수결’에 동의하고 투표를 한 이상, 설령 자신이 지지하지 않은 후보가 선출되더라도 그 결과를 용인하는 한편 수반하는 책임 또한 회피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저 역시 박근혜 피의자에게 표를 던진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독재자의 딸이 선출된 것에는 책임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가령 동 피의자가 선출되지 못하도록 충분히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고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했어야 됐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책임’이란 무엇일까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마치 마조히스트처럼 자신들이 뽑은 잘못된 위정자의 횡포를 감수하며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책임을 지는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위의 인용에서도 말하는,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민주 시민으로서의 책임이란, 역시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라고 봅니다.

 반대로 박근혜 피의자를 옹호하며 만국기 집회를 하는 노추한 이들은,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리자면 '각 계층의 낙오자'들로 구성된 이 폭민(mob · 暴民)들의 근저에 있는 것은, 애국 운운하는 거창한 수식이 무색하게 실제로는 자기 책임을 ‘회피’하려는 퇴행적인 심리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지도자에게도 여전히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한편, 그 지도자를 끌어내리는 것으로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시민들에게 적대감을 표출하는 것이지요.




 “혹시 발견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 「지문」같은 거 찾지 못할지도……. 아니, 그보다는 찾는다고 해도 범인이 교활한 변호사라든지 고용해 무죄가 된다면 당신은 어쩌려고 이런 고생을 떠맡고 있는 거지?”

 “그렇군. 나는 「결과」만을 바라고 있는 게 아니야. 「결과」만 바라고 있으면 사람은 지름길로 가고 싶어 하는 법이지. 하지만 지름길을 택했을 때 진실을 놓치게 될지도 몰라. 의욕도 갈수록 잃어버리고 말이야.”

 “…….”

 “중요한 것은 『진실을 추구하려는 의지』라고 생각해. 그 추구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설령 이번에 범인을 놓친다고 해도 언젠가는 닿을 수 있겠지. 계속 그쪽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말이야.”


- 아라키 히로히코, 죠죠의 기묘한 모험 제5부 13권, 슈에이社, 110면 이하. -



 분명 ‘의지와 노오오오력’을 강요하는 사회는 잘못되었습니다. 손발이 꽁꽁 묶인 사람이 헤엄을 치지 못하고 가라앉을 수밖에 없듯이, 상황에 대한 개선 없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일은 사실상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극기만을 강조하는 기성사회의 요구에 심한 부조리를 느끼는 것이지요.

 하지만 모든 일의 기본이 ‘의지와 노력’인 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단지 필수조건을 충분조건인 것 마냥 밀어붙여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풍조가 그릇되었을 뿐이지, 그 ‘기본’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다른 많은 분들도 말씀하시는 것처럼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박근혜 피의자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고, 다른 기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금방 사회 부조리가 일소될 수는 없는 일이지요. ‘한국사회의 정상화’라는 긴 여정을 끝까지 걸어 나가기 위해선 지속적인 시민들의 관심과 비판, 그리고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오늘 하루, 이 작지만 큰 ‘진전’을 순수하게 기뻐하는 일 정도는 허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동시에 오늘을 ‘기억’하며 사회 정상화의 여정이 끝나는 그날까지 쭉 이 마음을 유지하며 힘을 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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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님이 농부였습니다. 집에서 5킬로미터 바깥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시지만 자기 땅에 대해서는 토끼굴 하나까지 다 아시는 분이었지요. 무식하다고 말해지지만 사실은 아주 현명한, 그런 보통의 농부셨지요.”

- 이영도, 피를 마시는 새 1권, 황금가지. -



“늙으면 지혜로워진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농경시대의 꿈같은 소리입니다. 늙으면 뻔뻔해집니다.”

-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


 최근 태극기를 내세우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범 및 공범들을 옹호하는 자칭 보수단체의 등장에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이런 단체들 자체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활동을 해오고 있었지만, 부역자들의 죄상이 낱낱이 드러난 시점에서도 온갖 궤변과 괴담을 동원하여 추종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면에선 타진요보다도 훨씬 악질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극도의 인지부조화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그들에 대해 웹에서의 일반적인 반응은 ‘보수를 받아서 보수단체’라는 비아냥거림이다. 즉, 친정권적인 정치권 또는 재계의 검은 돈으로 어용시위를 벌이고 있는 게 아니겠냐는 것. 이는 언론에서 이 자칭 보수단체들이 정계나 재계의 지시와 지원을 받은 정황이 있다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한층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돈으로 움직이는 것일까. 이에 대한 내 생각은 약간 다르다.



Patriotism is the last refuge of a scoundrel.
애국심은 악당들의 마지막 피난처다.

- 문학가 새뮤얼 존슨 -



 전체주의 정부가 그 공개적인 범죄 행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없이 매우 불안한 점이다. 그러므로 학자나 정치인이 종종 이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해도 그리 놀랍지 않다. 전자는 선전과 세뇌 공작의 마술을 믿기 때문이고, 후자는 아데나워가 반복하여 그랬듯이 단순히 이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SS 첩보부가 만든 전시(1939~44년)의 독일 여론에 관한 비밀 보고서가 최근에 출판되었는데, 그것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주민들이 이른바 모든 기밀 사항 – 폴란드 유대인의 학살, 러시아에 대한 공격 준비 등 – 을 무척 잘 알고 있었고 또 선전의 희생자들이 어느 정도까지 독립적인 견해를 형성할 수 있는지를 이 보고서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요점은 그런 기밀 사항들이 히틀러 정권에 대한 일반인의 지지를 조금도 약화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체주의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무지나 세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권, 한길사, 57면 이하. -


 물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의 한국의 정치상황이나, 언론에서 파헤친 여러 정황들로 미루어 봤을 때 어용시위 의혹은 일정 부분 사실일 것으로 판단된다. 정권이 바뀌면 이들 단체에 대한 수사도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들 단체의 참가자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위 인용에서 지적하는 맥락처럼 그들은 자신들이 ‘애국’을 하고 있다고 믿을 것이며, 돈을 받았다 하더라도 애국활동에 대한 ‘정당한 지원금’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직장인들이 많이 모이는 몇몇 커뮤니티의 게시판을 살펴보면, 음식점에서의 노인들, 중년의 택시기사, 심지어는 자신의 부모나 장인어른이 촛불시위를 폄하하고 박근혜 피의자를 옹호하는 발언을 입에 담아 답답하고 안쓰러웠다는 경험담이 종종 올라오곤 한다.

 한나 아렌트의 말마따나 그들은 결코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디어 매체를 통해 박근혜 피의자와 그 공범들에 대한 밝혀진 죄상과 밝혀야 할 의혹들을 전부 듣고도 일부러 귀를 닫고 카톡이나 폐쇄적인 인터넷 카페에 나도는 허위사실들에 취해 있는 것이다. “못 믿는 게 아니라 안 믿는 거잖아요.” 타진요에 대한 타블로의 일침은, 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유효하다.



 전체주의 정권에서 일어난 것은 결코 독일과 러시아의 특별한 역사로 국한되지 않는다. 전체주의를 가능하게 만든 핵심적 요소는 당시 근대사회에 만연했던 ‘쓸모없는 존재’(superfluousness)의 경험이었다. 이 경험은 근대 국민국가가 몰락하고 현대적 대중사회가 출현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의 세 번째 부분인 전체주의를 계급사회의 붕괴에 관한 서술로 시작한다. 대중이 없으면 전체주의적 운동이 일어날 수 없으며, 전체주의 운동이 없이는 전체주의적 국가체제가 형성될 수 없다.

 전체주의 운동을 구성하는 대중들은 정당이나 조합과 같은 확고한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표류하는 모래처럼 사회를 떠다닌다. “조직되지 않고 구조화되지 않은 대중, 절망적이고 증오로 가득 찬 개인들의 대중”이 생겨난 것이다. 아렌트가 주목하는 것은 이처럼 사회적으로 분리되고 원자화되고 그래서 지도자에게서 구원을 기대하는 대중을 둘러싼 전체주의적 운동이다. (중략)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아렌트는 ‘폭민’(mob, 暴民)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폭민은 사전적으로 ‘조직되지 않은 거대한 폭력적 군중’을 의미한다.

 폭민은 기존의 사회계급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발생했으며 계급과 국가, 어떤 공동체에도 속하지 않는 조직되지 않은 잉여 집단이다. 자본주의는 잉여자본과 잉여 인간을 발생시켰는데, 제국주의가 잉여자본의 조직이라면 전체주의는 잉여 인간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가들이 포착하지 못했던 사실은, 폭민은 성장하는 산업 노동자와도 또 더욱 분명하게는 국민 전체와도 동일시될 수 없으며, 실제로 모든 계급의 폐물들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조직하여 공허한 소속감과 정체성을 부여할 지도자를 기다린다. 이렇게 전체주의 정권은 탄생한 것이다.


- 이진우, 전체주의와 ‘정치적 자유’의 의미 中 -


 그들은 (설령 그것이 잘못된 교육과 불운한 환경에 의해 형성된 일그러진 자아라 할지라도) 엄연한 ‘자기 의지’에 따라 전체주의적인 봉건질서의 존속을 절실히 바라고 있다. 위의 인용에 따르면, 왜 친정권 시위에 유독 중년층 이상의 노인들이 지지를 보내고 있는지도 제법 설명이 가능하다.

 이미 사회의 주류에서 떨어져 나간 무력한 이들이 다시금 화려하게 권위의 망토를 두르고 무대 위로 복귀하기 위해선, 누구나 속할 수 있는 국가라는 상징물에 기대는 것이 가장 손쉬우며, 사실상 그것이 유일한 발판이자 지팡이이기도 하다. 그 구질서로의 회귀를 실행해줄 만한 지도자는 당연히 극우 인사들에게서밖에 찾을 수 없으니, 그들이 독재자의 딸과 그 부역자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으리라. 거창하게 말하자면, 본인들의 정치적 ‘실존’이 걸린 문제이니 말이다.



 “(세월호특별법 제정 반대 집회를 하는 노인들을 보면서) 젊은 사람들, 저기 저 노인들을 똑바로 봐요. 각성하지 않는다면 여러분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거야. 노인들 욕하자고 그러는 게 아니라, 얼마나 잘못 배웠으면 그 세대가 그랬겠냐는 걸 나는 얘기하는 거지. 마음에도 든 거 없고, 머리에도 든 것 없고, 그건 그 사람들이 젊은 시절에 이미 오늘날 저런 늙은이 되게끔 엉터리로 배우고 엉터리로 살아서 그렇습니다. 그냥 늙기만 하면 다 저렇게 되는 게 아니라, 정말 부실하게 살아서 저렇게 된 겁니다. 지금 젊은이들도 부실하게 살면 얼마든지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얘기하는 겁니다.”


-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



 “너무 화내지 말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환자니까.”

 슈나이더의 눈이 슬쩍 커졌다.

 “병이 있단 말씀이십니까?”

 “정신에 말일세.”

 메르카츠가 생각하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병이란 무의식 속의, 상처 입기 쉬운 자존심이었다. 본인은 그 사실을 알 리 없겠지만, 자신을 가장 위대하고 완벽한 존재라고 믿기 때문에 남에게 감사할 줄 모르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인정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와 다른 생각을 품은 자는 반역자로밖에 보지 않으며, 충고는 비방으로만 들린다. 따라서 슈트라이트와 페르너처럼 그를 위해 책략을 세워준 자들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오히려 그의 진영에서 쫓겨나고 만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기질을 가진 사람은 사회에 다양한 사상과 가치관이 존재한다는 것도 인정하지 못한다.

 “언젠가 말했던 500년에 걸친 귀족의 특권이 그 병을 키운 걸세. 공작도 사실 피해자라고 봐야겠지. 100년 전이라면 그것도 통했겠지만…… 불운한 사람이야.”

 아직 젊은 슈나이더는 상관만큼 관용을 가질, 혹은 체념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메르카츠 앞에서 물러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요새 전망실에 올라갔다. 반구형을 이루는 투명한 외벽 너머로 이리저리 얽힌 항성들의 무미건조한 빛이 매우 멀게 느껴졌다.

 “그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불운한 사람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에게 미래를 맡겨야만 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불운하지 않을까…….”


-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2권, 이타카, 243면 이하. -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래서 노인복지가 중요하다’는 식의 씁쓸한 농담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제 와서 그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재교육을 행한다고 해서 크게 바뀌는 것은 없다. 한 번 구축된 사람의 자아는 쉽사리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다만, 앞으로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을 사회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이 불쌍하다고 해서 우리가 양보해야 될 이유도 없다. 위의 인용에서도 말하는 것처럼 그 아래서 당하는 사람들이 ‘더더욱’ 불운하다. 무엇보다 그들의 행위가 우리 아이들의 발목을 잡고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가 된다면, 동정은 할지언정 양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을 수 있지만, 노추老醜를 위한 나라는 없다.



 만약 우리가 어떤 민족이 다른 민족을 지배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그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그러한 결과는 불가피했고, 따라서 이제 와서 그 결과를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주장이 되지 않을까?

 이와 같은 주장은 흔히 원인의 설명과, 정당화 또는 결과의 승인을 혼동하는 경향에서 기인한 것이다. 역사학적 설명의 목적은 그 설명 자체와는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어떤 현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러한 결과를 반복하거나 영속시키기보다는 변화시키려는 용도로 사용될 때가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살인자나 강간범의 심리를 이해하려 하고, 사회 역사학자들은 대량 학살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이해하려 하고, 의사들은 질병의 원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한 연구자들은 결코 살인, 강간, 종족 학살, 질병 등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원인을 이해함으로써 그 같은 인과관계의 사슬을 끊고자 한다.


-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 문학사상, 19면 이하. -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확신은 역사를 상투적인 틀로 해석하는 길로 이어질 수 있다. 이해란 잔악무도함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례에서 전례 없는 일을 추론하거나 현실의 영향과 경험의 충격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도록 만드는 유추와 일반화를 통해 현상들을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이해는 오히려 우리의 세기가 우리 어깨에 지운 짐을 검토하고 의식적으로 떠맡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짐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그 무게에 패기 없이 굴복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이해란 현실에, 그것이 무엇이든 미리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주의 깊게 맞서는 것이며 현실을 견뎌내는 것이다.


-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권, 한길사, 34면 이하. -


 어떤 칼럼에서 ‘성찰 없는 늙음’을 경계해야 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도 언젠가는 노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방심하면 어느새 그들처럼 후대의 걸림돌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그들을 용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른바 ‘인과관계의 사슬’을 끊고자 함이다. 우리가 그들을 부정하는 것은, 언제까지고 젊을 것이란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처럼 ‘늙지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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