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종이 울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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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역류해도 재기동하는 나날
by 안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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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에게 아내나 아이들이 있나요?”

 캐드펠은 그 말을 듣고 마크가 제대로 된 사제라면 의당 맨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걸 알고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수님도 맨 먼저 그 점을 염려하시리라.

 “고해를 하고 속죄를 받지 않았으니 파멸의 구덩이로 떨어질 거요!”가 아니고, “이분은 언제 마지막 고해를 하고 죄사함을 받았나요?”도 아니고, “그 어린 것들은 누가 돌봐줄까요?”라는 식으로 물으시리라.

- 엘리스 피터스, 반란의 여름, 북하우스, 124면 이하. -



 난 한때 종교에 대해 호의와 희망을 가진 적이 있었다. 비록 그들의 신앙이 내게는 별다른 납득도 감흥도 주지 못했지만, 그들의 태도는 위의 인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따스한 휴머니즘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의 신은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불쾌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시기하고 거만한 존재, 좀스럽고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존재,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자, 여성을 혐오하고 동성애를 증오하고 인종을 차별하고 유아를 살해하고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자식을 죽이고 전염병을 퍼뜨리고 과대망상증에 가학피학성 변태성욕에 변덕스럽고 심술궂은 난폭자로 나온다.

-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김영사, 50면. -



 세례를 받지 않은 유아들에게 내리는 천벌을, 충격을 안겨주는 교리로 생각하기는커녕 도리어 선한 신 덕분으로 돌리다니 어쩐지 이상해 보인다. 그러나 죄의 자각은 정말로 갓 태어난 아기들을 사탄의 지체라고 믿을 정도로 아우구스티누스를 지배했다. 중세 교회가 저지른 잔인하기 그지없는 행적의 원인은 대부분 아우구스티누스의 음울한 보편적 죄의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략)

 암흑기 이전 마지막으로 지성계를 대표하는 걸출한 인물들이 문명을 구하거나 야만족을 몰아내거나 행정권의 남용을 개혁하는 일은 제쳐두고, 처녀성의 가치와 세례를 받지 못한 유아에게 내릴 천벌을 설교하는 데 몰두한 현상은 이상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교리들이 교회가 개종한 야만인들에게 넘겨준 선입견이었다는 점을 알아차리면, 그 뒤에 이어진 시대에 다른 어느 시대보다 잔혹한 사건과 미신이 득세한 현상은 조금도 놀랍지 않다.

- 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 을유문화사, 482면. -



 1644년 초에 밀턴은 교회와 국가가 시민의 결혼과 이혼을 제한하는 것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이혼의 교의와 질서'를 간행했고, 의회는 그것이 불태워져야 할 내용이라고 비난했다. 더구나 밀턴의 주장에 거부감을 느꼈던 당시 영국의 교회 당국자들은 출판업자 조합을 뒤에서 조종하여, 밀턴의 팜플렛이 출판허가법을 위반했다고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밀턴은 영국의 언론자유의 장래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는 마음으로, 1644년 11월 23일에 '아레오파기티카'를 출간했다. 이 책 역시 당시의 출판허가법을 위반했음은 물론이다. 팜플렛으로 출간된 이 책에는 인쇄업자의 이름도, 판매업자의 이름도 기재되지 않았고, 검열과 등록절차도 거치지 않았던 것이다. 출판업자 조합, 종교 당국, 의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처사였다.

 밀턴은 검열제는 시민으로부터 자신의 생을 윤택하게 하고 증진시키는 지식과 이념을 빼앗아버리는 나쁜 것이고, 비현실적이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은 검열관으로서의 자질이 없고, 분별력 있는 검열관으로서의 자질을 갖춘 지성인은 그 따분하고 공격적인 일을 감당하려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는 또한 검열제가 국민의 진리에 대한 이해 및 학문의 발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밀턴은 특히 이와 관련하여 이탈리아인들의 위대한 재능을 질식시킨 것이 다름 아닌 종교재판의 폭정이었다고 주장하면서, 갈릴레오와 만났던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유럽 여행 중에 밀턴이 만난 갈릴레오는 가톨릭 검열관들과 천문학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소의 죄수가 되어, 가택연금상태에 놓여 있었다. 밀턴은 진리가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을 다름 아닌 자유롭고 공개적인 경쟁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결국 검열과 금지를 통해 규제하는 사회라면, 진리가 왜곡되기 쉽다는 것을 지적하는 셈이다.

- 김재협, 중앙대 언론법 강의 자료 중 -



 난 이러한 종교적인 태도를 머나먼 과거의 것으로 여겼다. 때문에 오래되고 거대한 종파의 수장이면서도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종교 간의 화합을 꾀하려 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같은 이를 높이 평가하며, 그것이 현대의 종교인들이 가지는 일반적인 태도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기도 했다.




 최초로 공적인 일에 투신한 그 순간 – 1775년 노예 제도에 반대한 항의 – 부터 세상을 떠난 그날까지 그(토마스 페인)는 자기 당에 의한 것이든 반대당에 의한 것이든 모든 형태의 잔인함을 줄기차게 반대하였던 것이다.

 당시의 영국 정부는 의회를 빈민 계층의 생활수준을 낮추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무도한 소수 독재정치를 일삼고 있었다. 페인은 이러한 사회악을 제거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정치 개혁을 주창하였으므로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망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에서는 불필요한 유혈에 반대하다가 투옥되어 가까스로 죽음을 면했다. 미국에서는 노예 제도에 반대하고 독립 선언문의 원칙들을 고집하다가 정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그가 가장 정부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시기에 말이다.

 그가 주장했듯 그리고 오늘날의 많은 이들이 믿고 있듯, ‘정의를 행하고 자비를 사랑하며 같은 인간들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종교라고 한다면 그의 반대자 가운데 종교인으로 평가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 버트런드 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사회평론, 178면 이하. -



 내가 현재 미국의 기준으로 볼 때 진짜 극단주의자들과 인터뷰를 하고자 했다면, 미국을 기독교 신정국가로 만들겠다고 공개 선언하는 ‘지배신학’을 내세우는 ‘재건주의자’를 찾았을 것이다. 한 미국인 동료는 내게 걱정하는 편지를 보냈다.

“유럽인들은, 구약성서의 율법(동성애자를 죽여라 등등)을 복원할 것을 주장하고 기독교도만이 참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순회 신앙 집회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중산층 군중은 현장에서 들리는 미사여구에 환호하지요. 세속주의자들이 경계를 늦춘다면, 지배신학자들과 재건주의자들은 머지않아 미국이라는 신정 국가의 주류로 부상할 것입니다.”

-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김영사, 486면. -



 하지만 현실에서 내가 직접 부대끼거나 혹은 신문지상 등을 통해 보고 듣는 종교인들의 태도는, 안타깝게도 버트런드 러셀이나 리처드 도킨스의 인식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불신지옥’을 외치는 불쾌한 길거리 전도와 민폐스러운 휴일 아침 방문선교는 약과였다.

 자신들의 종교를 비판하는 서적은 출간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는다거나, 이성애자와 하등 다를 바 없는 동성애자 등 성 소수자들에게 험한 말을 퍼부으며 거짓 정보로 혐오선동을 일삼기도 하고, 심지어 대형 교회의 유명 목사가 불행한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지 않으니 그런 일을 당해도 마땅하다'는 식으로 망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데도 그것을 지지하는 그들의 태도에, 난 얼굴을 일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루터는 그의 설교 청취 대상이던 사회계급에 널리 유포된 허무감의 의미를 분명히 밝혀주었으며, 또한 그들에게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단지 자신의 하찮음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자기를 철저하게 비하하여 개인적인 의지의 흔적을 모두 버리는 한편, 개인적인 힘을 부인하고 비난함으로써만 비로소 개인은 신의 은총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루터의 신에 대한 관계는 완전한 복종이었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신앙에 대한 그의 생각은 ‘만일 그대가 완전히 신에게 복종하여 자신의 하찮음을 인정하면, 전능하신 신께서는 기꺼이 그대를 사랑하여 구원할 것이고, 만일 결함과 의심뿐인 자아를 철저하게 제거해 버린다면, 그대는 비로소 그대 자신의 허무감으로부터 해방되어 영광스러운 신의 세계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루터는 교회의 권위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구원을 받는 본질적인 조건으로써 인간에게 전적인 복종과 자아의 절멸을 요구한 전제군주적인 신의 권위에 복종시켰다. 루터의 ‘신앙’은 자기를 깨끗이 버림으로써 비로소 사랑을 받게 된다는 확신을 의미했는데, 이는 국가라든가 ‘지도자’에 대한 개인의 전적인 복종의 원리와 많은 점에서 공통성을 가지는 해결방법이었다.

-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홍신문화사, 71면 이하. -



 루터는 악을 처벌하는 것은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칼을 지닌 현세권력에 속하는 것이고, 국가가 아무리 악하고 불의하다 하더라도 폭동과 반란을 일으킬 구실은 될 수 없다고 하여 저항권을 부정하였다. 실제로 루터는 그의 지원을 기대하며 성서를 앞세워 반란을 일으킨 농민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지지하였다.

- 오세혁, 법철학사, 세창출판사, 102면. -



 원고측 수석 변호인인 에릭 로스차일드의 반대 심문 때 베히(창조론자)는 그 58편의 논문 대부분을 읽지 않았음을 마지못해 시인했다. 면역학이 어려운 학문이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그보다 더 용납하기 어려운 것은 베히가 그런 연구를 ‘헛된’ 것으로 치부했다는 점이다.

 당신의 목적이 현실 세계의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숙한 일반인과 정치인을 대상으로 선전을 하는 것이라면 그 연구는 헛된 것임에 분명하다. 로스차일드는 베히의 답변을 들은 뒤 법정에 있던 모든 정직한 사람들이 틀림없이 느꼈을 감정을 감동적으로 요약했다.

“고맙게도 면역계의 기원에 관해 연구한 과학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쇠약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질병들을 막아줄 방어체계입니다. 이 책들과 논문들을 쓴 과학자들은 인세도, 강연료도 없이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은 채 열심히 연구합니다. 그들의 노력은 우리가 심각한 의학적 문제들과 맞서 싸워서 이길 수 있도록 돕습니다. 대조적으로 베히 교수와 지적 설계 운동가들은 과학 또는 의학 지식의 발전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데다, 미래의 과학자들에게 그런 귀찮은 일은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김영사, 207면. -



 일전에도 몇 번 언급했던 것처럼 위의 인용과 같은 경험을 나 스스로 직접 하기도 했다.

 대학시절 경제교양 과목을 수강 시 백발성성한 명예 교수가 종종 강의시간 중에 개신교 교리를 설파하며, ‘플라톤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도 전부 유대인들과 구약성서에서 배워 자신들의 철학을 완성했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은 적도 있으며,

 법대동창인 어떤 친구는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라며, ‘세상의 부조리는 하나님께서 영웅 같은 이에게 계시를 내려 알아서 해결해 주실 테니 그때까지 우리가 함부로 정부에 반항해서는 안 된다'는 시대착오적인 소리를 서슴지 않고 한 점 부끄럼 없는 얼굴로 떠벌리기도 했다.




“자, 그런데 감옥에 들어가자 그 즉시 목사들, 이런저런 기독교 승단의 회원들, 자선가를 자처한 귀부인들이 그를 에워싸는 거야. 그들은 감옥에서 그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복음서를 해석해 주면서 훈계를 늘어놓고 설득을 시키고 우르르 몰려들어 잔소리를 늘어놓고 압력을 가한 결과, 결국엔 그가 거국적으로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기에 이르렀어. 그는 개종했고, 재판정 앞으로 자신은 불한당이었지만 결국엔 주님이 자기를 눈뜨게 해 주셨고 자신에게 은총을 보내 주셨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 보냈지.

 제네바는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어. 온통 자선적이고 경건한 제네바가 말이야. 제법 상류사회, 제법 교양 있다는 족속들이 죄다 감옥에 있는 리샤르에게로 밀려와서는 ‘너는 우리의 형제야, 너는 은총을 받은 몸이야.’라며 그에게 입을 맞추고 포옹을 했지. 그러면 당사자인 리샤르는 감동에 겨워 눈물을 흘릴 뿐이었지.

‘그렇습니다, 저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예전엔, 그러니까 유년 시절, 청소년 시절에는 돼지 먹이만 있어도 기뻤지만 지금은 은총을 받았으니, 이렇게 주님의 품 안에서 죽어 갑니다!’

‘그래, 그래, 리샤르, 주님의 품 안에서 죽어라, 너는 남의 피를 흘리게 했으니 주님의 품안에서 죽어 마땅하지. 설사 네가 돼지 먹이를 탐내고 그것을 훔친 죄로 매를 맞았을 때는(훔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으니 네가 한 짓은 아주 나쁜 일이었지.) 주님을 전혀 몰랐던 것이니 무고하다고 할 수 있지만 – 그래도 너는 남의 피를 흘리게 한 몸이니 죽어 마땅하다.’

 자, 그렇게 마지막 날이 오는 거야. 기진맥진한 리샤르는 울면서 그저 ‘이건 내 인생 최고의 날이다, 나는 주님께로 간다!’를 시시각각 되풀이할 뿐이지. 그러자 목동들, 재판관들, 자선가 귀부인들은 ‘그렇고말고, 이건 너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날이다, 너는 주님께로 가는 거니까!’라고 소리치지. 이들은 마차를 탄 채, 그리고 걸어가면서 리샤르를 태운 죄수 마차가 단두대 앞에 이르기까지 그 뒤를 졸졸 따르면서 소리쳐 댔어.

 마침내 단두대 앞에 이르렀어. ‘죽어라, 우리 형제여.’라면서 사람들은 리샤르에게 소리를 쳤어. ‘주님의 품 안에서 죽어라, 너는 은총을 받은 몸이니까!’ 자, 그리하여 리샤르는 형제들의 키스 세례를 받으며 단두대로 끌려가 기요틴에 얹어졌고, 은총을 받았다는 그 이유로 참으로 형제답게 그의 목을 잘라 버린 거지.”

-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Ⅰ, 민음사, 503면 이하. -



 하지만 우리가 이해하기 정말로 어려운 점은 – 너무나 중요하기에 한 번 더 말하면 – 그들이 자신들이 믿는다고 말하는 것을 실제로 믿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숙제를 안겨주는데, 바로 우리가 종교적 극단주의가 아니라 종교 자체를 비난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끔찍하게 왜곡된 종교가 아니라 정상적인 종교 말이다.
 볼테르는 오래 전에 그 점을 간파했다.

“불합리한 것을 당신이 믿게끔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에게 잔혹 행위를 저지르게도 할 수 있다.”

 버트런드 러셀도 같은 말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생각을 하느니 차라리 죽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김영사, 468면. -



 그밖에도 몇 년 전 나와 토론을 했던 어떤 개신교 신자는 ‘난 당신이 말하는 이성이나 지성보다는 신앙을 최고의 가치로 두기 때문에, 설령 당신이 날 논파해도 난 그냥 믿겠다’고 당당히 선언했으며,

 지금도 인터넷을 뒤져보면 과학적 발견이나 고고학적 증거를 싹 무시하거나 폄훼하며 지구의 역사가 아직도 성서에 따라 1만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따위의 주장을 펴는 종교인들의 글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버트E.A. Burtt는 『근대 물리학의 형이상학적 토대』(1925)라는 흥미로운 책에서, 근대 과학을 정초한 과학자들이 세운, 정당성이 의문스러운 여러 가정을 효과적으로 밝혀냈다. 또 코페르니쿠스가 살았던 시기에 그의 체계를 반드시 채택하도록 강제한 사실은 발견되지 않은 반면, 체계에 반대하도록 영향을 미쳤던 몇 가지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정확히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대 경험주의자가 16세기에 살았다 해도, 그들은 새로운 우주 철학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조소할 제1세대가 되었을 법하다.”

 버트의 책은 근대 과학의 발견을 중세에 유행했던 조잡하고 어리석은 미신의 영향으로 생겨난, 행운에 따른 우연의 산물로 폄하함으로써 근대 과학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려는 의도를 담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시도는 과학적 태도에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과학자를 과학자답게 구분해주는 특징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왜 그것을 믿느냐에 달려 있다. 과학자들의 신념이 잠정적인 믿음으로서 독단적인 믿음이 아닌 까닭은 증거에 근거할 뿐 권위나 직관에 기대지 않기 때문이다.

- 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 을유문화사, 683면 이하. -



 신은 아마 없을 것이고 도덕에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라고 인정하면서도 신을 최후 수단으로 여기고 되돌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이른바 신의 심리적 또는 정서적 필요성이다. 사람들은 거칠게 묻는다. 종교를 버리면 그 자리에 무엇을 넣겠냐고 말이다. 신이 유일한 친구인, 죽어 가는 환자들, 눈물짓는 유족들, 고독한 엘리너 릭비(Eleanor Rigby : 비틀스의 노래 제목 - 옮긴이)에게 무엇을 대신 제공할 것인가?

  먼저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부터 말해두자. 종교가 위로하는 힘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설령 우리가 엄청난 양보를 해서, 신이 있다는 믿음이 인간의 심리적, 정서적 안녕에 본질적인 역할을 한다고 할지라도, 모든 무신론자가 냉혹하기 그지없는 우주적 불안에 자살 충동을 일으킨다고 할지라도, 그 어떤 것도 종교 신앙이 진리라는 증거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김영사, 540면. -



 혹시 오해할까 첨언하자면, 난 과학적 지식이나 인간의 이성理性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심각하게 착각하는 것을 비판하고자 한다.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과 그 이성을 아예 포기하자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가령 사람의 다리로 하늘을 날 수 없다고 하여 주술로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주장이 옳다고 할 수 있는가? 심지어 사람의 다리로는 하늘을 날 수 없으니 아예 그 다리를 잘라버리자는 주장은?

 난 그러한 사고방식에 일절 동의할 수 없으며, 고로 다음과 같은 버트런드 러셀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하는 바이다.



 종교가 주는 해악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종교에 반드시 주어져야 한다고 여겨지는 믿음의 성질에 좌우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믿어지고 있는 특정 신도들에 좌우되는 것이다. 우선 믿음의 성질에 관해 살펴보자. 여기서는, 신앙을 갖는 것, 다시 말해 반대 증거가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 도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아니, 반대 증거로 인해 의심이 생기면 그 증거들을 억압해야 한다고 주장된다.

 이러한 근거 위에서, 러시아의 경우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주장을 못 듣도록, 미국의 경우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주장을 못 듣도록 젊은이들의 귀를 막아버린다. 그 결과 양측의 신념이 원상 그대로 보존되면서 사생결단식의 전쟁만 준비될 뿐이다.

 비록 자유로운 탐구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믿음이라 하더라도 이것 혹은 저것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식의 확신은 거의 모든 종교들에서 볼 수 있는 현상으로서 바로 이것이 국가교육제도를 자극해댄다. 그 결과 젊은이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 되어 자신들과 다른 광신주의를 가진 상대편에 대해 광적인 적대감으로 가득 차게 되며, 특히 모든 종류의 광신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더 한층 적의를 가지게 된다.

 증거에 입각해 확신하는 습관, 증거가 확실하게 보장하는 정도까지만 확신하는 습관이 일반화된다면 현재 세계가 앓고 있는 질환의 대부분이 치유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그러한 습관의 형성을 방해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로 되어 있으며, 근거 없는 독단 체제를 믿지 않겠노라고 하는 사람들은 2세를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여겨지는 형편이다.


- 버트런드 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사회평론, 12면 이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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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sodien.tistory.com BlogIcon ksodien 2016.08.22 23:5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과연, 하인리히 법칙은 시대를 초월한 혜안이었던 것이로군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르고 또한 그만큼의 시행 착오와 비극들이 되풀이 된 후에야 보다 지혜롭고 관용적인 사고들이 뿌리내리게 될는지....

    하지만 당장은 이 폭염의 밤부터 이겨내야 할 것 같아요! 모쪼록 안단테님에게도 숙면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_<)

    • Favicon of http://garamdong.tistory.com BlogIcon 안단테♪ 2016.08.26 08:22 신고 address edit/delete

      정말 이번 여름은 많이 더워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는 나날이 계속 되었네요. 다행히도 이번에야말로 비가 내려 날씨도 점점 선선해 지고 있는 듯싶어 한시름 놓았어요. 소디언 님께도 숙면하시는 밤이 계속 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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