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종이 울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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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역류해도 재기동하는 나날
by 안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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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란 그렇게나 좋은 것일까? 은하연방의 민주공화정은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라는 추악한 기형아(독재자)를 낳지 않았던가.”

 “…….”

 “게다가 경이 사랑해 마지않는, 아…… 이건 내 생각이네만, 그런 자유행성동맹을 내 손에 팔아넘긴 것은 동맹의 국민 다수가 자신의 의지로 선출한 국가원수였네. 민주공화정이란 국민이 자유의지로 자기 자신의 제도와 정신을 타락시키는 정치체제인가?”

 여기까지 오면 양도 반론해야 했다.

 “실례지만, 각하의 말씀은 화재의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불 그 자체를 부정하시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흐음…….”

 라인하르트는 입술을 일그러뜨렸으나, 그러한 몸짓조차 금발 젊은이의 우아함을 해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전제정치도 같지 않은가? 이따금 폭군이 출현한다 하여 강력한 지도성을 가진 정치의 장점을 부정할 수는 없을 텐데.”

 짐짓 생각에 잠긴 척한 표정을 지으며 양은 상대를 바라보았다.

 “저는 부정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말인가?”

 “국민을 해칠 권리는 국민 자신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루돌프 폰 골덴바움, 또한 그보다도 훨씬 소인배지만 욥 트뤼니히트 같은 자를 권좌에 앉힌 것은 분명 국민 자신의 책임입니다. 남을 책망할 수 없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전제정치의 죄란, 국민이 정치의 해악을 남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 죄악의 크기에 비하면 100명의 명군이 베푸는 선정도 조그맣게 보일 정도지요. 하물며 각하처럼 총명한 군주가 출현하는 일이 지극히 드문 것을 고려해 본다면 장단점은 명백해지지 않을지요…….”


-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이타카, 354면 이하. -



 2017년 3월 10일. 탄핵 인용. 마침내 피의자 박근혜 씨가 파면되었네요. 민주 시민으로서 우리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은 ‘난 박근혜를 뽑은 적이 없다’라는 말로써 불쾌감을 표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미 ‘다수결’에 동의하고 투표를 한 이상, 설령 자신이 지지하지 않은 후보가 선출되더라도 그 결과를 용인하는 한편 수반하는 책임 또한 회피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저 역시 박근혜 피의자에게 표를 던진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독재자의 딸이 선출된 것에는 책임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가령 동 피의자가 선출되지 못하도록 충분히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고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했어야 됐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책임’이란 무엇일까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마치 마조히스트처럼 자신들이 뽑은 잘못된 위정자의 횡포를 감수하며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책임을 지는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위의 인용에서도 말하는,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민주 시민으로서의 책임이란, 역시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라고 봅니다.

 반대로 박근혜 피의자를 옹호하며 만국기 집회를 하는 노추한 이들은,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리자면 '각 계층의 낙오자'들로 구성된 이 폭민(mob · 暴民)들의 근저에 있는 것은, 애국 운운하는 거창한 수식이 무색하게 실제로는 자기 책임을 ‘회피’하려는 퇴행적인 심리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지도자에게도 여전히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한편, 그 지도자를 끌어내리는 것으로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시민들에게 적대감을 표출하는 것이지요.




 “혹시 발견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 「지문」같은 거 찾지 못할지도……. 아니, 그보다는 찾는다고 해도 범인이 교활한 변호사라든지 고용해 무죄가 된다면 당신은 어쩌려고 이런 고생을 떠맡고 있는 거지?”

 “그렇군. 나는 「결과」만을 바라고 있는 게 아니야. 「결과」만 바라고 있으면 사람은 지름길로 가고 싶어 하는 법이지. 하지만 지름길을 택했을 때 진실을 놓치게 될지도 몰라. 의욕도 갈수록 잃어버리고 말이야.”

 “…….”

 “중요한 것은 『진실을 추구하려는 의지』라고 생각해. 그 추구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설령 이번에 범인을 놓친다고 해도 언젠가는 닿을 수 있겠지. 계속 그쪽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말이야.”


- 아라키 히로히코, 죠죠의 기묘한 모험 제5부 13권, 슈에이社, 110면 이하. -



 분명 ‘의지와 노오오오력’을 강요하는 사회는 잘못되었습니다. 손발이 꽁꽁 묶인 사람이 헤엄을 치지 못하고 가라앉을 수밖에 없듯이, 상황에 대한 개선 없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일은 사실상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극기만을 강조하는 기성사회의 요구에 심한 부조리를 느끼는 것이지요.

 하지만 모든 일의 기본이 ‘의지와 노력’인 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단지 필수조건을 충분조건인 것 마냥 밀어붙여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풍조가 그릇되었을 뿐이지, 그 ‘기본’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다른 많은 분들도 말씀하시는 것처럼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박근혜 피의자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고, 다른 기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금방 사회 부조리가 일소될 수는 없는 일이지요. ‘한국사회의 정상화’라는 긴 여정을 끝까지 걸어 나가기 위해선 지속적인 시민들의 관심과 비판, 그리고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오늘 하루, 이 작지만 큰 ‘진전’을 순수하게 기뻐하는 일 정도는 허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동시에 오늘을 ‘기억’하며 사회 정상화의 여정이 끝나는 그날까지 쭉 이 마음을 유지하며 힘을 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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