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종이 울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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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Moratorium
by 안단테♪







[춘 희] ~뒤마 피스~


녀 간의 사랑이란 인생에서 참 미묘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평소에는 사랑만큼 공허하고 덧없는 말도 없지만 일단 한번 사랑에 빠지게 되면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의 목숨까지 전부 불태워버리는 경우도 있으며 또한 사랑은 당사자들의 감정 하나로 모든 것이 시작되지만 그것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감정 하나로만 해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결혼이란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라는 유명한 말처럼 사회적인 위치, 가족, 돈, 노후문제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그걸 무시한 채 순수한, 혹은 진실한 사랑을 논하는 건 현실을 무시한 채 파멸로 향하는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희의 무대가 되는 곳은 19세기의 프랑스로 이때는 돈뿐만이 아니라 가문과 신분도 사랑의 걸림돌이 되는 시대로써 본작품은 순진한 청년 아르망과 고급창부 마르그리트의 사랑을 그리며 단순히 두 사람이 맺어진다는 것이 자신들만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품은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있어 다소 특이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처음에 두 남녀의 사랑과는 전혀 관계없는 주인공이 화자로써 등장해 화려하게 살았지만 죽음은 쓸쓸했던 창녀 마르그리트의 장례식을 지켜보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은 우연히 마르그리트의 유품 경매에서 - 그녀는 엄청난 빚을 남긴 채로 죽었기에 남은 유산은 전부 경매에 붙여졌다 - 마농레스코란 책을 한권 사게 되고 뒤늦게 그녀의 죽음을 알고 찾아온 비운의 연인, 아르망이 그 책을 원하며 찾아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이중구조(액자식)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런 형식은 우리 독자들에게 이 이야기가 허구속의 일이 아닌 실제로 있었던 일과 같은 착각을 유도해 몰입감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주인공과 같이 아르망에게 이야기를 듣는 제3자로서 상황을 냉정하게 관찰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의외로 중요한 구조로,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욱 매춘부에 대한 도덕적인 인식이 좋지 않았기에 자칫하면 창녀의 생활과 사랑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작가는 지극히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런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을 피력하는 일종의 방어장치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을 보완하기라도 하듯 소설은 마지막에 “내가 악덕을 편들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마르그리트의 이야기는 하나의 예외이다. 만일 이것이 세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면 여기에 새삼스럽게 써볼 만한 가치도 없었을 것이다”라며 사족을 달고 있기도 하다.

품의 내용 자체는 이제 와서 새삼 논할 것 없는 통속적인 전개를 띠고 있다. 병약한 몸에 천한 출신으로 내세울 것은 빼어난 미모와 몸 파는 여자로서의 소양밖에 없는 마르그리트는 순진하고 힘없지만 열렬한 마음을 간직한 청년 아르망의 진실한 사랑에 점차 하나의 사람으로서 눈을 뜨게 되지만 결국 창녀라는 자신의 신분, 얼마 살지 못하는 병약한 몸, 아르망의 아버지의 반대 등으로 인해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 비참하고 쓸쓸한 최후를 맞게 된다. 그리고 아르망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오열하며 조금이나마 그녀를 위해 제대로 된 묘이장을 해주는 것이 전체적인 내용인 것이다.

나 이 소설에서 마르그리트가 담고 있는 위치는 절대 가볍지 않다. 그녀는 소위 말하는 약자들의 대변자로서의 역할을 결코 불쾌하지 않게 수행한다. 그녀는 아르망과의 사랑을 통해 매춘부가 단순히 남자들의 꽃장식이 아닌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외치고 그녀가 창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토로하며 그리고 아르망과 사랑을 시작한 후 겪게 되는 갖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 등에 상처 과정을 세밀하게 나타내는 것을 통해 불합리한 사회 구조와 편견을 여실히 꼬집어낸다.

것은 뒤마 피스의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으로써 그의 작품들이 사회공리극(社會公利劇)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유이다. 뒤마 피스의 소설이 이런 특징을 띠는 것은 그의 태생 및 성장과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왜냐하면 뒤마 피스 역시 ‘사생아’라는 사회적인 약자로써 이 세상에 생을 받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삼총사나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한 알렉산드로 뒤마로써 아들 또한 이름이 아버지와 같아 아버지 쪽은 뒤마 페르(大뒤마), 아들 쪽은 뒤마 피스(小뒤마)라 불렸다. 뒤마 피스는 아버지 뒤마 페르가 오를레앙 공의 서기로 있을 당시 같은 아파트에 살던 속옷 재봉직인인 카트린 사이의 관계에서 태어났으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었다.

마 피스는 아직 일곱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천한 여자에게는 교육 맡길 수 없다는 아버지의 결정으로 어머니와 생이별을 해 기숙사에 들어가야 했으며 기숙사에서는 사생아라는 약점과 당대 유명한 대중작가였던 뒤마 페르의 아들이란 이유로 - 팬의 수만큼 안티도 존재한다는 말이 있다 - 많은 굴욕을 겪어야 했다. 흔히 천재들이 그렇듯 아버지 뒤마는 그 이후에도 수많은 여인들과 방탕한 관계를 가졌으며 이것은 어린 뒤마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혔다. 이런 그의 심정은 후에 어떤 희곡에서 “미리 정신적/사회적 행복을 보증함이 없이 멋대로 자식을 낳게 하는 남자는 도둑이나 살인범의 부류에 넣어야 할 악인(惡人)이다”라고 쓴 것에서 잘 나타난다. 이런 영향 때문에 그는 한평생 사회적인 약자(특히 여성)를 옹호하고, 사회의 그늘을 헤집는 작품을 써냈으며 그 중 그런 주제의식과 아름다운 서정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걸작이 바로 춘희인 것이다.

처럼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의 비극적인 사랑은 단순한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순진한 청년의 한결 같은 구애에 창녀 시절 귀부인처럼 지내던 습관도 버리고 한 사람의 여자로써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던 그녀가 왜 그를 버리고 다시 창녀의 생활을 선택해 외로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는지, 또한 그녀에게 그런 선택을 강요하게 만든 사람들 또한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고려해봤을 때 과연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숙고해보게 된다.

를 들어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시대에서 사랑이란 결국 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허니와 클로버〉란 만화에서 어째서 선배는 벌써부터 그렇게 돈을 모으려 하냐, 는 후배 타케모토의 질문에 마야마는 이렇게 대답한다.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건 대부분 돈이 있냐 없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아. 그리고 만약 좋아하는 사람이 힘들어 쉬고 싶어 한다면 얼마 정도는 돈 걱정 말고 푹 쉴 수 있도록 의지가 되고 싶지 않겠어?”

타 불순물의 침입을 배제한 채 환상 속의 낭만을 신봉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속물적인 생각으로 들릴지 모르나 나는 마야마란 케릭터가, 더 나아가 그 작품의 작가가 현대에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한지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빵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니지만 빵이 없어도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사랑은 항상 주위 환경을 무시할 수 없으며 상황이 두 사람의 결합을 허락하지 않을 때는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등용문 이상의 뼈를 깎는 희생을 대가로 지불해야 하고, 대개의 경우는 그 벽을 넘지 못한 채 두 남녀는 비극의 결말로 향하기 마련이다. 만약 둘의 이뤄지지 않는 사랑이 두 사람의 문제만이 아닌 어떤 거대한 벽 때문이라면 우리는 그 벽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깨야 하는지 아니면 그대로 두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중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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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prosense.tistory.com BlogIcon kagami™ 2010.02.17 01:0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건 대부분 돈이 있냐 없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아" "만약 좋아하는 사람이 힘들어 쉬고 싶어 한다면 얼마 정도는 돈 걱정 말고 푹 쉴 수 있도록 의지가 되고 싶지 않겠어?” 이 두 글귀가 와 닿는군요.

    • Favicon of https://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2.17 13:11 신고 address edit/delete

      허클에는 참 심금 울리는 대사가 많은 것 같아요-_-b 리뷰를 적다보니 저도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노력하여 성숙한 사랑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네요^^;;

  2. Favicon of http://tsuyodung.tistory.com BlogIcon dung 2010.02.18 12:2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저자가 그런 아픔이 있었기에 그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던 거군요. 얼마전에 읽었던 <저주받은 아이들>에서도 2차 대전 시절에 독일군과 프랑스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들의 불우한 어린시절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들을 했었어요.
    좀 나이를 들어서 읽어도 별 어색함이 없는 내용인 것들은 당사자의 시각으로 그려낸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연꿈님이랑 저랑 재미 요소가 약했다는 그 만화(<사랑한다고 말해>)도 저자 후기를 보면 만화의 내용이 당사자의 입장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거든요.
    현실에 대한 모습을 그리는 것을 보고 싶을 때가 있기도 하지만, 그 반대일 경우도 있어서 뭐랄까 좀 자신이 아래로 내려가는 리듬이었으면 그 책에 몰입했겠지만, 그 책을 읽는 시점에는 주인공이 하고 있는 여러가지 자학들에 대해서 괴로워 하고 거리를 두고 싶어 했기 때문에 어려웠던것 같아요.

    +
    참 게시물은 왼쪽 맞춤보다 양쪽 맞춤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그편이 가독성은 더 좋을것 같아요. ^^

    • Favicon of https://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2.19 00:46 신고 address edit/delete

      정말 알게 모르게 작가의 경험이나 사상 같은 건 은연중에 작품 속에 묻어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양날의 검이라고 해야 할지, 작가 당사자의 입장이 작품과 어울리며 공정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면 내용몰입에 도움을 주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그저 자기주장만 하는 것 같아 불쾌하게 느껴지더군요···.

      p.s: 말씀하신대로 양쪽맞춤으로 하니 한결 보기 좋네요. 조언 감사드려요^^

  3. 2016.08.21 21:5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글을 참 깔끔하고 정갈하게 쓰시네요. 춘희보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단순히 비극적인 사랑 그외에 당시의 사회상 여성의 지위 편견.. 좋은 글 잘 읽고갑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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