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종이 울리는 밤

블로그 이미지
Over The Moratorium
by 안단테♪

'푸른 종이 울리는 밤'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10.10.13
    [푸른 종이 울리는 밤] 제1막 Last Scene 대위(完) (8)
  2. 2010.10.06
    [푸른 종이 울리는 밤] 제1막 Scene6 구상(5) (8)
  3. 2010.09.29
    [푸른 종이 울리는 밤] 제1막 Scene6 구상(4) (10)
  4. 2010.09.22
    [푸른 종이 울리는 밤] 제1막 Scene6 구상(3) (8)
  5. 2010.09.15
    [푸른 종이 울리는 밤] 제1막 Scene6 구상(2) (14)
  6. 2010.09.08
    [푸른 종이 울리는 밤] 제1막 Scene6 구상(1) (18)
  7. 2010.09.01
    [푸른 종이 울리는 밤] 제1막 Scene5 위상(4) (16)
  8. 2010.08.25
    [푸른 종이 울리는 밤] 제1막 Scene5 위상(3) (12)
  9. 2010.08.18
    [푸른 종이 울리는 밤] 제1막 Scene5 위상(2) (14)
  10. 2010.08.11
    [푸른 종이 울리는 밤] 제1막 Scene5 위상(1) (22)




3번째 장편 『푸른 종이 울리는 밤』 제1막이 완결되었습니다.
이로써 지금까지 총 문고본 6권 분량의 소설을 썼네요.

제 글들이 괜한 종이 낭비는 아닐까 참 걱정스럽지만···.
아, 다행히 워드 프로세서의 발명으로 지구의 자원은 무사하군요^^
(대신 전기가 소모되는구나... 무서운 등가교환의 법칙...OTL)

뭐랄까, 이번 소설은 어느 정도 글 실력이 궤도에 올랐다는
낯 부끄러운 착각에 빠져 시작했던 지라 오히려 쓰는 도중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는 몇 번이나 좌절했네요. 자업자득(...)

그래서 다음 소설은 새로운 이야기를 쓰려고 결심을 굳혔어요.
지금은 감히 건방지게 7권 분량이나 되는 대하소설(?)을 시도할 게 아니라
최대한 많은 형식의 이야기에 도전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지막까지 감상해주신 분들, 따스한 코멘트로 격려해주신 분들,
그리고 피와 살이 되는 조언으로 도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드려요!

다음 주나, 다다음 주에 또 다른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괜찮으시다면, 그쪽도 잘 부탁드려요^^




■■■





제 1막 조각가의 하늘 - Last Scene / 대위代位


 운학역 근처 벤치에 쓰러져 있는 윤종을 집까지 데려온 건 지수와 주형이었다. 소리의 도발성 전화를 받은 지수는 분노를 불태우면서도 이성을 잃지 않아 윤종이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는 걸 눈치 채고는 곧장 주형을 동반했다고 한다.

“아니, 그건 동반이 아니라 연행이었어!”

 …물론 주형은 지수의 표현에 격렬하게 항의했다. 딱 공연이 끝나고 밴드 멤버들과 뒤풀이를 하려던 찰나, 그는 갑자기 들이닥친 지수에게 영문도 모르고 끌려나와 차 운전을 했다는 모양이다. 다음 날, 정신을 차린 윤종은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게 된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허나 그 정도로 지수의 화가 풀릴 리 만무했다. 확실히 만 하루 동안 죽은 사람처럼 정신을 잃고 있던 상황은 변명하기 어려웠다. 자신도 광인이라는 사실을 들키기 싫었던 윤종은 살기등등한 지수를 앞에 두고 생명의 위기를 느끼면서도 간신히 그림자의 형태를 한 광인의 공격에 당해 그런 꼴이 된 거라 말을 지어낼 수가 있었다. 다행히 도시 내의 광인들의 정보에 귀가 밝은 지수는 요 한 달 사이에 꽤 크게 날뛴 그림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에 윤종의 거짓말을 믿어주었다. 진실에 일말의 거짓이 섞이면 전부 거짓말 같이 보이는 것처럼 반대로 거짓에 일말의 진실이 섞이는 것 또한 동일한 효과를 가져 온다. 별로 달갑지 않은 세상의 비의秘意였다.

“아무튼 한 번만 더 이런 일에 휘말리면 너 대신 저 녀석 힘줄을 뽑아버릴 거야!”

 일장설교를 마친 지수는 왠지 모르게 윤종 대신 주형에게 기세 좋게 위협을 가하고는 문을 세차게 닫고 나가버렸다.
 윤종은,

“여전히 발상이 살벌하군.”
 하고 가볍게 중얼거렸으며,

 주형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진짜 날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이제 문젯거리는 만들지 마라.”
 라고 사정했다.

 비록 걱정해주는 방식은 거칠지만, 정말 좋은 친구들이라 여기며 윤종은 서점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어제는 휴일이었기 때문에 무단으로 결석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같은 과오를 저지른다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다. 더 이상 주변의 친절한 지인들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었던 윤종은 작은 우연에 안도하며 평소처럼 행동했다.

 며칠간의 소동이 환상이었던 것 마냥 서점은 일상적인 느긋함으로 가득했다. 이준은 변함없이 거친 말을 날리면서도 간식거리를 제공했고, 나래는 교대시간이 끝났으면서도 윤종과 어울려주었다.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면 나래가 일전의 그 수상한 잡지 시리즈 중 하나인 『월간 반려묘 24시』에서 ‘길냥이에게 사랑 받는 101가지 방법’이라는 코너를 보고 이것저것 따라하다가 도리어 고양이에게 공격 받은 정도랄까.
 그러나 나래는 고양이가 할퀴어 손등에 제법 깊숙한 상처자국이 나고도,

“과연 그렇군요. 사랑이 깊으면 증오로 변한다고 하더니만, 애증 관계란 이런 거였나 봐요!”

 하고 기뻐했으며, 이준과 윤종은 천진난만한 그 모습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서점 알바가 끝난 후. 윤종은 집으로 곧장 향하지 않고 잠깐 다른 길로 샜다. 그는 속으로 지수와 주형에게 사죄를 했다. 특히 지수의 분노에 말려들다시피 하는 주형에게는 면목이 없었는데, 그저 윤종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괜찮아. 아무리 지수라도 설마 진짜 힘줄을 뽑거나 하지는 않을 거야.’라고 들릴 리 없는 위로를 건네는 것 정도였다.

“구름이 좀 꼈는데… 우산이라도 가지고 나올 걸 그랬나.”

 윤종은 기분전환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무사했다. 비록 구름이 없어도 별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는 밤하늘이지만, 어떻게 해도 존재감을 감출 수 없는 달과 금성인지, 북극성인지, 아니면 인공위성인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꿋꿋이 빛을 발하는 몇 개의 별들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윤종은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광기를 전부 발산해 쓰러진 지 이틀이 지난 그의 몸은 지금은 멀쩡했다. 물론 멀쩡하다고 해도 보통 사람처럼 격심하게 움직이는 건 곤란한 몸이지만 말이다. 그의 체력이 건강과 체력이 형편없는 건 광기 탓이기에 어떻게 고칠 도리도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수술 후유증이라고 대충 둘러대고 있는 중이다.

- 기다리고 있었어. 어서 와.

 오솔길의 끝에는 낡은 가건물이 한 채 서 있었고, 그 앞에는 검은 고양이가 마중 나와 있었다. 밤중이긴 했지만 자줏빛 눈이 무섭도록 빛나고 있어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고양이는 소리의 목청을 빌리지 않고도 직접 말하고 있었다. 이번에 ‘허체虛體’의 파편을 되찾은 덕분이라고 한다.

 윤종은 메아리의 안내를 따라 소리의 집으로 들어갔다. 소리는 집안 거실에 이불을 깐 채 자고 있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 거의 들리지 않는 숨소리, 미동도 하지 않는 몸… 24초의 광기를 전부 쥐어짜낸 윤종이 하루 동안 기절해 있는 상태와 똑같았다.
 메아리는 잠들어 있는 소리의 이불을 다시 한 번 잘 덮어주는 윤종의 주위를 빙글 맴돌며 말했다.

- 스스로 쓰러진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겠지만, 아마 당신에게도 익숙한 감각이겠지. 다른 점이 있다면 소리는 이대로 일주일을 간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윤종을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보통 무리를 한 게 아닌가 보군. 아니, 소모되었다기보다는 분에 넘치는 힘을 몸에 둘렀다는 표현이 알맞을 것 같은데… 그렇군. 저 녀석을 잃어버린 파편의 대체품으로 차용해 광기를 발산한 거냐.”

- 놀라운 걸. 그런 것까지 파악할 수가 있다니… 그래, 거기까지 알아낸 당신은 뭘 하려고 다시 찾아온 거야? 우리들의 관계는 이번 사건으로 끝났어. 당신은 딱히 보수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아니면 뭐야, 이제 와서 뭔가 요구할 생각이야?

“음, 요구라면 요구라고 할 수도 있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협력관계를 앞으로도 유지하고 싶다. 뭔가 도울 일이 있다면 불러줘.”

 검은 고양이는 비웃듯이 입가를 씨익 올렸다.

- 당신, 믿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역시 내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는지 신경 쓰이지? 예를 들자면 그 연우라는 여자를 되살릴 가능성이 있다거나.

 윤종의 눈매가 험악해졌다.

“남의 과거를 캐다니 악질적이군.”

-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하지. 고양이는 그 둘을 다 잡아먹고 말이야.

“뭐어, 상관없어. 어쨌든 네 녀석이 잘못 짚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니까. 넌 절대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없어. 난 그 거짓말을 알고 있지.”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시치미 떼기는. 네 광기는 확정과 불확정의 경계를 넘나드는 힘이다. 그렇다면 이미 이 세상에 없는 걸 어떻게 가져올 생각이지? 연우는, 죽었어. 바로 내 눈앞에서, 틀림없이. 너 따위가 연우의 죽음을 건드릴 수 있을 리가 없지!

 말투는 침착했지만, 윤종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거기에는 죽은 자를,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을 가벼이 모독하는 무례한 자에게 보내는 깊은 혐오와 경고도 담겨있었다. 그 기세에 압도당한 걸까, 아니면 말을 꺼낼 타이밍을 노리고 있을 따름일까. 메아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마 소리 녀석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미 죽은 사람을 너 같은 녀석이 되살릴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네 강대한 광기가 보여주는 환상에 빠진 데다 다른 열망이 너무 강해 눈치 채지 못하는 거지.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

 약간 열기를 띠는 윤종의 말을, 메아리는 딱 잘라 부정했다.

- 아니, 나한테는 죽은 사람을 되살릴 방법이 있어. 당신은 절대 믿지 못하겠지만 말이야. 나도 딱히 자세히 말해줄 생각도 없고. 그보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우리를 앞으로도 계속 도와주겠다는 거야? 별로 소리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나도 믿지 못하겠다며. 아무 이유도 없는 친절만큼 수상쩍은 것도 없는데?

 윤종은 숨을 고른 후 자세를 바로하며 말했다.

“이 녀석을… 소리를 지킬 생각이다. 앞으로도, 연우를 쭉 사랑하기 위해서.”

- 뭐……?

 약간 벙 찐 메아리가 뭐라 되묻기도 전에 윤종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관으로 향했다. 잠시 후 윤종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챈 메아리의 비웃음 소리가 집밖에까지 새어나왔다.

- 아하하, 아하하하하! 걸작이다, 걸작이야! 아아, 정말 배 아파. 소리야. 생전 처음으로 널 이해해주고, 편이 되어준 동맹자가 이 모양이야. 너도 앞으로 어떤 인생을 걸을 지 불 보듯 뻔하네!

 잔인하게 상대를 깔아뭉개는 조소였지만, 윤종을 화를 내는 일 없이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메아리의 말대로 그의 각오는 형편없는 최악의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연우가 죽은 뒤 윤종의 마음은 쭉 죽어 있었다. 눈앞에서 연인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도 손 하나 쓰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를 꽉 옭아매고 있었다. 연인을 너무 사랑했기에 생긴 그 죄책감은 역설적으로 너무 지나치게 그의 마음을 짓눌러 연우를 추모하는 마음조차 짜부라뜨리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묶인 것을 풀어헤친다는 소리의 광기. 그 영향력 아래 있으면 윤종의 죄책감은 느슨해져 그의 마음은 다시 되살아났다. 다시 연우를 사랑하는 감정이 타오르는 것이다. 그건 소리가 자취방에서 하루 묵은 날, 윤종이 자살할 뻔 했다는 사실에서 명확히 증명된 일이다. 물론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에는 연우에 대한 죄책감이 한 몫을 했지만, 그 이상으로 그녀 없는 세상에서는 살 수 없다는, 죽어서도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도 크게 작용했다. 언젠가 공원의 노신사가 말한 것처럼 비록 그릇되었을지언정 자살은 도피가 아니라 하나의 선택인 것이다. 최소한 윤종에게는 그랬다. 그 전까지는 죽고 싶다는 마음마저 들지 않던 무기력한 윤종을 되살린 소리의 광기. 윤종은 절대 소리를 놓아줄 수 없었다. 언제까지나 연우를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검은 고양이의 조소를 뒤로 한 채 윤종은 공원으로 향했다. 아직 주형이 집에 돌아오기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었다. 윤종은 노신사가 보고 싶었다. 그를 만나 따뜻한 캔 커피를 얻어 마시며 지금의 감정을 토로하고 싶었다. 공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하다. 딱히 그 노인이 공원에서 사는 것도 아니니 이런 날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아쉬웠던 윤종은 시간이 아슬아슬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반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허리를 일으키려는 윤종의 뒤에서, 익숙한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 完 -







TRACKBACK 0 AND COMMENT 8
  1. Favicon of http://pokerface7.tistory.com BlogIcon KEN☆ 2010.10.14 14:1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완결인가요? 대단해요~~~
    다음 작품은 다음주면 볼 수 있는건가요? ㅎㅎㅎ
    너무 기다리게 하지 마시고, 빨리 돌아오세용~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10.14 22:19 신고 address edit/delete

      감사합니다~ 켄 님께서 매번 올려주시는 좋은 음악에 조금이라도 미칠 수 있도록 다음에는 한결 더 나은 글로 찾아뵐게요^^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chohyungsa BlogIcon 야간비행사 2010.10.18 09:4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지금까지 쓰신 분량이 책 6권 분량이라니.. 정말 대단합니다.
    안단테님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덕분에 매주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오늘 편도 잘 읽고 갑니다.
    그럼 다음주에 또 들릴게요. 즐거운 휴일 되세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10.17 15:45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동안 꾸준히 봐주신 덕분에 연재하는 동안 큰 힘이 되었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다음에는 한층 재미있는 글로 찾아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비행사 님도 즐거운 주말보내시길 바래요^^

  3. Favicon of http://caprio.tistory.com BlogIcon 카푸리오 2010.10.19 19:3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그 많은 줄거리가 다 어디서 샘 솟듯 나오는지...
    암튼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완결, 축하드려요.
    ㅉㅉㅉ...
    대박 소설가로 한발 더 다가 섰군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10.19 22:35 신고 address edit/delete

      에고, 과찬의 말씀에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네요^^;;
      격려해주신 바가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힘내겠습니다!

  4. Favicon of http://joshua-akiba.tistory.com BlogIcon [ Joshua ] 2012.08.03 19:3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커헠, 안단테님의 소설인가요! 양판소 볼 시간에 이런 영양가 있는 글을 읽었어야 했는데...
    당장 처음부터 정주행 달려야겠네요. 혹시 txt 합본 있으신가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2.08.04 21:35 신고 address edit/delete

      에공, (여전히 큰 발전은 없지만) 지금보다 훨씬 실력이 부족할 때 썼던 소설이라 재미도 없고 허술하기 짝이 없답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시중에 나온 다른 작가님들의 소설이 훨씬 재미있어요^^;;












...뜬금없이 추석 때 찍은 보름달 사진 한장.
오늘 가볍게 핸드폰 사진 정리하다 한 번 올려봤어요.

음, 이렇게 보니,

"밤하늘에는 검은 장막이 처 있고 별이나 달은 천상의
높은 존재가 지상을 내려다 보는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빛이다."

...라는 옛 사람들의 상상력에 어쩐지 공감이 가네요^^


덧. 드디어 다음 편이 이번 에피소드의 마지막 회.
     이왕 참아주신 거 조금만 더 함께 해주세요~ (왕뻔뻔;;)



■■■




제 1막 조각가의 하늘 - Scene6 / 구상求償 (5)


“완성이다! 내 마지막 작품이… 그녀와 함께 바라본 밤하늘이……!”

 환하게 빛을 내다 이윽고 잠잠해지는 평소와 달리 이번에는 다른 별들 또한 새로 태어난 신성에 호응하여 같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마치 태양처럼 강렬하게 빛을 내뿜으면서도 눈이 부시지 않는 기묘한 빛들은 시간이 갈수록 세기를 더해갔다. 허나 지하천장의 별들은 밝기 반비례하여 점점 그 크기가 줄어들어갔다.
 소리는 멍한 눈으로 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천장이… 하늘이… 떠오르고 있어!”

 그건 빛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인공의 밤하늘을 품고 있는 천장 자체가 허공으로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좁은 지하천장을 메우고 있던 죽은 이들의 별들은 금세 천문대 위의 별 하나 없던 넓은 칠흑의 하늘에 이식되었다. 지하천장이 어느새 진짜 밤하늘에 동화된 듯한 기묘한 감각이었다.

“으으… 저것들 너무 시끄러워요……!”

 조각가의 하늘이 완성되면서 책임의 소재를 묻는 별들의 웅성거림은 더욱 커졌다. 고막이 터질 듯이 귓가에서 떠들어대는 망령들의 망언에 소리와 메아리는 귀를 막았다. 허나 조각가는 천상의 음악이라도 듣는 것만 같이 황홀한 표정으로 외쳤다.

“아아, 이 세상의 무책임함에 상처 입은 자들아. 자기 잘못을 남에게 미루고, 남의 잘못을 스스로 껴안은 어리석은 자들아. 가자. 나와 함께 가자. 우리들에게 고통의 짐 덩어리를 내던진 이 가혹한 세상에 책임을 물으러 가자!”

 조각가의 외침에 죽은 이들의 밤하늘이 거세게 진동했다. 별들은 각자 요란하게 몸을 흔들며 빛가루를 뿌렸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빛가루는 금색의 까마귀와 까치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빛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까마귀와 까치들은 조각가가 서 있는 천장 없는 지하로부터 저 위의 밤하늘까지 오작교烏鵲橋를 만들었다. 조각가는 빛의 새들의 머리를 밝으며 천천히 공중으로 올랐다. 발걸음은 아주 느릿느릿했는데도 조각가의 몸은 이미 저 멀리 떠있었다.

- 뭐하고 있는 거야! 빨리 뒤쫓아!

 메아리의 일갈에 소리는 급히 오작교에 발을 걸쳤다. 조금밖에 뛰지 않았는데 이미 소리 또한 지상에서 저 멀리 떨어진 허공을 달리고 있었다. 빛의 오작교는 광선굴절이라도 일으키고 있는지 제대로 거리가 가늠되지 않았다. 소리는 순간 조각가가 뒤쫓아 오는 자신을 발견하고 까마귀와 까치를 흩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소리의 안색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 챈 메아리가 마음이라도 읽은 것 마냥 미리 답했다.

- 걱정할 거 없어. 물론 이곳은 조각가의 광기로 형성된 곳이야. 말하자면 저 노인의 뱃속이라고도 할 수 있지. 허나, 이토록 거대한 규모를 띠게 되면 오히려 사소한 부분까지 일일이 제어하는 게 힘들어. 사람이 자기 장기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말이지. 그런 재주가 가능한 광인은 자기 영역을 신체가 아니라 법전처럼 사용하는 마녀 정도뿐이야.

 마지막에 상대해야 되는 적수가 적수인 만큼 어쩐지 위로가 되는 말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지금은 떨어질 걱정이 없다는 말을 위안으로 소리는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허나 아무리 소리가 달려도 여유롭게 걸음을 옮기는 조각가와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빛의 오작교는 뭔가 조각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이대로는……!”

 소리는 초조했다. 그녀는 조각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세상은 그런 게 아니라고,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것처럼 악의에 가득 찬 책임전가만이 모든 걸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전해야 되는지 소리는 알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조각가의 걸음을 멈추고 그가 뒤돌아보게 할 만한 마땅한 표현수단이 없었다. 달변이 아니라든지, 인생경험이 적다든지,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소리 역시 조각가와 마찬가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녀도 조각가가 안고 있는 절망에 물들어 있었다. 그건 그녀에게 ‘문’이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확연히 증명된 사실. 조각가의 거처에 들어올 수 있는 조건은 다름 아닌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어 하는 강한 열망이었다. 그러니 소리의 진흙 묻은 손으로는 똑같이 흙투성이라 미끄러운 조각가의 등 뒤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앞서 가는 이를 멈추게 할 방법은 단 하나.
 바로 발목을 잡아 넘어뜨리는 것뿐.

“읏, 하지만…….”

 소리는 망설였다. 조각가가 이미 광기 그 자체라면, 그림자… 미나와 마찬가지로 광기만이 배회하고 있는 존재라면 아마 메아리의 환청을 빼앗는 동시에 소멸하고 말 것이다. 물론 그건 죽음 같은 게 아니다. 이미 조각가는 먼 옛날에 죽고 말았으니까. 오히려 죽은 자를 본래 그가 차지해야 될 위치로 보내는 건 순리라고 할 수 있을 터. 이건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를 죽인다는 모순 따위가 아니다. 허나 아무리 그렇게 들려주어도 소리의 마음은 납득하지 않았다.

- 도망가지 마! 넌 이미 결정했잖아!

 자기 목청에서 나오는 메아리의 외침에 소리는 질끈 감으려는 눈을 번쩍 떴다. 저 앞에 가던 조각가는 이미 걸음을 멈추었다. 뒤늦게 마음을 바꾸기라도 한 걸까. 그럴 리가. 단지 오작교의 길이 끊어져 있을 따름이다. 그것은 바로 저곳이 이 밤하늘의 중심이라는 걸 의미했다.

“이 세상아!”

 조각가는 망치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가 서 있는 곳이 가상의 밤하늘을 무너뜨리기 위한 최적의 장소. 그의 망치질 한 번에 하늘이 무너진다는 메아리의 예언이 실현되는 성전聖殿.

“메아리!”

 소리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이제는 자신 또한 조각가와 동일한 열망을 품고 있다는 것도, 공원의 노인에게 언젠가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도, 아무것도 상관이 없었다. 아직 세상은 멸망해서는 안 된다. 유일하게 자기 탓으로 유발된 오점을 지우고 새로 시작하는 그 날까지 이 세상은 온전해야만 한다. 진정한 의미로 아무것도 시작한 적이 없는 그녀에게 그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예언이 문자 그대로 실현되는 것인지, 조각가의 광기에 정말 그 정도의 힘이 있는지, 그 실현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소리에게는 참을 수 없는 악몽이었으니까.
 소녀의 청약을 받은 고양이는 곧장 승낙에 들어갔다.

- 형체 없는 영적 실체를 구성하는 4/9요소의 현현식顯現式.

 메아리의 광기. 스스로의 허언에 응한 메아리의 검은 몸은 순식간에 형체를 잃고 수많은 문자로 분열돼 공중을 날았다.

虛言 虛無 虛數 虛空 虛想 虛飾 虛體 虛構 虛神 虛言 虛無 虛數 虛空 虛想 虛飾 虛體 虛構 虛神 虛言 虛無 虛數 虛空 虛想 虛飾 虛體 虛構 虛神 虛言 虛無 虛數 虛空 虛想 虛飾 虛體 虛構 虛神 虛言 虛無 虛數 虛空 虛想 虛飾 虛體 虛構 虛神 虛言 虛無 虛數 虛空 虛想 虛飾 虛體 虛構 虛神 虛言 虛無 虛數 虛空 虛想 虛飾 虛體 虛構 虛神 虛言 虛無 虛數 虛空 虛想 虛飾 虛體 虛構 虛神 虛言 虛無 虛數 虛空 虛想 虛飾 虛體 虛構 虛神…….』

 무수한 문자의 나열이 마치 메뚜기 떼처럼 소리의 몸을 집어삼켰다. 이 하나하나가 전부 메아리의 파편. 빛이 바래 힘을 내지 못하는 파편도 있었지만, 소리의 몸만 빌릴 수 있다면, 절반도 되지 않는 파편만으로도 메아리는 충분히 제 힘을 낼 수가 있었다.

 소리의 광기는 묶여 있는 것을 풀어헤치는 보이지 않는 손. 이미 2차 발광이 시작된 지 오래 된 그녀의 광기는 본인에게도 미치고 있었다. 그로 인해 그녀는 수신기능에 특화된 체질이 되었다. 수용체로서 적합한 그릇. 물론 신체와 자아라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만큼 아무거나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반대로 그것만 뛰어넘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주어 담을 수가 있는 것이다.
 반대로 메아리의 광기는 없는 것과 있는 것의 경계를 오가는 허언. 경계선이 불분명해 자유롭게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메아리의 광기는 소리의 빈틈을 찾아 그 속에 안주하기에 제격이었다.

“으, 아으, 아아…….”

 메아리의 파편에 침식당해 완전히 몸의 제어를 빼앗긴 소리의 의식은 어두운 심연 속으로 떨어졌다.







 빛의 오작교가 끊어진 지점. 원혼의 별이 흐르는 은하수의 중심에 멈춘 조각가는 환희를 맛보았다. 드디어 때가 왔다. 긴 세월 동안 이를 악물고 견딜 수밖에 없었던 폭군의 치세에 응보를 내릴 순간이 온 것이다.
 가장 처음에는 꿈, 그 다음에는 가족, 그 다음에는 청춘, 그 다음에는 연인, 그 다음에는 딸… 계속해서 무언가를 잃어가야만 했던 조각가의 인생은, 그의 불행은, 그의 비극은 비단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사람이, 지금도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모든 자들이 겪었고, 겪고, 겪어야 할 비탄의 연쇄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을 기해 그 저주 받은 쇠사슬은 끊긴다.

“이 세상아. 이 하늘아. 우리를 낳아 방치해두고, 미래를 택할 자유마저 박탈한 이 악독한 울타리야! 이제 너에게 물을 때가 왔다. 그동안 우리가 씹어야 했던 그 고뇌를, 그동안 우리가 맛봐야 했던 그 눈물을, 그동안 우리가 당해온 온갖 부조리의 책임을, 지금 너에게 묻겠다!”

 조각가의 굵은 근육이 힘차게 꿈틀거렸다. 조각가는 팔을 높게 들어 망치를 휘둘렀다. 허공을 가르는 조각가의 흉기는 정확하게 모형하늘의 숨통을 노리고 있었다.

- 공간, 무한분절無限分節.

 망치의 가속에 제동이 걸린다.

- 시간, 영겁회귀永劫回歸.

 파편의 주인이 발하는 높고 맑은 목소리. 또 방해하는 건가. 하지만 소용없다. 아직 본연의 힘을 되찾지 못한 그녀가 무력하다는 것은 방금 전의 일로도 증명된 사실. 조각가는 절정에 다다른 순간에 찬물을 끼얹는 만행에 대항해 팔에 더 힘을 넣었다.

- 고정, 조각가의 망치는 절대 밤하늘에 도달할 수 없다.

 쓸데없는 짓. 앞으로 한 번만 더 가속이 가해지면, 메아리의 광기는 힘을 잃고 조각가는 소원대로 하늘을, 이 세상을 부술 것이다.

“으음!?”

 그러나 아무리 조각가가 힘을 주어도 망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실제로 망치는 계속해서 힘차게 나아가고 있었다. 허나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밤하늘과의 거리가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 그 작은 간격에 진실로 무한한 거리가 존재하기라도 하듯이 대형망치는 돌진하면서도 멈춰 있는 기묘한 현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으으으윽!”

 조각가는 스스로 가속한 힘에 이기지 못하고 그만 망치를 놓치고 말았다. 조각가의 손을 떠난 망치는 조금씩 그 크기가 작아졌다. 아마 보이지 않는 그 무한의 거리를 쉬지 않고 날고 있는 것이리라. 결국 하늘을 파괴하기 위한 대형망치는 끝내 그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어떻게…….”

 조각가는 경악과 허탈이 뒤섞인 신음소리를 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조각가의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망가진 영사기에서 새어나오는 듯한 흐릿한 회색의 잔영만이 음침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발끝까지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성으로 보이는 그것은 잡티가 잔뜩 낀 화면처럼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주색의 두 눈동자만큼 선명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힘을, 되찾았군… 그 아이를… 먹어치운 게냐…….”

 조각가는 힘없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단순히 숙원성취를 앞두고 실패했기 때문에 의지가 꺾인 탓만은 아니었다. 그의 몸에는 실제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심장이 있는 부근에 손을 가져가며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심장 대신 고동을 울리고 있는 ‘환청’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주인에게 돌아가겠다고 요동을 치고 있었다. 조각가는 자신의 소멸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확신했다. 이미 조각가의 육체는 10년 전의 발광 후부터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2년 전에 메아리의 파편을 취득하지 못했다면 그는 오래 전에 부스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 중상모략하지 마. 일시적으로 몸을 빌리는 것뿐이라고. 이건 소리와 내가 맺은 정당한 계약이야. 오히려 남의 걸 무단점유하고 있는 당신의 도덕성이 의심 받아야 하지 않을까?

 흐릿한 회색의 잔영은 잔뜩 비꼬는 어투로 말했지만, 이미 조각가에게는 그에 맞받아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 하여간 당신도 참 어리석어. 이 세상은 그저 둥글게 이어진 원일뿐인데 말이야. 책임의 소재 같은 건 누구에게 물어도 답이 나오지 않아. 원을 돌다 지치면 적당한 부근에 최초의 물질이라든지, 숙명이라든지, 창조주라든지 아무렇게나 헛소리를 끼워 넣으면 안주할 곳을 찾을 수 있는데,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야?

“…그렇군. 넌 세상에 구문求問하는 내 행위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건가. 과연, 그 마녀가 널 봉인하려 그토록 애쓴 이유를 알겠다.”

 조각가의 중얼거림에 회색잔영의 자줏빛 눈동자가 동그랗게 열렸다.

- 잠깐, 당신도 마녀를 알고 있단 말이야? 어째서 내 파편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하나 같이 똑같은 말을 하는 거지… 언제 그 녀석을 만났어? 자세히 좀 얘기해봐!

“거절한다!”

 조각가는 무리하게 몸을 일으켜 주먹을 쥐고 회색잔영에게 덤벼들었다. 아무 대책도 없는 자살특공은 아니었다. 지금 조각가의 존재를 지탱하고 있는 메아리의 파편은 본래 주인에게 돌아가기 위해 상당 부분 바깥까지 나온 상태. 반대로 말하자면, 파편과 일체화되어 있는 조각가의 몸은, 파편이 완전히 빠져나가기 직전까지는 메아리와 비슷한 특성을 띠게 되어 타격을 주는 일도 가능했다.

- 신의 것은 신에게로, 왕의 것은 왕에게로.

 회색잔영은 짧게 혀를 차며 마지막 허언을 내뱉었다. 메아리의 광기에 반응하는 파편의 광채가 밤하늘의 또 다른 별처럼 환하게 주변을 밝혔다. 주인의 부름을 받은 메아리의 환청은 조각가의 몸을 빠져나와 본래 있을 곳으로 돌아갔다.

“아…….”

 조각가의 주먹은 회색잔영의 바로 앞에서 허무하게 힘을 잃고 떨어졌다. 고꾸라진 조각가를 받치는 금색의 오작교도 점차 그 빛을 잃어갔다. 조각가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끝내 닿지 못한 밤하늘을 향해 가루처럼 흩어지는 손을 뻗었다.

“하다못해… 그 아이라도… 소리를… 잘 부탁하네…….”

 조각가는 마지막으로 딸을 닮은 소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지금까지 그가 만나온 사람들 중 가장 믿을 만한 젊은이에게 희망을 남겼다. 물론 그 말은 상대에게 전해지는 일 없이 조각가의 지친 몸과 함께 바람에 날려 흩어졌다.







 윤종과 그림자가 사투를 벌인 30층 빌딩의 옥상.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던 그곳에 어느새 누군가 나타나 강한 밤바람을 맞고 있었다. 긴 코트자락에 엄숙한 얼굴. 누구 하나 웃길 줄 아는 재능이 없으면서도 예능인을 자칭하는 굵직한 목소리의 소유자. 광대였다.

- 아아, 실패하고 말았나. 아까운 사람이 이렇게 또 하나 가는구나…….

 광대는 한줄기 눈물을 흘렸다. 조각가와 접점을 가진 적이 있는 광대는, 멀리 떨어져서도 조각가가 소멸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하지만 아직 남은 이도 있다.

 광대는 눈물을 닦으며 공중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의 팔은 기묘하게도 아무것도 없는 허공 속을 헤집고 들어갔다. 그는 공간의 틈새에 집어넣은 팔을 몇 차례 휙휙 휘저었다. 얼마 뒤 공간 속에서 빼낸 그의 손 안에는 거무죽죽한 인형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소인화된 그림자였다.
 광대는 정신을 잃은 그림자를 코트 주머니 속에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 노을의 악마와 자정의 마녀가 춤추는 론도(Rondo)… 도저히 기보記譜할 수가 없군. 차라리 명부의 공주와 검은 고양이의 왈츠(Waltz)였다면 대략 파악이 가능했을 테지만… 이제 와서 한탄해봤자 소용없는 일인가. 난 그저 초대 받은 익살꾼의 역할을 다할 뿐…….

 다시금 바람이 한차례 세게 불었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TRACKBACK 0 AND COMMENT 8
  1. Favicon of http://pokerface7.tistory.com BlogIcon KEN☆ 2010.10.07 14:1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달이 아주 이쁘고, 선명하게 찍혔구려..
    그러고 보니, 전 달을 찍은 적이 한번도 없는 듯... ;;;
    달만 초롱초롱 주위는 완전 암흑이네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10.07 21:49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도 아무 생각없이 찍었다가 의외로 잘 찍힌 걸 보고 놀랐어요. 요즘은 핸드폰 사진도 해상도가 꽤 높은 것 같아요. 역시 도심지에서는 달이나 금성, 북극성(?) 같이 아주 밝은 위성이나 별 외에는 잘 안 보이지요. 이제는 하도 아무 것도 없는 하늘에 익숙해지다 보니 가끔씩 할아버지 댁에 내려가 별이 많은 하늘을 보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더군요^^;;

  2. 2010.10.08 19:07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10.09 09:12 신고 address edit/delete

      음, 괄호라니 뭘까 한참 고민했는데... 혹시 전의 리플에 남긴 <허○컴>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거라면 카츠라 아스카 씨의 <허니컴>이라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러브 코미디 작품이에요. 거기서 등장하는 메구미라는 캐릭터가 붉은 혜성 마니아^^;;

  3. 2010.10.09 20:17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10.09 20:44 신고 address edit/delete

      으으, 그렇지 않아도 이번 글은 좀 정제되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역시 인상이 안 좋았군요ㅠ_ㅠ 다음부터는 좀 더 다듬어진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네요. 조언 감사드려요!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chohyungsa BlogIcon 야간비행사 2010.10.10 16:1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안단테님 이번 회는 영상으로 봤으면 더 실감나고 아주 재미있었겠는데요ㅎ.
    오늘 어느 정도 결판이 날 줄 알았는데, 광대가 무언가 엄청난 걸 준비하는 모양입니다.
    일요일 오후에 들려서 편안한 마음으로 읽다가 갑니다.
    늘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소설 올려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럼 남아 있는 휴일 즐겁게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10.11 08:23 신고 address edit/delete

      언제나 감상 감사합니다~ 일단 이번 에피소드는 다음 편으로 끝이에요. 광대의 뭔가 있어 보이는 대사(...)는 차후 에피소드를 대비한 것^^;;

      덕분에 저는 주말 잘 보냈네요~ 부디 비행사 님도 좋은 휴일되셨기를 바라며, 이번 한주도 힘차게 시작하세요~!






큰 태풍에, 큰 비에, 명절에 정신없어 하다보니
갑자기 날이 추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가끔 아직도 반팔을 입으시는 분들이 계신데,
솔직히 그건 너무 무리수 같고 이젠 본격적으로
가을 채비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선 긴팔옷이랑 카디건 등을 꺼냈네요.

또 일전 안경 관련하여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지만,
근래 갑자기 붉은색이 좋아져 이쪽 계통에 손이 가네요.

붉은색 코트도 사고 싶었는데, 어머니 말씀하시길,
새빨간 코트 입고 다니면 별로 인식이 안 좋다고 해서 말았네요^^;;





■■■




제 1막 조각가의 하늘 - Scene6 / 구상求償 (4)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 왔다. 조각가를 본 순간 소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겨울의 공원에서 만난 초로의 노신사. 소리는 모든 일이 끝나면 노인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거짓말을 하고 몸을 감춘 사죄를, 그리고 위로해주어 고맙다는 감사를 그 노인에게 전하고 싶었다. 자기 탓에 죽은 사람들을 되살려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하는 날, 소리는 아무런 꺼릴 것 없이 당당하게 노인과 마주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지금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자신은 과거의 오점을 무엇 하나 털어내지 못했다. 그런데 어째서 저 사람이 저기 있단 말인가. 어째서 저 사람이 소문의 조각가란 말인가. 어째서 저 사람이 메아리의 파편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 정신 차려! 저 인간은 널 죽이려고 했다고. 그림자가 가지고 있던 조각을 누가 만들었을지 생각해봐!

 메아리의 날카로운 외침에 소리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죽음 앞에선 모든 것이 평등하고 부질없는 법. 아무리 노인이 마음을 어지럽히는 상대라 하더라도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이상 마냥 상념에 빠진 눈으로 바라볼 수는 없었다.
 소리는 순식간에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어조의 변화가 착 가라앉은 음색으로 돌아왔다.

“다 알고 계셨나요?”

 남루한 남색의 작업복을 입은 성자 같은 노인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뢰를 받기 전까지는 모르고 있었지만… 변명은 하지 않으마. 조각해야 되는 대상이 너라는 걸 알고서도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결과적으로는 똑같은 얘기겠지.”

 이건, 이 작위성은… 소리의 입술이 자아낼 말을 단 하나밖에 없었다.

“운명의… 장난, 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것도 아주 악질적인 의도를 가진…….”

“그래. 운명의 장난, 신의 안배, 인생의 부조리… 아마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을 테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의 본질은 세상의 악의惡意야.”

“세상의, 악의… 라고요?”

“세상에 우연 따위는 없다. 우리 모두는 정밀한 톱니바퀴처럼 하나의 거대한 사상事象을 일으키는 부품에 지나지 않지. 난 작년 겨울, 그 공원에서 네게 손을 내밀었어. 도저히 혼자 둘 수가 없었다. 외견이 크게 닮은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넌 죽은 딸아이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인연을 맺었지. 우리는 지난 추운 계절에 선의로 만나 서로를 보듬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어. 처음에는 풀이 죽은 널 기운 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나 역시 너와 얘기하면서 많은 위로가 되었단다. 참 좋은 추억이었지.”

“예, 저도 할아버지 덕분에 기운을 낼 수가 있었어요.”

“그렇게 말해주니 기쁘구나. 하지만 안타깝게도… 보거라. 난 널 죽이려 하는 데 일조했고, 넌 날 방해하려 하고 있어. 작년 겨울에 우리가 우연처럼 만난 작은 기쁨은, 우리가 각자에게 보낸 선의는, 실은 더 큰 비극을 자아내기 위한 전주곡에 지나지 않았던 게지.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 그럴 리가 없지. 이 세상의 악랄한 구조, 우리에게 태어날 때부터 숙명적으로 책임을 덮어씌우는 세상의 악의! 도저히 침을 뱉어주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지 않느냐.”

 엄숙한 조각가의 얼굴에는, 그의 본성에 어울리지 않는 자조적인 웃음이 떠올랐다. 소리는 균형이 맞지 않는 조각가의 미소에 오싹함을 느꼈다.
 소리는 조각가의 얼굴에서 눈을 돌려 주위에 만들다 만 조각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언제부터… 해 오신 건가요?”

“이제… 한 10년쯤 되었겠구나.”

“10년…….”

 조각가의 대답에 소리의 기억이 자극을 받아 연쇄작용을 일으켰다. 조각가의 과거 이야기. 당시에는 실의에 빠져 건성으로 흘려들었지만, 막상 계기가 생기자 상당 부분 기억이 되살아났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음에는 분명한 조각가의 인생에 마지막 결정타를 날린 그 사건. 분명 조각가의 딸이 뺑소니 사고로 죽은 시기도 아마 10년 전쯤이었다.

“세상에… 절망하셨군요…….”

 어린 소녀의 말은, 반세기가 넘도록 눈물로 점철된 조각가의 인생을 한 마디로 압축하기에는 너무나도 가벼운 것이었으나, 타인의 눈으로 타인의 불행을 재단하는 말로서는 적합했다. 조각가는 아무런 이의도 하지 않고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그 공정함을 받아들였다.

“그렇단다. 절망했지. 더 이상 이런 세상을 가만히 놔두어서는 안 된다고 결심할 정도로 절망했어.”

 메아리는 자줏빛 눈을 치켜뜨며 매섭게 조각가를 노려보았다.

- 그래서 이런 걸 만든 거야? 아주 세상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과연 파편의 주인이군. 저 천장에 빛나는 별들이 무얼 의미하는 건지 알고 있단 말인가.”

- 흥. 입에 발린 칭찬은 관둬. 저 위에서 시끄럽게 웅성거리는 망령들의 소음을 들으면 어떤 바보라도 눈치 챌 걸. 당신은 자신의 광기를 변칙시켜 사람을 죽이는 석상을 만들었어. 그렇다면 그 사용법은 단순히 사람에게만 국한되지는 않을 테지. 저 영혼으로 만들어진 인공의 은하수, 언제 적을 모방한 건지는 몰라도 틀림없는 어느 밤하늘의 재현이야. 당신, 저걸 부술 생각이지?

“설마… 그럼 메아리의 흰소리는 이걸……?”

 냉정함을 되찾았던 소리의 얼굴이 일순 창백해졌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검은 고양이의 예언. 그건 어떤 비유나 은유 같은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멸망한다…….”

 소리는 스스로 중얼거리고도 현실감이 일체 느껴지지 않는 그 말에 오히려 아찔함을 느꼈다. 아마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일개 광인이 세상을 끝장 낼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코웃음을 치며 상대도 해주지 않거나, 혹은 배를 잡고 폭소를 할 것이다. 그러나 조각가의 능력을 생각하면 마냥 터무니없다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조각가의 진정한 광기는 전가轉嫁. 모방한 석상을 부숴 본체에도 피해를 준다는 현상은 거기에서 파생된 광태의 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 죽은 이들의 원념을 가짜 플라네타륨의 별빛으로 치환한 것도 그가 가진 광기의 응용 중 하나일 터. 조각상 역시 상대를 온전히 본 뜬 게 아닌 그저 상반신만 모방한 흉상이었을 뿐인데도 상대에게 파멸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그렇다면 밤하늘의 일부를 그려낸 지하천장을 파괴하는 것으로 같은 효과를 주지 못한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으리.

 조각가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좀 더 죽은 이들의 별빛이 밝게 비추는 곳으로 나왔다. 그의 한손에는 대형망치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본 메아리와 소리는 움찔했지만, 딱히 조각가는 들고 있는 공구를 흉기로 사용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소리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왜 세상에 불행을 퍼뜨리는 거죠? 단순한 화풀이라거나, 누군가를 증오하는 거라면, 공감은 못해도 이해는 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게 아니잖아요. 고통스러운 자신의 과거가 뼈아프고, 불행한 다른 사람들이 안쓰럽다면, 최소한 그런 일을 늘리는 일에 일조하면 안 되지 않나요?”

 건방지고 무신경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소리는 이 상황에서 상대를 배려해주거나 돌려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만약 조각가가 자기가 불행하다고 하여 타인의 행복을 도저히 눈 뜨고 보지 못하는 비뚤어진 심정의 소유자라면 그의 행동원리는 이치에 맞을 것이다. 허나 조각가는 세상이라는 감옥에 갇힌 모든 공범자들을 자기처럼 불쌍히 여겼다. 그럼에도 그들끼리 죽고 죽이는 일에 손을 빌려주고, 더 나아가 심지어 세상이 큰 위기에 빠질지도 모르는 광태를 실현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건 모순된 일이었다. 소리는 조각가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조각가는 대형망치를 든 채 방 한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답했다.

“네 말대로다. 일반적인 도덕이나 고전적인 종교관에 의한다면, 난 틀림없이 엄청난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거겠지. 허나, 한번 신의 정의라든지, 사람의 도덕 같은 속임수에 속지 말고 이 세상을 제대로 바라 보거라. 내가 저지르고 있는 악행이나, 몇몇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는 개별적인 불행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전체상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봐.”

“세상의 전체상……?”

“아직도 보이지 않느냐? 그래, 아마 갑자기 인식하려고 해도 힘든 일일 테지. 지금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갈피가 잡히지 않을 거야. 허나 너도 언젠가는 포착하게 될 게다. 우리는 이 세상에 억지로 춤추는 걸 강요받고 있다는 것을!”

“결정론… 같은 말씀인가요?”

“껍질만을 명명하자면, 그렇지. 하지만 너는 아직 그 내면까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말은 실로 무섭고도 피할 수 없는 완벽한 이치야. 가령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른 아이가 있다고 하자. 그 아이의 범죄는 그 아이 스스로의 책임인가? 그 아이를 굶주리게 만든 원인이 실제로는 잘못이 아닌가? 물론 같은 상황에서도 고결한 정신으로 범죄에 물들지 않는 아이도 있을 수 있겠지. 범죄를 저지른 건 그 아이 자신의 나약함이 초래한 결과라고 매도할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고결한 정신이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어떤 아이는 고결한 정신을 일깨울 만한 계기가 있었고, 다른 아이는 그렇지 못했다. 어떤 아이는 상대적으로 강인한 체력을 타고나 외부의 고통에도 잘 대응할 수 있었지만, 어떤 아이는 날 때부터 몸이 약해 금방 아픔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자아, 그 불공정함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사람을 만들어내고 키워내는 그 환경 자체가 그릇되지 않았을까? 사람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실제로는 아무런 자유가 없어! 세상에는 왜 재화가 부족한가. 왜 사람은 재화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가. 왜 사람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는가. 고결한 정신과 나약한 정신이 갈리는 분기점은 어디에 있는가. 그 분기점을 택할 자유마저도 실제로는 제일원인에서 수많은 연쇄를 거쳐 고정된 눈속임이라는 걸 왜 우리는 깨닫지 못하는가. 세상은 왜… 사람을, 왜 이리 고통스럽게 낳았는가! 왜 그 책임을 하나도 지지 않은 채 모든 걸 사람에게 미루는가!”

 조각가의 웅변은 점점 광적인 열성을 띠기 시작했다.
 소리는 압도당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메아리만이 맞받아쳤다.

- 멍청한 당나귀 같은 소리하고 앉아있네! 그럼 당신은 왜 지금 하늘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거지? 당신 말대로라면 그것조차 강요된 선택에 지나지 않잖아. 세상만사를 강요되었다고 말하고, 그 자유가 없는 세상은 가치가 없어 싫다고 말하면서도 스스로 무의미한 행위를 행한다는 모순에 불과하잖아!

“아픈 곳을 찌르는군. 하지만 그 무의미함을 알고서도 난 멈출 수가 없다. 저 하늘에, 이 세상에, 반드시 되돌려줘야만 해. 진짜 하늘이 무너질지, 세상이 멸망할지, 그런 건 알 수 없어. 어쩌면 부숴버리는 순간 모든 게 끝날지도 모르고, 혹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지도 모르지. 반대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으로 일변하거나, 부서진 껍질 속에서 공상 속의 절대자가 모습을 드러낼지도 몰라. 어느 쪽이든 그때야말로 난 원하는 답을 듣고 올바른 책임소재를 정할 수가 있을 테지.”

- 흥. 당신은 완전히 미쳤어. 엉망진창이야. 생각할 자유조차 주지 않는 세상에 절망하면서도 자기 의지에 따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점도 우습고, 믿지도 않는 신의 존재를 전제하는 나약함도 역겹기 그지없어. 어차피 당신은 실패했어. 저 천장의 밤하늘은 불완전해. 작업을 마치려면 앞으로 별이 하나 더 필요하지?

 조각가는 잠시 메아리에게 눈길을 돌리며 감탄의 언사를 내뱉었다.

“놀랍군. 이곳에 찾아오는 자들은 모두 저 위의 밤하늘을 보고 ‘아직도’ 기회가 많이 남아있다고 여기기만 했는데 말이야.”

- 보통은 그렇겠지. 인간은 자기 편의대로 믿어버리는 존재니까. 다들 천장의 하늘에는 빈공간이 넉넉하게 남아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을 거야. 세상이 멸망하는 건 싫지만, 자기 복수를 성취할 여유 정도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참 어리석은 일이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별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는데 말이지. 나처럼 정확히 측정하는 건 무리겠지만, 곧 완성이 가깝다는 정도는 다들 예감할 수 있었을 텐데… 뭐어, 그게 당신이 한탄하는 인간의 약함이겠지만.

“그 인간의 약함을 만들어낸 건 다름 아닌 이 세상이지.”

- 이제 당신 헛소리는 질렸어. 아무튼 당신의 계획은 어그러졌지. 일의 전말을 봐서는 아마 그림자에게 넘겨준 소리의 석상이 최후의 별이었을 거야. 그야말로 화룡점정. 허나 그림자는 석상을 부수지 못했고, 우리는 이미 여기에 와 있어. 용이 그림 속에서 뛰쳐나가 날아가는 일은 없을 거야. 헛된 저항은 그만두고 얌전히 내 파편이나 내놓으시지!

 메아리는 기세등등했다. 소리의 석상을 부수지 않는 이상 조각가의 하늘은 완성되지 않으며 예언도 실행될 여지가 없다. 전부터 무슨 운동이라도 했는지, 조각가의 근육은 단련되어 있었으며, 손에 커다란 흉기도 들고 있었지만, 어차피 메아리의 허언을 당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조각가를 제압해 파편을 회수한 다음 소리의 석상을 붕괴시킨 허언을 통해 죽은 이들의 별로 만들어진 하늘도 흩어버리면 이번 사건은 해결이다.

- 잠깐…….

 낙관적인 미래를 예측하던 메아리의 뇌리에 뭔가 불쾌한 위화감이 스쳤다. 그렇다. 상황은 체크 메이트. 도망칠 길 없는 조각가는 메아리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힘이 좋고, 큼직한 무기를 들고 있어도 상대가 될 리 만무하다. 메아리가 파편의 주인이라는 걸 알고 있는 이상 조각가도 그 점을 모르지는 않을 터. 그렇다면 왜 조각가는 대형망치 같은 걸 들고 있는 걸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덤벼들려고? 물론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어떤 어리석은 짓이라도 하니 꼭 이성적으로 대처하리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보다시피 조각가는 약간 도취하고 있긴 해도 기본적으로는 침착하다. 망치를 들고 소리나 메아리를 향해 달려드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 왜 저 망치를 들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바로……!

- 한소리! 빨리 날 걸쳐…….

 위화감에 눈치 챈 메아리가 뭔가 수단을 취하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방심했군, 파편의 주인.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조각가는 크게 외치며 구석에 놓인 어떤 석상의 천을 벗겨냈다. 모습을 드러낸 흉상은 폭삭 늙고 비쩍 마른 한 대머리 중년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조각가의 과거를 알고 있는 소리는 저 석상이 누구를 모델로 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딸을 친, 그 사람……!”

 조각가의 단 하나뿐인 가족을 빼앗은 원수. 하지만 동정심 때문에 결국은 죽이지 못한 사내. 냉혹한 법의 심판을 받고, 양심의 가책으로 스스로를 괴롭혔으며, 형기 중 가족들도 다 떠나 이미 벌을 받을 만큼 받은 이 세상의 또 다른 피해자. 조각가는 아까 공원에서 윤종과 헤어진 후 이 남자를 만나고 왔다. 증오심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딸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로서 특정하고 온 것이다. 그림자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보험이었다. 사람의 잘못이 세상의 책임이라는 걸 깨달아 죽이지 않고 용서한 원수를, 세상에게 책임을 묻는 날에 죽이게 되는 이치에 조각가는 다시 한 번 몸을 떨었다.

“오오오오오!”

 비명인지, 기합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외침과 함께 조각가는 대형망치를 높게 들어 흉상을 향해 내리쳤다. 팔을 걷은 작업복 사이로 드러난 조각가의 팔에서 꿈틀거리는 굵은 근육은, 노쇠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단번에 석상을 파괴할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예지하고 있었다.

“메아리!”

 이제야 조각가가 숨겨둔 카드가 무엇인지 깨달은 소리도 다급하게 외쳤지만, 메아리라고 해서 별다른 수가 있을 리 없었다. 저 기세라면 설령 조각가의 심장을 멈춘다고 해도 조각상은 그대로 파괴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고 조각가의 몸 자체를 날려버리는 허언을 내뱉었다 자칫 잘못되면 그가 품고 있는 파편 자체가 손상을 입을 수가 있었다. 아까처럼 조각상 자체를 해체하는 허언을 쓰는 수도 있겠지만, 게슈탈트 붕괴현상을 일으킬 만한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그러므로 메아리는 제3의 요소, 무대 자체를 조율하기로 했다.

- 공간, 무한분절無限分節.

 메아리의 허언에 조각가의 망치의 움직임이 약간 둔해졌다. 연속된 공간에 억지로 끼워 넣은 인위적인 불연속면. 이로써 망치는 허공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문을 돌파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망치는 완전히 정지하지 않았다.

- 시간, 영겁회귀永劫回歸.

 한없이 직선으로 흐르는 시간의 강을 뒤집어 꼬아 영원히 반복되는 띠로 위장한다. 강의 흐름을 탈 수 없는 쇳덩어리는 빈 공간에 늘어선 문을 일일이 열고 지나가야만 한다. 그 문의 숫자는 실로 무한. 본래 강의 흐름이 조력한다면 무시해도 되는 장해물이 지금은 이처럼 위협적이다. 허나 이 효과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광기는 어디까지나 세상의 예외적인 법칙일 뿐. 얼마 있지 않아 본연의 물리법칙이 다시금 제 자리를 되찾는다.

- 고정, 조각가의 망치는 절대 흉상까지 도달할 수 없다.

 허언의 완성. 광기가 물리법칙에 덧씌워지는 건 예외조항으로서 일상의 경계에 침범했기 때문이다. 일상의 예외라는 조건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 예외가 지속된다면 더는 예외가 될 수 없기에 사라지고 만다는 모순. 그렇다면 예외적인 구간, 즉 대상과 조건을 특정할수록 예외성은 강해져 광기는 오랜 시간 지속될 수가 있다.

- 좋아.

 예상대로 조각가의 망치는 조각상에 닿기 직전에 멈추었다. 허언으로 급조한 임시적인 무한수열의 문지기들이 당분간은 조각가를 제지하고 있을 것이다. 이틈에 빨리 파편을 회수하기만 하면 승부를 끝난다. 그러나 사태는 메아리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주지 않았다.

“흐읍!”

 강렬한 기합소리. 조각가가 용을 쓰자 움직일 리 없는 망치가 움찔거리더니 마침내 앞으로 나아가 조각가의 딸을 죽인 뺑소니 범의 흉상을 완전히 박살내고 말았다.

“어, 어떻게 된 거예요? 메아리의 광기가 듣지 않아요!”

- 뭐, 어, 어떻게…….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단순히 근성만으로 내 광기를 걷어냈다고?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이런 현상은 전에도 있었어. 그렇구나! 분명 저 조각가는 죽었어. 그러니까 통하지 않은 거야!
 일시적으로 혼란에 빠져있던 메아리는 금세 정신을 차렸다.

- 당했어! 저 조각가도 그림자랑 같아. 2차 발광 후 육체를 잃어 광기만이 배회하고 있던 거였다고!

 일반적인 사람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이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던 그림자. 누가 봐도 유령을 연상시키는 그 모습에 비해 조각가는 보통 사람과 외견상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메아리는 은연중에 겉모습이 비추는 편견에 사로잡혀 정작 중요한 조각가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일을 소홀히 하고 말았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고 했던가. 이 공간의 틈새 자체가 광기에 점철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메아리조차 감지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본체가 분열돼 아직 본연의 힘을 되찾지 못한 메아리의 광태로는 광기 그 자체를 완전히 제압할 수가 없었다.

“아아…….”

 조각가는 피를 흘리며 서서히 가루로 흩어지는 흉상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환희에 넘쳐 두 팔을 벌렸다. 피 흘리는 흉상이 완전히 사라지는 동시에 인공의 밤하늘에는 불타오르는 신성新星이 하나 출현했다.







TRACKBACK 0 AND COMMENT 10
  1. Favicon of http://tsuyodung.tistory.com/ BlogIcon dung 2010.09.30 09:4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집에서 입는다고 하시는 가운 센스에 감탄했습니다.^^
    손과 발이 시리시다면 수면양말을 강력하게 권해드립니다. ^^ 이거 정말 따시답니다. 어제 유니클로에 갔더니 이 재질로 집에서 입는 홈웨어가 아에 나왔더라구요. 손토시나 발토시도 이 재질로 파니까 마트나 아니면 1000원 하우스인가 그런데 가셔도 있어요. ^^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30 22:34 신고 address edit/delete

      여러 가지 방한용품이 많군요~
      한번 시험해 보고 괜찮으면 어머니도
      사드리고 해야 겠어요. 추천 감사드려요^^

  2. Favicon of http://pokerface7.tistory.com BlogIcon KEN☆ 2010.09.30 14:0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안단테님도 빨간색 좋아하시는군요?
    ㅎㅎㅎ
    저도 빨간색 좋아해서 옷들이 빨간 게 많답니다. ㅋㅋㅋ
    날이 갑자기 추워져서 뭐 이건 적응이 안되네요...
    코감기로 괴로워하다 얼마전에 나았는데, 갑자기 바뀐 날씨덕분이더군요.. 감기 조심하시고요... ;)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30 22:40 신고 address edit/delete

      켄 님도 빨간색 계통의 옷을 좋아하신다니 동지군요~

      요즘 진짜 갑자기 확 추워졌지요. 이대로 가을도 짧게 끝나고 곧장 겨울이 오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될 정도에요;; 켄 님도 아프시는 일 없도록 몸 조리 잘 하시길 바래요!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chohyungsa BlogIcon 야간비행사 2010.09.30 14:4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우와.. 이번편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조각가가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니 놀랍군요..
    그런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고 조각가가 소리 대신 다른 조각을 준비해 두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었는데.. 놀랍군요.

    아주 재미있는 TV 월화 씨리즈 드라마를 주말에 와서 두편 연달아 재방송보는 것처럼 연속으로 읽으니 그것도 참 좋은데요ㅎㅎ.

    안단테님 글에는 좀처럼 오타를 볼 수 없는데, 제가 하나 우연찮게 발견했네요.
    화룡점점 -> 화룡점정.

    재미있게 읽다가 갑니다. 그럼 즐거운 오후시간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30 22:47 신고 address edit/delete

      매번 반전이나 역전극을 넣을 때마다 '시시하면 어떡하지;;'하고 걱정을 하는데, 좋게 봐주시니 안심도 되고, 기쁘기도 하네요! 매주 빼놓지 않고 이렇게 봐주시니 저야말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비행사 님도 즐거운 오후되셨기를 바라며,
      내일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에고, 이런 부끄러운 오타를... 수정완료! 지적 감사드려요!)

  4. Favicon of http://yoons_cha.blog.me BlogIcon 에네아스 2010.10.01 21:4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역시 반전이 있어야 재미있군요. :)
    가을이 전혀 오지 않을 것 같더니, 시나브로 긴팔에 잠바 없이는 다니기 힘들게 되었네요. 10월 한달 잘 시작하시길...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10.02 21:32 신고 address edit/delete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성큼 가을의 한복판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이번 주말에 비 내린 후 더 추워질 거라 하는데... 에네아스 님도 추워지는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즐거운 10월되시길 바래요^^

  5. Favicon of http://caprio.tistory.com BlogIcon 카푸리오 2010.10.01 23:2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스타일이 예사롭지 않으신데요...
    성격은 다소 차분함이 느껴지는데, 스탈은 화려하신 듯요..^^

    시월이 벌써 시작돼 첫 날밤이 거의 다 가네요..
    시월을 잘 보내야 겨울이 덜 추울 듯 합니다.
    열심 수확하는 시월 되시길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10.02 21:35 신고 address edit/delete

      화려... 한가요? 하기야 아버지도 왜 그런 빨간 걸 입고 다니느냐고 한말씀하시더군요...OTL (반대로 어머니는 좋아하셨...^^;;)

      말씀하신 것처럼 수확하는 계절... 이제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즌에 들어온 만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겠어요! 카프리오 님도 힘내시고, 좋은 한달 보내세요~^^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가 사는 곳에는 비가 정말 많이 왔네요.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라니, 태풍과는 또 다르게 무섭더군요.

에휴, 다른 때도 아니고, 이 즐거워야 할 명절에 말 그대로 찬물을 끼얹다니(...)

혹시 피해 입으신 분들이 계실까 걱정되네요.
부디 다들 아무 일 없으셨으면 좋겠어요···.

비록 달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축축한 명절이 될 것 같지만,
그래도 다들 마음만은 풍성한 좋은 한가위 되시길 기원할게요!




■■■





제 1막 조각가의 하늘 - Scene6 / 구상求償 (3)


 어둠 속에 숨겨진 문은 쉽게 열렸다. 조각가에게로 향하는 문은 처음부터 소녀와 고양이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만약 조각가가 메아리의 정체를 눈치 채고 있다면 최대한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해했을 터. 그럼 이게 어찌된 일일까. 일전에 메아리가 그토록 방도를 강구했지만 결국 열리지 않았던 문이 이리 간단히도 개방되었다. 전에는 없었지만, 지금은 있는 것. 그것은 소리의 존재. 여기서 도출될 수 있는 답은 간단했다.

- 설마 네가 적합자였을 줄은 몰랐네. 말하자면 조각가의 의뢰인들과 속성이 일치한다는 뜻인데… 그걸 어떻게 알았던 거야?

 메아리는 흐릿하게 일그러진 막다른 골목의 벽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육안으로는 마치 봄날의 아지랑이가 눈속임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간 자체를 감지할 수 있는 메아리의 예리한 감각은 저곳이 다른 영역으로 통하는 입구임을 포착해냈다.
 소리 또한 별천지로 통하는 경계면을 응시하며 답했다.

“분명 세간에는 정체불명의 조각가가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준다는 괴담이 돌고 있었죠. 그 얘기를 들은 우리는 조각가에게 문을 통하기 위해선 누군가에게 강렬한 악감정을 품고 있어야 한다고 짐짓 가정했어요. 소문의 괴담을 듣고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에게 일치할 만한 공통점은 그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메아리와 전 아무에게도 원한이 없는 우리에겐 그 문이 열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실제로 메아리가 이 장소에 와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그 가설은 증명된 것처럼 보였죠. 하지만 역시 전제 자체가 잘못된 거였어요. 문이 열리는 조건은 ‘원한’이 아니었던 거예요.”

- 원한이 아니라고…? 아하, 알겠다. 즉, 실은 의뢰인의 선별기준이 원한 외의 다른 무엇이었지만, 난 그 조건마저 갖추지 못했기에 문이 열리지 않았단 거네. 그리고 네겐 해당사항이 있어 문이 열린 거고. 응. 그거라면 납득이 가. 하지만 넌 그 사실을 어떻게 안 거야? 미리 그런 걸 알았다면 말을 해줘야지!

“저도 방금 전까지 몰랐거든요. 하지만 윤종 아저씨가 제 석상을 지키기 위해 광기를 발산했을 때,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시적으로 그 석상과 의식이 동조되었어요. 그 순간 소문의 조가가가 의뢰인을 선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깨달은 거예요.”

- 음, 본래 그 조각상은 대상자와 일치되어 저주를 발휘하는 모양이니 아주 불가능한 현상도 아니야. 아마 그 남자가 조각상을 지키려고 발산한 광기가 양자 간의 감각을 잇는 일시적인 통로가 된 걸 테지. 뭐어, 그런 것보단, 그래서? 조각가 양반이 의뢰인을 선별하는 조건이란 대체 뭐야? 그것만 안다면 조각가의 광기도 추론이 가능할 것 같은데.

“전가…….”

 소리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 전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봐.

 메아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추궁했지만, 소리는 고개를 저었다.

“잘… 제가 느낀 걸 전달하기가 힘들어요. 메아리도 알다시피 전 말하는 게 서툴잖아요.”

- 자랑이다! 하여간 너무 교육을 편하게 시켰다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전 학교도 도중에 다니다 그만두었고요. 아무튼 들어가 보면 알아요. 제 짐작대로라면 저 안에서는 누구나 똑같은 걸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 그러니까, 그 느낀 게 뭔지 설명만 하면 참 간단한데 말이야. 에휴, 됐다, 됐어. 여기서 입씨름하느니 네 말대로 직접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편이 빠르겠지.

 검은 고양이는 가릉가릉 불평을 토하며 일그러진 벽면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소리도 그 뒤를 따라 다른 차원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발을 걸쳤다. 소녀와 고양이의 몸은 마치 벽에 흡수되듯이 스스로 사라졌고, 그 둘은 삼킨 운학역 근처의 막다른 골목은 정적에 휩싸였다.







 공간의 틈새. 현상現狀과 광상狂想의 불연속면. 달 위의 주민들과 달 아래 주민들이 교차하는 그 경계면은 예부터 세상의 법칙에서 일탈된 자들이 숨어들기 좋은 곳이었다. 조각가의 거처는 꿈과 현실의 중간지점을 표류하는 난파선에 자리하고 있었다.

“꿈인가… 아니면 꿈에서 깬 건가…….”

 소리는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소리와 메아리가 일그러진 벽면을 통과하는 순간 세상은 일변했다. 마치 순간이동이나 시간여행이라도 한 것처럼 주변은 험준한 콘크리트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심이 아니라 짙은 녹색이 어둠 속에서도 위협적으로 번쩍이는 숲속으로 바뀌었다. 도시와는 생판 다른 자연의 풍경이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 일치하는 점이 있었다. 이곳의 밤하늘 역시 도심지의 하늘과 마찬가지로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꼈다거나 광해라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꼭 검은 물감으로 덧칠을 한 것처럼 그저 새카만 어둠만이 펼쳐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은 미등이라도 켜놓은 듯이 크게 어둡지 않아 기묘했다.
 숲의 중심에는 널찍한 공터가 있었으며, 거기에는 작고 하얀 천문대 하나가 서 있었다. 천문대 옆에는 가로등 하나가 외로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 이런 곳에 숨어 있으니 찾을 도리가 없지. 아무래도 조심해야 될 것 같아. 공간의 틈새에 자기 은신처를 만들 만한 작자라면 분명 만만치 않을 테니까.

 메아리는 살짝 털을 곤두세우며 긴장감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소리는 딱히 반응하는 일 없이 여전히 주변 풍경에 눈을 빼앗겨 있었다.

“설마… 여기는… 하지만 그럴 리가… 그래도 너무 닮았잖아…….”

- 뭐야,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는 거야? 물론 이 공간 자체는 실재하는 장소가 아니지만, 완전한 상상이 아니라 상당 부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본을 떠 재구성된 곳일 테니, 예전에 본 적이 있다면 아마 그곳이 틀림없을 거야. 대체 이런 데는 언제 와본 거야?

“직접 가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들었던 그 장소랑 너무…….”

- 음? 대체 무슨 말이야. 평소에도 별로 똑똑한 소릴 하는 애는 아니었지만, 아까부터 너무 이상해. 좀 알아듣게 말 좀 해봐!

 메아리는 답답하다는 듯이 다그쳤지만, 소리의 귀에 검은 고양이의 일갈은 닿지 않는 듯했다. 지금 소리의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처럼 정신없이 복잡했다. 어째서 난데없이 이런 곳이 튀어나온단 말인가. 메아리의 파편을 수집하는 도중에 왜 이런 장소가… 겨울의 공원, 잠시나마 힘이 되어준 그 자상한 노인의 추억이 왜…….

“으……!”

 소리는 낮게 신음하며 천문대 쪽을 향해 급하게 달렸다.

- 잠깐, 갑자기 어디 가는 거야! 같이 가!

 메아리 또한 돌발적인 소리의 행동에 놀라면서도 재빠르게 그 뒤를 따라붙었다. 현명한 검은 고양이는 당분간 이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을 거라는 걸 깨닫고는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역시……!”

 소리가 향한 곳은 천문대를 비추고 있는 가로등 근처였다. 멀리서는 풀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으나, 이렇게 가까이 와서 보니 그곳에는 천문대 지하로 이어지는 좁은 계단이 있었다. 소리는 어두컴컴한 계단을 지체 없이 단숨에 뛰어 내려갔다.

 있었다. 소리가 들은 대로 그곳에는 지하실이 있었다. 좁고 어두침침하지만, 의외로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는 작업실. 사방에는 만들다 만 사람들의 흉상이 일렬로 정렬되어 있었고, 각종 연장들도 찾기 쉽게 수납되어 있었다. 한쪽에는 허리까지 오는 수납장이 있었고, 그 위에는 몇 가지 서적들과 찻잔, 그리고 커피머신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천장. 조각가의 지하작업실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는 천장에는 무수히 반짝이는 그것들이 존재했다.


『네 탓이야. 네 탓이야. 네 탓이야. 네 탓이야. 내 탓이 아니야. 내 탓이 아니라고. 내 탓이 아니라니까! 네 잘못이야. 네 잘못이야. 네 잘못이야. 네 잘못이야. 내 잘못이 아니야.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니까! 네 실수야. 네 실수야. 네 실수야. 네 실수야. 내 실수가 아니야. 내 실수가 아니라고. 내 실수가 아니라니까! 네가 망쳤어. 네가 망쳤어. 네가 망쳤어. 네가…….』


 지하의 천장을 밝히는 별들은 왁자지껄 일제히 떠들어댔다. 모든 별들은 모든 별들을 싫어했고, 모든 별들은 모든 별들이 잘못했다고 여겼으며, 모든 별들은 모든 별들의 책임만을 규탄했다. 모든 별들은 하나 같이 스스로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세상에 만연하는 이 괴로움은 전부 밖에서 흘러들어온 것. 자신과는 관계없는 저주스러운 불운. 원하지 않은 짐은 어디로 버려야 하는가. 그 대답은 너무나도 명백하지 않은가…….
 메아리는 고통스럽게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 읏… 이게, 바로 이게, 네가 말하고 싶었던 거였군. 나도 알겠어. 조각가의 광기가 뭔지……!

 소리도 고막이 터질 듯이 떠들어대는 별들의 소음에 견디며 입을 열었다.

“그래요, 이 사람이 원망怨望하는 건 바로…….”

 지금까지 잠자코 구석에서 침묵을 지키던 지하실의 주인이 소녀의 말을 받았다.

“이 세상의 무책임함이지. 어처구니없이 떠맡게 된 무거운 짐을, 다시금 본래 소유자에게 되돌려주는 게 내 원망願望이다. …오랜만이구나, 얘야. 건강한 것 같아 다행이다.”

“예, 정말 간만에 뵙네요. 그동안 잘 계셨어요? …할, 아버지.”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남색 작업복의 노인을 날카롭게 쏘아보며 소리는 흙을 씹듯이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1년 반 전. 울긋불긋한 낙엽이 다 떨어져 나무들이 헐벗고 동장군의 매서운 칼바람이 서서히 거리를 유린하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아직 메아리와 만나기 전의 소리는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는 일이 잦았다.

 소리의 2차 발광으로 인해 학교가 아수라장이 된 지 어느새 2달. 사건은 ‘붕괴된 교육현실’같은 전형적인 문구로 은폐·축소되었지만, 소리는 확연히 그 모든 일이 자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 그 시절의 소리는 냉철하게 책임을 분배하는 요령을 몰라 그저 다 껴안고 있을 줄만 아는 우직한 아이였다. 소리는 자기 탓에 불행해진 사람들의 인생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온 몸을 옭아매는 죄책감에 조금씩 깎여나가고 있었다.

 소리는 우선 학교를 그만두었다. 물증이 없었기에 아무도 그녀를 탓하지 않았지만, 소리는 도저히 멀쩡한 얼굴로 등교할 자신이 없었다. 설령 양심을 버린다고 해도 이젠 광기를 제어할 수 없게 된 그녀가 학교에 가봤자 제대로 된 생활은 할 수 없을 것이다. 2차 발광 당시처럼 방대한 광기가 한꺼번에 발산되는 일은 없겠지만, 다들 서서히 망가져 언젠가는 같은 비극이 반복될 테니까.

 자퇴를 결심한 소리는 지금 신세를 지고 있는 친척집에서도 나왔다. 사회적 체면이라든지, 법률이라든지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반 강제적으로 소리를 떠맡고 있었던 친척들은, 그녀가 떠나겠다고 말하자, 다들 안심하는 눈치였다. 소리의 부모를 비롯해 지금까지 그녀가 신세를 져왔던 집들은 아무리 화목한 가정이라도 얼마 가지 않아 인간관계가 파탄이 나는 불운이 계속됐다. 마찬가지로 물증이 없어 소리를 매도하지는 않았지만, 친척들은 하나 같이 그녀를 꺼려했다. 소리 또한 왜 이런 불운이 계속될까 이상하게만 여겨왔었다. 물론 불운 같은 게 아니었다. 확실하게 자신의 광기를 자각한 지금은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소리의 광기는 명확하게 형태를 갖추어 배출하는 것이 아닌지라 알기 힘들었던 것뿐, 그녀는 이미 1차 발광 이후부터 은연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광기를 흩뿌리고 있었던 것이다.

 몰랐을 때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알게 된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소리는 혼자 살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거처를 조부가 살았다는 도시외곽의 외딴집으로 옮겼다. 생활비는 매달 후견인으로부터 통장에 입금되었다. 몇 년 후 그녀가 성년이 되면 상속 받은 부모님의 유산을 직접 쓸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 얼마 인지는 몰랐지만, 쭉 일하지 않고도 버틸 수 있을 만큼 많은 돈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순식간에 사회에서 격리되다시피 한 소리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학교에 갈 수도 없고, 누군가와 일을 할 수도 없다. 물론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도 돈을 벌거나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무척 제한되어 있고, 원하는 분야를 찾기란 더욱 곤란하다. 대입시험이나 고시 등과 같이 몇 시간씩 같은 장소에서 시험을 쳐야 하는 부류는 처음부터 논외였으며, 장사나 투자를 하려고 해도 자본이 없었다. 영업에 소질이 있다거나, 어지간히 운이 좋다면 모를까, 이 변화무쌍한 현대사회에서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지식도 경험도 없는 철부지가 성공적인 경영인 내지 투자가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을 만큼 그녀는 낙관적이지 않았다.

 결국 그녀의 일과는 목적지 없는 산책이 되었다. 거리를 떠돌며 사람들을 구경하다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는 나날의 반복. 처음에는 방관자의 입장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마치 신이라도 된 듯한 착각. 어떤 철학자는 관조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격이 높다고 했다는 모양인데, 소리는 그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착각은 착각일 뿐. 신이 아닌 일개 인간의 관찰자 놀이는 오래지 않아 허물어지고 말았다. 얼마간 즐겁게 사람들의 일상을 바라보던 소리는, 아무리 그들이 자신과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절대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자신은 사회에서 격리되어 있다. 저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어떤 간섭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소리는 이번에는 유령의 입장에 더 공감이 갔다.

 아주 잠시 동안 생기를 되찾았던 소리의 표정은 다시 점점 죽어갔다. 과거의 죄책감과 희망이 없는 미래 사이에 끼인 그녀의 현재는 보잘것없이 위축되어만 갔다. 언젠가부터 소리는 거리에 나가는 것조차 그만두었다. 그녀는 이제 한적한 공원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어떤 멍청이가 도시계획을 잘못 세운 것인지 햇볕도 잘 들지 않고 교통도 별로 좋지 않아 항상 바람만이 떠들썩거리는 그 공원은, 그러나 소리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안식처였다.

 물론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곳이라면 지금 소리가 머물고 있는 거처만한 곳이 없었다. 그러나 소리는 집에 있기가 싫었다. 2차 발광 이후 소리는 몸에서 온기를 잃었다. 아무리 옷을 껴입고, 난방을 틀어도 소리의 몸에서는 한기가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만약 집 안에 있게 된다면 싫어도 그 한기를 통감해야만 했다. 하지만 바깥에서는 원래 춥기 때문에 추운 거라고 자신을 속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증세로 사람들과 떨어져 살다가 외롭게 죽었다는 조부의 일화는 더욱 소리가 집에 있기 싫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다.
 갈수록 내려가는 기온. 차츰차츰 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을 드러낸 나무들. 바싹 마른 낙엽이 바람에 날려 뒹구는 그 쓸쓸한 공원에, 어느 날 갑자기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꼬마 아가씨가 제법 운치를 아는구나. 괜찮다면 이 늙은이 말상대 좀 해주렴.”

 예고도 없이 소리에게 인사를 건넨 사람은 공원만큼이나 고루한 양복을 입고 있는 노신사였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었지만, 소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한 당시의 그녀는 무서운 것도 없었기에 누구에게도 경계를 하지 않았다.

 그 후 노인은 자주 공원에 들렀다. 노인은 올 때마다 소리에게 뜨거운 캔 커피를 하나 쥐어주었다. 소리는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캔 커피가 내뿜는 온기는 좋아했다. 대화는 주로 노인이 주도했다. 그건 사실 대화라고 부를 만한 것도 아니었다. 노인이 혼자 과거의 추억을 넋두리처럼 이야기하면, 소리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비록 노인의 이야기는 대충 흘려 넘길 때가 많았지만, 누군가 말을 걸어주는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리는 어쩐지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노인은 소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 때 예술가를 지망하던 꿈에 대한 이야기, 집안을 건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청춘을 희생해야 했던 이야기, 우연히 일하게 된 직장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이야기, 누구보다도 소중한 딸이 태어난 이야기, 그리고… 그 몰락에 관한 이야기도 노인은 전부 이야기했다.

 아아… 이 할아버지는, 죽은 딸과 날 겹쳐보고 있는 거구나.

 노인에게 그의 딸이 뺑소니 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 소리는 얼마 전까지 면식도 없던 노인이 왜 자신에게 그토록 신경을 써주었는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딱히 기분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마 사람은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고孤高할 수는 없는 법이리라. 소리도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을 할아버지라 부르며 전보다는 반갑게 맞이하게 되었다.

 친숙한 호칭이 생기면서 어느새 소리는 노인이 했던 것처럼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주위에서 벌어진 불행한 사건들. 왠지 모르게 감정을 폭발시키며 싸우는 일이 잦은 주변인들에게 냉소를 날리던 역겨웠던 자신. 허나 실은 그들이 이성을 잃게 된 이유가 다름 아닌 자기 탓이었다는 진실… 이상하게도 당시 그녀는 그런 황당한 이야기를 누가 믿어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일종의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마술이라고 해야 할까. 세상에서 격리된 것만 같은 그 황량한 공원에서 단 둘만이 있다는 것은, 마치 세계멸망 후 딱 두 사람만 살아남은 것처럼 외로움과 동시에 끈끈한 유대감을 가져다주었으며,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고, 무슨 이야기든 긍정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을 들게 해주었다.

 소리는 과거를 이야기하며 많이 울었다. 지금까지 눈물을 흘려본 기억이 거의 없는 그녀인 만큼 한 번 물고가 터지기 시작하자 멈추기 힘들었다. 그녀는 온갖 서러움과 불안을 눈물에 담아 바깥으로 흘려보냈다. 노인은 언제나 그녀의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들어주었으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고, 그녀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위로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네 탓이 아니란다.』

 노인의 위로는 그저 달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었다. 노인의 언어에는 어떤 깊숙한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것은 매우 기분 좋은 위로였으나, 한편으로는 매우 무섭기도 했다. 이대로 노인의 위로에 잠겨있다가는 분명 익사하고 말 거라는 망상 같은 위기감이 소리를 덮쳤다. 근거도 없는 강박관념일지도 모르겠지만, 소리는 더 이상 노인과 관계하면 좋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소리는 그 생각을 꾹 숨긴 채 노인에게는 멀리 이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다시는 그 공원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노인과의 이별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지만, 그가 한 때나마 소리에게 큰 힘이 된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그 노인 덕분에 소리는 말라죽지 않고 어떻게든 기운을 차릴 수 있었으며, 이후 메아리를 만나 완전히 재기할 수 있었다. 나비효과라는 말처럼 만약 그 노인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소리는 쭉 그 공원의 정적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메아리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설령 만났다고 해도 무언가 새로운 목표를 추구할 만한 기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소리는 여태까지 마음속으로나마 그 공원의 노인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내왔었다. 그래서 이미 추억의 액자에 장식된 인물이 현실의 경계를 넘어 침입해 들어오는 일은 끔찍한 악몽처럼 느껴졌다. 과거에 만난 공원의 노인과 요즘 떠들썩한 소문의 조각가는, 동일 인물이었다.







TRACKBACK 0 AND COMMENT 8
  1. Favicon of http://yoons_cha.blog.me BlogIcon 에네아스 2010.09.22 07:4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추석 전날 물벼락을 맞은 분들이 많으십니다만, 그래도 명절은 명절이겠죠.
    안단테님도 행복 가득한 한가위 되시길 빕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22 23:41 신고 address edit/delete

      감사합니다~
      에네아스 님도 남은 추석 즐겁게 보내시길 바래요^^

  2. Favicon of http://mysticeye.egloos.com BlogIcon 절망의미스틱씨 2010.09.23 10:5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정작 수원에는 물이 제대로 고인 곳 마저 찾기 힘들군요 ''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23 22:25 신고 address edit/delete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계신 곳에는 별 탈이 없으셨다니 다행이에요^^

  3. Favicon of http://caprio.tistory.com BlogIcon 카푸리오 2010.09.29 18:0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다행히 폭우에 무탈하신듯 합니다.
    전 집에 가는 도로가 침수로 봉쇄당해 애를 먹었습니다.
    탈은 없었지만요...ㅠㅠ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29 21:23 신고 address edit/delete

      에고, 귀택하시는 데 애로사항이 꽃피셨군요ㅠ_ㅠ
      그래도 직접적인 피해는 없으셨다니 다행이에요!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chohyungsa BlogIcon 야간비행사 2010.09.30 13:5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조각가랑 소리가 원래 아는 사이였군요.
    음.. 얼른 다음편을 읽어봐야겠어요ㅎㅎ.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30 22:42 신고 address edit/delete

      확실히 좀 갑작스러운 면이 있지요^^;;
      좀 더 공들여 복선을 깔아야 했는데...OTL




"습관은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by 도스토예프스키



...
어릴 적,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는 꽤 여러 가지 악기를 배웠었습니다.
피아노, 클래식 기타, 통기타, 하모니카, 바이올린 등등···.

피아노는 소위 체르니 30번이라 부르는 정도까지 쳤었고,
클래식/통기타도 대충 악보 보면 코드 잡고 연주하는 수준까지,
하모니카도 음이 다른 두 개를 이용해 샵을 넣는 단계까지 배웠네요.

본격적으로 익힌 것도 아니라 어정쩡한 레벨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하긴 했는데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을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언제 만져봤냐는 듯이 전부 잊어버리고 말았어요;;;

중학시절, 한 선생님께서 한 때 자기는 독일어가 좋아 회화가 가능할 정도로
열심히 배웠지만, 딱 2년 동안 한 번도 안 쓰니까 싹 잊었다는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는데, 그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더군요.

역시 뭔가를 배우는 데는 중단 없는 노력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

 




제 1막 조각가의 하늘 - Scene6 / 구상求償 (2)


 소리는 메아리의 인도에 따라 비약적인 도약으로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윤종을 쫓았다. 그녀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부지런히 달려 간신히 그 뒤를 따라잡았을 때 이미 모든 사태는 종료되어 있었다. 윤종은 추락하고 있었다. 중력을 이기지 못하는 그의 몸은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으로 사정없이 곤두박질치는 중이었다.

“아, 아아…….”

 소리는 입을 반쯤 연 채 신음인지 비명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애매한 숨결을 토했다. 어떻게 손 쓸 도리가 없었다. 그저 주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 줄밖에 모르는 그녀의 광기로는 윤종을 구할 수 없었다. 메아리도 떨어지는 윤종의 무사를 확보하기 위해 뭔가 허언을 구성하는 듯했지만, 도저히 제 때에 맞출 것 같지 않았다.
 시간은 정확하기에 무자비했다. 검은 고양이가 입을 움직여 소녀의 성대에서 목소리를 내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윤종의 몸은 착실히 낙하를 계속해 지면에 충돌하기 직전이었다.

“제발!”

 소리는 터져 나오는 비명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이 사람이 죽어선 안 된다. 그녀에게 있어 윤종의 죽음은 다른 이의 죽음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자신은 그저 계기였을 뿐이다. 다른 이들은 전부 스스로 가진 추악함 때문에 멸망했었다. 그러나 윤종은 오로지 자신을 구하기 위해 그림자를 쫓다가 떨어진 것이다. 만약 윤종이 여기서 목숨을 잃는다면, 그건 순전히 자기 탓이 되고 만다. 나중에 메아리의 힘을 빌려 살릴 수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자기 책임만으로 사람의 목숨을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 소리는 도저히 그런 막대한 죄책감을 껴안을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소리의 간절한 애원에도 불구하고 윤종은 등부터 지면에 충돌하고 말았다. 소리는 질끈 눈을 감았다. 작은 진동과 함께 귓가에 불쾌하게 스치는 둔탁한 소리. 아마 윤종의 시체는 낙하충격으로 처참한 몰골로 흩어져 있을 것이다.

“……!”

 무슨 일이 있어도 감았던 눈을 뜨기 싫었던 소리는, 그러나 온몸을 감싸는 거대한 힘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젖힐 수밖에 없었다. 이건, 뭘까. 한없이 따스하기도 하고, 한없이 차갑기도 한 이상한 기류. 세상과 처절히 단절된 듯한 소외감과 세상의 그 어떤 위험한 것으로부터도 보호 받을 수 있다는 포근함이 길항한다. 절대적인 불가침의 울타리 안에서 단 하나의 희미하게 바깥과 연결되어 실을 따라 정신과 영혼이, 영혼과 마음이, 마음과 육체가 한데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 역시 저 남자… 괴물이야…….

 메아리의 중얼거림에 소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살며시 자신을 안아 올리는 것 같으면서도 거칠게 짓누르는 듯싶은 신비한 압박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방금 전 감각은 대체 뭐였을까. 꿈? 환각? 아니면 단순한 착각?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소리는 윤종이 떨어진 곳으로 급히 눈길을 돌렸다. 얼마나 끔찍한 몰골로 분쇄된 시신이 있다 하더라도 직시해야만 한다. 이제 와서 도망칠 수는 없으니까. 소리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멀쩡한 윤종이 서 있었다.

“약속은… 지켰다.”

 윤종은 소리와 꼭 닮은 하얀 석고상을 안고 있었다. 이제야 소리는 왜 윤종이 저 빌딩에서 추락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림자가 30층 건물 옥상에서 내던진 자신의 조각상을 지키기 위해 망설이지 않고 뛰어내린 것이다.
 소리는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보… 아니에요? 이게 뭐예요… 무모하게… 용기랑, 만용은… 다른 건데… 정말 바보 같아… 고작…….”

 나 같은 걸 위해. 물기가 섞인 소리의 음색은, 그러나 끝까지 저 말을 자아낼 수가 없었다. 만약 지금 스스로의 가치를 부정한다면, 그건 겸손이나 자학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건 저 남자를 모욕하는 일이 될 테니까.

“얌마, 바보한테 바보 소리 들으면 상처 입는다고. 그보다… 윽…….”

 소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농담조로 말하던 윤종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아저씨!”

 소리는 급히 앞으로 뛰쳐나가 허물어지는 윤종의 몸을 붙들었다.

“아아, 이제 한계야. 미안하지만 저기 벤치 있는 데까지 부축 좀 해줘.”

“어디 크게 다치신 건가요?”

“아니… 일종의 부작용이라고 해야 할까… 시간을 다 썼거든…….”

 윤종의 말은 마치 멀리서 얘기하는 것처럼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비록 늦은 밤의 도심의 중심업무지구인데다 그림자의 살기 어린 광기 탓에 주변에 다가오는 사람이나 차량은 거의 없었지만, 현재 그들이 서 있는 곳은 4차선 도로의 한가운데였다. 빨리 자리를 비키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컸다.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그의 몸에서도 점차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소리는 일단 그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일에 주력하기로 했다.

 소리가 윤종을 부축해 가까운 인도의 벤치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메아리는 뒤처리를 담당했다. 메아리는 허언의 광기를 발산해 당분간 사람들이 이 주위로 들어오지 않도록 인식영역의 미로를 설계하고,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주변 CCTV 등 기록매체의 내용을 바꿔치기 했다. 그림자처럼 순수하게 광기로 이뤄진 상대가 아니라면 메아리의 허언은 거의 만능에 가까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간신히 벤치까지 도달하자 윤종은 축 늘어진 채 입술을 달싹거렸다.

“내 걱정은, 하지 마. 조금만 쉬면… 돼… 뒷일은… 맡기 마…….”

 힘겹게 말을 내뱉은 윤종은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소리는 깜짝 놀라 급히 윤종의 맥을 짚고 숨소리를 확인했다. 윤종의 체온은 매우 차가웠고, 맥박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소리는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서, 설마… 이대로 죽는 건…….”

 그러나 메아리는 고개를 저으며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해. 이 남자는 그저 힘이 다했을 뿐이야. 파편을 회수하고 난 후 네가 어떻게 되는지 떠올려보라고.”

“아, 맞다…….”

 소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아왔다. 마치 동면하는 것만 같은 윤종의 상태. 그렇다. 광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온힘을 소진한 자신도 곧잘 이런 상태에 빠지곤 했었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해도 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당장 죽을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소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 어떻게 할 거야? 이 사람 깨어날 때까지 기다릴 거야?

 메아리의 물음에 소리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자신을 구해준 윤종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 것도, 또 잠들듯이 정신을 잃은 그가 걱정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소리는 우선사항을 착각할 만큼 감정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지금 우선해야 될 건 하늘이 무너진다는 불길한 예언을 막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메아리의 파편을 회수하는 것이다.

“잠시만 기다려요.”

 허나, 그렇다고 생명의 은인을 이대로 방치하고 갈 수는 없었다. 소리는 윤종의 재킷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과연 예상대로 핸드폰은 부서진 곳 하나 없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도 윤종은 무사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가 안고 있던 소리의 조각상도, 그가 입고 있던 옷도, 그가 지니고 있던 물품들도 전부 아무 이상이 없었다. 방금 전에 느낀, 세상의 품에 안기는 듯 격리되는 듯 모순되고 혼동되는 묘한 감각. 그것은 자신을 꼭 닮은 조각상을 통해 윤종이 지닌 광기의 일부가 수신된 것이었다. 괴물. 메아리는 윤종을 두고 그렇게 불렀다. 윤종 본인이 아니라 그의 광기만 두고 말하자면, 소리는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다.
 메아리는 윤종의 핸드폰을 꺼내든 소리에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 뭘 하려고?

“도발하려고요.”

 간결하게 대답한 소리는 핸드폰의 전화목록에서 ‘유지수’라는 이름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상대는 빠르게 연결됐다.

『쫑이야? 웬일로 다 전화를 걸었네? 무슨 일이라도 있어?』

 전파를 타고 들려오는 지수의 목소리에는, 윤종을 걱정하는 한편으로, 좋아하는 상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는 들뜬 기대감이 묻어 있었다.

“예, 당연히 무슨 일이 있으니까 전화했죠.”

『응? 잠깐, 너 누구야!? 이 목소리 어디선가…….』

“아저씨는 제가 맡고 있어요. 이 사람 정조를 지키고 싶다면 서두르는 게 좋을 걸요.”

『너 거기 어디야! 기다려, 당장 죽여줄…….』

 삑. 소리는 지수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할 말만 다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곧장 윤종이 누워있는 벤치가 있는 장소가 어딘지 문자를 통해 전송했다.
 메아리는 눈을 가늘게 뜨며 한숨을 내쉬었다.

- 너도 보면 가끔 참 대담한 짓을 한단 말이야.

“이러면 어디에 있건 당장이라도 달려오겠죠. 물론 우리가 자리를 뜨기 전에 마주하면 무진장 곤란하겠지만요. 그나저나… 이 석상은 대체 어떡하죠?”

 소리는 윤종이 몸을 던져 받아낸 자신의 흉상을 가리키며 눈을 가늘게 떴다. 다행히 높은 곳에서 떨어져 전신이 산산조각 나는 꼴은 면했다고 하지만, 이 석상이 여전히 위험요소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과연 그림자 외의 다른 사람이 이걸 부숴도 자신에게 영향이 있는지, 또 언제까지 이 석상의 유효기간이 계속될 것인지 알 수도, 시험해 볼 수도 없었기에 아무 곳에나 그냥 방치해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걸 들고 조각가에게 가는 건 더 위험할 것이다.
 메아리는 얼마간 석상 주위를 뱅뱅 돌며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 시도해볼만 한 방법은 여럿 있지만, 한번이라도 실패하면 끝장이니까 가장 확실한 걸 쓰자. 이 흉상과 너의 유사성을 어그러뜨리는 거야.

“어떻게요? 음, 제 얼굴에 상처를 낸다거나, 머리카락을 자른다거나 그러면 될까요?”

- …넌 무슨 애가 항상 생각하는 게 그리 살벌하냐? 그럴 것까지는 없어. 그저 이 흉상의 형태개념을 붕괴시키면 간단히 해결 돼.

 메아리는 앉은 자세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소리의 흉상과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잠시 동안 물끄러미 흉상을 응시한 메아리가 이윽고 허언을 내뱉었다.

- 이 조각상은 누구를 닮은 걸까. 여자일까. 남자일까. 내가 아는 사람일까. 모르는 사람일까. 앞에서 보면 어떨까. 뒤에서 보면 어떨까. 오른 쪽에서 보면, 왼쪽에서 보면,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어떨까. 그보다 이건 사람이기는 한 걸까. 이 눈은, 이 코는, 이 입술은, 이 뺨은, 이 귀는, 이 머리는, 이 목은, 정말 사람의 기관을 닮은 걸까. 애초에 조각이란 뭘까. 나무를 파는 것? 돌을 쪼는 것? 금속을 깎는 것? 그렇다면…….

 조각이 누구를 닮았는가에서 부터 시작해 조각의 정의까지 세세하게 묻는 메아리의 종잡을 수 없는 말은 몇 분 동안 계속해서 이어졌다. 메아리는 조각상이 가지는 온갖 외부적인 특징과 조각이라는 행위에서 파생되는 각종 정의를 시시콜콜하게 분류해 끊임없이 추궁했다. 마침내 초침이 100번 째깍거렸을 때 아무 변화 없던 조각상은 조금씩 흐물흐물하게 변하더니 곧 물처럼 녹아내렸다가 모래처럼 흩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소리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소리는 일부러 입으로 박수소리를 내며 말했다.

“와, 성공했네요. 굉장해요. 짝짝짝.”

- 흥. 네 칭찬은 너무 작위적이라 오히려 비꼬는 것 같아.

“예, 그걸 노린 거예요. 메아리는 진짜 칭찬해주면 한없이 기어오르잖아요.”

- 너 갈수록 건방져진다? 뭐어, 좋아. 아무튼 이 기세로 조각가의 거처로 들어가는 문도 확 열어젖히면 되겠군. 될 수 있으면 조각가가 눈치 채고 도망가기 전에 빨리 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아마 쉽게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덤덤한 소리의 말에 메아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 뭐, 그게 무슨 말이야? 혹시 조각가의 거처에 들어가는 조건을 알아낸 거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아예 누가, 무엇을, 왜까지 마저 묻지 그래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가서 설명해드릴게요. 여기서 시간 끌다가 무서운 언니랑 마주치는 건 싫으니까요.”

 지수를 염두에 둔 소리의 제안에는 메아리도 동의했다. 소리의 광기에 오염된 윤종이 자살미수를 행했던 그날 밤. 지수는 윤종이 들고 있던 식칼을 마치 직소퍼즐처럼 산산조각을 냈다. 아마 흉기 등을 매개하여 파괴력을 발휘하는 그림자와는 다르게 직접적으로 사물 그 자체를 분쇄하는 광기임에 틀림없었다.

 그 주형이란 사내와 마찬가지로 지수 또한 소리가 윤종을 끌어들이는 일을 탐탐치 않게 생각할 터. 아니, 오히려 이성으로서 연애감정을 품고 있는 지수 쪽이 훨씬 격하게 나올 가능성이 컸다. 힘을 소진해 정신을 잃은 윤종을 보고 지수가 그 광기의 칼날을 자신들에게 돌리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소녀와 고양이는 등골이 주뼛하고 섰다.

“그럼 아저씨.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소리는 들릴 리 없는 감사를 윤종의 귀에 속삭인 후 검은 고양이와 함께 운학역 쪽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TRACKBACK 0 AND COMMENT 14
  1. Favicon of http://tsuyodung.tistory.com BlogIcon dung 2010.09.16 01:3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 만큼 멋진건 없는것 같아요. ^^* 저도 피아노를 배웠었는데요. 지금은 전혀... ㅊㄹㄴ 40번인가 까지 쳤던것 같기도하고? 그건 나의 기억이 아닌것 같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ㅠ_ㅠ 흑흑.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16 02:08 신고 address edit/delete

      정말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꾸준히 해나가기란 더욱 힘든 일이라 생각해요. 다른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악기는 특히 손에서 놓으면 금방 잊게 되는 듯... 반대로 자전거는 아무리 오랜만에 타도 괜찮더군요^^;;

  2. Favicon of http://gumediherb.tistory.com BlogIcon 미루마지 2010.09.16 10:3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아 악기도 하시는군요 ㅎㅎㅎ 부럽습니다. 좋은 취미로 계속 하세요~~ 연주곡을 듣는것도 좋은 취미고 자기가 직접하는것도 좋은 취미랍니다. 즐기세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17 08:52 신고 address edit/delete

      예, 정말 즐기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물론 저는 그만 둔 지 오래되었지만, 차후 여유가 생기면 피아노는 다시 한 번 배워보고 싶네요^^

  3. Favicon of http://pokerface7.tistory.com BlogIcon KEN☆ 2010.09.16 12:4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우왓
    여러가지 악기를 다루셨군요...
    제가 음악을 상당히? 좋아하지만, 정작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어, 전 OTL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를 멋들어지게 연주하고 싶지만, 참 세상이 가만주질 않기에 하나도 없네요. 이런...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17 08:54 신고 address edit/delete

      다루었다고 해도 전부 과거형이니ㅠ_ㅠ 켄 님도 일상의 분주함 때문에 짬을 내기가 힘드신가 봐요··· 하지만 머지 않은 훗날에는 꼭 여유를 찾으시어 일렉기타와 베이스를 멋지게 연주하실 수 있기를 기원할게요!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chohyungsa BlogIcon 야간비행사 2010.09.16 15:3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음.. 윤종이 무사해서 천만다행입니다ㅎ.
    요근래 들어 오늘 날씨가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이런 날 야외로 나가줘야 하는데ㅎㅎㅎ 그러지 못해 아쉽네요.
    안단테님 그럼 즐거운 오후시간 되세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17 08:59 신고 address edit/delete

      역시 주인공 보정은 어떤 상황에서도 '말도 안 되게' 살아나야 제맛이죠^^;; 한 번 영화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그런 편애주의를 능력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발상에서 설정해 보았어요.

      아직 낮에 조금 덥긴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적당히 더위도 가시고 해서 정말 날이 좋네요~ 역시 우리나라는 봄이랑 가을이 야외활동하기에는 제격인 것 같아요^^ 비행사 님도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래요~>.<

  5. Favicon of http://caprio.tistory.com BlogIcon 카푸리오 2010.09.16 17:5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글솜씨에 비록 지금은 잊혀졌다고는 하나 악기 다루는 솜씨까지..안단테님은 예술적 재능을 타고 나셨군요.

    저도 기타배우고 싶은데 대학시절 기본 코드 잡고..그 이상 진도를 못 나갔네요. 아직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은 있습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17 09:47 신고 address edit/delete

      아앗, 도리어 예술적인 재능이 없다는 의도에서 쓴 글인데, 너무 너그럽게 봐주시니 부끄럽네요. 네츄럴 본 어쩌구 하는 축복 받은 분들과 달리 저는 무진장 노력해야 무언가 이룰 수 있는 타입이라 반대로 조금만 손에서 놓게 되면 금세 잊고 말더군요ㅠ_ㅠ

      좀 구식이라 할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럴 듯한 분위기에서 통기타를 치며 잔잔한 노래를 부른다는 건, 여전히 로망이라 생각해요! 카프리오 님도 가까운 미래에 다시 배우시며 마스터하실 수 있기를 바랄게요~

  6. Favicon of http://sogam0.blogi.kr BlogIcon 소감공 2010.09.16 18:2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도 통기타 사놓고는;; 기본코드만 잡다가 못치고 있네요. ㅠ_ㅠ 하숙방이라 연습할수도 없고;; 유일하게 칠줄 아는 곡은 오직 기본코드 4개로만 이루어진 김광석님의 "일어나"뿐...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17 09:11 신고 address edit/delete

      으, 확실히 악기연습은 주변에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게 되는 게 가장 문제인 것 같아요. 하숙하신다니 더욱 운신이 여의치 않으시겠네요ㅠ_ㅠ 으음, 학교에서 통기타 동아리라든가, 부실이 있다면 그쪽에 가입하여 빌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동아리 활동이라는 게 시간을 많이 잡아 먹으니 꼭 좋은 방법이라 하기도 그렇군요^^;; 아무튼 자유롭게 실력향상을 하실 수 있는 적절한 여건을 찾으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7. Favicon of http://fghj1.egloos.com/ BlogIcon fghj1 2010.09.18 10:5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이번 글은 제게 있어 레어급 글이 될 것 같은데요!? +ㅂ+(오! 보물이닷!!) 안단테님의 생활 공간 일부가 공개 되었으니 말이에욧!!! 후훗-ㅂ-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아는 남자가 되고 싶어서 뭔가를 배워보려고 시도했던 적이 2~3년 전인 것 같아요. 지금도 이 마음은 변하지 않았지만 늘 마음만 가지고 있네요. lllOrz 역시, 드라마, 영화, 애니 등에 나오는 무엇이든 잘하는 남자가 되기엔 제 몸과 능력, 주어진 시간에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19 11:20 신고 address edit/delete

      제 일상은... 그저 평범한 생활을 보내고 있어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는 아마 따분하기 그지없을 거예요^^;; 물론 저는 나름대로 충실하게 보내고 있다 생각하고 있지만요^^

      확실히 여러 작품들에서 나오는 만능형 인간은 현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아요. (노다메 칸타빌레의 치아키라든지;;;) 그래도 거기에 도달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이나 노력은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fghj1 님도 힘내시어 꼭 이상에 가까워지실 수 있기를 바래요^^





...
휴우, 역시 하루는 커피로 시작해서 커피로 끝나네요.

...이렇게 적으면 뭔가 된장 운운이 연상되지만,
제가 마시는 건 주로 캔 커피나 믹스에요^^;;

정확히는 커피를 마신다기보다는 카페인을 섭취한다고 해야 할지,
하루에 최소 2잔, 가장 많을 때는 10잔 정도까지 마시게 되네요.

음, 미국의 모 드라마 작가 중에는 하루에 40잔도 넘게 마시는
사람도 있다니, 일단 저는 많이 마시는 축에는 안 들겠지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별다방의
비싼 것이 아니라 자작(?) 인스턴트 커피에요.

만드는 방법은 간단. 우선 커다란 머그컵에 믹스를 풉니다.
그리고 그 위에 꿀을 친 다음, 뜨거운 물을 1/4 정도 부어 섞습니다.

그 후에 나머지는 우유를 넣으면 완성.
여름에는 얼음을 넣고, 겨울에는 전자렌지에 2분 정도 뎁혀요.

안타깝게도 가족들은(주로 동생) 제가 뭘 만들 때마다,

"제발 사람이 먹는 걸 만들어!"

...라고 재료가 아깝다며 면박을 주지만, 솔직히 맛있습니다.
편견이란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드네요···.



■■■





제 1막 조각가의 하늘 - Scene6 / 구상求償 (1)


 실재하는 상대의 모습을 본뜬 조각을 부수는 것으로, 그 본체에 동일한 해를 가하는 조각가의 광기는 그 구현을 위해 크게 3가지 조건을 필요로 했다.

 조건1. 조각가는 조각을 하기 전에 대상을 직접 보거나, 1년 안에 찍은 사진을 참조해야 한다.
 조건2. 실행자는 조각을 부수기 전에 대상과 직접 마주해야 한다. 단, 지속효과는 1일에 한한다.
 조건3. 대상을 본뜬 조각상은 일주일 안에 부숴야 한다. 단, 기간이 지나면 효과는 말소한다.

 조각을 만드는 제작자는 죽여야 할 대상자를 인식해야 하고, 대상자를 죽이는 실행자는 결과물을 그와 일치시켜야 한다. 또한 목표로 지정된 대상자는 자신을 죽일 실행자와 일시적으로 인식을 교환해 접속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추상적인 광기를 구체적인 광태로서 드러내기 위한 필수적인 절차였다. 아무리 광범위한 광기라 하더라도 대상의 특정은 어느 정도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 주의사항을 그림자는 소리의 흉상을 넘겨받을 때 조각가로부터 들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살인조건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림자가 그 자리에서 곧장 조각을 부수지 않고, 이렇게 소리와 대면을 하고 있는 것도 위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림자가 굳이 소리에게 조각상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단순히 얼굴만 마주하고 잠깐 싸우는 척하다가 도망쳐 안전한 곳에서 조각상을 파괴하면 될 일이었다. 실제로 광대는 그림자에게 절대 소리나 윤종에게 조각상을 보여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허나 그림자는 광대의 충고를 흘려 넘겼다. 수치를 모르는 소리의 파렴치한 말과 행동은 그림자의 이성적인 판단력을 상실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림자는 내면의 타오르는 복수심을 도저히 억제할 수가 없었다. 소리의 눈앞에 당당히 살인예고를 하여 공포에 떨게 해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절대 소리는 편하게 죽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벌벌 떨다 저세상으로 보내야 정당한 복수가 될 것이다.

 그림자는 광대의 당부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으나, 딱히 자신의 행동이 크게 발목을 잡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른 사물의 음영에 섞여 순간이동에 가까운 속도로 도망칠 수 있는 그림자를 따라올 자는 설마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잠깐 소리에게 흉상을 보여주어 절망을 맛보게 한 뒤 윤종이라는 사내가 달려들기 전에 자리를 벗어나면 된다. 그림자는 아주 간단할 거라 생각했다.

 …잠시 후 그림자는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치명적인 실수였는지 절감하게 된다.







 조각상을 보여준 직후, 그림자는 마치 지면에 녹아들듯이 순식간에 땅으로 꺼져버렸다. 감쪽같이 사라진 그림자의 행방에 소리와 윤종과 고양이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허나 멍하니 있는 것도 잠시, 곧 이들은 실질적인 위기에 직면했음을 깨달았다.

“한방 먹었다……!”

 윤종은 이를 갈았다. 그림자가 들고 있는 흉상은 틀림없이 그 소문의 조각가가 만들 작품일 것이다. 소리에게 강렬한 증오심을 품고 있는 그림자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황증거는 명명백백했다. 소리와 메아리의 정보가 사실이라면, 지금이라도 그림자가 흉상을 파괴하는 순간 소리는 죽고 말 것이다.

“네 광기로 어떻게 무마할 수는 없어? 전에도 몇 번이나 이 녀석의 상처를 낫게 한 적이 있었잖아.”

 윤종은 지난 일을 떠올리며 메아리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분명 쓰러진 소리를 목격한 날도, 그림자에게 습격당하는 소리를 구한 날도, 소리는 옷이 엉망진창이고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지만, 신기하게 몸 어디에도 긁힌 상처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검은 고양이는 고개를 저었다.

- 무리야. 그림자의 공격은 광기라 해도 기본적으로는 물리공격이었기 때문에 쉽게 상쇄가 가능했어. 하지만 조각가의 광기는 모방작으로 본질을 파괴하는 게 아닐까 대충 가설만 세웠을 따름이지,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아직 정확히 잘 몰라. 그러니 방비책을 세우기도 힘들어. 자칫 잘못 짚었다가는 이애는 단번에 골로 가버리고 말 거야.

 소리는 고개를 푹 숙이며 약간 과장된 어투로 말했다.

“땡땡땡. 아아, 제 인생은 여기서 종치는 건가요. ”

- 응, 이대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는다면 말이지. 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네 말마따나 저 윤종이란 사내와 네 이름을 합치면 딱 ‘종소리’가 되네. 저 남자가 예언에 등장한 건 실은 이런 사태를 예기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웃기지 말아요. 아무렇게나 끼워 맞추다니, 사람 목숨이 걸려 있는데, 누가 그런 불길한 농담을 하나요. 실망했어요.”

-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기껏 맞장구 쳐줬더니 은혜도 모르는 녀석이네.

“너희들 말이야…….”

 윤종은 긴장감의 기역자도 보이지 않는 소리와 메아리의 대화에 그만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스스럼없이 농담이 나오다니, 이 두 사람은 엄청난 거물이거나, 혹은 구제할 도리가 없는 멍청이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아…….”

 그러나 소리의 얼굴을 확인한 윤종은 곧 자신의 생각이 지나쳤음을 눈치 챘다. 밤중이라 확인이 어렵긴 했지만, 가로등 아래 드러난 소리의 안색은 평소보다 훨씬 창백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눈동자도 이리저리 안정되지 않아 불안함을 여실히 표출하고 있었다.

“나야말로 멍청이였군…….”

 윤종은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한탄했다. 아무리 언동이 기묘하고, 특이한 힘이 있으며, 태도에 여유가 있다고 해도 소리는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어린애다. 본래라면 또래 아이들과 수다를 떨고, 대입을 고민하고, 부모와의 갈등에 진저리를 쳐야 하는, 그런 나이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침착하게, 억지로 농담까지 해가며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왜 자신은 그걸 금방 알아채지 못한 걸까. 눈치도 정도껏 없어야 할 것이다.

“걱정하지 마. 절대 그림자가 조각을 부수게 놔두진 않을 테니까.”

 윤종은 소리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예? 말씀은 감사하지만, 대체 어떻게…….”

 소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보정. 20초.”

 윤종은 작은 속삭임과 동시에 광기를 발산하여 그대로 튀어 올랐다. 순식간에 건물 5층 높이까지 날아오른 그는, 창문의 좁은 틈새의 발을 얹고 다시 한 번 또 위로 향했다. 그런 식으로 그는 몇 십 층이나 되는 건물 위로 쭉쭉 올라가 순식간에 작은 점이 되어 사라졌다.

-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 남자는 그림자의 기척을 느낄 수 있다고 했으니, 당연히 추적도 가능하겠지. 그래도 설마 저렇게까지 규격을 벗어나는 파격적인 광기의 소유자였을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인선은 확실했던 모양이야.

“방금 전까지 사람 잘못 뽑았다는 식으로 말해놓고는 넉살도 좋네요.”

 소리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윤종이 사라진 방향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평소와 다름없이 가시가 돋친 그녀와 어투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안색은 살짝 화색이 돌아와 있었다.







 괴물. 그림자는 단 20초 만에 자신을 바싹 추격한 남자에게 경악의 감정을 담아 중얼거렸다. 저승사자처럼 저 앞에 불길하게 버티고 서 있는 남자에게, 그림자는 등골이 오싹 얼어붙는 두려움을 느꼈다. 지금 이곳은 30층이 넘어가는 고층건물의 옥상. 건물의 그림자에 녹아들어 이동한 자신과 달리 저 남자는 오로지 두 다리로만 여기까지 쫓아온 것이다.

 그림자는 윤종이 저주스러웠다. 저 남자만 아니었어도 소리의 숨통은 진즉에 끊어놓을 수 있었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현재 임시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소리의 흉상을 자신에게서 이탈시킨 후 전기톱을 비롯한 모종의 수단으로 그것을 파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손가락을 두 번이나 세 번 접을 만큼도 소요되지 않는다. 허나, 그 몇 초 안 되는 짧은 시간의 빈틈이라도 저 남자의 광기라면 놓치지 않고 파고들 것이다. 높은 건물에 올라 여유롭게 소리의 일그러지는 얼굴을 감상하며 복수의 기분을 맛보려 했던 그림자의 작은 여흥이 계획 전체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윤종의 광기에 시간제한이 있다는 걸 모르는 그림자는 더 이상 도망쳐봤자 소용없다고 지레짐작했다. 그림자는 초조하고 다급한 마음에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 어째서… 왜… 대체 왜 날 가만 놔두지 않는 거야! 왜 내 복수를 방해해? 당신은 왜 걔를 돕는 거야? 한소리… 그딴 애가 이 세상을 살 만한 가치가 대체 어디에 있다고!

“글쎄다, 난 내가 왜 살아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남의 인생에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알 것 같냐. 그런 건 고명하거나, 혹은 한가한 철학자 선생이나 붙잡고 물어보라고.”

- 읏… 그런 말장난을 하자는 게 아니야! 당신은 내 복수가 옳지 않다고 생각해?

 그림자의 물음은 여유가 없어진 만큼 직설적이었다. 그림자는 정당한 심판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그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사람에게는 사람을 심판할 권리가 없다든지, 증오는 증오밖에 낳지 않는다는 하나 마나한 허울 좋은 소리를 집어치운다면, 윤종은 그림자의 복수에는 충분한 당위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옳지. 옳고말고. 소리의 광기가 원인으로 넌 목숨을 잃었고, 네 친구는 살인자가 됐어. 네 가족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전부 비탄에 잠기고 말았지. 소리한테 악의가 있는지 없는지는 별론으로 할 때, 네가 그 녀석을 원망하는 이유는, 아마 위선자만 아니라면 대부분 납득하겠지. 그리고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첨언하자면, 난 위선자가 아니야.”

- 그럼 왜… 대체 왜 날 가로막는 거야! 왜 그딴 애의 손을 들어주는 건데!

“왜라는 질문이 많은 걸 보니 아무래도 넌 과학자가 될 소질이 충만했던 모양이군. 뭐, 좋아. 정 궁금하다면 대답해주지. 혹시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알고 있냐.”

- 끼리끼리 논다는 뜻이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

“나도 그 녀석하고 마찬가지란 뜻이다. 아주 뻔뻔하지. 남의 사정 따위 알게 뭐냐. 정의? 도덕? 선악? 그런 애매모호한 경계에 날 끌어들이지 마. 난 단지 내 일신상의 이유로 움직일 뿐이야.”

- 읏… 대체 무슨 이유가 있길래…….

“그건… 비밀이다!”

 윤종은 고함을 지르는 동시에 광기를 발동시켰다. 상대의 허를 찔러 질주하는 윤종의 앞에는, 그러나 이미 무수한 그림자의 흉기가 가로막고 있었다. 그 숫자는 얼마 전 폐교에서 맞닥뜨린 전기톱의 프랙탈의 몇 배는 뛰어넘는 무수한 흉기의 군집이었다. 전기톱, 진검, 식칼, 망치, 낫 등등 지금까지 그림자가 집어삼켰던 모든 흉기들이 마구잡이로 윤종에게 덮쳐들었다. 윤종이 대화를 하며 덤벼들 틈을 노리고 있었듯이, 그림자 역시 말을 하는 동안 슬금슬금 포석을 깔았던 것이다.

- 조금만 시간을 벌면……!

 혹시라도 무수한 흉기 중 하나가 윤종을 상처 입히거나 죽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림자는 그런 행운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단지, 몇 초라도 시간을 끌어준다면 그 사이에 흉상을 몸에서 떼어내 충분히 파괴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소리를 죽이는 데 성공만 한다면 그림자는 그 뒤에 윤종이 자신을 어떻게 해도 상관없었다.

“이만 성불해라.”

 그러나 윤종은 그림자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장애물을 피해 달려들었다. 공간이 협소했던 폐교의 복도와 달리 이곳은 사방이 탁 트인 건물의 옥상. 아무리 그림자가 모든 카드를 꺼내 방벽을 쳤다고 해도 윤종에게 있어서는 구멍이 크게 뚫린 망가진 그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전광석화를 그대로 구현한 윤종은 일체의 틈을 주지 않고 곧장 그림자의 머리를 뭉개버렸다.
 하지만,

“읏……!?”

 아무것도 붙잡지 못한 공허한 감각. 윤종은 이질적인 감각에 급히 광기의 발동을 중지시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방금 전까지 그림자의 두부에서는 죽지도 살지도 않고 세상을 헤매는 자 특유의 꺼림칙함이 느껴졌다. 허나 지금 그림자의 머리는 다른 부위처럼 현상계에 살짝 발만 걸친 껍질일 따름이었다.

“이 자식이…….”

 윤종이 목표를 잃고 망설인 시간은 아주 짧았으나, 그림자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처음부터 그림자는 윤종이 손쉽게 자신의 흉기방벽을 돌파할 것임을 알고 이중으로 포석을 깔아두었다. 윤종이 장벽을 넘어 그림자의 머리 부분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동안 그림자는 이미 그림자는 여태껏 유지하던 껍질을 버리고 손바닥만 한 소인小人으로 자신을 잘라내어 찰나의 순간에 중추를 이동시킨 것이다.

- 다 끝났어……!

 그림자는 윤종이 우왕좌왕하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작은 몸을 열심히 움직여 석상을 옥상 밖으로 내던졌다. 그림자의 몸은 작아졌어도 당분간은 바깥 사물에 물리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다. 그림자의 점유에서 이탈한 소리의 흉상은 저 멀리 공중을 날았다. 30층이 넘는 건물의 최상층. 흉상이 낙하하는 부근은 주변에 다른 건물도 없는 널찍한 4차선 도로였다. 아무리 윤종이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하늘을 날지 못하는 이상 저 석상을 건져 올릴 방도는 이제 없었다.

- 아하하, 아하하하하.

 본체의 대부분을 미끼로 던져 잃은 난쟁이 그림자의 몸이 점점 희미해졌다. 하지만 그림자는 사라지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겼다. 자신은 운명의 농락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장애를 뛰어넘고 승리를 거두었다. 비록 소리가 피투성이가 되어 무참히 흩어지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얼마 뒤에 실현될 그 미래를 환상하며, 그림자는 세상 속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빌어먹을… 어쩔 수 없군.”

 가벼운 욕지거리와 함께 윤종은 곧장 자유 낙하하는 소리의 흉상을 향해 몸을 던졌다. 30층의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그의 모습은 투신자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허나 이미 윤종에게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이미 그림자를 보고 있지 않았다. 살짝 손만 뻗으면 난쟁이가 된 그림자 따위는 금세 눌러죽일 수 있을 텐데도 그는 무시했다. 그는 오로지 지면을 향하는 조각상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윤종은 이제야 예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메아리의 예언은 윤종이 그림자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과연 그건 틀리지 않았다. 아주 정확한 미래예지였다. 다만, 해석자가 잘못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림자가 무엇인지 그들은 잘못 알고 있었다. 윤종이 잡아야 할 그림자는 복수심에 불타는 어린 소녀의 불쌍한 영혼이 아니라 다름 아닌 이 흉상이었던 것이다. 꽁꽁 묶여 움직일 수 없는 죄수들이 보는 동굴 벽의 그림자. 소리의 모습을 본뜬 이것이야말로 그 그림자가 아니라 무엇이겠는가. 벽을 차 낙하 속도를 가속한 윤종은 소리의 흉상을 따라잡아 그것을 꼭 껴안았다.

 하지만 흉상을 잡았다고 해서 뭘 어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림자는 자신이 따라잡힐 최악의 사태까지 가정하고 이곳을 결전장소로 골랐다. 주변에는 무심코 거친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의지할 만한 발판이 하나도 눈에 잡히지 않았다. 낙하장소에 기다리고 있는 건 밤늦게 통행차량도 적은 4차선 도로뿐. 반대편에 건물 따위는 없고, 뭔가 발을 찰 만한 것도 없으니 뒤쪽의 30층 빌딩으로도 되돌아갈 수가 없었다. 애초에 뭔가 디딜 곳이 있었다 하더라도 단 1초밖에 남지 않은 윤종의 광기로는 다시 옥상까지 오를 수가 없을 것이다. 설령 온 몸을 바쳐 윤종이 쿠션이 되어 조각상을 지킨다 해도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윤종이든 조각상이든 똑같이 산산조각이 날 터.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 누가 봐도 윤종의 행위는 무모한 자살시도에 지나지 않았다.

“후후, 후후후…….”

 그러나, 윤종은 치명적인 지면충돌을 몇 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도 웃었다. 그렇다. 그는 승리했다. 그림자와의 카드 게임에서 승리한 것이다. 그림자는 끝내 윤종이 가지고 있는 카드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윤종은 줄곧 숨겨왔었다. 일부러 맞아도 상관없는 것을 피하면서까지 감춰왔다. 뭔가 세밀한 계획이나, 어떤 번뜩이는 예감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그는 3년 전, 광대와의 싸움에서 광인의 광기는 끝까지 감추어 둠이 유리하다는 걸 경험했을 뿐이다. 이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윤종의 용의주도함이 성과를 거둔 것이다. 윤종의 힘이 무엇인지 잘못 파악한 그림자는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윤종의 광기는 다리가 빨라지는 게 아니다. 단순히 힘이 세어지는 것도 아니다. 신체능력이 비등하게 향상되는 것 또한 아니다. 그 모두가 부수적인 효과라고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윤종의 광기의 본질에는 다다르지 못한다.

 연우가 세상을 뜬 2년 전의 그날. 그는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죽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처절하게 무력했다. 보잘것없는 그는 그녀를 구하고 싶었다. 잔뜩 피를 흘리며,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생명을 상실해가는 연인을 구하고 싶었다. 아니, 구해야만 했다. 그에게는 다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이를 구해야할 의무가 있었다!


- 생사의 경계에서 그가 간절히 열망한 것은 -



 사람의 규격을 뛰어넘은 초인超人.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의 친생자.
 온갖 운명의 장난과 신들의 시련도 가뿐히 이겨내는 영웅.
 어떤 악조건에서도 편의에 맞춘 전개가 뒤따라 행복한 결말을 이끌어내는 주인공…….

“주역보정 완료.”

 지면에 격돌하기 직전, 윤종의 심장은 1초 남은 최후의 광기를 해방했다.







TRACKBACK 0 AND COMMENT 18
  1. Favicon of http://morphinety.egloos.com BlogIcon 아야카 2010.09.09 00:3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여전히 식성은 그대로이신듯 >_<;;;;
    그나저나 왠만하면 커피는 아메리카노로~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09 00:38 신고 address edit/delete

      으, 역시 좀 이상한가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꿀과 우유는 대충
      어디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뭐래;;)

      여름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참 괜찮지요~
      날이 추워지면 좀 더 달착지근 한 게 당기구요>.<

  2. Favicon of http://tsuyodung.tistory.com BlogIcon dung 2010.09.09 10:5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꿀은 좀 신선하네요. 우유는 넣어서 먹는 친구들이 꽤나 있어서... ^^

    • Favicon of http://tsuyodung.tistory.com BlogIcon dung 2010.09.10 23:15 신고 address edit/delete

      하지만 미숫가루도 꿀을 넣어서 먹으면 더 맛있어요. ㅎㅎㅎ 설탕보다. ^^; 아무래도 꿀은 이미지가 비싸니까 더 고급스럽고 몸을 아낀다는 느낌인것 같아요. 그러는 의미에서 저도 다음에는 그렇게 도전해봐야겠어요. 저는 커피는 안마시니까 좋아하는 차이를 설탕대신 꿀로. ^^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10 23:25 신고 address edit/delete

      확실히 우유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밀크티라든지, 라테라든지, 의외로 차 종류와 친한 것 같아요. 저는 좋아서 곧잘 타 먹기는 하는데, 역시 꿀은 별로일려나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10 23:27 신고 address edit/delete

      예, 미숫가루에 꿀은 그야말로 약방의 감초지요! 확실히 꿀은 가격이 문제... 저도 그래서 위의 스패셜(...) 커피는 주로 주말에 1~2번 정도만 마셔요^^;; dung 님이 드시는 차에서도 꿀이 좋은 풍미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3. Favicon of http://pokerface7.tistory.com BlogIcon KEN☆ 2010.09.09 11:3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도 커피를 많게는 5잔 정도 하루에 마셔요.. 물론 믹스커피구요. ㅎㅎㅎ
    음 조리법을 보니, 안단테님이 만드신 커피도 먹고 싶네요...
    물론 맛있겠죠? ㅋㅋㅋ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10 22:45 신고 address edit/delete

      켄 님도 카페인 신자이시군요! (뭐래;;) 위의 커피는... (전) 정말 맛있어요~ 혹시 입안이 심심하다거나 하실 때 한 번 시험 삼아 만들어 보시길 추천해드려요~ 물론 클레임은 받지 않아요~ 아하하(...)

  4. Favicon of http://sogam0.blogi.kr BlogIcon 소감공 2010.09.09 17:2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위의 댓글들을 보니 10cm 의 '아메리카노'라는 익살스런 노래가 생각나네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10 22:47 신고 address edit/delete

      정말 경쾌하고 재미 난 노래네요. 은근히 중독성도 있고요^^
      덕분에 재미있는 곡을 알게 되었네요. 감사드려요>.<

  5. Favicon of http://caprio.tistory.com BlogIcon 카푸리오 2010.09.09 22:0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도 믹스가 젤 맛있어요..ㅋ
    단맛에 익숙해 져서요^^

    비 오는 가을 밤이네요.
    가을엔 좀 더 멋진 일이 생기시길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10 22:49 신고 address edit/delete

      역시 피곤할 때는 달달한 커피가 제맛이죠^^

      덧글은 하루 늦게 달게 되었지만, 오늘 밤도 창밖에 주룩주룩 비가 내리네요. 비오는 날은 몸은 좀 힘들어도 운치가 있어 좋은 것 같아요^^ 카프리오 님도 행복한 일 가득하시는 가을 되시길 바래요~!

  6. Favicon of http://yoons_cha.blog.me BlogIcon 에네아스 2010.09.09 22:3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에스프레소를 마시는게 여러잔 마셔도 몸에는 좋을 듯 싶습니다. 커피믹스가 생각난다면 설탕만 듬뿍 넣으면...:)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10 22:52 신고 address edit/delete

      어른의 맛(?) 에스프레소! 확실히 이런저런 불순물이 많이 들어간 보통 커피보다 몸에 좋을 것 같네요. 하지만 간단히 자판기에서 뽑아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니... 으흑ㅠ_ㅠ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chohyungsa BlogIcon 야간비행사 2010.09.12 08:1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지금까지 읽었던 글 중에서 이번 회가 가장 박진감 있고 재미있었어요ㅎ.
    윤종의 광기. 정말 대단한데요.
    마지막에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도록 사용한 윤종의 광기가 어떤 것였는지 다음 회가 벌써부터 기다려 집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13 13:48 신고 address edit/delete

      이번 화는 실질적인 클라이맥스로 좀 힘을 넣어 봤는데, 재미있게 봐주셨다니 정말 기쁘네요>.< 다음 주에도 즐겁게 읽으실 수 있는 글로 찾아뵙고 싶네요. 그럼 좋은 한 주 시작하시길 바래요~^^

  8. Favicon of http://fghj1.egloos.com/ BlogIcon fghj1 2010.09.12 13:3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안단테님 수제 커피. 마시고 싶어요~! >ㅂ<ㅋ

    근데 제 블로그가 안단테님 LINK 목록에 있다는 것을 이제 발견했어요 +ㅂ+;;; 왠지 영광스런 기분 *@ㅂ@*(그것도 6번째!!!!!!!!! *>ㅂ<* >>ㅑ~~~~~어떻게 어떻게햇!!!!!!)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13 13:51 신고 address edit/delete

      언제 한 번 대접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혹시 무단으로 링크하여 폐가 되지 않으면 어쩌지,
      생각했는데, 괜찮다고 말씀해주시니 안심이 되네요^^






...
낮에 날씨가 비교적 좋은 편이라 혹시나 했는데,
제가 있는 곳도 비가 주륵주륵 내리기 시작하네요.

이번 태풍은 뭔가 엄청 초대형이라 위험할 수도 있다는 모양인데,
부디 피해 입으시는 분들 없이 무사히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모두 비 조심, 차 조심, 태풍 조심하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래요!




■■■





제 1막 조각가의 하늘 - Scene5 / 위상僞像 (4)


 붉게 물든 하늘을 뒤로 하고 길을 서두른 윤종이 소리의 거처에 도착했을 무렵, 시간은 오후 7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메아리와 약속한 밤 9시까지는 아직 한 시간 반이나 남아 있었다. 분명 여유는 충분히 있을 터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이상하게도 윤종은 소리의 은신처에서 100m 이상이나 떨어진 오솔길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어디 가는 거냐.”

 윤종은 낮게 가라앉은 어조로 눈앞의 소녀를 문책했다. 그 옆에 자줏빛 눈동자를 지닌 검은 고양이는 마치 인간처럼 쓴웃음을 지으며 혀를 찼다.

“잠깐 산책 가는 건데요.”

 소리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즉각 대답했다. 허나 그 거짓말을 간파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위로 묶어 올린 머리 위에는 황토색의 뉴스보이 캡, 그리고 검정 후드티에, 짧은 청 데님바지. 소리는 평소 약긴 치렁치렁한 옷차림과 다르게 움직이기 편한 간소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윤종은 불필요한 탐색전을 할 것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내가 오기 전에 떠날 생각이었냐.”

 소리는 솔직하게 긍정했다.

“예, 뭐…….”

 윤종은 화를 자제하며 재차 물었다.

“아니지. 아예 내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거 아냐?”

 소리는 숨김없이 긍정했다.

“예, 뭐…….”

 윤종은 꾹 억누르며 추궁했다.

“날 그렇게 믿지 못한 거냐.”

 소리는 확실하게 부정했다.

“아니요. 아저씨를 믿었어요. 그러니까 틀림없이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죠.”

“무슨… 뜻이지?”

“일부러 괴롭히려고 묻는 거예요? 그렇다면 악취미라고 미리 말해두죠. 어제 다 말했잖아요. 제가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왔는지 말이에요. 단순히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절 원수로 여기고 쫓아오는 그림자 같은 것도 있고, 아저씨도 일전에 저 때문에 자살충동에 휩싸이기도 했죠. 말하자면 전 재앙의 근원이에요.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보통 그런 꺼림칙하고 불길한 여자는 피하지 않던가요? 전 아저씨의 상식을 믿었고, 처음부터 기다리지도 않았어요.”

 소리의 눈빛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소리의 눈동자는 투명하고 고요해 보였지만, 그 내면은 정반대일 거라 윤종은 확신했다. 소리의 안에는 죄책감이나 자괴감 같이 온갖 감정을 얼리는 차가운 눈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바보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것처럼 윤종은 자신과 닮은꼴인 소녀의 심리를 알 수 있었다.
 윤종은 손을 들어 가볍게 소리의 머리를 통 치며 말했다.

“그런 걸 두고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거야.”

“하지만 전…….”

“그래. 넌 불행의 원인일지 몰라. 하지만 네가 불행 그 자체는 아니야. 분명 난 나잇값도 하지 못하는 한심한 녀석이긴 하지만, 그 정도 구분도 못할 만큼 어리지는 않아. 그러니 건방지게 지레짐작하지 마.”

“아저씨…….”

 흔들리지 않던 소리의 눈동자에 살짝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윤종의 언어는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서툰 위로였다. 허나 단 한 번도 타인의 입에서 긍정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에게는 따스하게 느껴졌다.

- 물론 우리가 당신을 끝까지 기다리지 않은 이유는 또 있어. 아니, 오히려 그쪽이 본론이라고 해야 할까. 2차 발광을 마친 그림자는 내가 공을 들인 허언의 미로조차 무너뜨릴 정도로 증폭된 광기를 띠고 있었지. 그렇다면 자정을 기해 2시간만 활동할 수 있다는 원인 모를 제한도 사라졌거나, 완화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해. 우리는 당신이 이번에도 도와주러 올 거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늦장을 부리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빨리 일을 서두르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거야.

 두 사람의 야릇한 시선교환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메아리가 끼어들었다. 고양이의 발언으로 두 사람만의 세계에서 복귀한 윤종과 소리는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꼈지만, 그 감정의 정체를 도무지 짐작하지 못한 채 우직하게도 메아리의 지적에 몰두했다.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군. 내가 봐도 너희들을 노리는 그 그림자는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힘이 불어나는 게 확연했어. 날 믿지 못했다면, 그 녀석과 마주치기 전에 일을 서두르는 게 최선이었겠지. 하지만 이젠 그럴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왔으니 마음 놓으라는 닭살 돋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야. 그림자는 이 근방에 얼씬도 하지 않고 있으니 안심해도 괜찮다는 뜻이야.”

- 당신, 그런 것도 알 수 있는 거야?

“뭐… 어렴풋이 느껴지는 기척으로 대충 거리감이나 방향 정도는 파악할 수 있어. 아무튼 그 그림자는 지금 여기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니 최소한 갑자기 습격 받을 염려는 없겠지.”

- 흠, 더 묻고 싶은 건 많지만, 그건 일단 뒤로 미뤄둘게. 그보다 우선 확인할 게 있어. 우리는 숨기는 거 없이 당신에게 대부분의 사실을 말했어. 솔직히 대충 속여 그냥 이용하는 수도 있었지만, 역시 손을 잡기 위해서는 양자가 공정하게 같은 위치에서 시작하는 게 가장 뒤탈이 없으니까. 정말 우리 사정을 다 알고도 협력해주는 거지?

 숨기는 거 없이 사실을 말했다, 라. 윤종은 메아리가 뭔가 훨씬 중요한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심증이 있었다. 윤종의 심장은 분명 메아리의 말에서 거짓을 감지했다. 허나 확실한 물증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하다못해 상대의 진의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가만히 속아주는 척을 함이 최선일 것이다.

“…그래. 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 되는 거냐.”

- 좋아. 그럼 약속대로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나머지 계획을 알려줄게.

 메아리는 소리의 목청을 빌려 일전에 윤종에게 말하지 않은 정보를 이야기했다. 사람의 원한을 풀어준다는 기묘한 조각가에 대한 소문, 원인불상의 이유로 알게 모르게 죽어나가는 사람들, 실제로 메아리와 소리가 목격한 왕따소년의 복수, 부서진 조각상에서 희미하게 감지된 메아리의 기척, 소문의 조각가가 메아리의 파편을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 앞으로 그 조각가의 거처에 찾아가 담판을 지을 거라는 계획 등등 메아리는 일목요연하게 사태의 요점만 뽑아 윤종에게 전달했다.
 윤종은 입가에 손을 댄 채 유입된 정보를 정리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본을 뜬 사람의 조각을 부수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똑같이 해를 가할 수 있다니, 어처구니없는 광기군. 무언가를 모사模寫하고 싶다는 갈망이 조각하는 행위를 매개로 광태로서 드러나는 걸까.”

- 직접 보지 않고서야 확신할 수 없지만,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해. 하늘이 무너진다는 예언도 어쩌면 그 조각가의 의뢰인들에게 살해당한 피해자 유족들의 비탄을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르지.

“그리고 지금까지 예언의 위험은 주로 우리들을 비롯해 상대를 쫓는 사람에게 관계된 적이 많았어요. 이대로 놔두었다가는 아저씨나 제 지인 중 누군가가 그 조각가에게 희생당할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소리는 윤종이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최악의 예측을 입에 담았다. 확실히 사람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원한을 살지 모르는 일이다. 각자 가치관이나 자라온 생활환경 등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은 별 생각 없이 한 말도, 남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 혹은 잘 나간다는 이유만으로 질투와 시샘을 산다거나, 생활습관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세상에는 노인들은 무조건 죽어야 된다고 외치는 극단적인 젊은이들도 있으며, 성별, 인종, 국가 등이 다르다고 배척하는 차별주의자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심하게 공격하는 포비아들도 존재한다. 물론 평상시에 이들은 법의 테두리에 갇혀 함부로 내부의 폭력을 외부로 배출하지는 못한다. 허나 광인 조각가의 흉상처럼 초상적인 수단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그들이 잠자코만 있을까.

“읏…….”

 윤종의 머릿속에 몇몇 친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수, 주형, 나래, 이준 선배…… 하나 같이 자기주장과 개성이 짙은 사람들이다. 특히 지수는 행동이 대범하고 자기 생각을 숨길 줄 모르며, 주형은 자기현시욕이 강해 주변에 아군보다는 적이 많았다. 그 적의를 품은 사람들 중 하나가 우연히 그 소문의 조각가를 알게 되어 지수를, 혹은 주형을, 혹은 나래를, 혹은 이준 선배를 죽이지 말하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만약 이 최악의 가정이 현실로 화했을 때 과연 자신의 심정은 어떠할까. 연우가 죽은 뒤 무기력해진 몸을 이끌고 그나마 어떻게든 생활할 수 있었던 건 그 사람들 덕분이었다. 만약 그들에게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면, 도리어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이 포근하게 들릴 지경이리라. 물론 애매모호하고 정확하지도 않은 예언에 겁낼 것 없다고 코웃음 칠 수도 있겠지만, 소리와 메아리가 윤종에 대해 생판 모르면서도 그를 찾아낸 사실을 고려하면 함부로 예언의 실현가능성을 제로라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조금이라도 지인들이 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면, 그렇다면 그에게 있어 이번 일은 더 이상 타인의 사정이 아니었다. 자신이 해결해야 될 당면한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윤종은 일을 서두르기보다는 메아리를 향해 아직 석연치 않은 부분을 캐물었다.

“일전에 너 혼자 갔을 때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그렇다면 조각가의 은신처에 들어서기 위해선 어떤 특정조건이 필요하다는 말이 되는데… 그쪽으로는 무슨 대책이 있는 건가?”

 메아리는 고개를 저었다.

- 솔직히 특별한 비책은 없어. 원래는 시간을 두고 조각가의 의뢰인들을 하나하나 탐색해 방법을 알아낼 생각이었지만, 그 망할 그림자 때문에 그동안 별로 여유가 없었거든.

“뭐야, 설마 답사만 하고 그냥 돌아오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 그럴 리가 있겠어? 그 때는 나 혼자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소리가 같이 있다면 광기를 시험해볼 수 있지. 세상에 완벽한 건 없으니 확답은 할 수 없지만, 아마 이것저것 시험해보면 “Open Sesame!”같은 주문 하나는 발견할 수 있을 거야.

 메아리의 자신만만한 말은 근거 없는 허세만은 아니었다. 조각가라 불리는 광인이 어떤 방식으로 문을 숨겨두었는지는 몰라도, 그 수법이 교묘하면 교묘할수록 메아리는 잘 다뤄낼 것이다. 논리개념을 비틀어 세상의 법칙을 일시적으로 왜곡하는 메아리의 광기는 비슷한 방식으로 힘을 발하는 다른 광기에 대해 만능열쇠와도 같았다.

“그럼 이제 출발해요. 여기서 지체했다가 자칫 예언이 실현되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요. 참고로 조각가를 어떻게 상대해야 되는지는 걱정하지 마세요. 메아리의 파편을 차용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메아리의 적수가 될 수 없거든요. 만나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돼요. 그러니… 그 때까지 어떻게든 저희를 지켜주세요.”

 소리의 부탁에 윤종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루해 보이는 역 이름과는 정반대로 운학역 주변은 시의 경제·금융의 중심지로서 발전된 거리였다. 이 주변에는 기업이나 은행들의 본사들이 상주하고 있는 고층 빌딩이 즐비했으며, 도로는 깨끗하고 넓었다. 소리가 사는 도시 외곽의 시골 같은 풍경과는 50년 이상은 문명의 격차가 벌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운학역 3번 출구의 막다른 골목이라는 곳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골목길과는 다르게 빌딩 뒤편의 공터가 옆 건물의 차폐물에 막혀 길처럼 보이는 것에 불과했다. 일전 윤종이 쓰러진 소리를 목격한 상가의 건물의 골목과 비슷한 구조였으나, 그보다 훨씬 깔끔하고 단순한 풍경이었다.

 목적한 장소는 운학역에서 멀지 않았다. 1분도 걷지 않고 도착할 수 있는 그 장소 앞에는, 그러나 거대한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붉게 벌어진 입으로 웃으며 한 손에는 전기톱을 들고 있었다.

“끈질긴 녀석이군.”

 윤종은 낮게 혀를 찼다. 그는 이미 지하철에서부터 기척을 느끼고 그림자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허나 대비하고 있었다곤 해도 막상 눈앞에 두자 짜증이 솟구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소리가 자신들의 지인 중 누군가가 조각상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을 지적한 뒤부터 쭉 초조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이번 일을 해결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무심하게 굴다가 갑자기 열을 내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그는 쓸데없는 일로 자존심을 세우는 것보다는 자기감정에 충실함을 좋아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사소한 일로 방해 받는 건 누구나 질색이리라.

“무슨 미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바쁘니까 잠깐 꺼져 있어라. 제3자는 빠지라고.”

- 날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

 윤종의 눈길에서 모멸감을 느낀 그림자가 크게 외쳤다. 예상대로 그림자의 힘은 이전보다 훨씬 성장해 있었다. 이미 시간의 제한에서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뇌리에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도 확실하게 귀로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명료하게 들렸고, 모습조차 단순한 음영이 아니라 흐릿하게나마 실체를 분간할 수준이 되었다. 그림자가 뿜어내는 광기에서도 살갗을 에는 듯한 무시무시한 살기殺氣가 전해져왔다. 지금 그들이 있는 운학역 3번 출구에는 그들 외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는데, 보통 사람들은 그림자의 살의에 무의식적인 공포감을 느껴 이 근처로 다가올 엄두조차 내지 못한 탓이었다.
 한 번 말문이 트인 그림자는 그동안 속에 쌓인 울분을 토해냈다.

- 날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 날 그딴 식으로 보지 마! 날 그딴 식으로 생각하지 마! 난 저 뻔뻔한 악마에게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피해자이자 정당한 복수자야. 당신이 날 그딴 식으로 무시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어. 오히려 나중에 끼어든 당신이야말로 훼방꾼이야. 왜 이렇게 끈질기게 날 방해하는 거지? 이건 저 망할 여자와 내 문제야. 관계없는 사람은 꺼져버려!

 윤종은 그림자를 노려보며 열기를 억제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애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는데 그리 열을 내고 앉아있냐.”

- 몰라서 물어? 저 애의 광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졌어! 연인들은 갈라서고, 친구들은 원수가 됐지. 그 중에는 심하게 싸우다 큰 상처를 입거나, 아예 죽어버린 사람도 있어. 바로… 나처럼!

“그게 전부 이 녀석 탓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나 보군…….”

- 그럼 누구 탓이라는 거지? 저 애의 광기만 없었어도… 아니, 저 애만 없었어도 다들 행복하게 살았을 거야. 나도… 나도, 나도… 나도 죽지 않고,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행복하게…….

 그림자의 흐느낌은 소름끼치게 꺼림칙하면서도 애절했다. 사령死靈의 숨결은 생자生者의 온기를 빼앗아 그 몸을 차갑게 만든다. 그렇다면 죽은 이의 눈물은 산 이의 무엇을 빼앗는 걸까. 아마 당사자인 소리에게 있어 그림자의 비탄은 견디기 힘든 흉탄일 터. 윤종은 소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그림자의 머리를 부수어놓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윤종이 뭔가 행동을 취하기 전에 소리가 앞으로 나섰다.

“혹시 너… 미나… 맞아?”

“한… 소리…….”

 자기 이름을 불린 그림자는 아주 잠깐 동안 분노도 잊은 채 소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림자의 광기가 증폭돼 목소리를 찾고, 조금이나마 음영이 옅어진 덕분에 소리는 그녀를 알아볼 수가 있었다. 비록 증오하는 상대라 하더라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그림자는 작은 기쁨을 느꼈다. 절대 그림자가 소리를 마음 한 구석에서 좋아했다거나 인정해주기를 바랐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만큼 2년 동안 그림자가 죽음의 경계에서 실감한 고독은 크고 무서웠다.

“역시 맞나 보네. 전부터 긴가민가하긴 했어. 2년 전의 그 사건에서 날 가장 원망할 사람은 아마 너일 테니까. 하지만 아직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리는 없으니까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 광기만이 자립해 배회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 한소리… 너만 없었어도……!

 그림자의 목소리는 금세 거칠어졌다. 2년 동안 맛본 무無의 장막조차 그녀의 분노를 완전히 덮을 수는 없었다. 그림자의 살의가 내뿜는 독기는 상대방을 질식시킬 만큼 짙었지만, 소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이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말대로야. 우리 학교가 그 난장판이 된 것도, 네가 죽은 것도 분명 내 탓이야. 나만 아니었어도 그런 참사가 벌어지지는 않았겠지.”

 소리는 순순히 죄를 인정했다.
 허나 그림자는 그 당당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잘 알고 있네! 그럼 왜 살아있는 거야? 남을 죽여 놓고도, 남을 불행하게 만들고도, 자기 혼자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런 건 내가 절대 인정 못해! 반드시 망쳐놓을 거야!

“나도 딱히 내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이라거나, 어찌어찌 산다고 해도 축복 받은 인생을 걸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 나도 내 나름의 염치는 있어. 하지만 한 가지만 분명히 해둘게. 난 절대 사과만큼은 하지 않겠어.”

- 뭐… 라고……?

“넌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분명 그 사단이 난 건 내 탓이야. 하지만 내 탓만은 아니야. 너도 한 번 경험했으면 어렴풋이 느꼈을 텐데? 내 광기에 닿은 사람은 가식이나 거짓의 실타래가 풀려 본심을 드러내고 말아. 너희들이 불행해진 건 각자 스스로의 마음속에 더러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분명 난 방아쇠를 당길 계기를 마련해주긴 했지만, 그 방아쇠를 당긴 건 너희들 자신이라고!

- 지금 무슨 소릴…….

“2년이나 흘렀지만, 난 아직 하나도 잊지 않고 있어. 그래, 가령 넌 우리 반의 노아라라는 소심한 애를 돌봐주며 주위에서 박수를 받고 있었지? 힘없는 약자에게 손을 내미는 네 행동은 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였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근원에 자리 잡은 동인은 정확히 뭘까? 자기만족, 기만, 조소, 멸시… 네 선행은 상대를 자신보다 못한, 돌봐주어야 할 열등생물로 인식한 시점에서 이미 바닥을 드러낸 거야. 설령 그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넌 언젠가 마각馬脚을 드러내고 말았겠지.”

 소리는 한없이 싸늘한 눈으로 그림자를 꿰뚫어 보았다. 그렇다. 처음부터 소리는 이것만큼은 분명히 하고 있었다. 자신은 불행의 요인이었을 뿐이지, 결코 불행을 일으키지는 않았다고. 절망에 빠진 연말, 우연히 공원에서 만난 그 노인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만약 그들이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였다면, 소리의 광기에 본성이 노출되었다고 해도 서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소리는 시간을 되돌리는 것도, 자기 힘을 없애는 것도 아닌, 그저 죽은 이를 되살리기를 원했다. 그건 불행의 씨앗이 된 책임은 분명히 지겠지만, 그 이상은 자기 탓이 아니라는 의지표명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소리의 주장은 사회 일반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것이며, 그에 대해 본인 또한 얼마간 자각은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를 정면으로 인정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소리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떳떳함을 내세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까 집 앞에서 자신의 당당함을 긍정해준 윤종의 말에 소리는 용기를 얻었다.

- 그런, 말도 안 되는 궤변을…….

 그림자는 영혼 깊숙한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분명 소리가 하는 말은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다. 자신은 순수한 마음만으로 아라에게 손을 내민 것이 아니다. 과거의 미나는 약자를 돕는 성녀 같은 이상적인 자신이라는 환상을 위해 비참한 아라를 도왔다. 과거의 미나는 속으로 아라를 깔보고 있었고, 무시하고 있었고, 하찮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었고,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허나 그것만이 아닌 것이다. 과거의 미나는 스스로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조금이라도 가슴속의 먼지를 털어내려고 분투했다. 약자를 도우려는 마음, 친구를 위하려는 마음,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마음… 그 결과가 완벽하지 못했다고 해서 거기에 도달하려 한 의지와 노력과 시도마저 매도당해야 하는가? 그걸 매도할 권리가 저 눈앞의 뻔뻔한 여자에게 있단 말인가? 아니, 절대 그렇지 않다. 그래서는 안 된다. 저 여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그러니까 뻔뻔한 거다.
 그림자는 붉은 입술을 간신히 떼었다.

- 그래… 네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다면 나도 더 이상은 할 말이 없어. 말해봤자 소용없을 테니까. 처음부터 대화할 생각도 없었지만, 설마 이 정도로 구원의 여지가 없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좋아. 그렇다면 너 자신에게 책임을 물어주지. 네가 저지른 죗값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 건지 실감해봐!

 절규에 가까운 외침과 함께 그림자는 품속에서 어떤 형체를 끄집어내었다. 그 모양새는 일전에 소리를 찔렀던 식칼도, 소리를 내리쳤던 망치도, 소리를 찢어발겼던 전기톱도 아니었다. 옅어진 음영을 통해 어렴풋이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그것은, 소리를 꼭 닮은 흉상이었다.








TRACKBACK 0 AND COMMENT 16
  1. Favicon of http://pokerface7.tistory.com BlogIcon KEN☆ 2010.09.02 15:0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태풍으로 정전이 몇시간동안이나 계속됐어요.
    으으.. 이런...
    안단테님은 괜찮으셨나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02 22:10 신고 address edit/delete

      예, 저희 집도 정전되고, 집 앞에 공원에는 무려 나무도 뽑히고 정말 장난 아니었어요;;; 그래도 다행히 직접적으로 피해 입은 건 없었네요. 켄 님도 괜찮으신 거죠?

  2. Favicon of http://tsuyodung.tistory.com BlogIcon dung 2010.09.04 00:5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정전된 동네가 많았군요. 저는 태풍이 온지도 모르고... 실신한 수준으로 자서;; 다음날 일어나서 외출하기 전까지 모르고 있었어요. 차타고가는데 가로수가 누워있는걸 보고 그때야 알았습니다.^^;;

    또 태풍이 온다던데... 여러가지로 걱정이네요. 주말 잘보내시구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04 08:33 신고 address edit/delete

      신문기사로는 150만 가구 정도가 정전되었다는 모양이더군요. 별 일 없이 숙면하셨다니 다행이에요. 역시 아무 일 없는 게 제일인 듯^^ 말씀하신 것처럼 큰 태풍이 지나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번 주말에 또 온다고 하니 저도 좀 걱정이 되네요. dung 님도 별 탈 없이 좋은 주말 보내시길 바래요!

  3. Favicon of http://caprio.tistory.com BlogIcon 카푸리오 2010.09.04 23:5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곤파스의 영향에 아직 거리마다 쓰러진 나무가 처리도 안됐는데,
    내일 또 태풍이 올라온다고 하네요.
    저흰 정전까지는 안 됐지만, 고생들 많이 하셨군요..
    이번 태풍은 피해없이 잘 지나가야 하는데...
    아무쪼록 편안한 주말 밤 되시길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05 01:02 신고 address edit/delete

      카프리오 님도 별 탈이 없으셨다니 안심이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내일... 날짜상으로는 오늘 '말로'라는 태풍이 또 올라온다고 하는데, 정말 악재는 연속으로 겹쳐 오는 듯;; 부디 아무 일 없이 넘어갔으면 좋겠네요! 그럼 카프리오 님도 행복한 주말 되시길 바래요~^^

  4. Favicon of http://sogam0.blogi.kr BlogIcon 소감공 2010.09.05 00:4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들판에 벼들이 쓰러지지 않았을지 걱정입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05 01:04 신고 address edit/delete

      정말요··· 추석을 앞둔 이 수확의 계절에 무슨 날벼락인지ㅠ_ㅠ 벌써 채소값도 꽤 올랐다고 하는데, 특히 농업에 종사하시는 분들께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5. Favicon of http://chohyungsa.blog.me/ BlogIcon 야간비행사 2010.09.05 08:0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그림자가 전기톰을 꺼낼 줄 알았는데 뜻밖에 소리의 흉상을 준비했네요.
    우와.. 다음주가 벌써부터 기대되는데요ㅎ.
    안단테님 너무 재미있게 읽다가 갑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05 08:32 신고 address edit/delete

      더 이상 공격이 통하지 않으니 그림자도 최후의 수단을 준비했어요. 좋은 감상이 되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다음 주에도 재미있게 보실 수 있도록 힘내겠습니다^^

  6. Favicon of http://sys610.tistory.com BlogIcon 꽁보리밥 2010.09.07 19:0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다음이 기대되는 장면이군요.
    앞의 장면을 놓쳤지만 대화속에서 대강의 줄거리가
    짐작되어 다행이었던것 같아요..ㅎㅎ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08 22:20 신고 address edit/delete

      감상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정리해서 쓰면 4화 정도에 이번 에피소드의 완결을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괜찮으시다면 나중 한가하실 때 또 봐주세요^^

  7. Favicon of http://fghj1.egloos.com/ BlogIcon fghj1 2010.09.12 14:1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9월 5일에 벌초를 다녀왔어요. =ㅂ=;

    이쯤 가면 차도 안막히고 얼른 끝내고 돌아올 수 있겠구나 싶었죠. 근데 왠말~, 보통이면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7시간이나 걸러버렸죠. 오전부터 일이 꼬이더니 계속 일이 꼬입니다.

    오전에 도착해서 벌초를 시작하는데 기계가 고장나 낫으로 했어요. 오전내내 땡볕에 바람도 잘 불지 않아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풀이 많은 곳이라 나이키 모기(?)와 풀 독이 오르지 않게 긴 바지 긴 팔 옷을 입고 있었거든요.

    죽을똥 살똥 오전 작업 끝냈으나 전체 작업에 1/6 수준(작업해야 할 묘가 6개 lllOrz). 안되겠다 싶어 오후에는 새 기계 구입. 순식간에 5개가 끝나더군요. ㄱ-;;; 오전 기절할 듯한 고생은 뭐였나 싶었습니다.

    오후 5시쯤 되니 오전에 그 땡볕은 어디로 가고 저 멀리서 먹구름이 반지의 제왕이나 미이라2에 나오는 전투 장면처럼 무서운 기세로 몰려오더군요. 번개 소리도 엄청났어요 ㄷㄷㄷㄷ;;; 서둘러 철수하긴 했는데 비와 천둥 번개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 날, 번개를 맞아 감전된 사고 소식이 평소보다 많았다고 하더군요. 어쩌면 저도 벼락을 맞았을지도 =ㅂ=;;ㅋ(평소 잘못을 많이 한 탓이...llllOrz ㄷㄷㄷㄷㄷㄷ)

    안단테님 걱정 덕에 무사했던 것 같아요 ㅋㅋ^^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13 13:58 신고 address edit/delete

      정말 좋지 않은 날씨에 고생이 많으셨네요. 그래도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돌아오실 수 있어 참 다행이에요. 아마 fghj1 님께서 평소 공덕을 많이 쌓으신 덕분이겠지만, 혹시라도 제 미약한 기원 역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다면 기쁘네요^^

  8. Daily Feast 2010.10.13 21:4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과연 미나와 윤종, 소리와의 싸움이 어떻게 전개 될지 궁금하네요
    전투씬은 언제 어느 글에나 제게 많은 어려엄울 요하거든요.
    안단테 님은 어떻게 풀어 나갈지 궁금 ㅋ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10.13 22:23 신고 address edit/delete

      에공, 다른 점도 많이 부족하지만, 특히 전투씬은 더욱 아는 바가 적어 기대가 미치지 못할 것 같아 부끄럽기만 하네요ㅠ_ㅠ








한번쯤 지폐다발을 공중에 뿌려보고 싶은 소박한 소망


...
요새는 카드랑 옥션 등을 많이 이용하면서,
좀 시대에 뒤쳐진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전 돈을 인출할 때, 나중에 귀찮게 여러번 뽑게 되더라도
당장 필요한 만큼만 뽑아 쓰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해서, 역시 지갑에 돈이 있으면 쓰게 되니까-_-

어릴 적, 어머니께서 만원짜리는 될 수 있으면 깨지 말라고 하셨는데,
직접 생활비를 관리하다 보니 뼈져리게 와 닿네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현금은 최대한 적게 소지하는 편인데,
가끔씩 누가 착불로 택배를 보낸다거나 할 때 난감했던 기억이...OTL




■■■




제 1막 조각가의 하늘 - Scene5 / 위상僞像 (3)


 죽은 자에 대한 모든 사회적인 책무를 다한 조각가는 이제야 진정한 의미로 아내의 죽음을 슬퍼할 수 있었다. 그는 방에 틀어박혀 어둠 속을 파고들었다. 허나 검은 공기는 조금도 그를 치유해주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우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더 이상 여기서 허우적거리다가는 다시는 바깥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거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도 조각가는 그 우물 속에서 나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세상은 색채가 없이 흑백의 잔영만이 존재했다. 그는 이 무미건조한 사후세계를 견딜 수 없었다.

 이대로 침잠하고 침잠하여 다시는 부상하지 말자.
 그가 세상으로 통하는 두레박의 끈을 자르기 직전,

- …! …! …! ……!

 아기의 울음소리. 혼자서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생명의 호소가 들려왔다. 깊숙한 우물의 밑바닥까지 뒤흔드는 그 울음소리의 주인은 조각가의 딸이었다. 어린 딸이 울고 있다는 인식을 한 순간, 조각가의 의식은 단번에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세상에는 빛깔이 돌아왔고, 조각가는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 뒤로부터 조각가의 인생은 오로지 딸의 양육에만 바쳐졌다. 그는 예전처럼 다시 임시직을 전전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동생들을 위해 젊음을 희생했던 시기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그 때와는 달리 조각가의 가슴은 충실감으로 가득 찼다. 동생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었지만, 의무감에 형제부모를 건사하는 일보다 자기 딸을 위해 일하는 쪽에 그는 훨씬 만족스러운 즐거움을 느꼈다.

 딸아이는 돌봐줄 사람이 없어 일하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남의 손에 맡겼다. 다행히 도심지는 탁아시설이 많고 잘 되어 있어 돈만 있다면 아이를 맡길 곳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한 때 명성이 높았고, 돈도 많았던 아내 덕분에 좋은 지역에 집을 구해 살고 있었던 것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조각가는 죽은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며, 지금의 생활과 딸의 장래를 지키기 위해 진력을 다했다.

 조각가의 딸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조각가는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딸을 데려다주고 맞이하러 다녔다. 집안의 모든 이기적 유전자가 형제들에게 가버린 탓일까, 아니면 제 엄마를 닮은 덕분일까. 딸아이는 애정을 쏟을 기회가 얼마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구김살 없는 밝은 성격으로 자라났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조각가의 앞에서는 편부가정에 절망하지 않고, 나이가 많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착한 딸이었다.

 딸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조각가의 집에도 제법 여유가 생겼다. 그가 그동안 개처럼 일해 벌어둔 저금은 꽤 되었으며, 딸도 집안일 등을 혼자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가정적인 면에서도 점차 안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조각가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조각가의 딸은 성실했으며 공부를 잘했다. 조각가는 딸아이가 나중에 비싼 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대학을 가거나,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전혀 곤란한 기색 없이 지원해줄 수 있도록 더욱 악착 같이 돈을 벌었다.
 …사실 본심을 말하자면, 조각가는 이만 쉬고 싶기도 했다. 나이도 나이였지만, 나이가 많기 때문에 받는 사회의 백안시도 견디기 힘들었다.

- 실패는 젊은이의 특권이다. 젊을 때 있는 대로 실패하면서 온갖 것을 배워둬라. 늙으면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 조각가의 은사가 한 말이었다. 조각가는 새삼스럽게 그분의 말이 한 치도 틀리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세상의 평가란 잔혹했다. 그 사람의 인성이 어떻건 능력이 어떻건 ‘이 나이가 되어서도’ 변변찮은 직장에서 몸을 굴려야 하는 중년사내를 사회는 절대 너그러운 눈으로 봐주지 않았다. 대놓고 말하는 경우는 적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에는 얼마나 못나게 살았으면 아직도 이렇게 고생하고 있느냐는 무언의 매도를 품고 있었다.

 이상하다고? 알지도 못하면서 오해를 한다고? 과연 그럴까. 가령 10대의 어린 연인들이 낡은 자전거를 함께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어떠한가. 반면에 백발의 노부부가 초라한 옷차림에 털털거리는 오토바이로 ‘나들이’를 가는 모습에서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분명 결과론은 모든 걸 말해주지 않지만, 일말의 진실은 전달해준다. 어떤 이유가 있건 간에 조각가는 사회·경제적으로 실패한 인생을 살았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딸을 향한 조각가의 헌신과 기대는, 어쩌면 그리 순수하지 않은 심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몰랐다. 예를 들자면, 대리만족이나 보상행위 같은 종류. 허나 조각가의 의도가 어찌 되었건 그의 딸은 아비의 애정을 순수하게 받아들여 거짓 없이 기뻐하였다. 심신 모두 한계에 다다른 조가가가 쓰러지지 않고 몇 년이나 버틸 수 있었던 건 어미와 아비의 장점만을 이어받은 딸애 덕분이었다.

 그러나 조각가가 과로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먼저 이승과 작별을 한 것은 목숨보다도 소중한 딸아이였다. 뺑소니 사고였다. 고등학교에 올라간 딸애가 늦은 시간, 독서실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던 중 건널목에서 트럭에 치였다. 딸애의 작은 몸은 쇳덩어리에 무자비하게 뭉개졌고, 트럭 운전사는 황급히 도망을 쳤지만, 주변 CCTV에 고스란히 찍힌 덕분에 얼마 있지 않아 검거되었다.

 딸을 잃은 조각가의 슬픔과 분노는 땅을 꺼트리고, 하늘을 찌를 만큼 깊고 높았다. 아버지는 이미 오래 전에, 어머니도 몇 년 전에 돌아가셨으며, 동생들과는 일찌감치 인연을 끊은 조각가에게 딸을 잃은 지금, 남은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젊어서는 형제자매를 위해서, 늙어서는 딸애를 위해서 노동에 전념한 조각가에게는 변변찮은 친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고, 그저 남을 위해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천애고독했다. 인생의 희망이 모조리 사라진 그는 이제 더 이상 가릴 게 없었다.

 용의자가 잡혔다는 연락에 조각가는 품에 몰래 흉기를 숨기고 집을 나섰다. 과연 어떻게 해야 어디까지 접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회만 되면 누가 아무리 제지한다고 해도 무조건 가까이 다가가 급소를 찌를 생각이었다. 딸애의 원수를 여기서 갚는다. 조각가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찰도 바보가 아닌지라 피해자의 부모를 함부로 피의자와 만나게 해주지 않았다. 결국 조각가가 가해자와 마주한 건 피의자가 피고인이 되는 법정에서였다. 좋다. 법정이라고 무얼 가릴 게 있으랴. 손으로 목을 졸라서라도 죽이고 말리라. 시간이 흘러도 조각가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딸애를 친 운전사의 모습을 본 순간, 조각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가해자는, 피고인은, 딸애를 친 악마 같은 뺑소니범은, 조각가의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었다. 초췌한 얼굴, 벗겨진 머리, 험하게 굴려 이곳저곳에서 기형을 보이는 구부정한 몸매의 중년 사내. 얼굴은 전혀 달랐지만, 분위기만큼은 영락없이 말기 암으로 돌아가시기 직전의 아버지와 닮아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피고인의 가정환경 또한 조각가에게는 익숙한 이야기였다. 피고인은 그다지 유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험한 젊은 시절을 거치고, 조각가와 마찬가지로 변변치 않은 직업을 전전했다고 한다. 피고인에게는 아내와 자식이 둘 있었으며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에 발을 붙이기 위해 몸을 혹사시켰다. 그날도 3시간도 채 자지 못한 채 화물을 운송하다가 깜박 졸아 사고를 내고 만 것이다. 변명이라면 변명이겠지만, 사람을 치고도 도망친다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저지른 것도 죄를 받는 게 두렵기 이전에 자신이 잡히면 누가 가족을 먹여 살리느냐는 공포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그런 개인적인 사정은 피고인을 변호하는 데 별다른 도움은 되지 못했으며, 검사는 기세등등하게 죄인을 성토하고 구형을 요청했다. 사태는 명확하고 죄는 확실했기에 판결은 세상의 정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피고인과 그의 가족들의 얼굴은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재판이 끝난 후 법원 밖으로 나와 바라본 하늘은 너무나도 높고 맑았다. 푸르고 쾌청한 하늘을 바라보던 조각가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며 도망치듯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딸을 친 저주 받을 죄인의 불쌍한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고, 그의 귓가에서는 죄인의 가족들이 터뜨리는 비탄의 울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조각가는 입술에서 피가 날 정도로 세게 이를 악물었다. 대체 딸이, 내 딸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그 착한 아이가 부조리하게 세상을 뜬 것만 해도 억울한데, 그 아이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고통과 불행까지 가져와야 한단 말인가. 조각가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뭐가 옳고 뭐가 그릇된 건지, 그는 이제 판단이 불가능했다. 그저 가슴 속에 있는 이 울분만이라도 어떻게 하고 싶었다.

 조각가는 정신없이 돌을 쪼았다. 지금 자기가 쪼고 있는 돌이 어디서 난 건지, 연장은 언제 사두었는지, 그런 의문은 일체 들지 않았다. 그는 무아지경의 경지로 돌을 쪼고 또 쪼았다. 그의 거친 손길이 닿을 때마다 돌은 조금씩 그 안에 있는 형태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마치 찰흙을 빗듯이 물리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을 속도로 빠르게 돌을 쫀 조각가의 앞에 나타난 작품은 양복을 가지런히 차려입은 어떤 장년 사내의 흉상이었다.

 흉상의 주인공은 피고인의 변호사였다. 국선변호사인 그는 실력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피고인의 죄를 감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변호사는 경찰증거의 허술함을 무리하게 지적하기도 했고, 심야에 주의를 태만히 한 조각가의 딸에게 과실이 있음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물론 그가 한 대부분의 변호는 명확한 증거와 확실한 인과관계 앞에서는 그저 트집을 잡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조각가는 피고인의 변호사를 죽이고 싶었다. 이성적으로는 그 변호사가 딱히 자신의 딸에게 악의가 있다거나, 불의를 못 본척하려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는 그저 변호사로서 자신이 해야 될 일을 했을 뿐이다. 허나 감정적으로는 억울하게 죽은 딸애를 공격하여 의무를 다하려 하는 변호사의 차갑게 계산된 언행을 그냥 곱게 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흉상은 피고인이 아니라 그 변호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 대신 조각상을 치고 끝낸다는, 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 화풀이에서도 조각가는 트럭운전사를 미워할 수는 없었다. 비록 법원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조각가는 피고인이 불행한 사고를 일으킬 만큼 가혹한 처지에 있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어쩌랴. 이미 딸애는 죽었고, 죄인은 심판 받았다. 조각가는 이 끔찍한 절망이 자기 손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음을 절감했다. 이제 남은 건 추하기 짝이 없고 무의미하기까지 한 화풀이 뿐. 비슷한 처지의 운전사를 책할 수 없었던 조각가는 딸의 원수조차 갚지 못하는 못난 아비라고 자책하며, 망치를 들어 재판 내내 밉상이었던 변호사의 흉상 머리 부분을 부쉈다.

“이럴… 수가…….”

 격정에 못 이겨 변호사의 흉상을 부순 조각가는 신음소리를 삼켰다. 조각상의 깨진 머리 부분에서는 콸콸 피가 흘러나왔다. 나중에 조각가는 피고인의 변호사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머리가 깨져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미 그 소식을 듣기 전에 조각가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군. 그랬어! 그랬단 말이지……!”

 망연자실해 있던 조각가가 갑자기 무언가 깨달은 듯이 크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의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그의 박수소리가 거세질수록 온 집안에 진동이 심하게 울렸다. 마치 진도7을 넘는 대지진이 엄습한 듯한 흔들림이었지만 조각가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그저 웃고 박수치기만 했다. 이윽고 진동이 최고조에 다다르자 충격을 견디지 못한 조각가의 집안이 거울이 깨지듯이 붕괴하였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조각가는 멀쩡했다. 무슨 이치인지 무너진 집안의 잔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조각가는 어느새 밤하늘이 펼쳐진 지하 작업실에 서 있었다. 1차 발광發狂에 이은 2차 발광. 이미 광인으로서 광기를 발산한 조각가는 육체를 버리고 공간의 틈새를 개인 소유화했다. 모든 광인이 그처럼 되지는 않는다. 단숨에 광기가 육체를 먹어치우고 주변 공간을 사유화할 정도로 그의 잠재력은 높았다.

 대부분의 광인은 스스로의 광기가 무엇인지 발광하자마자 자연스럽게 파악해버리며, 그건 조각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이 지닌 힘의 의미를 눈치 챈 조각가는 천장에 펼쳐진 인공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법원 밖에서 본 푸른 하늘에 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검은 하늘이었다. 심연의 밤하늘에는 오로지 별 하나만이 빛을 내고 있었다.

“나는 이제 너에게 묻겠다! 우리를 이 땅에 버려두고 조소하는 너에게 책임을 묻고 말리라!”

 조각가는 가짜 하늘에 손가락질을 하며 선전포고를 하듯이 외쳤다. 그의 광기는 충분히 세상을 문책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숭고한 반역을 조각가 혼자 수행할 수는 없었다. 조력해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조각가는 뜻을 같이 할 의뢰인들을 모집했다. 그들이 인주人柱를 구해오리라. 사람들의 희생은 절대 헛되이 끝나지 않고 반드시 결실을 맺을 것이다. 조각가는 세상을 뒤집기 위한 먼 여정에 몸을 맡겼다.
 이렇게 조각가의 마지막 몰락이 시작되었다.








TRACKBACK 0 AND COMMENT 12
  1. Favicon of http://tsuyodung.tistory.com BlogIcon dung 2010.08.26 21:4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도 좀 비슷한 이유로 현금을 필요한만큼 들고다니는데요. 그러다보니 은행에 자주 가야하는데... 그게 디게 귀찮은거에요. 그래서 가끔 생각하죠. 집에 CD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8.26 23:20 신고 address edit/delete

      정말 귀차니즘이 인생 최대의 적인 것 같아요-_-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도 분명 귀차니즘을 이겨내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널리 알리기 위해 생긴 속담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해요! (뭐래;;;)

  2. Favicon of http://pokerface7.tistory.com BlogIcon KEN☆ 2010.08.27 20:1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전 현금을 뽑아 놓고도 정작 쓸때는 카드를 쓰게 되요.
    버릇이 그렇게 되버렸나봐요. ㅎㅎㅎ
    이번 주는 게으르즘과 귀차니즘의 연속으로 아주 무료한 일상을 보낸 가운데.. 너무 늦게 왔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8.29 08:27 신고 address edit/delete

      카드가 확실히 편하고, (쓸 당시에는) 부담이 없어 손이 많이 가게 되지요~ 후환이 조금 두려울 때가 있긴 하지만요^^;; 저도 이번 주는 비가 와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나른하게 보낸 것 같네요. 켄 님도 주말 잘 보내시고, 다음 주는 더 즐겁게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래요!

  3. Favicon of http://fghj1.egloos.com/ BlogIcon fghj1 2010.08.28 20:2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도 안단테님과 같은 습관을 가지고 있어요. +ㅂ+ 인출하면 지갑 사정을 생각해 2~3만원. 하지만, 저는 곤란한 일을 겪어본 적이 없어요. -ㅂ-(←곤란한 일을 겪어보기 위해 자신 에게 택배 보내기 놀이(?)를 가끔 하는...lllOrz)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8.29 08:31 신고 address edit/delete

      예, 인출금액은 저도 딱 그 정도가 적당한 것 같아요^^ 저처럼 난감한 일을 겪으신 적은 없으시다니 다행이네요! 온 집안에 어디 지폐가 없나 뒤지고 다니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조금은 부끄^^;;

  4. Favicon of http://caprio.tistory.com BlogIcon 카푸리오 2010.08.30 20:3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현금은 아무리 많이 인출해도 뒤돌아 보면 오간데가 없더군요.
    아마 현금 잡아먹는 귀신이 있는 듯 해요...ㅎ
    나가는 구멍 막는 것은 쉽지 않은 듯 하고, 들어오는 구멍을 넓혀봐야 하는데.....음...;;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8.30 23:23 신고 address edit/delete

      으~ 돈 잡아 먹는 귀신이라는 말에 너무 공감되네요! 진짜 지갑에 푸른 지폐 몇 장 넣어두면 순식간에 어디다 썼는지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 같아요. 지갑에 무슨 4차원 구멍이라도 뚫려있는 건지...OTL

  5. 2010.09.01 15:48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01 23:20 신고 address edit/delete

      조각가의 모델이 된 분들이 몇몇 계신데, 정말 열심히 사셨는데도 보답 받지 못한 인생을 보낸 분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저려오더군요ㅠ_ㅠ 아무튼 이야기의 끝까지 쭉 달릴 예정~ 기대해주신 만큼 좋은 결말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네요^^

  6. Favicon of http://blog.daum.net/dailyfeast BlogIcon Daily Feast 2010.10.06 15:2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도 돈을 제법 꼼꼼이 쓰는 편인데....
    요즘 만원 가지고 다니면 금방 깨서 안 깰 수가 없더라고요.
    시세가 올라서 월급은 안오르는데 물가만 올라 ㅡㅡ;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10.06 22:12 신고 address edit/delete

      진짜 요새 물가 장난이 아니죠ㅠ_ㅠ 태풍 때문에 채소값도 오르고 참 미칠 지경;;; 저희 집은 며칠째 파 대신 부추를 먹고 있는데, 이제는 부추값도 꽤 올라서...OTL







『사랑하는 사람의 방에서 우리는 얼마간 탐정이고,
또 얼마간은 변태이며, 그리고 또 얼마간은 수집가다.』


- 김영하, 퀴즈쇼, 261p -


...
사람은 사랑을 하면 누구나 바보가 됩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지요.

바보가 되면 사랑스러워지는 사람과,
바보가 되면 보기 흉해지는 사람.

저는 명백히 후자이기 때문에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들이 저를 닮을까봐 걱정되네요(...)




■■■





제 1막 조각가의 하늘 - Scene5 / 위상僞像 (2)


 어젯밤의 기억은 생생했지만, 한편으로는 유년기의 흐릿한 꿈을 헤집는 것처럼 멀기도 했다. 시간적인 거리는 가까웠지만, 현실과의 간격은 멀찌감치 떨어진 대화였다. 아마 3년 전에 자칭 광대라는 광인과 싸운 경험이 없었다면 그녀들의 얘기는 단지 공상가의 헛소리일 뿐이라 일축했으리라. 하지만 소리와 메아리의 이야기가 환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윤종이 따져야 할 건 사태의 실재감이 아니라 사건의 진위였다.

 윤종은 물었다. 메아리의 말은 진실일까. 심장은 대답했다. 아니, 거짓말이야. 윤종은 물었다. 그렇다면 신용할 수 없다는 건가. 심장은 대답했다. 온전한 거짓말은 아니야. 진실이 일부분 섞여 있어. 윤종은 말했다. 거짓에 진실을 섞어 더욱 완벽한 허구를 창조하는 건 능숙한 사기꾼의 전형이지. 심장은 말했다. 메아리의 말에는 거짓보다 진실의 무게가 더 커. 하지만 거짓은 어떤 진실이든 물들일 수가 있지. 윤종은 물었다. 그럼 어디까지 신용하면 좋을까. 심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심장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윤종은 물었다. 소리의 말은 진실일까. 심장은 대답했다. 진실이야. 그녀가 인식하고 있는 현상과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윤종은 말했다. 최소한 자신이 믿고 있는 진실에 대해서는 숨김없이 말해주었다는 것이군. 심장은 말했다. 그래. 하지만 소리가 파악하고 있는 진실이 메아리의 거짓에 오염되어 있다면 결국 그것은 거짓이 될 수밖에 없어. 윤종은 물었다. 소리의 말에서 메아리의 거짓을 걸러낼 수는 없을까. 심장은 대답했다.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해. 하지만 소리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는 믿어도 돼.

“소리의 광기… 읏…….”

 윤종은 심장의 고동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말고 갑자기 범람하는 사고의 물결에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꼈다. 소리의 광기란 묶여있는 매듭을 풀어헤치는 예외법칙. 주로 인간의 정신을 무장 해제시켜 이성理性을 상실하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는 그 힘은, 바꿔 말하자면 사람의 본심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살을 꿈꾸는 자신은…….

키이잉------------

 높게 울리는 이명耳鳴이 윤종의 귀를 아프게 찔렀다. 그리고 곧장 지직, 지지직 하는 전파소리가 뒤따라 한데 어우러져 정신을 어지럽히는 심각한 불협화음을 연주했다. 이건 생각을 그만두라는 심장의 경고였다. 더 이상 파고 들어가 봤자 그 앞에 기다리는 건 파멸밖에 없다는 경보였다. 하지만 윤종은 여기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한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뭔가 보일 것 같은 상황에서 어찌 포기할 수 있으리. 윤종이 억지로 사고를 움직이려 하면 할수록 노이즈는 음량을 높였고, 고통은 심해졌다.

“몸을 심하게 떠는군. 어디 좋지 않은 겐가.”

 볼에 온기가 느껴졌다. 적당히 따스한 그 빛은 착 가라앉는 엄숙한 목소리를 동반하고 있었다. 낮은 음색과 높은 공기는 각각 윤종의 발판이 되고, 날개가 되어 그를 잡음의 물결이 심하게 요동치는 고통의 바다에서 건져 올렸다.

“아… 어,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윤종을 구한 건 공원에서 곧잘 이야기를 나누는 빛바랜 양복의 노신사였다. 노인은 언제나처럼 어디서 꺼냈는지 알 수 없는, 하지만 적절하게 데워진 캔 커피를 들고 있었다. 방금 볼에 닿은 따스한 감촉은 그 캔 커피였던 모양이다.

“안색이 좋지 않아 보여 말을 걸었는데, 괜히 방해한 게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드는군.”

 노신사는 윤종에게 캔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아닙니다. 덕분에 기분이 나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종은 노인의 호의를 받아들며 고개를 숙였다. 물론 도중에 생각이 끊긴 건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아마 거기서 더 나아가봤자 좋은 꼴은 보지 못한 채 마음만 피폐해졌을 터였다. 주변의 도움 없이 당사자가 함부로 정신적 외상과 마주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었으며, 자칫 끝도 없는 수렁에 빠지기 전에 발을 멈추게 해준 노인에게 윤종은 고마움을 느꼈다.

“여기 앉으세요.”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은 윤종은 옆에 있는 신문지를 펴서 노인이 앉을 자리에 깔았다. 비록 젖지는 않았다고 해도 날이 매우 추웠기에 의자는 얼음장처럼 식어있었다. 노신사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윤종의 호의를 받아들여 자리에 앉았고, 두 사람은 잠시간 말없이 커피를 홀짝였다.
 길지 않은 침묵 후에 먼저 입을 연 건 윤종이었다.

“오늘은 뵙지 못하는 줄 알았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폭우가 쏟아진 직후에 산책을 한다는 건 일반적으로 현명한 생각이 아니었다. 길은 비가 내린 직후라 많이 미끄럽고, 차들도 평소보다 통제가 어려운 만큼 맑은 날씨에 비해 여러모로 바깥의 위험도는 상승해 있었다. 길가의 물웅덩이나 나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에 옷을 더럽힐 가능성도 다분했다. 윤종도 이상한 일에 관련되지 않아 머리가 복잡할 일도 없었다면, 굳이 이런 날에 공원까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노신사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맞는 말일세. 이런 늙은이가 함부로 돌아다녀도 좋은 날이 아니지. 하지만 하루 종일 우중충하게 안에만 갇혀 있다 보니 좀 기분전환을 하고 싶었네.”

“하기야… 계속 집안에만 있는 것도 참 답답한 일이겠군요. 또 비가 내린 후에는 공기도 맑으니…….”

 윤종은 적당히 노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도 속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비가 내린 후에도 길가를 거닐 만한 작은 이점들은 있으니, 사람마다 산책하고 싶은 시점이 다를 수는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중충하다’니 그건 또 무슨 뜻일까. 흔히 비오거나 흐린 날은 우중충하다고 말하긴 하지만, 오늘 같이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천둥번개를 동반한 빗줄기가 억수 같이 쏟아진 날에 우중충하다는 표현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스스로도 모르는 단어의 다른 용법이 있다거나, 그저 일상적으로 자주 있는 표현의 오류라 볼 수도 있겠지만, 윤종은 이상하게도 그런 사소한 일이 마음에 걸렸다.

“오늘은 딸아이의 기일이었네. 때마침 비까지 내리니 꼭 하늘에서 흘리는 눈물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우울해지더군. 스스로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감상적이라 자각은 하고 있으니 자네도 비웃지는 말게나.”

 윤종의 궁금증에 눈치를 챈 걸까, 아니면 그냥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걸까. 덤덤한 어투로 말하는 노신사의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윤종은 왜 노인이 우중충하다고 말했는지 알게 되었지만, 괴로운 기억을 불러일으키게 한 것 같아 영 마음이 불편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눈치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윤종은 난처했다. 이럴 때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자녀분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말하면 되는 걸까. 그는 스무 살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에 그 나름대로 이것저것 경험해봤다고는 하지만, 역시 그의 나이 또래에 ‘죽음’이란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었다. 윤종은 어머니의 장례식은 너무 어려 기억나지 않았고, 연우의 장례식에는 혼수상태에 빠져 가지 못했다.
 노신사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말게나. 괜찮다네. 벌써 딸애가 세상을 뜬지도 10년이나 흘러 이제는 그냥 담담해. 하하, 이거 그 녀석이 들으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가볍게 이야기하는 노신사의 어투에는 약간 무리가 섞여 있었다. 괜찮다는 말은 진실이겠지만, 담담하다는 말은 거짓이리라. 노인은 여전히 죽은 자녀의 일로 비통해하고 있었지만, 윤종을 위해 일부러 배려하고 있었다. 자신은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그 경지에 윤종은 존경심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대를 무리시키고 있다는 생각에 면목이 없었다. 허나 면목 없어 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윤종은 여기서 우물쭈물해봤자 더욱 노인에게 신경 쓰게 만들 뿐이라는 생각에 아무튼 말을 받아 적당한 때에 화제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서로 사이가 좋으셨던 것 같습니다.”

“음, 새삼스럽게 떠올려보면 그랬던 것 같네. 나는 결혼을 늦게 해서 딸애랑 나이차가 많이 났는데, 오히려 할아버지 같은 면을 좋아해줬는지도 모르지. 단순히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일세. 딸애가 계속 살아있었다면 아마 자네랑 나이가 비슷했을 텐데… 어쩌면 자네 같은 남자친구가 하나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있었다면 분명 가만두지 않으셨겠지요.”

“물론이지! 우리 딸을 행복하게 할 자신이 있다면 우선 나부터 넘어서지 않으면 그럴 자격이 없네.”

 농담 삼아 말하며 호탕하게 껄껄 웃는 노신사의 표정에는 아까보다 조금은 무리하는 기색이 옅어 보였다. 분명 죽은 이를 떠올리는 건 슬픈 일이긴 하지만, 그 추억에는 반드시 즐거운 순간도 존재한다. 그 점만큼은 윤종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뒤로도 얼마간 윤종은 노신사와 함께 10년 전에 죽은 그의 딸아이를 이야기했다. 아픈 과거를 회상하거나, 혹은 잃어버린 가능성에 대해 가정하는 건 때로는 가혹하게 다가올 수 있는 일이었으나, 최소한 이 노인에 한해서는 그렇지 않은 듯싶었다. 노신사는 외관만큼이나 단정하고 반듯하고 굳센 사람이라 필요 이상으로 어두운 물결에 휩쓸리지 않았다. 죽은 연인의 그림자에서 허우적거리는 윤종에게 그 모습은, 강인하고 빛나는 것처럼 보여 부럽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자신도 저렇게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도 극복하고 마는 걸까 하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다. 윤종은 영원토록 연우를 추도하고 싶었다. 절대 잊거나 과거로 치부하거나 추억만으로 곱씹기는 싫었다.

“…….”

 적당히 대화를 마친 그들에게는 또 침묵의 까마귀가 내려앉았다. 그들은 두 번째 캔 커피를 뱃속에 흘려 넣으며 정적의 물결에 몸을 맡겼다. 윤종은 항상 노신사의 캔 커피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싶었지만, 아무리 주의해도 그것만큼은 밝혀낼 수가 없었다. 아마 물어봐도 가르쳐 주지 않을 것 같은 예감에 윤종은 다음 기회를 노리며 조용히 커피의 쓰고 단 맛을 음미했다.
 이번에 정적의 날개를 움직인 건 노신사 쪽이었다.

“아까는 시체가 걸어 다니는 것처럼 표정이 너무 창백해 걱정했네만, 지금은 얼굴에 좀 혈색이 도는 것 같아 안심이 되는군.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몰라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게나. 고민이란 때로는 몸을 망치기도 한다네. 정 가감이 쉽지 않다면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나라도 괜찮다면 이야기를 들어주겠네만.”

 노신사의 말에는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아마 이 노인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던 것이리라. 윤종은 어떻게 해야 될지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아픔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 무리하게 죽은 딸애의 이야기를 화제로 삼으면서도 어두운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던 노인의 배려를 떠올린 윤종은, 자신도 진지하게 답하지 않으면 실례가 된다는 생각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전에도 한 번 드렸던 말씀입니다. 왜 사람은 자살을 하게 되는지 생각하고 있었지요.”

“생각나는군. 자네는 그 때도 죽을상을 하고 있었지. 넘겨짚었다면 미리 사과하겠네. 자네는 지금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가?”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정확히는 자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까봐 두렵습니다. 단순히 죽는 게 두려운 건 아니에요. 아니, 물론 죽는 건 싫고 무서운 일이지만, 그보다는 책임을 전가하는 건 아닐까 하는 점이 두렵습니다. 제 자신이 껴안아야 될 짐을 버리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책임을 전가하는 게 두렵다고……?”

 순간 노신사의 눈이 번쩍 커졌다. 마치 무언가 꼭 찾아야 하는 보물, 혹은 결코 만나지 말아야 할 괴물을 발견한 모험가 마냥 노인의 얼굴은 경악과 환희가 뒤섞인 기묘한 박력을 내뿜고 있었다. 그러나 노인의 얼굴은 놀란 윤종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묻기 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렇군. 과연 이 젊은이가…….”

“어르신……?”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그보다는 지금 책임전가를 하는 수단으로 자살을 택하게 될까봐 두렵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윤종은 자신의 진의와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의미전달에는 크게 무리가 없다고 생각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그는 자신이 자살을 택하게 된 일이 실제로는 연우를 추도하는 일에 질려 이 세상을 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어딘가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소리의 광기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사람의 본심을 끄집어내는 것이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신사는 식은 커피를 단숨에 뱃속에 밀어 넣은 후 말했다.

“실은 그 때 자네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이 남아있다네. 그건 다름 아닌 자살의 본질에 대한 것일세.”

“자살의 본질… 그건 절망이나 도피 같은 것이 아닙니까?”

“그게 바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착각일세. 물론 절망했기 때문에, 혹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하여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존재하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자살의 동기나 목적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본질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자살의 본질이란 무엇입니까.”

“차선次善의 선택이라네.”

“…음. 죄송합니다. 솔직히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걸세. 기실 이건 내 임의로 개념을 어지럽힌 궤변이 섞여 있기도 하니 그다지 마음에 와 닿는 말은 아닐 거야. 어디까지나 한가한 늙은이가 흰소리를 한다는 선에서 편하게 들어주기를 바라네.”

“아니, 어찌 그런 말씀을… 아무튼 경청하겠습니다.

 윤종은 남은 커피를 마시는 것도 잊고 노신사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비록 아무리 엉터리인 주장이라도 지금의 윤종에게는 아쉬웠다. 그는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마음을 규명할 수 있는 단서를 원했다.
 노신사가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자살의 본질에 대해 쉽게 눈치 채지 못하는 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죽음이란 결과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지. 거기서 절망이나 도피나 포기 같은 개념을 이끌어내는 건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야. 허나 안이하다고 할 수는 있겠지. 자살자들의 대부분은 사실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고, 또 미련도 엄청나게 가지고 있다네. 단지 그들의 바람은 이 세상이 아니라 자신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에 있다는 것뿐이지.”

“이상적인 세상… 유토피아나 도원향이나 천국 같은 것 말씀입니까?”

“그 범주에 해당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향은 각자 다르다네. 예를 들자면, 빚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꿈, 신분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꿈, 황천으로 여행을 떠난 소중한 이들이 살아 돌아오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꿈, 자신들의 종교가 정점에 선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꿈 등등 자살자들은 수많은 가지각색의 이상향을 원하며 목숨을 끊는다네. 현실에서는 그 이상향에 닿을 수 없으니까 차선책으로 자살을 택하는 것뿐이지. 자살자가 포기하는 건 어디까지나 이 현실이지, 결코 자신들의 꿈이 아니야. 그러나 자살의 수단으로서의 옳고 그름을 논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을 두고 포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네. 잘못된 선택이라도 선택은 선택이니 말일세.”

“자살은 포기가 아니라 선택… 아……!”

 윤종의 머릿속에 섬광이 스쳤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 노신사의 말에 윤종은 공감을 하고 깨달음을 얻었다. 그랬다. 분명 윤종은 자살미수 다음 날, 죽을 의욕이 있었다면 이렇게 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의 자살충동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윤종은 연우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무력감, 그녀 없이 살아야 한다는 절망감에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극도로 억눌려 심지어 사라진 연인을 기리겠다는 마음마저 옅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목석이나 다를 바 없이 굳어가던 그가 소리의 광기에 의해 누름돌이 치워지고 자살을 생각하게 되었다면, 그리고 그 자살이 꿈에 대한 포기가 아니라면, 일련의 사태가 제시하는 해답은 아주 간단했다.

“감사합니다!”

 윤종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를 직각으로 꺾었다. 정말 감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이었다. 왜 이런 단순한 사실을 몰랐을까. 어째서 심장은 이런 간단한 해답을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올바른 길을 알아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네. 내 조잡한 말에서도 뭔가 얻은 게 있다면, 그건 전부 자네의 공로일세.”

 윤종은 상대의 부정을 부정했다.

“아닙니다. 어르신이 아니었다면 전 눈 뜬 장님처럼 일생의 기회를 놓칠 뻔 했어요.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너무 비행기를 태워주는군. 이 나이에 급하게 이륙하는 건 위험하다네.”

 여기서 겸양승부를 해도 소용없겠다고 생각한 노신사는 껄껄 웃으며 장난스럽게 응수했다.
 윤종도 잠깐 흥분을 잊고 조용히 미소 지으며 그에 답했다.

“괜찮으시다면 다음에는 더 좋은 비행기를 태워드리겠습니다. 그 때는 초호화 여객기로 모시지요. 그럼 전 죄송하지만 이만 급하게 가봐야 할 때가 있어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윤종은 소리와 메아리를 돕기로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결심했다. 그가 망설일 이유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메아리가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고, 소리가 무슨 죄를 저질렀건 그에게는 하등 관계없는 일이었다.

“그래, 머지않은 시일에 또 만나게나. 나도 자네가 어떤 비행기를 태워줄지 참으로 기대되네. 그 비행기가 날 만한 곳이 있을지는 모르겠네만.”

 윤종이 빠른 걸음으로 사라진 방향을 향해 노신사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TRACKBACK 0 AND COMMENT 14
  1. Favicon of http://pokerface7.tistory.com BlogIcon KEN☆ 2010.08.19 13:0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진짜 두 종류밖에는 안되나요? ㅎㅎㅎ
    그것이 궁금해집네다.. ;)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8.20 22:35 신고 address edit/delete

      ...실은 바보여도 멋진 사람이라는 또 하나의 패턴이! (뭐래;;;)

  2. Favicon of http://caprio.tistory.com BlogIcon 카푸리오 2010.08.19 21:5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사랑하는 사람의 방에서 우리는 얼마간 탐정이고,
    또 얼마간은 변태이며, 그리고 또 얼마간은 수집가다.』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표현하는 작가들의 글솜씨는 참 멋스러운 듯 합니다. 우리는 늘 이런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8.20 22:36 신고 address edit/delete

      진짜 멋진 문장을 쓰시는 작가님들이 많으신 것 같아요.
      저도 언젠가 가슴에 와 닿을 수 있는 표현을 써보고 싶네요^^

  3. Favicon of http://jadecar.tistory.com BlogIcon 레메디 2010.08.21 16:1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안단테님 올만이죠? 요즘 많이 더 게을러져서...호호호
    퀴즈쇼는 책장에서 놀고 있는지 몇 달이 되었는데(사실은 있다는 사실도 기억 못하고 있는...-_-) 안단테님덕에 갑자기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고 보니 빛의 제국도 화장대에서 뒹군지 일주일이 넘어가는군요....

    하여튼 오늘도 흥미롭게 잘 읽었어요. 금요일 저녁은 정말 피곤해도(거의 항상 파김치보다 더 쳐져 있죠) 안단테님 블로그에는 꼭 들리게 되는군요 ^^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8.22 08:26 신고 address edit/delete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계셨는지요^^ 말씀을 듣고 보니 저도 읽어야 겠다고 사두고는 어찌하다 보니 미루어둔 책이 몇 권 있네요. 다음 주에는 시간나는대로 읽어봐야 겠어요.

      매주 힘드신 데도 항상 이렇게 들러주시어 소설까지 읽어주시다니 정말 감사드려요! 부디 주말 푹 쉬시어 피로 싹 푸시고, 다음 한 주도 잘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래요~!

  4. Favicon of http://fghj1.egloos.com/ BlogIcon fghj1 2010.08.21 21:3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안녕하세욧!! +ㅂ+ 안단테님 댓글을 뒤늦게 확인하고 블로그를 몇년만에 좀 손봤어요=ㅂ=; 이젠 안단테님의 댓글을 놓치는 일은 없을 듯!! +ㅂ+ㅋㅋㅋ(하지만, fghj1의 블로그 방문자가 안단테님 뿐이라는 것과 댓글 작성자가 안단테님 뿐이라는 극비사항이 쉽게 드러난다는 단점이...ㄱ-;;; 안단테님은 주목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해주세요...ㄱ-;;;긍정적 마인드 긍정적 마인드...)

    카프리오님 말대로 정말 공감되는 글귀입니다. 제가 표현하면 왠지 성범죄자(ㄱ-;;;;) 취급을 받을 것 같은데 저 글귀는 전혀 그런 느낌이 안들어욧! 사랑을 해본 남자라면 정말 저런듯!! 특히, 변태 또는 수집가일 확율이 높은 듯(나만!?!?;;;;;). 여자도 저럴까요? 여자는 안 그럴 것 같은데~ 만약 그렇다고 해도... 탐정가의 확율이 높을 듯!(←fghj1가 가진 여자 이미지의 수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탐정가 정도야 애교인듯~ ㅋㅋ

    아! 저도 후자에요~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그냥 맘 편히(?) 아직도(!!) 혼자인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ㅂ=;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8.22 11:38 신고 address edit/delete

      fghj1 님도 그간 많이 바쁘셨군요! 덧글답변은 걱정마시고, 시간 나실 때 느긋하게 달아주세요^^ 주목해주신다는 말씀에 살짝 부끄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네요. 앞으로도 종종 놀러갈게요~

      정말 자칫 백안시 당할 수도 있는 심리를 낭만적으로 포장하는 작가분의 솜씨가 굉장한 것 같아요. 개인차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위와 같은 심리는 남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약간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남친의 머리카락이나 손톱(...)을 모으는 사람도 있으니^^;;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chohyungsa BlogIcon 야간비행사 2010.08.22 17:5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윤종의 결심이 다음회를 더 기다려지게 만드네요ㅎ.
    안단테님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남은 휴일저녁 행복한 시간으로 채우세요^^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8.22 22:03 신고 address edit/delete

      좀 답답하던 윤종도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달리게 할 생각이에요. 언제나 감상과 코멘트 감사드려요~ 비행사 님도 남은 주말, 즐겁고 행복한 시간 되시길~^^

  6. Favicon of http://gumediherb.tistory.com BlogIcon 미루마지 2010.08.23 23:1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 잘보고 가요

  7. Favicon of http://blog.daum.net/dailyfeast BlogIcon Daily Feast 2010.09.30 15:2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노신사의 정체가 궁금하군요 ㅋㅋ
    철학적인 이야기가 왠지 이영도 님을 닮은 것 같네요.
    어렵습니다~ㅋ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30 22:50 신고 address edit/delete

      앗, 무려 그분이랑 비교를 해주시다니 송구스럽네요;;
      더욱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감상 감사드려요>.<






(아무래도 상관없는 본문 전 일상잡담 한토막)




(...)


...
아쉽게도 축복 받은 우량아로 태어나지 못한지라,
날이 덥거나, 비만 오면 머리가 심하게 아파,
저는 일년 중 이 시기가 가장 힘드네요;;;

그래서 이맘때가 되면 항상 두통약을 상비하고 다닙니다.
주로 애용하는 건 타○레놀이에요.

게○린이나, 아○피린이 더 효능이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일전에 타○레놀 100정을 사놓았는데, 아직 절반도 넘게 남아서
왠지 아깝다는 생각에 다른 제품을 못사고 있네요^^;;

여담으로, 개인적으로는 숙취가 심할 때도 두통약을 자주 애용해요.
결국은 진통제니까 효과 자체는 좋은데, 분명 몸에는 안 좋겠지요···.

...아마 저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의약분업을 하나 봐요(...)



■■■





제 1막 조각가의 하늘 - Scene5 / 위상僞像 (1)


 도저히 봄비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줄기차게 쏟아진 굵은 빗줄기는 오후부터 점차 그 기세를 줄여가기 시작하더니 저녁놀이 질 무렵이 돼서야 비로소 그쳤다. 먼 대륙에서 불어온 황사에 오염된 대기는 일시적으로나마 맑아졌고, 환절기 특유의 일교차에 갑작스럽게 기온이 떨어진 날씨는 겨울철을 연상시키는 투명하고 쌀쌀한 공기로 가득 찼다.

 오늘은 오전부터 근무를 하여 일찍 일이 끝난 윤종은 재킷을 여미며 공원을 걸었다. 어젯밤, 소리와 메아리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들은 그의 머릿속은, 자살미수를 한 다음 날처럼 이상한 불협화음에 시달리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적당하게 복잡했다. 그는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고, 그럴 때면 언제나 이 한가한 공원을 찾았다.

 하지만 공원에는 하루 종일 내린 비 때문에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그가 애용하는 벤치 역시 잔뜩 젖어 사용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방향을 틀어 공원 외곽의 정자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비가 많이 내리긴 했어도 바람은 세지 않았기 때문에 지붕 아래는 대개 말라 있었다. 적당히 자리를 잡은 윤종은 팔짱을 끼고 지난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윤종은 메아리에게 왜 2년 전에 싸움을 벌였는지 물었다. 분명 광인들 간의 싸움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을 뿐이지, 평소에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일이다. 허나 그들도 아무런 이유 없이 무턱대고 싸우지는 않는다. 아무리 광인이라 해도 그들 나름의 이해관계와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광인들이 지닌 광기는 서로 어떤 위험한 힘을 감추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기 때문에 아주 승산이 압도적으로 높거나, 혹은 목숨을 걸어야 될 절박한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함부로 부딪치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더욱이 메아리는 무서운 광기를 지닌 거물이다. 지금도 결코 적은 힘이 아닌데, 원래는 그보다 몇 배는 더 강했다니 솔직히 윤종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당연히 메아리를 패배시켰다는 상대 또한 마찬가지. 그런 그들이 정면으로 승부를 벌어야 될 만한 사정이란 과연 무엇인지, 윤종은 꼭 알아두어야 겠다는 강박관념이 들었다.

 윤종은 소리에게 왜 그림자에게 쫓기고 있느냐 물었다. 그건 앞으로 다가올 직접적인 위협에 대처하기 위함이자, 소리가 어떤 인물인지 알기 위한 이중적인 질문이었다. 손뼉은 혼자서는 칠 수 없다. 윤종이 그림자에게 느꼈던 증오와 분노는 깊고 무거운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그토록 강한 원한을 샀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기 마련일 터. 아마 그 부분을 파고들면 소리의 인물상을 얼마간 정확히 포착할 수 있으리라.
 윤종의 물음에 먼저 대답한 건 메아리였다.





메아리: 2년 전, 내 힘을 나누고 봉인한 건 마녀魔女야.

윤종: 마녀라고…? 설마 이야기 속의 그…….

메아리: 혹시 동화 속에 나오는 여자 마법사나, 근대의 먹물들에게 왜곡된 피해자들을 지칭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윤종: 미안하지만, 딱 그 생각이 들더군. 그게 아니라면 어떤 광인을 지칭하는 거냐.

메아리: 맞아. 마녀란 광인들 중에서도 몇 안 되는 예외… 정형화定型化된 형식을 이룰 수 있는 여자들을 뜻해. 음, 표정을 보니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네. 그럼 하나 물어볼게. 당신은 지금까지 광인이 공식적으로 사회의 표면에 나서 활약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

윤종: 아니, 오히려 철저하게 은폐되고 있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메아리: 그렇지? 근데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광인들의 광기는 일반상식을 뛰어넘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아무런 장비에 의존하지도 않고도 거대한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다거나, 혹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태워죽일 수 있다거나, 혹은 말 한마디로 사람의 정신을 세뇌시킬 수 있다거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유용한 힘이지. 근데 왜 여태까지 공적으로 광기를 이용하려는 시도가 없거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광기를 품고 있는 당신이라면 아마 짐작할 수 있을 텐데.

윤종: …그렇군.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메아리: 정답이야. 광기는 통제할 수가 없어. 누군가에게 특정한 광기를 품도록 유도할 수도 없고, 누가 어떤 광기를 지니고 태어날지 예측할 수도 없어. 우연히 비슷한 광기를 지니는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의도적으로 같은 광기를 품게 만들 수는 없지. 심지어 광기를 품고 있는 본인조차 언제 2차 발광이 시작돼 주위를 엉망으로 만들지 불안에 떨어야 해. 광기를 품은 어떤 사람을 이용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광기 그 자체를 이용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 오히려 통제가 안 되는 광인의 존재는 사회에 불안정한 기류만 흘릴 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아. 광인은 분명 전체 인구의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긴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전부 광인이 될 수 있는 예비인자를 가지고 있어. 생각해 봐. 어느 날,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주변 사람이 발광해 광기를 품고 그 힘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사회에 알려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불안에 떨며, 의심하고, 전 세계적으로 마녀사냥 같은 일이 벌어지겠지. 예를 들면, “아니,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다니. 그 건강하셨던 분이. 그러고 보니 누구누구가 아버지에게 원한이 있었지. 혹시 그 녀석이 광인은 아닐까. 검증되지 않는 힘으로 아버지를 죽인 게 틀림없어. 복수해야만 해!”라든지, “모모 씨가 이번에 엄청난 돈을 벌었다면서요? 이상하지 않아요? 그렇게 사업수완이 형편없던 사람이… 혹시 모모 씨가 광인은 아닐까요. 이상한 힘으로 부정하게 돈을 벌었다든지 말이죠. 다음에는 우리가 그 피해자가 될지도 몰라요!”같은 이유로 집단린치가 벌어질 수도 있어. 또는 “은행에 돈을 맡겨도 쇠를 종잇장처럼 구긴다거나, 혹은 순간이동 같은 걸 할 수 있는 힘센 광인이 다 털어 가면 어쩌지? 안 되겠어. 도저히 예금 같은 건 불안해서 할 수가 없다니까.”라든지, “도무지 저런 판결에 수긍할 수가 없어! 어차피 증거 같은 건 특수한 힘을 지닌 광인에게 걸리면 감쪽같이 조작되거나, 훼손될 수도 있는 거잖아? 젠장, 역시 사건은 내 힘으로 해결해야 돼!”같이 사회 시스템이 전면적으로 부정되어 엄청난 혼란이 초래되고 말 거야. 그래서 인간들의 사회는 필요하면 광인을 제거해서라도 그 존재를 철저하게 은폐시켜왔지.

윤종: 통제가 불가능하다면 아예 없애버리는 게 낫다는 발상은, 동의 여부를 차치하자면 일단 납득은 가는 이야기군. 그렇다면 마녀들의 힘은 이용이 가능하다는 얘긴가?

메아리: 사회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는 마녀 또한 광인과 큰 차이는 없어. 하지만 광기가 성립하는 구조가 달라. 광인의 광기가 통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그 힘이 마치 법조항의 단서처럼 세상의 규율에 대한 예외이기 때문이야. 우리들의 광기는 분명 세상의 상식과 합치하지 않는 괴이함을 지녔지만, 그렇다고 완전 새로운 것도 아니지. 어디까지나 물리법칙이나 논리개념을 왜곡하거나, 속이는 정도에 지나지 않아. 지금까지의 인류 사회는 그 예외적인 부분까지 포옹할 수 있을 만큼 정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광인을 배척해왔지만, 미래에는 또 상황이 달라질지도 몰라. 아무튼 우리들은 세상의 법칙을 기만하고 희롱하여 자기 뜻대로 원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허나 앞서 마녀들은 정형화된 형식을 이룰 수가 있다고 했지? 마녀들의 광기는 우리들과는 다르게 세상의 규율을 비트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내부에서 새롭게 형성된 독자적인 세계관에 따르고 있어. 아예 자기만의 상이한 법전에 따라 외부세계를 짓눌러 자기 뜻을 통하게 하는 거지. 그 마녀들의 내부세계를 우리들은 흉성凶星이라 불러. 물론 마녀들은 휘성輝星이라 부르는 모양이지만.

윤종: 확고한 내부세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형성이 안착될 토대도 마련되어 있다는 말인가… 확실히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어째서 그것이 네가 그 마녀라는 누군가와 싸우는 이유가 된 건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

메아리: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던 참인데 성미도 급하네. 방금 우리 광인의 광기는 세상법칙의 예외라는 이야기를 했었지? 그건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하나의 법칙만으로 성립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작용이라 할 수 있어. 사실 예외라는 표현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시점에 불과한 이야기고. 아무튼 그 예외발생의 섭리는 마녀들에게도 똑같이 적용 돼. 마녀들 중에는 마녀의 정형은 습득했지만, 흉성은 가지지 못한 자들이 있어. 바로 후천적으로 마녀를 승계한 자들이 주로 그쪽에 속하지. 선천적인 마녀들도 가끔 자기별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 경우는 대개 목숨도 같이 잃기 때문에 실질적인 사례는 그다지 많지 않아.

윤종: 후천적인 마녀… 뭐야, 설마 광기를 전승할 수 있다는 말인가!?

메아리: 마녀들은 흉성이라 불리는 고유의 토대에 의해 자신들의 힘을 가지런히 할 수 있으니, 그 정형성만을 따로 떼어내 전수하는 것도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하지만 내부의 법전까지 그대로 양도한다는 건 무리라고 해야겠지. 그럼 실질적으로 규칙에 의한 강제성, 즉 힘을 지니지 못한 마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유사법전을 만들 필요가 있겠지. 그래서 후천적인 마녀들은 작게는 마을 하나에서, 크게는 도시 하나를 자신들만의 고유한 영토로 취득해. 물론 현실사회에 무언가 영향을 주거나 하지는 않아. 그저 가정적으로 설정한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기초로 일정한 영역을 일방적으로 상상점거를 하는 거지. 그 행위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세상은 물론, 우리 광인들의 예외법칙에도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지만, 의제적으로 마녀는 흉성을 소유한 것이 되어 자신이 익힌 법칙을 실질적으로 부릴 수가 있어.

윤종: 마치 토지신土地神 같은 존재인 걸.

메아리: 메커니즘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비슷하다고 보면 돼. 그래, 토지신이야. 후천적인 마녀들은 일정지역을 자기만의 별로 삼는 만큼 그 관리에도 민감해. 자기 구역이 혼란스러워지면 혼란스러워질수록 의제성이 약화돼 종국적으로는 내부법칙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있거든. 내가 이 도시를 점거하고 있는 마녀와 한판 벌리게 된 이유도 바로 그거야.

윤종: 그건 네가 이 도시에 마녀가 위기를 느낄 만큼 심한 혼란을 가져왔다는 소리군.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메아리: 인명구조.

윤종: 뭐라고……?

메아리: 위선이나 독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도 사람의 딸이야. 그게 학습된 것이든 뭐든 간에 불쌍한 사람을 보면 측은지심이 들어. 당신은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내 본연의 힘은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의 규율을 왜곡할 수 있었어.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많은 이들의 도움이 될 수 있지. 굳이 나이팅게일이나 슈바이처처럼 죽거나 다친 사람들을 애써 찾아다니지는 않았지만, 일단 내 눈에 닿는 사람들은 기분전환 삼아 구해주곤 했어.

윤종: 설마…….

메아리: 그래, 누가 봐도 선행이라 생각할 일이지만, 이 도시의 마녀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야. 죽어야 될 사람이 살아나고, 부서져야 할 물건이 복구되고, 없어져야 할 것이 있게 되는 현상은 확실히 마녀의 영토를 어지럽게 만들었겠지. 별의 의제성 상실을 우려한 마녀는 끝내 토벌을 경고했고, 그에 맞선 나는 패하고 말았어. 아무리 내 힘이 대단해도 여기는 그 녀석의 뱃속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니 이길 도리가 없지.

윤종: 오히려 용케 살아남았다고 해야겠군. 그 후천적인 마녀란 녀석이 이곳을 자기 영토로 삼아 힘을 부리는 광인이라면, 넌 영주와 그 병사를 상대로 혈혈단신으로 맞섰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메아리: 간만에 내 가치를 알아주는 이야기를 들었네. 이래서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 좋아. 소리는 “꼬리 말고 도망가다니 한심하네요.”하고 비꼬기나 했다고.

소리: 맞는 말이잖아요. 잘 싸웠건 못 싸웠건 진 건 진 거라고요.

윤종: 나도 동감이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건 그쪽이야. 완전한 광기를 가지고도 어찌할 수 없었던 상대에게서 어떻게 계속 도망 다닐 수 있는 건지 납득이 되지 않아서 말이야. 그 마녀가 이 도시 전체를 영토로 삼는 토지신 같은 존재라면 힘이 약화된 너 정도는 금방 찾아내 처리해야 이치에 맞지 않을까.

메아리: 아아, 어떻게 주변에 같은 편이 하나도 없어! …뭐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아. 하지만 나도 그냥 당한 게 아니라고. 난 비록 마녀에 의해 아홉 등분으로 나누어져 사람의 모습까지 잃었지만, 마녀는 대신 나에 대한 기억을 잃었어. 내 최후의 발악으로 녀석의 기억을 일부 소거시킬 수 있었지.

윤종: 대단한 걸. 하지만 이상하군…….

메아리: 눈치 챘어? 그래, 난 마녀의 기억을 지우는 데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어. 애초에 그럴 힘이 있다면 지지도 않았겠지. 앞으로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결국 마녀는 기억을 회복하고 또 날 제거하려 들 거야. 그 전에 빨리 흩어진 파편을 찾아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돼. 마녀가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내 본연의 광기를 가지고 기습을 한다면 승산은 있으니까.

윤종: 아니,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그쪽이 아니야. 솔직하게 대답해줬으면 좋겠는데, 마녀는 정말 영토의 질서를 회복한다는 이유만으로 네게 싸움을 건 거냐?

메아리: …뭘 말하고 싶은 거야?

윤종: 마녀는 네 행동이 도시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자기 힘을 약화시킬까봐 널 습격했다고 했지.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영토의 안전이 목적이라면 그저 널 다른 곳으로 떠나게 하거나, 혹은 여기서만큼은 힘을 행사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수도 있잖아. 물론 네가 무슨 희생을 치러서라도 불쌍한 이들을 구하고 싶어 하는 성녀 같은 마음의 소유자라면 또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방금 전에 그 가능성은 네 스스로 부정했어. 단지 길가다 마주치는 이들이 눈에 밟히니까 구했을 뿐이라고, 넌 분명히 말했지. 그럼 마녀는 왜 쉬운 길을 놔두고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너와 싸워야 했을까? 마녀가 널 얕봤다는 말은 하지 마. 아무리 해태 눈이라도 너 정도 광기를 품은 자를 도시 하나를 자기 몸처럼 관리하는 실력자가 못 알아볼 리는 없을 테니까. 실제로 마녀는 이 완벽한 홈 라운드에서도 네게 한방 먹어 기억을 잃었다고 했지. 그렇다면 마녀는 도시의 질서회복 외의 다른 이유로 네게 싸움을 걸었다고 보는 편이 이치에 맞아. 넌 대체 여기서 무슨 짓을 한 거냐.

메아리: …….

소리: 그만하세요, 아저씨!

윤종: 뭐……?

소리: 메아리를 그런 식으로 몰아세우는 건 비겁해요! 그럼 메아리 스스로 난 불쌍한 사람은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과신해야 했다는 말인가요? 굳이 사람들을 구할 마음이 없었다는 건 겸손의 표현일 뿐이잖아요. 또 마녀가 누구인지, 어떤 성향의 소유자인지, 그리고 다른 목적이 있었는지 아저씨도 아시는 바가 없잖아요. 아저씨의 말은 전제된 사실 하에서는 이치에 맞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꼬투리를 잡아 공격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메아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시겠다는 건 알겠지만, 교묘하게 말의 허점을 찾아 곤란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윤종: 으, 음…….

소리: 아저씨는 메아리가 실은 자신의 힘을 악용하는 인물이 아닐까, 그런 점이 걱정되시는 거죠? 그렇다면 그 비난은 오히려 제가 받아야 해요.

윤종: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소리: 아저씨는 왜 그림자가 저를 습격하는지 물으셨죠. 저도 그림자의 정체가 누구인지는 몰라요. 하지만 왜 절 노리는지는 알고 있죠. 그림자는… 아마 저 때문에 불행해진 피해자 중에 한 사람일 거예요.

윤종: 불행한 피해자… 네 광기에 관련된 일인가.

소리: 예. 광기에도 세밀한 구분이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조금씩 정의가 다르긴 하지만 아마 광인이라면 누구나 대체적으로 비슷한 단계를 거쳤을 거예요. 광인이 마음에 품고 있는 세상의 예외적인 법칙은 ‘광상狂想’이라 부르죠. 그것이 서서히 드러나는 단계가 ‘광증狂症’, 그 광상을 본격적으로 실현하게 되는 각성의 순간이 ‘1차 발광發狂’. 1차 발광 후에 마음대로 광상을 광기로서 표현하는 현상을 ‘광태狂態’라고 부르고요. 광인이라는 말을 듣는 건 이즈음이에요. 보통 여기가 마지막 단계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은 여기서 한 차원 더 높은 단계가 존재하죠.

윤종: 2차 발광…….

소리: 두 번째 각성의 순간, 마음에 품고 있는 광상이 광태로서 제한되는 게 아니라 무제한적으로 주위에 퍼져나가는 단계. 이때가 오면 광인은 스스로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저 광기를 발산하기 위한 기관으로 전락해 자멸하고 말아요. 저는, 이미 2년 전에 2차 발광을 일으켰어요.

윤종: 그럼 그날 밤 내가 자살충동이 든 것도…….

소리: 맞아요. 저 때문이에요. 제 광기는 ‘묶여있는 매듭을 풀어헤치는 것’. 광기 자체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 순수한 법칙이지만, 그를 실현하는 제가 사람이기 때문인지, 저를 통해 발산되는 광기는 주로 사람의 정신에만 작용을 해요.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이성理性을 상실하게 하는 힘이라 할 수도 있겠네요. 발광을 통해 제어불능이 된 저의 광기는, 제가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아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정신을 서서히 무장 해제시켜요. 효과는 사람에 따라 달라 정신이 불안정한 사람이라면 단 1시간 만에 미치기도 하지만, 반대로 평범한 사람은 10시간이 넘도록 괜찮을 때도 있죠. 하지만 아무리 강인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도 제 곁에 24시간 이상 있으며 제 정신을 유지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어요.

윤종: 그래서 이런 외딴 곳에 혼자 사는 거였나.

소리: 예. 사람들이 많은 곳에 제가 오래 있으면 아수라장이 되고 마니까요. 변명이지만… 그런 알기 힘든 광기이기 때문에 저도 처음에는 제가 무슨 불행을 불러오는지 몰랐어요. 나중에 겨우 눈치 챘을 때는 이미 제 광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제심을 잃고 함부로 행동하다가 인생이 망가진 뒤였지요. 심지어 그중에는 죽은 사람도 있고요. 그러니 광기가 일으키는 재앙이 걱정되신다면 애꿎은 메아리를 잡지 마시고, 저를 문책하세요.

메아리: 소리가 살리고 싶은 사람들이란 바로 그 피해자들이야. 산사람에게는 어떻게든 속죄할 수 있지만, 죽은 이에게는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그들을 되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나 같은 수상쩍은 고양이에게까지 힘을 빌려주고 있는 거지.

윤종: …….

메아리: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했어. 내 파편을 누가 가지고 있고, 그 광인이 어디에 있는지 등등 나머지 정보는 당신이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확실히 결정을 내린 다음에 알려줄게. 물론 당신은 아까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이미 말했지만, 지금 이야기를 듣고 또 생각이 바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야. 어영부영하거나 심지어 배신할 상대에게 등 뒤를 맡길 만큼 난 낙관적이지는 않아서 이런 건 확실히 해두고 싶어. 그래, 결심이 서면 내일 밤 아홉시에 이곳으로 다시 찾아와.








TRACKBACK 0 AND COMMENT 22
  1. Favicon of http://yoons_cha.blog.me BlogIcon 에네아스 2010.08.11 23:4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느낌상 대화체인데 설명을 하는 상황이다보니 문어체 모습이 많이 띱니다.
    그건 그렇고 진통제는 현재로는 이부프로펜 계열이 안전하고 좋다고 합니다.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 계열)도 괜찮지만 간에 부담이 가는 부작용이 있죠. 복합 성분이 들어있는 게보린 같은 진통제는 삼가는게 좋습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8.11 23:55 신고 address edit/delete

      지적 감사드려요! 아직 구어체를 구사하는 실력이 많이 부족해서... 좀 더 드라마라든지, 연극대사 같은 걸 보고 연구를 해야 겠어요.

      음, 게보린이 타이레놀보다 더 부담이 가는 진통제였다니, 지금까지 안 먹길 잘 했군요;; 지금 상비하고 있는 약을 다 먹으면 다음부터는 이부프로펜 계열로 구매를 해야겠네요. 이쪽으로도 좋은 정보주셔서 감사합니다^^

  2. 2010.08.12 06:43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8.12 23:04 신고 address edit/delete

      아직은 그냥 틈나는대로 글을 쓰는 아마추어에요^^;; 언젠가 책을 내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혹시 좋게 봐주시는 출판사가 없다 해도 앞으로의 직업이랑 병행해서 계속 써나갈 생각이랍니다.(인터넷이 발명돼서 너무 다행^^;;)

      아직 불면증 낫지 않으셨군요··· 하루에 수면을 그렇게 못 취하시면 굉장히 피곤하실 텐데ㅠ_ㅠ 에고, 하루 빨리 증세가 호전되시어 편히 푹 주무시는 밤을 맞이하실 수 있기를 기원할게요!

  3. Favicon of http://tsuyodung.tistory.com BlogIcon dung 2010.08.12 09:2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알기로는 아스피린쪽이 몸에 무리가 덜 한걸로 알고있어요. 저도 그래서 웬간하면 아스피린을... 생리통에도.-_=;; 하하하. 약효가 느리긴 한데 간에도 무리가 없다고해서(이걸 동생한테 들었던가? 간관련 동영상 강의를 들었던가?) ... 다시 물어보고 알려드릴께요. 아무래도 의사에게 상담하는게 제일이겠지요. ^^;;

    그나저나 여름에 비가 올때마다 머리가 아프시다니; 생활하시기 굉장히 불편하실것 같아요. 에구구.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8.12 23:10 신고 address edit/delete

      음, 타이레놀보다 아스피린이 더 안전했군요. 약효가 느리다니 좀 아쉽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몸이니... 그나저나 동생분이 의사분이신가 봐요+_+ 답변 학수고대하고 있겠습니다~ 감사드려요^^ (날이 많이 덥거나 비오는 날 몸이 안 좋은 건 거의 철들 때부터 그러다 보니 익숙해졌네요^^;;)

  4. Favicon of http://sogam0.blogi.kr BlogIcon 소감공 2010.08.12 10:1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오랜만에 도서관에 나왔다가.. 머리가 띵하다는 이유로 집에.... 가지는 않고 어쩐지 학교 컴퓨터실에서 글을 읽고 있습니다. ㅎㅎ

    나도 타이레놀을 먹어야 하나;;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8.12 23:11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런... 소감공 님도 오늘 몸이 안 좋으셨군요... 부디 지금은 쾌차하셨기를 바래요! (두통약은... 위에 즐겨먹는다고 쓰고 이런 말을 하면 좀 그렇지만, 약사님 말로는 내성이 생겨서 될 수 있으면 덜 먹는 게 좋다고 하더군요^^;;)

  5. Favicon of http://pokerface7.tistory.com BlogIcon KEN☆ 2010.08.12 13:4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도 어렸을 땐 아스피린을 자주 복용했었는데, 지금 집에는 게보린이 있네요. ㅎㅎㅎ
    굳이 동그라미로 안 가려도 될텐데 ㅎㅎㅎㅎㅎㅎ
    타이레놀도 괜찮나요?
    비가 와서 좀 시원하네요.
    서울이라.. 전 태풍피해가 아예 없었습네다. ^^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8.12 23:15 신고 address edit/delete

      후후, 왠지 대놓고 쓰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반장난 삼아 가려보았어요^^;; 타이레놀은, 게보린만큼 약효가 강하지는 않다고 하는데, 제가 먹기에는 나름 괜찮은 것 같더군요. 한 20분이면 약효가 돌기 시작하고, 2정이면 한나절은 약효가 지속되는 듯싶어요.

      비 피해 없으셨다니 다행이에요! 저도 서울에 살고 있어 옷이 조금 젖은 것 외에는 별다른 사고는 없었네요^^

  6. Favicon of http://gumediherb.tistory.com BlogIcon 미루마지 2010.08.12 21:2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숙취후 타이레놀은 절대(^^)안됩니다. 숙취로 인한 두통에 쓰는 진통제로서는 타이레놀은 권하지 않습니다. 이부프로펜은 오래된 NSAID인데 유아용으로 많이 처방됩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8.12 23:18 신고 address edit/delete

      으으, 역시 숙취해소로 타이레놀을 먹는 건 좋지 않았군요^^;; 음, 이부프로펜은 유아용으로 많이 처방된다면 몸에 크게 부담이 가지 않나 봐요. 약 먹지 않고 그냥 버티는 게 제일이겠지만, 꼭 필요한 일이 있으면 그쪽으로 복용을 해야 겠네요. 정보 감사합니다^^

  7. Favicon of http://sys610.tistory.com BlogIcon 꽁보리밥 2010.08.12 22:3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선천적으로 두통이 기후에 따라 생기나보군요.
    치료방법이 있었음 좋겠는데 안타깝군요.
    글 잘 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8.12 23:23 신고 address edit/delete

      어릴 때 잔병치레가 잦아서... 예전에 한의사님이 뭔가 이유를 설명해주셨는데 잊어버리고 말았네요^^;; 그래도 요즘에는 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어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 감상도 감사드려요~)

  8. Favicon of http://caprio.tistory.com BlogIcon 카푸리오 2010.08.13 22:0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축복받지 못한 체력을 타고난 건..저도...>.<
    하두 저질 체력이라 운동을 쪼금 했더니 요즘은 좀 좋아진것도 같습니다만....

    저질 체력이 소유자 입장에서 꾸준한 운동이 최고인 듯 합니다.
    수영도 참 좋습니다.
    꾸준한 운동으로 약물복용으로 부터 해방 되시길....^^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8.15 00:40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도 식단을 조절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부터 예전에 비해 몸이 많이 좋아졌네요^^ 카프리오 님도 운동 등 건강관리 힘내세요~!

  9. Favicon of http://yoons_cha.blog.me BlogIcon 에네아스 2010.08.14 12:5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여러분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스피린이 평균적으로 부작용이 적어서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쓰입니다만...
    피를 묽게 해주는 성분 때문에 여자분들은 주의해서 섭취해야합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는 파라세타몰 계열이나 이부프로펜 계열의 해열진통제를 쓰지 절대로 아스피린제를 처방하지 않습니다. 저 경우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스피린을 한번도 먹은 적이 없다는... :)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8.15 00:40 신고 address edit/delete

      역시 세상에 만병통치약이란 없는 것이군요. 음, 효과만 있다면 별다른 생각없이 약을 복용해왔는데, 다음부터는 잘 알아두어야 겠네요. 여러 가지 조언과 정보 감사합니다^^

  10. 2010.08.15 08:56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8.16 09:44 신고 address edit/delete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실 만큼 아프시다니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하실지 조금이나마 짐작이 가네요... 그런 고통을 젊은 시절부터 쭉 겪으셨다니... 비행사 님도 빨리 쾌차하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소설은 저야말로 부족한 시간 쪼개시어 읽어주시는 비행사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드시지 않도록 더욱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옙, 나중에 그럴 위치가 된다면 물론이지요^^)

  11. Favicon of http://blog.daum.net/dailyfeast BlogIcon Daily Feast 2010.09.26 17:2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세계관이 굉장히 생각보다 어렵네요. ㅋㅋ
    세계관 설명은 언제나 작가에겐 숙제인 것 같네요.
    특히 판타지를 쓰는 입장에선 ㅋㅋ

    광기는 여러가지 타 소설에 비해 케릭터간의 능력의 범위가
    상당히 광범위 하네요. 상상력을 무궁무진하게 펼칠 수 있어
    기대되네요. ㅋ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0.09.27 23:28 신고 address edit/delete

      정말요. 자기 안에 있는 걸 잘 정제하여 읽는 분들을 납득시켜야 하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저도 그 부분을 좀 더 숙달하고 싶은데, 마음 먹은 것처럼 잘 되지가 않네요^^;;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678)
잡다한 일상단상 (144)
즐긴작품 떠들기 (35)
타인정원 엿보기 (23)
환상정원 가꾸기 (476)

RECENT TRACKBACK

CALENDAR

«   2018/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